“국제사회, 北核 책임 공유하면서도 국가별 대북 전략 짜야”

북한의 핵 위협 속에서 한반도 평화 구상이란 난제가 대두된 가운데, 국내외 한반도 전문가들이 17일 2017 한반도국제포럼(KGF) 계기로 한 자리에 모여 단기간 내 북한의 핵포기를 기대하긴 어렵다고 입을 모았다. 다만 북한 비핵화와 평화 정착을 위한 방안과 관련해선 각국의 관점에서 다양한 논의가 오갔다.

고경빈 평화재단 이사는 이날 통일부와 아산정책연구원이 공동 주최한 포럼에 참석, “한반도 휴전 체제, 즉 ‘53년 체제’는 한미동맹과 북한만의 관계로 이뤄진 게 아니라 주변국도 직간접적으로 개입한 결과”라면서 “중국은 휴전협정 당사자였고 일본은 주한미군 후방 기지 역할을 했다. 이들이 연루된 53년 냉전 체제의 유산을 걷어내고 북핵 문제의 새 판을 짜야 한다”고 밝혔다.

고 이사는 “(1988년) 노태우 대통령의 7·7선언(민족 자존과 통일 번영을 위한 대통령 특별선언)을 통해 동북아 지역에 남아 있던 냉전의 유산을 도려내야 했지만, 그 노력이 절반만 진행된 채 30년을 그대로 보냈다”면서 “앞으로 53년 체제에 가담한 당사국들과 폭넓은 관계 개선을 이루면 북한 비핵화의 타협점을 찾는 것도 더욱 용이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최근 미북 간 고조된 치킨게임 양상을 지적하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겁쟁이가 될까 두려워 치킨게임에서 빠져나올 용기를 잃었고, 약소국의 김정은은 더욱 처절한 모습”이라면서 “이런 상황에서 (미북은) 먼저 타협을 제의하는 쪽이 패배자로 인식되고 협상에 수동적으로 끌려갈 것을 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 이사는 이어 “현 상황에서 미북 양측의 체면을 세워주고 협상장으로 안내하는 제3국의 중재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안이 강조하고 있는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부분을 언급했다. 53년 체제의 당사국들의 역할이 중요하지만, 현재 이들 국가가 처해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미북 간 중재 역할을 맡기기에는 쉽지 않다는 것.

고 이사는 “중국은 미중 간 관계가 미묘하게 꼬이자 북핵 협상 중재 역할보다는 자기네 위치를 우선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고, 한국은 지난 정부 시절 대북 레버리지나 대미 레버리지를 모두 소진해버려 중재 역할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면서 “게다가 일본은 대북 제재 선봉자 역할을 하고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사태로 미국 제재를 받느라 중재에 나서기 적절치 않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그는 “총 여덟 차례 채택된 유엔 안보리의 북핵 관련 결의안에는 대북 경제 제재를 강화하는 내용도 있지만, 북핵 문제를 평화적 방법으로 풀기 위해 대화를 촉구하는 부분도 있다”면서 “전 세계 유엔 회원국들이 북핵 문제 풀기 위한 결의 포괄적 이행한다는 측면에서 중재 노력이 이뤄지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피력했다.

중국의 관점에서 주펑 난징대 교수는 북핵 문제의 책임 공유를 강조했다. 그는 “중국이 어떻게 하면 북한을 증오하게 될지를 기대해선 안 된다”면서 “베이징에선 북한의 핵 야욕을 좌초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오고 있고, 그에 맞는 역할이 있다. 이제는 국제사회 전반이 책임을 통감하며 이를 공유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 교수는 “중국에서도 국제사회가 북한과 관련해 통일된 전선을 구축하는 상황을 주목하면서 효과적인 대북 계획을 짜려고 하고 있다”면서 “다만 유엔 결의안을 비롯한 제재의 효과는 공동의 책임을 갖고 다자적으로 노력할 때 더 효율성을 가질 수 있다. 이제는 모든 플레이어(국가)들이 참여해 대북 모멘텀을 만들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그는 특히 한미중 간의 일치된 대북 메시지 발신을 주문했다. 주 교수는 “베이징과 서울, 워싱턴이 커다란 전략적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다”면서 “자신들의 입장을 굽힐 리 없는 북한을 광범위한 범위에서 견제하고, 나아가 북한이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공동의 책임 하에서 개별 국가가 취할 수 있는 대북 외교 해법에도 주목했다. 주 교수는 “공동의 책임 공유 하에서 조화로운 로드맵이 필요하다. 북핵 문제에 대한 책임을 공유하더라도 개별 국가들이 자신들의 역할 또한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라면서 “일례로 문 대통령의 대북 인도지원은 생산적 결과를 낳을 것이라 본다. 즉 책임은 공유하되 개별 국가가 분업해 대북 전략을 세워가는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도쿠치 히데시 일본정책연구대학원 수석연구위원은 “북한을 설득하기 위해 대화도 중요하지만, 적어도 지금은 북한이 최소한의 신뢰마저 저버린 상황 아닌가. 그래서 대화할 때는 아니라고 본다”면서 “북한을 협상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해선 북한에게 핵무기가 정권의 생존 수단이 될 수 없음을 이해시켜야 하고, 이는 강한 압박으로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도쿠치 연구위원은 이어 미국의 아시아 정책 강화를 위한 한미일 3자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트럼프 당선 1년이 지나도록 대(對)아시아 정책이 부재한 모습”이라면서 “일본과 한국, 미국이 소통을 강화해 이 지역에 대한 미국의 정책을 보다 더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포럼 기조연설에 나선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북한 핵문제는 강한 안보를 바탕으로 긴밀한 국제공조를 통해 풀어나갈 것”이라면서 “한반도의 긴장 상황을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모든 평화적 수단을 통해 북한을 비핵화 대화로 이끌고자 한다”고 말했다.

조 장관은 “대화와 협상을 통해 북핵 문제를 단계적으로 풀어 나가면서 항구적인 평화체제 구축을 병행해서 한반도와 동북아의 안보 위협을 근원적으로 해소해 나갈 것”이라면서 “북한이 이제라도 올바른 길을 선택한다면 우리와 국제사회는 북한에 밝은 미래를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 오랜 시간과 많은 노력에도 불구하고 진전되지 못한 것은 대북정책이 일관되게 추진되지 못했기 때문”이라면서 “국민적 합의에 기반해 보수와 진보라는 이념의 차이를 뛰어넘는 대북정책을 만들어낼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