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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경북도 사나이, 인권변호사를 꿈꾸다

[탈북자 정착스토리⑨] 외고 첫 시험에서 전교 꼴등, 이 악물고 공부해 명문대 진학까지
김지승 기자  |  2017-10-12 10:19

국내 정착 탈북민 3만 명 시대. 이들은 한국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먼저 온 통일’이라는 사명감에 따른 이들의 노력은 향후 통일 한반도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남북 문화 이질화로 인해 여러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데일리NK와 국민통일방송은 취업, 창업, 학교진학 과정에서의 성공 사례와 실패한 경험이 있더라도 교훈을 줄 수 있는 사례를 발굴, 한국 및 해외 독자들에게 탈북민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2009년 한국에 입국한 주일용(함경북도 청진 출신·22)씨는 외고를 졸업한 이후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소위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해도 과언이 아닌데 그의 모습은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었다. 찢어진 청바지에 티셔츠, 오른손엔 가방, 왼손엔 헬멧. 그의 모습엔 캠퍼스의 자유로움이 묻어났다. 그런 주 씨는 자기소개 하는 방법도 남다르다.

“함경도 사나이 주일용입니다. 저는 인권변호사가 꿈입니다.”

‘부산 사나이’라는 대명사가 있듯 ‘청진 사나이’도 어색하지 않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처음에는 사람들 앞에 나서기 부끄웠지만 이제는 사람들 앞에서 자신의 고향, 연애, 학업 등을 주제로 이야기하는게 제법 익숙하다. 수 십차례의 ‘생각 고쳐 먹기’ 끝에 얻어낸 결과이다.

주 씨는 과거 혹시라도 자신이 ‘만만하게’ 보일까봐 눈에 불을 켜고 다녔다. 한국에 왔을 당시 그의 나이 고작 13살. 탈북민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은 어린 소년이 감당하기에는 차갑고도 아팠다. 북한에 있을 당시부터 한국이 잘 산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어, 문화 차이는 어느 정도 예상했다. 하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보다 혹독했다. 덕분에 그의 ‘사춘기’는 고등학교때까지 꽤 오래갔다.

주 씨는 학창시절 북한에서 왔음을 일찍이 주변에 알렸다. 출신을 감추기보다는 당당히 드러내는 것이 자신을 위해서도 좋은 일임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성적은 기본기가 있어 곧 잘 따라갔다. 무탈히 중학교를 졸업할 때쯤 담임 선생님이 “외고에 진학하는게 어떠냐”며 권유했다. 당시 대부분의 외고에는 탈북민 전형이 없었을 뿐아니라 진학한 사례도 드물었다.

사실 외고라 하면 학교에서 가장 공부를 잘하는 학생들이 가는 곳이라는 인식이 많았다. 걱정이 많이 됐지만 매주 다니는 교회에서 외국 학생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있어 영어는 어느정도 자신이 있었다. 걱정반 설렘반 가득 안은 채 결과를 기다린 결과 합격 통지서를 받았다. 덕분에 ‘엄친아’라는 별명도 생겼다.

주 씨는 1학년 1학기 첫 중간고사를 치렀다. 정말 열심히 공부했으나 전교 꼴등을 했다. 그를 잘 아는 사람들은 그의 노력을 알아줬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저 아이는 왜 공부를 안할까”라는 시선으로 그를 봤다. 주변의 부담스러운 시선은 그를 더 악착같이 공부하게 만들었다.

17세 사춘기, 먼저 마음열기

무엇보다 최초의 탈북민 입학생이라는 타이틀은 주 씨의 어깨를 무겁게 했다. 외고 학생들도 탈북민을 ‘최초’로 만나보기 때문이다. 자신의 행동이 탈북민 전체에 대한 인식을 심어줄까봐 두려움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씨는 먼저 마음을 열기로 했다. 반 친구들에게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 물어보는 등 친근감 있게 다가가기로 했다. 그 결과 성적도 점차 올랐고,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내게 됐다.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17세 사춘기. 주 씨는 한국 학생들과 공감대 형성을 위해 담임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했다. 이에 담임 선생님은 ‘또래 상담사’를 추천했다. 사실 북한에서는 애초부터 출신성분에 따라 인생의 경로가 대부분 결정되기 때문에 정체성 혼란을 겪을 일이 없어 한국에서 말하는 것과 같은 사춘기가 없다고 한다. 공부를 잘해도 농부의 아들은 농부가 되기 때문. 

그는 이 부분이 북한과 남한의 가장 큰 차이라고 느꼈다. 주 씨는 문득 한국친구들의 고민이 궁금해졌다. 부모님과의 갈등, 성적에 대한 고민, 친구 관계 등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았지만, 이해하고 귀 기울이기로 했다.

북한인권개선 활동 시작하며 인권변호사를 꿈꾸다

주 씨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대학생인 지금까지 북한인권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

고등학교 2학년 당시 친구와 함께 ‘웨이브’라는 북한인권동아리를 창설했다. 사회적으로 많은 관심을 받는 분야는 아니지만 북한인권개선을 위해선 무엇이든 해야했다는 마음에서였다. 당시 경험을 바탕으로 대학에선 더욱 적극적인 활동에 나서게 됐다. 남북 청년 4명으로 시작한 동아리는 점차 규모를 키워가며 활동폭을 넓히고 있다.

주 씨는 현재 고려대학교 북한인권동아리 리베리타스에서 많은 탈북민 학생들이 고민하는 입시문제, 자소서 작성 등을 돕는 튜터링 활동을 주로 하고있다. 물론 현재 하고 있는 활동들이 실제 도움이 될 수 있을 지 고민에 빠진 적도 많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활동해도 직접적으로 북한인권 개선에 이바지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도 잠시, 넘어설 단계라고 생각해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했다.

남과 북을 모두 경험해 본 20대 청년 주 씨. 북한이든 남한이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모두 같은 사람이라고 강조했다. 북한정권이 나쁜 것이지, 그곳에서 태어난 사람이 나쁜 것을 아니라고 했다. 나와 다른 출신이라고 해서 차별하지 않았음 좋겠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잘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준 한국정부에 감사한다는 마음을 전했다. 인권변호사라는 꿈을 향해 열심히 공부하고, 북한인권개선을 위한 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싶다는 그의 목소리에서는 함경도 사나이다운 기개가 느껴졌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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