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화’로 남북관계 주도하겠다더니…北 무반응에 ‘난처’

우리 정부의 대화 제의에 대한 북한의 무반응은 군사분계선(MDL)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일로 제안했던 27일에도 마찬가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의 ‘베를린 구상’ 후속조치에 따른 군사당국회담과 MDL에서의 상호 적대행위 중지 제의가 결국 북한에게서 아무런 호응도 얻지 못한 채 예정일을 넘기게 된 셈이다.

이에 따라 ‘대화 재개가 답’이라 자신해 온 정부의 대북구상에도 빨간 불이 켜질 양상이다. 정부는 소위 대북 대화공세를 통해 남북관계 운전석에 앉을 수 있을 것이라 내다봤지만, 상대방의 호응조차 없는 대화 전략이 과연 남북관계 진전을 가져올 수 있느냐는 회의론이 적지 않다.   

특히 대화를 통한 한반도 긴장 완화란 구상도 지금까지의 김정은 대남 전략으로 볼 때 쉽지 않아 보인다. 새 정부 출범 이후 이어진 대화 제의에 북한이 보내온 반응은 도발과 위협이었다. 북한은 지난 4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한 데 이어 최근까지 대외 선전용 매체를 통해 정부를 비난해왔다.

결코 핵을 협상탁에 올리지 않겠다는 호언장담과 함께, 대화를 하더라도 남한이 아닌 미국과 하겠다는 ‘통미봉남’ 전략도 여전하다. 때문에 북한의 대화 호응을 기다리다가 되레 북한의 핵 개발 시간만 벌어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도 난처해하는 눈치다. ‘대화에 데드라인은 없다’는 게 공식 입장이지만, 북한에 수정 제안을 하는 것도 모양새가 이상해 마냥 기다리는 방법밖에 없다는 목소리도 내부에서 나온다.

정부는 대화 기조가 한미동맹이나 대북공조에 어긋나는 게 아니라고 해명하는 데도 진땀을 빼고 있다. 미국은 우리 정부의 남북 군사회담 제의 직후 ‘대화 시기가 적절치 않다’고 다소 냉랭한 반응을 보인 데 이어, 최근엔 한층 강화된 대북 독자제재를 준비하며 대화 기조와는 다른 방향으로 기울어진 모양새다. 

이런 가운데 정부는 27일 “북측이 시급한 현안 문제에 대한 인식을 갖고 호응하길 바란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나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에) 시한을 갖고 접근한 게 아니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이 당국자는 “한반도 긴장 완화와 분단 고통 해소 등의 현안들을 해결하는 게 시급하다는 생각에 대화 제의를 한 것”이라면서 “북한도 구체적으로 거부 의사를 표명하진 않은 상황 아닌가. 여러 고민을 하고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

특히 북한의 추가 도발 시에도 대화 기조가 유지되느냐는 질문에 이 당국자는 “정부의 대화 기조 입장은 분명하다”면서 “북한 도발 징후에 관한 보도는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의 대북구상이 시기적절하지 않다는 일각의 지적에 대해선 “그런 것을 평가하는 건 시기상조라고 본다”고 답했다.

문상균 국방부 대변인도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한반도 평화정착과 군사적 긴장완화를 위한 우리 측의 베를린 구상과 군사당국회담 제의에 대해 북측에 호응해 나올 것을 촉구하는 입장에는 변화가 없다”면서 “북한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고 남북 평화정착과 군사적 긴장완화 노력을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정전협정 체결일인 27일을 계기로 북한이 전략 도발에 나설 가능성도 제기됐으나, 임박한 도발 징후는 포착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27일을 ‘미제국주의의 항복을 받아낸 날’ 이른바 ‘전승절’이라고 주장해오고 있는 만큼, 미국을 겨냥한 ICBM급 미사일 시험발사 등 일종의 축포성 도발에 나설 수 있다는 관측이 이어져 왔다.

이와 관련 노재천 합참 공보실장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우리 군은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대해 한미 연합감시 자산을 동원해 면밀히 추적 감시 중”이라면서 “북한 미사일 발사 임박 징후는 없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군은 북한이 SLBM(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을 개발하기 위한 활동을 지속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관련 동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대신 북한은 미국을 겨냥한 위협적인 언사를 통해 핵 무력을 과시하고 내부 결속을 꾀하는 모습이다. 박영식 북한 인민무력상은 25일 전승절 64주년 경축 중앙보고대회에서 “만약 적들이 공화국의 전략적 지위를 오판하고 핵 선제타격론에 계속 매달린다면 백두산 혁명 강군은 이미 천명한 대로 그 무슨 경고나 사전통고도 없이 아메리카 제국의 심장부에 가장 철저한 징벌의 핵 선제타격을 가할 것”이라고 위협했다.

27일 당일에는 노동신문을 통해 지난 25일 진행한 육군·해군·항공 및 반항공군 장병들의 결의대회를 공개하고 “반제·반미 전승의 역사와 전통은 오늘 김정은 동지를 높이 모시어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