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오지 말고 돈이나 더 벌어라” 갈 곳 잃은 北노동자

쥐 죽은 듯이 숨어 지내야 하고, 주인집 눈치를 보는 것도 힘들지만 가장 힘든 건 북에 두고 온 자식, 고향 생각이 날 때다. 잠깐이라도 짬이 나면 자식 생각, 고향 생각, 형제 생각이 난다. 하루에도 몇 백 번씩 고향에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 위해 국경을 넘어 돈벌이를 하고 있는 북한 노동자들. 이들은 고된 하루하루를 가족에 대한 그리움과 언젠가는 고향에 돌아갈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버텨내고 있었다.

중국에서 간병인으로 일하는 김미옥(가명. 53세) 씨는 “이제는 더 살아도 희망이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렇게 돈 벌다 죽을거면 당장이라도 고향에 가서 죽고 싶다는 마음 뿐이다. 그렇지만 내가 돈을 벌어야 북한에 있는 자식들이 사니까, 그 생각에 돌아가고 싶은 생각을 참는 것이다고 말했다. 그는 내가 없을 때 우리 딸이 결혼 했는데 엄마 없이 결혼 했으니 얼마나 초라했겠나. 손주도 낳았는데 아직 보지도 못했다. 저녁에 혼자 있다보면 자꾸 집생각밖에 안 난다. 집으로 가는 꿈을 꾸기도 한다. 그래도 거기에서 살 거 생각하면 앞이 또 막막하다고 한숨을 뱉었다.

중국의 봉제공장에 파견된 북한 여공들의 경우에는 높은 업무 강도에 지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소연하는 경우가  많다. 단둥의 봉제공장에서 일했던 조선족 관리인은 “19살, 20살짜리 어린 여공들이 휴식도 없이 하루 12시간 이상을 일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라면서 “가족들에게 어리광 부릴 시기에 고된 노동을 해야 하니 ‘부모님이 있는 북한으로 하루 빨리 가고 싶다’는 이야기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이 계약기간이 종료되기 전에 북한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파견을 나오기 위해서 지급했던 뇌물과 이자 비용을 모두 갚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계약기간을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북한 노동자들이 고향을 떠나 낯선 타국까지 오게 된 이유는 가족이 생계가 자신에게 달려있다는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돈 벌이를 할 수 있는 수단이 마땅이 없기도 하지만, 중국에서는 그래도 일한 만큼 돈은 벌 수 있는 기회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족에 대한 사랑과 책임감으로 자의 반, 타의 반 시작한 생활이지만 고향에 대한 그리움으로 눈물로 밤을 새울 때가 한 두 번이 아니다. 그러나 떨어져 있는 시간이 길어지다 보니 서로에 대한 오해와 원망이 커지는 경우도 있다. 가족과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지만 갈 수 없는 상황까지 만들어지게 된 것이다.

김 씨는 이제 막 중국으로 온 사람들이 하나같이 북한이 작년보다 못 살게 됐다고 말한다. 이런 말을 들으면 나는 올해도 북한에 못 돌아가겠구나라는 생각을 한다다들 이렇게 살다보니 벌써 10년 넘게 중국을 못 떠나고 돈을 벌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아들이 꼬마일 때 중국에 와서 지금은 (그 아들이)군대에 갔다고 하는데 그동안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고 설명했다. “북한으로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한 게 한 두 번이 아니지만 식구들도 자신이 돈을 벌어서 보내줘야 좋아하지, (돈도 없이) 그냥 만나러 가봤자 안 좋아 한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거래 차 잠시 중국을 방문했다는 북한 사업가는 내가 아는 한 복무원 여성의 경우 아버지랑 오빠랑 둘 다 죽고 어머니랑 둘만 살았다. 나중에 내가 대신 집에 전화해 줄 일이 있었는게 그 어머니가 제발 (북한에) 돌아오지 말게 해달라. 1년이라도 더 있어서 돈 벌어라. 그게 엄마 도와주는 거다. 좀 더 (딸을)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하더라고 말했다.

中, 체류 기한 넘기면 벌금 징수, 北에서도 조사 과정에서 뇌물 뜯겨

이들을 더욱 힘들게 하는 것은 현지에서 당하는 차별과 무시다. 북한 파견 북한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조선족 사업가는 “간혹 북한 노동자들이 손버릇이 나빠서 물건을 훔친다고 흉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면서 “그런데 이들이 가져가는 물건이 대단한 게 아니고 중국 사람들이 필요 없다고 버린 낡아빠진 톱, 톱날 등이었다”고 말했다. 북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도구들이기 때문에 버려진 것들을 모아서 북한의 친구들에게 나눠주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 노동자들이 밥에다가 장국이라도 같이 먹으려고 냉장고를 열면 난리가 난다. 중국 사람들이 냉장고를 왜 여냐고 면박을 주기 때문이다. 중국 노동자들은 자기 마음대로 냉장고를 열고 음식도 꺼내 먹으면서 북한 노동자들에게는 눈치를 준다고 설명했다.

연길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북한 지배인은 “같은 식당에서 북한 노동자와 중국 노동자가 함께 일을 하는데, 북한 노동자들은 가난한 사람 취급하며 차별하는 듯 했다”면서 “같은 식당에서 같은 일을 하지만 식사 메뉴도 다르고, 쉴 수 있는 공간도 다르다”고 말했다. 이어 지배인은 “한 복무원은 중국 노동자들이 이용하는 주방에 잠시 들어갔다가 나온 것뿐인데 주변에서 식재료를 가로챘다며 도둑 취급을 당하기도 했다”며, 그러자 우리가 여기 나와서 하라는 대로 하고 중국말 모른다고 무시하지 말라며 여자 종업원들이 다 격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무시와 천대 속에 일 하다 보니 북한 노동자들에게는 다 악 밖에 안남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또한 중국 당국이 불법 체류 북한 노동자들에게 높은 벌금을 징수하기 시작하면서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김 씨는 “작년부터 비자 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체류하는 사람들에게 중국 당국이 벌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며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불법으로 체류한 기간 1개월 당 1,000위안(元, 약 16만 6000원)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가 아는 사람은 북한으로 가려고 단둥까지 갔다가 그냥 다시 돌아왔다. 비자 기간보다 1년이나 더 있었다면 1만 위안(약 165만 7000원)을 내라고 했던 것이다. 지금까지 번 돈으로 북한에서 가족들과 함께 살 꿈에 부풀어 있었는데 실망이 대단했다며 “중국에서 요구하는 벌금을 내려면 그동안 모은 돈을 다 내야 하는 상황이다. 집에 돌아가지도 못하고 벌금만 계속 늘어가는 상황”이라고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들 앞에는 북한 당국의 강도높은 조사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조사를 빌미로 한 뇌물 챙기기의 일환이라고 김 씨는 설명했다. 북한으로 돌아가면 석 달 안 무릎 꿇고 앉아서 조사만 받아야 한다. 중국에서 뭘 했는지, 누구를 만났는지, 한국 사람들은 만난 적 없는 지 등을 조사받는다고 말했다. 이어 중국에 있는 동안 돈을 떻게 사용했는지까지도 조사서를 써야 하는데 결국 그동안 경험한 모든 일을 써야 하는 셈이다. 그렇게 오래 조사를 하는 이유는 결국은 자신들에게 뇌물을 바치라는 의미다. 뇌물을 내고 난 이후에서야 풀려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