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피살 첫 北 남성 용의자 체포…‘고정간첩’ 의혹

북한 김정남 피살 사건을 수사 중인 말레이시아 경찰이 네 번째 용의자로 북한 신분증을 소지한 남성을 체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사건이 북한 소행이라는 관측에 한층 무게가 실린다.

말레이시아 경찰이 17일 밤 셀랑고르 주 체포한 이 용의자는 만 46세(1970년 5월 6일생)의 ‘리정철(Ri Jong Chol)’이란 남성인 것으로 확인됐다. 그는 해당 주 잘란 쿠차이 라마 지역에 있는 아파트에 거주하다가 급습한 경찰에 의해 덜미가 잡혔다.

체포 당시 리정철은 외국인 노동자에게 발급되는 말레이시아 신분증인 ‘i-Kad’를 소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i-Kad’는 말레이시아 당국이 소지자의 개인 정보와 회사명 등을 확인하기 위해 2014년 도입한 외국인 노동자용 신분증이다.

말레이시아 경찰은 이 외에 자세한 내용은 공개하지 않은 상태지만, 당초 경찰이 추적하던 도주 남성 용의자 4명 가운데 1명으로 추정된다. 현지 복수 매체에 따르면, 현재 경찰은 리정철이 복수 이름을 사용하거나 위조 신분증명서를 사용하고 있었는지 여부를 조사 중이다.

◆ 첫 北 국적 용의자 리정철, ‘해외 파견 노동자라’기엔 수상한 생활

김정남 피살 용의자 중 처음으로 북한 국적의 남성 용의자가 체포되면서 그의 정체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지 경찰은 리정철이 북한 정찰총국 소속 공작원인지 혹은 누군가에게 고용된 살인청부업자인지 수사 중인 것으로 알려진다.

일단 리정철이 외국인 노동자에게 발급되는 신분증을 소지하고 있었다는 점에서 말레이시아에 파견된 북한 노동자 신분으로 살아온 것으로 보인다. 다만 현지 매체들이 그가 아내와 자녀 둘을 데리고 수년간 말레이시아에 거주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내면서, 파견 목적이 애초 ‘노동자’가 아니었을 것이란 의혹도 제기된다. ‘가족 동반 거주’는 북한의 노동자 파견 원칙에서 크게 어긋나기 때문.

북한은 해외 파견 노동자의 현지 이탈을 우려해 가족을 북한에 일종의 ‘인질’처럼 남겨두고 있고, 파견 노동자는 현지에서 다른 노동자들과 집단생활을 해야 한다.

이에 따라 리정철이 그간 파견 노동자로 신분을 위장한 채 정보 수집 등을 해오던 ‘고정간첩’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북한에 지속 정보를 보고하고 지령을 내려 받다가, 현지에서 암살조를 꾸려 김정남 피살을 지휘했을 수 있다는 것.

특히 리정철이 체포된 두 여성 용의자들을 포섭해 범행에 가담토록 회유한 ‘아시아계 남성’과 동일인물이라면, 그가 고정간첩으로서 김정남 암살을 주도했을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여성 용의자들이 진술한 바에 따르면, 한 아시아계 남성이 여성 용의자들인 베트남인 안 티 흐엉과 인도네시아인 시티 아이샤를 각각 3개월과 1개월 전에 포섭했다고 한다.

이후 이 아시아계 남성은 도안 티 흐엉과 함께 베트남과 한국을 포함한 나라들을 여러 차례 여행하며 환심을 산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면서 함께 장난 동영상을 찍자고 제안했으며, 곧 시티 아이샤도 끌어들여 범행 시나리오를 구상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리정철이 고정간첩이 맞다면, 그와 함께 살던 가족들 역시 신분 위장을 위해 파견된 ‘가짜 가족’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한편 현지 경찰은 최소 3명 이상의 추가 남성 용의자들에 대한 체포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앞서 경찰은 김정남 암살 용의자로 베트남 여권 소지자 도안 티 흐엉(29)과 인도네시아 국적 시티 아이샤(25) 등 여성 용의자 2명과 시티 아이샤의 남자친구라 주장하는 말레이시아 국적 남성을 체포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