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기업 겨냥 첫 美독자 제재, 中 대북정책 변화 이끌 수 있나?

미국이 26일(현지시간) 북한에 핵개발 전용 가능 물질을 수출한 랴오닝훙샹(Liaoning Hongxiang) 그룹을 단독 제재키로 하면서, 이른바 ‘훙샹 그룹 사태’가 세컨더리 보이콧(secondary boycott, 북한과 거래하는 제3국 기업 등도 제재하는 것) 등 강력한 추가 대북 제재의 분수령이 될지 주목된다. 

우선 그동안 중국 기업의 북중 교역 등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 2270호의 ‘루프홀(Loophole·구멍)’로 여겨져 온 만큼, 이번 훙샹 그룹 제재로 5차 핵실험 이후의 대북 압박 구상도 더욱 뚜렷해질 거란 관측이 나온다.

특히 중국을 비롯한 제3국 개인 및 단체들에게 북한과의 거래 위험성을 재확인시켰다는 점에서 기존 안보리 결의에 대한 보다 충실한 이행을 유도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도 크다.

다만 미국에 대한 중국의 견제가 예상되는 상황에서 미국 중심의 대중(對中) 압박이 중국의 대북 정책에 얼마만큼의 변화를 가져올지는 미지수다. 특히 이제까지 자국 기업·기관에 대한 미국의 독자제재를 지속 반대해왔던 중국은, 이른바 ‘훙샹 그룹 제재’가 발표된 날 즉각 이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공식 표명했다.

겅솽(耿爽)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27일 정례 브리핑에서 미국의 훙샹 그룹 제재와 관련 “우리가 강조하고 싶은 ‘어떤 국가(미국)’가 자국법에 따라 중국의 기업이나 개인에 대해 확대해서 관할하는 것을 반대한다”면서 “우리는 최근 미국과 소통하는 과정에서 이미 이런 입장을 표명한 바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중국이 북한 비핵화에 강한 의지를 갖고 있음을 피력하면서 “어떠한 기업과 개인이 위법 행위를 한다면 조사를 거쳐 엄중하게 처리할 것이고 이런 과정에서 우리는 상호 존중과 평화와 상호 대등의 원칙에 따라 관련 국가와 협력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즉 중국이 미국과 협력해 훙샹 그룹 사태를 풀어나가려고 하고는 있으나, 이는 중국 당국의 수사 하에 둘 일이지 미국이 직접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고 선을 그은 셈이다.

중국의 계속되는 경기 침체도 대북 압박 구상에 제동을 거는 요인으로 꼽힌다. 특히 훙샹 그룹이 위치해 있던 동북 3성은 북한과 민생 교역을 이어가는 상황에서도 좀처럼 불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향후에도 ‘북한 비핵화’에 대한 의지를 꺾지는 않겠으나, 지역 경제가 쇠퇴할 지도 모를 조치까지 환영하지는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설령 중국 기업들에 대한 제재가 본격화 돼도 지역 경제 붕괴를 대비해 음지에서 북중 교역을 대신 이어갈 기업이 생길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추가 대북 제재와 관련한 중국 측 고위 인사들의 일치되지 않는 듯한 발언도 중국의 대북 압박 의지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키우고 있다. 북한의 5차 핵실험 직후만 하더라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13일 윤병세 외교장관과의 통화에서 “새로운 안보리 제재결의를 채택해 북한에 대해 더욱 엄격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을 막아야 한다는 데 동의한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지난 21일(현지시간) 뉴욕 유엔본부서 제71차 유엔총회 기조연설에 나선 리커창(李克强) 중국 총리는 “한반도 비핵화의 해결책을 위해 대화와 협상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을 뿐 대북 제재와 관련한 언급은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 특히 리 총리의 기조연설이 훙샹 그룹의 ‘실체’가 드러난 지 이틀 후였던 만큼, 중국의 대북 압박 의지에 대한 여론의 의구심도 증폭됐다.

이와 관련 조봉현 IBK경제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데일리NK에 “중국 역시 대북 제재에는 동참하려 하지만, 자국 기업들의 피해를 야기하거나 북한에 혼란을 초래하는 데까지는 가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 “특히 지방정부가 지역 내 기업들의 북중 무역을 적극 막지 않으면 이런 식의(훙샹 식의) 합작 투자도 계속 이뤄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다.

김영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연구위원도 “(미국 정부의) 세컨더리 보이콧이 본격 시작된다 해도 중국이 근본적으로 대북정책을 바꿀 것이라 보지는 않는다”면서 “중국이 대북 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건 분명하지만, 중국 정부에게 ‘자국 때리기’ 식의 압박을 한다고 해서 당장 문제가 해결되진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종철 경상대 통일평화연구센터 소장도 “중국이 북한 비핵화를 추구하는 건 분명한 사실이나, 비핵화와 동시에 미국을 견제해야 한다는 데 부담을 안고 있다”면서 “우리가 중국의 대북 압박을 견인하려면 중국의 요구도 일정 정도 들어줘야 하는데, 그 요구는 한미동맹 혹은 한미일 간 정보 공유를 약화시키는 것이다. 쉽게 수용하기 어려운 요구인 만큼 (중국을 움직일) 해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처럼 고강도 대중 압박만으로 중국의 대북정책 변화를 이끌어 내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대두되면서, 북핵 문제를 둘러싼 미중 간의 이해를 일치시키기 위해 다자간 소통이 지속돼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태환 세종연구소 중국센터장은 “외부에서 중국의 비핵화 입장이 거짓말인 것처럼 몰고 가면 앞으로도 중국의 공조를 견인하는 건 더 어려워질 것”이라면서 “중국이 대북 공조에 적극 참여할 수 있도록 확실히 설득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과정이 ‘소통’이 돼야지 막연히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건 옳지 않다”고 지적했다.

박 소장도 “현재 미중 갈등의 최전선이 한반도가 돼 버렸다. 북핵 문제 해결은 결국 미중 간의 이해가 어느 정도 일치하느냐에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라면서 “중국은 미국을 견제하기 위해서 지정학적으로 북한 같은 나라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었겠지만, 이제는 북한이 중국에게 이익이 아닌 상당한 손해를 주고 있다는 점을 거듭 이해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