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성 결여된 北 대화공세에 맞설 효과적 전략은?

I.
북한이 지난 5월 초 김정은이 제7차 노동당 대회에서 남북 군사당국회담을 제안한 이후, 수하 기관들이 충성 경쟁을 하듯 남북대화를 제의해 오고 있다. 5월 20일 국방위원회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군사회담 언급에 지체없이 화답하라고 촉구”하자, 21일 인민위원회는 “5월 말 또는 6월 초 군사당국회담을 위한 실무접촉”을 제의하고, 같은 날 한국 정부가 “북한의 비핵화 조치가 우선돼야 한다”며 거부의 뜻을 분명히 했음에도 불구하고, 22일 조평통은 회담이 개최되어야 할 이유를 “군사분계선 일대에서의 충돌 위험을 제거하고 긴장상태를 완화하는 것을 비롯해 호상 관심사로 되는 문제들을 포괄적으로 협의해결” 하자는 제안을 반복했다. 5월 24일에는 인민무력부가 “서해지구 군 통신선을 통해 지난 21일과 같은 내용의 전통문”을 보내 왔지만, 한국 국방부는 답신도 하지 않겠다고 하였다. 이것이 이번 북한의 남북회담 제의로 시작한 대남 드라마의 제1막이다.

5월 27일 북한 어선과 단속정이 서해 NLL(북방한계선)을 침범하고는 남측의 도발이라고 주장하면서 “경고 없는 조준사격”을 협박하였다. 5월 31일에는 이동식 발사대에서 폭발함으로써 체면만 구겼지만 제4차 무수단 미사일을 발사하였고, 6월 3일에는 다시 조평통의 이름으로 “우리의 제의를 거부한다면 남조선 당국에 가해지는 우리의 대응은 무자비한 물리적 선택이 될 것”이라고 협박의 수위를 조금 올렸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최근 북한의 잇단 대화 공세는 진정성이 결여된 위장 평화 공세”라고 밝혔고 이것으로 제2막이 끝났다.

6월 10일 북한의 정부·정당·단체라는 대남 통일공세 전문조직은 “전체 조선민족에게 보내는 호소문”을 통해 ‘전민족적인 통일대회합’을 개최하자면서, “북과 남의 당국, 정당, 단체 대표들과 명망 있는 인사들을 비롯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바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참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6월 13일 박근혜 대통령이 “비핵화 없는 대화 제의는 국면 전환을 위한 기만일 뿐이고, 따라서 지금은 북한과 대화할 때가 아니다”는 입장을 밝히자, 6월 17일 북한은 대남 단체인 민족화해협의회 대변인은 담화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이 아니라도 북한과 손잡고 나갈 대화 상대는 얼마든지 있다”고 밝혔다.

II.
북한이 대화를 제의해 오면 일반적으로 한국의 언론과 정부, 그리고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의 대화 제의 ‘의도’가 무엇인지 따져본다. 이번에도 유엔 대북제재의 ‘돌파구’를 만들기 위해서, ‘남남갈등’을 유발하기 위해서 또는 ‘미국과의 협상 모멘텀’을 만들기 위해서 등 지금까지 수없이 많이 들어본 해석들을 제시했다. 한국 정부도 이번 북한의 대화를 ‘기만’이라고 단정하면서 대화제의를 일축했다. 이런 반응들은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일처럼 보이지만 실은 그렇게 중요한 것도 의미있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지금까지 북한의 대화 제의는, 대북지원을 얻어내거나 아니면 화급한 상황에 몰려 한국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지는 클린치 액션을 제외하면, 대부분 어떤 긴 연쇄 반응으로 이어지는 대남 드라마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번 북한의 대화제의도 그 흐름을 살펴보면 ‘대화 제의=>대화 압박=>대화 호소’ 등 나름대로 드라마의 감정 곡선을 만들었다. 아직 제3막의 끝이 난 것도 아니고 제4막과 클라이맥스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그러나 이번 북한의 대화 제의는 과거에 이미 여러 번 목격한 장면들이라 신선한 맛은 없고, 앞으로 이어질 장면들을 상당한 수준의 확실성을 갖고 짐작하게 만든다. 

우선 ‘박근혜 대통령 아니라도 대화 상대가 있다’는 복선으로 보아 한국의 정당, 국회, 시민단체들이 ‘통일대화합’ 제안에 호응할 것을 기대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2014년에는 ‘남북 국회회담’을, 2015년 제헌절에는 평화통일을 위한 ‘남북 국회의장 회담’을 제안한 적이 있을 뿐더러 과거에도 북한이 정부・정당・단체 협의회라는 조직이 한국 정부를 우회하기 위하여 이런 통일 공세를 편 적이 여러 번 있었다. 특기할 점은 그 끝이 도발이었다는 점이다.

III.
그렇다면 이 연극의 끝은 어떻게 될까? 지금까지 북한이 한 행태로 보면, 대화(제의)와 도발은 샴쌍둥이처럼 같이 따라 다녔다. 다만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극성기에 일어난 ‘대화와 도발’과 대북지원에 비핵·개방이라는 조건을 내세운 이명박 정부에서의 ‘대화와 도발’은 비슷한 모습이지만 목적은 사뭇 달랐다.

2002년 제2연평해전이 일어나기 전의 상황이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김정일 회담이 성사되고, 남북은 마치 당장 통일이라도 될 듯이 서로 평화 공세를 ‘퍼붓고 있었다’. 북한은 납북어선을 24시간 만에 돌려주고, EU(유럽연합)와 수교를 하면서 미국 정부도 2001년 9월에는 김정일이 서울 답방을 기대한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2002년 1월 북한은 이번처럼 정부·정당·단체 합동회의를 열어, 6월15일을 ‘통일의 문을 여는 날’로, 그 해를 ‘우리 민족끼리 단합과 통일을 촉진하는 해’로, 5월부터 8월15일까지를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나가는 운동기간’으로 정하자는 ‘3대 제의’를 담은 호소문을 발표하였다.

남북 평화교류의 대항해 시대가 열린 듯, 2002년 상반기에 북한은 2달간 아리랑 축전을 개최하여 많은 한국 측 인사들이 관람하였고, 이산가족 상봉 재개 뿐 아니라 ‘악의 축’ 발언을 하였던 부시정부와도 북한은 대화재개에 합의하였고, 북경에서는 일본과 북한이 적십자회담을 열어 납북자 문제해결을 시도하였다. 그리고 월드컵으로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에 열광하던 6월 29일 북한은 다시 서해 NLL을 의도적으로 침범하면서 제2 연평해전을 일으켰다.

그것은 김대중 정부가 어떤 경우에도 햇볕정책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확인한 김정일은 남북 밀월의 절정기에 한국의 따귀를 때린 도발이었다. 북한은 제1차 연평해전의 참패에 대하여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장소에서 무자비한 보복’을 한다는 원칙을 지킨 것이지만, 한국의 6명의 해군 장병의 희생을 의미 없는 죽음으로 만든 DJ 정권의 홀대는 한국군의 군인정신을 정치논리의 종속변수로 만드는 결과를 낳았다. 김정일은 이런 수모를 햇볕지지자들이 삼키도록 함으로써 햇볕정책을 어떤 난관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믿고 지켜야 할 종교와 다를 바 없는 절대 신념으로 만들었다. 김정일이 전체주의 정권 유지에 사용하던 사도-매조키즘의 통치 원리를 한국의 햇볕주의자들에게 적용한 것이다.

이명박 정부에서 북한의 대화와 도발의 양상은 이전과는 사뭇 다르다. 왜냐하면 MB는 북한 정권에 대한 일방적 구애자가 아니었고, 그는 남북 간의 관계를 열광이 아니라 계약에 의해 진행되기를 기대했기 때문이다.

2010년 1월 북한의 대남창구가 총동원되어 회담제의와 협박을 쏟아냈다. 당시 문화일보는 “11일 평화협정 회담을 제의한 외무성 성명 → 13일 대북 전단 살포행위 처벌을 요구한 남북 군사실무회담 북측 단장 통지문 → 14일 금강산·개성 관광 재개 실무접촉을 위한 아시아태평양평화위 제의 → 15일 한국의 옥수수 1만t 지원을 수용하겠다는 적십자중앙위원회 통보 및 국방위의 ‘성전’ 성명 → 17일 김 위원장의 인민군 육·해·공군 합동훈련 참관 및 방사포 열병 등으로 대남 제의와 통보, 협박을 가위 일일 시리즈화해왔다”는 기사를 썼다.

한국 정부는 북한이 제안한 ‘금강산·개성관광 재개 실무회담’에 대해서 ‘개성 개최’를 제안하였으나, 북한은 1월 27일 백령도와 대청도 부근 NLL 해역을 항해금지구역으로 선포하고 해안포를 발사하였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사실은 북한의 대화 제의에 대한 한국의 반응은 그들이 원래부터 계획한 드라마의 전개에 중요한 요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북한은 전해인  2009년 10월~11월에 싱가포르와 개성에서 있었던 남북비밀접촉에서 남북최고당국자 회담의 대가로 요구한 거액의 대북지원을 MB의 거절을 ‘벌하기 위해’ 이런 양동작전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이 대화-협박의 끝은 도발이었다.

2010년 3월 26일 북한의 잠수함이 천안함을 어뢰로 폭침시켰다. 스웨덴을 포함한 국제민관합동조사단은 북한의 소행이 명명백백함을 증거로 제시하였다. 그러나 북한은 자신들이 소행임을 부정하였고, 중국과 러시아는 이들의 사실 호도의 전통에 따라 국제조사단의 결론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한국에서도 천안함의 폭침 원인을 놓고 야당과 좌파 지식인, 좌파 시민단체들이 ‘손바닥으로 해를 가리는 듯’ 역시 조사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다. 북한의 도발 행위를 이해해 주는 국내외 세력은 북한의 만행을 일정 부분 덮어주는 결과를 낳았다. 

그러나 5월 24일 이명박 정부는 북한선박의 한국 해역 운항 불허, 남북교역 중단, 한국민 방북 불허, 북한 신규투자 불허, 대북지원사업 원칙적으로 보류라는 5개항을 담은 5·24 조치를 발표하였다. 예외는 개성공단과 영유아 및 취약계층 지원사업이었다. 그러나 국제적 환경은 천안함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응에 그렇게 우호적이지는 않았다. 같은 해 9월 미국은 보즈워즈 대북정책 특별대표를 한국에 보내 남북대화를 통한 천안함 출구전략을 제안하면서, 북한 비핵화를 위한 6자회담 재개를 타진하였다.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그리고 2010년 11월 23일 북한은 연평도의 민간인, 군인을 가리지 않고 포격하였다. 북한 정권의 거칠고 오만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그렇다면 이명박 정부 시절 북한의 ‘대화-도발’의 양상이 이전과 다른 점은 무엇일까? 우선 그것은 한국 정부가 북한의 대북지원 요구를 감히 거절하고, 기존의 대북지원을 중지한 것에 대한 ‘처벌의 성격’을 갖고 있다. 다음으로 제1차, 2차 연평해전이 해상 분계선 상의 충돌이라면, 잠수함의 초계함 어뢰 공격이나 무차별 포격은 정규 전쟁의 장면들과 다름없다는 사실이다. 북한의 도발 양상이 10년 만에 매우 대담해진 것이다. 여기에는 2010년 북한이 사실상 원시적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었다는 점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IV.
이제 북한의 이번 대화 제의 요구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지에 대한 결론을 내릴 때가 됐다. 박근혜 정부는 북한의 파트너 통합진보당을 위헌 제소하여 해산시켰다. 또한 북한의 제4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탄 발사에 대한 유엔의 강한 대북제재를 이끌어내는 데에 개성공단 폐쇄를 단행하여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박근혜 정부는 북한에 ‘묻지마 퍼주기’를 하지 않았다. 북한이 이를 묵과한다면 그것은 북한이 아니다.

한국이 북한의 대화 제안을 지금처럼 일축하거나, 혹은 일부 한국의 좌파 언론의 주장처럼 대화 제안을 받아들이더라도 북한의 도발 계획은 변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의 이런 태도는 한국을 진정한 대화와 협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으로 ‘교훈을 주어야 할 대상’으로 보는 시각에 있다. 이점은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햇볕정책 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이제 북한의 핵무기는 외세의 ‘공화국 압살’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것이 아니라, 바로 말 안 듣는 한국 정부를 후려쳐서 조복(調伏)시키고 대북지원을 압착해 내는 방망이 역할을 하고 있다.

그렇다면 북한의 이런 전략에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옳을까? 북한의 도발에 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못하다. 또한 유엔의 대북제재 혹은 중국의 힘을 빌리는 것으로는 북한의 대남 공세를 결코 막아내지 못한다. 왜냐하면 어떤 것도 한국 정부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고 또 지속적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북한사회에 대량의 정보 유입 혹은 남북 정보 환류체계 구축과 같은 북한이 가장 두려워 하지만 가장 평화적인 압박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은 김정은 정권이 아니라 북한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대북정책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역대 모든 한국 정부는 북한의 개혁·개방을 주장하여 왔지만, 정작 한국이 할 수 있는 북한 사회의 정보 개방 노력은 미흡하기 짝이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