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도덕적 파탄과 그 결과

I.
유엔총회에서 인권 분야를 담당하는 제3위원회는 유럽연합(EU)과 일본이 11월 18일 공동으로 제안한 북한인권결의안을 찬성 111표, 반대 19표, 기권55표라는 압도적인 표차로 통과시켰다.  이번 결의안은 ‘북한의 인권 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여 조직적으로 벌어지는 고문, 공개처형, 강간, 강제구금 등에 가장 책임 있는 자들을 기소할 것을 권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결의안은 내달 예정된 유엔총회 본회의에서 통과될 것이 확실해졌으며,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에서 다루어질 가능성도 매우 높다. 다만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과 러시아가 거부권을 행사하리라는 것 역시 확실하다.


사실상 김정은과 그의 일당을 반인륜 범죄 혐의로 재판에 회부할 것을 요구한 이번 북한인권결의안이 갖는 의미는 지대하다. 이번 결의안이 안보리를 통과하여 실제 구속력을 갖는지 여부와는 무관하게, 북한 정권의 반인륜적 인권 침해의 정도가 히틀러나 스탈린 혹은 군국주의 일본의 전범들 혹은 크메르 루즈의 킬링필드 학살자들과 다를 바 없다는 점을 국제사회가 결정적으로 확인하였기 때문이다. 즉, 북한 정권에 대한 도덕적 심판은 이미 내려졌으며, 남은 것은 그 책임자들을 형사적으로 소추하는 일이다.


다른 한편 이번 결의안이 국내외적으로 갖는 정치적 파장 역시 적지 않다. 우선 국내적으로 북한정권을 옹호하는 행위는 곧바로 반인륜적 범죄의 주범을 비호하는 것과 다름없음이 분명해졌다. 이런 행위는 일제 강점기의 친일행각보다 훨씬 심각한 도덕적인 타락을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에는 친일을 강제하였으나, 자유민주주의 한국에서 이제 국제사회가 반인륜적이라고 단정한 집단을 옹호할 경우 어떤 변명도 있을 수가 없다.


특히 지난 10년 동안 ‘북한인권법 통과를 저지한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의 발언과 행태는 일제 말 학도병 출정을 선무(宣撫)한 몇몇 작가들의 경우와는 비교 자체가 불가능할 만큼 비도덕적인 반인륜적 범죄 행위의 옹호로 판단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스스로를 가장 정의롭다고 간주하는 종북-친북 좌파의 도덕적 위선은 이제 그 광기의 설득력이 사라지고 있다. 입만 열면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던 한국의 좌파는 김정은과 북한 정권의 수뇌부가 체포되어 ICC에 회부되는 것을 중국이 안보리에서 거부권을 통해 막아주기를 기다리고 있을지 모르는 일이다. 


또한 북한 정권을 직간접적으로 옹호하는 정당과 시민단체, 언론 등 역시 같은 맥락에서 판단되어야 하며 실제로 그렇게 될 것이다. 문창극 총리후보자 사태에서 볼 수 있었듯이, 우파인사들에게 무차별로 친일매도를 하고, 북한 인권을 언급하는 것 자체를 수구적 행태나 정치적 악의로 호도하던 한국의 좌파는 그만큼 더 매서운 도덕적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가치 전도에서 수모를 당한 기억은 오래가기 마련이다.


국외적으로도 이번 결의안은 큰 의미를 지닌다. 우선 ‘자주의 나라’ 북한은 노동당 수뇌부가 외국에서 체포되어 ICC에 회부되는 것을 피하기 위하여 중국의 반인륜 우산의 그늘 밑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게 되었다. 이점은 북핵 문제 해결에 중국이 나서줄 것을 기대하는 박근혜 정부의 친중 외교노선과 함께 한반도의 남과 북 모두가 외교적으로 중국의 선의에 종속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특히 이번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정부와 새민련의 반응을 보면, 양자 모두 자신들의 대북정책에 잡혀 모든 주도권을 상실하였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정부는 ‘북한이 인권개선 조치를 취해줄 것’을 요구하였고, 새민련은 ‘남북화해협력이 북한인권 개선의 길’이라고 주장하였다. 정부와 야당의 요구나 주장 모두 실행될 가능성이 0%에 가깝다는 것은 자신들이 더 잘 알고 있겠지만, 이들은 ‘북한정권의 범죄적 반인륜성’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혹은 ‘햇볕정책’ 간의 모순을 피하기 위하여 북한인권 문제와 대북정책 모두에서 엣지를 스스로 제거하였다. 그 결과는 유엔 북한인권결의안에 대한 두루뭉술하고 상투적 반응이며, 이번 북한인권 결의안의 심대한 의미를 전혀 파악하고 있지 못하게 되었다.


II.
우리가 이번 김정은과 그의 일당을 반인륜적 범죄자로 규정하여 ICC에 회부할 것을 권고한 결의안에 111개국이 찬성했다는 사실을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북한정권의 미래가 사라지고 있음을 바로 확인할 수 있다. 만일 북한이 지금의 폐쇄성을 떨쳐버리고 개혁개방을 하여 중국 이외에 국가와 교류 확대를 꾀하려면 이번 북한인권결의안에 찬성한 국가들과 해야 하겠는가, 아니면 반대나 기권을 한 국가들과 해야 하겠는가? 국가도 유유상종인지라 반대나 기권한 국가들의 면면을 보면 인권문제가 적지 않고, 나라 살림살이도 그만그만한 나라들이다. 북한의 최룡해가 러시아에 특사로 간 사실에서도 볼 수 있듯이 북한은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줄을 타면서 이득을 극대화하려고 하겠지만, 히틀러나 스탈린, 도조와 폴 포트와 같은 ‘항렬’을 사용하게 된 북한을 중국과 러시아가 껴안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반인륜적으로 낙인찍힌 북한이 현재의 난국을 타개하고 수령체제와 기득권세력의 유지를 위하여 만지작거릴 수밖에 없는 것은 핵과 미사일뿐이다. 특히 김일성 가문의 과대망상적 기질이 분명하게 드러난 김정은의 지금까지의 행태로 보아 북한은 자실들에게 유리한 시점에 제4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탄 발사를 통해 한국과 일본은 물론 미국에 핵타격을 가할 수 있는 핵보유국가로 인정받으려고 시도할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되면 한국의 국내 정치상황은 예측할 수 없다.


김정은 정권 하의 북한과 국가연합을 하여 통일을 시작하겠다는 것이 바로 지난 총선과 대선에서 민주당-통진당 야권연대의 통일-대북정책이었다. 현재 통진당은 정당해산심판에 걸려 있지만 새민련의 대북정책이 바뀌었다는 어떤 조짐도 없다. 북한은 한국 좌파가 정권을 잡고 대북정책을 획기적으로 친북화 시키기 위해서라도 핵보유의 기정사실화를 시도할 것이다.


만일 박근혜 정부가 북한 정권의 도덕적 파탄과 한국의 좌파의 위선적 행각을 배경으로 삼아 북한의 핵보유 및 대륙간 탄도탄 실험을 좌절시킨다면 김정은 정권은 무너질 가능성이 높다. 만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라는 가공의 희망에 사로 잡혀 북한의 핵보유를 기정사실화 한다면 한반도의 운명은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필자는 전자에 희망을 건다. 그것이 이제 70년을 끌어 온 한반도의 분단 상황이 북한정권의 몰락의 조짐을 통해 서서히 그 마지막 장으로 향하고 있다는 생각의 주된 근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