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4 대북제재 조치, 정공법으로 풀자

2010년 천안함 사건으로 5·24 대북제재 조치가 시행된 지 4년이 넘었다. 대북제재 조치가 길어지면서, 민간단체 뿐 아니라 국회에서도 여야를 불문하고 5·24 조치의 해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정부는 공식적으로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지만, 실질적으로는 5·24 조치를 유명무실하게 하는 조치들을 조금씩 취해가고 있다.


최근 사례만 보더라도 정부는 윤이상평화재단 관계자들이 지난 9월 26~29일까지 평양을 방문하는 것을 승인했다. 또, 9월 30일에는 민간단체가 온실 물품 등을 지원하기 위해 경의선 육로를 통해 방북하는 것도 허용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지구를 제외한 북한지역에 대한 우리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고, ▲’대북지원 사업은 원칙적으로 보류하되 영유아 등 취약계층에 대한 순수 인도적 지원만 유지’한다는 5·24 조치에 대한 명백한 위반이다.


정부는 이러한 조치들을 ‘5·24 조치의 유연화’라는 이름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름이야 어떻게 붙이든, 정부 또한 5·24 조치를 계속 유지하는데 대한 부담을 인식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 문제를 해결할 근본적인 방안을 제시해야 하는데, 지금 정부는 겉으로는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를 요구하면서 속으로는 5·24 조치를 허물어뜨리는 애매모호한 태도를 계속하고 있다.


5.24 조치 풀려면 천안함 사건 매듭지어야 


정부가 공식적으로 밝히고 있는 바와 같이 5·24 대북제재 조치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매듭 없이는 풀릴 수 없다. 북한의 공격으로 우리 해군 장병 46명이 사망했는데, 시간이 지났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냥 넘어갈 수는 없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책임지는 것이 정부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라는 점을 생각해보면, 천안함 문제를 제쳐두고 5·24 조치의 해제를 논의할 수는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5·24 조치를 지속할 수 없는 것도 현실이다. 한반도 정세와 장기적인 통일문제까지 생각했을 때, 북한과의 관계를 계속해서 이렇게 가져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답은 간단하다. 문제의 원인을 풀어야 한다. 북한과 천안함 사건에 대한 매듭을 지어야 하는 것이다.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인정하지 않는 상태에서 천안함 사건의 매듭이 가능하겠느냐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명박 정부 시기 이뤄진 남북 간 비밀접촉에서 천안함 사건을 매듭짓는 논의가 진행됐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당시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남북 간에 천안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당한 정도의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정부는 5·24 조치를 해제할 의지가 있는가?


사실, 지금 중요한 것은 북한이 천안함 사건을 인정하겠느냐는 것보다 정부가 진정으로 5·24 조치를 해제할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다. 정부가 5·24 조치를 해제할 의사가 있다면, ‘우리 정부는 5·24 조치를 해제할 명확한 의지를 가지고 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천안함 사건이 매듭지어져야 한다’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북한에 보내야 한다. 북한이 남북 간 대화의 장에 나오지 않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 정부가 5·24 조치를 해제할 뜻이 있는지’ 확신을 가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정부는 천안함 사건에 대한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를 언급하면서도, 5·24 조치를 해제할 의지가 있는지 명확한 메시지를 주지 않고 있다. ‘북한이 대화의 장에 나오면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원론적인 입장만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겉으로 표방하는 ‘북한의 책임있는 조치’라는 원칙과는 달리, 실제로는 5·24 조치를 흐지부지 만드는 행동들을 계속하고 있다. 자칫 북한에게 ‘천안함 사건을 매듭짓지 않아도 5·24 조치는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오도된 인식을 줘, 향후 천안함 문제도 5·24 문제도 애매하게 남아버리는 상황으로 가게 될지 우려스럽다.
 
문제는 정공법으로 풀어야 


정부의 이런 애매모호한 태도를 보면, 정부 내에서 5·24 조치 해제에 대한 판단이 내려지지 않은 것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하게 된다. 북한이 핵포기를 하지 않는 상태에서 전면적인 교류협력을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북관계를 완전히 방치할 수도 없는 상태에서, 남북관계를 어느 정도로 끌고 갈지에 대한 고민만 계속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북한이 비상식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한두번이 아니지만, 북한의 태도만 비판하지 말고 우리 정부의 태도도 좀 더 분명해졌으면 좋겠다. 5·24 조치도 풀겠다는 것인지 아닌지 명확한 메시지가 필요하다. 겉으로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흐지부지하는 애매모호한 태도도 좀 그만했으면 한다. 문제를 풀겠다는 생각이 있다면 ‘정공법’으로 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