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美 전작권 전환 재검토, ‘시기’보다 ‘조건’에 방점”

중국의 부상에 따른 미중 간 세력경쟁이 가시화되는 가운데 핵무기확산금지조약(NPT)을 위반하고 핵개발을 추진하고 있는 북한의 핵위협은 지속되고 있다. 또한 최근들어 북한정권의 대남비난 공세는 도를 넘었다는 평가로 박근혜 정부에 대한 적대감은 이미 정점에 달한 분위기다.


한미 양국은 지난달 정상회담에서 전시작전통제권(이하 전작권) 전환 시기 재검토 합의를 통해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위협 등으로 대표되는 동아시아 안보질서의 변화 움직임에 적극 대처하기로 했다. 양국 모두 여전히 한미동맹을 동아시아 지역의 현상유지를 위한 최적의 기제로 인식하고 있다는 방증이다.


데일리NK는 지난달 28일 한미동맹 및 국방개혁 전문가인 박민형 국방대학교 안전보장대학원 교수를 만나 중국의 부상과 북한의 핵위협이 상존(常存)하고 있는 상황에서 전작권 전환 시기 재검토 의미와 한미동맹의 가치 등에 대해 들어봤다.


박 교수는 “북한의 위협이 있는 한 한미동맹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북한에 대한 지원이 충분히 가능하지만 안보문제만큼은 ‘선(先)양보’가 불가능하며 같은 맥락에서 한미동맹은 한국에 있어 ‘핵심적 가치’로 기능하고 있다는 의미다.


‘통일은 대박’이라는 인식은 북한의 군사적 침략 가능성을 철저히 부정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에서부터 시작돼야 한다. 대북 포용정책을 강조했던 김대중-노무현 정부 역시 안보딜레마와 군비경쟁(arms race)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북한의 도발불용을 대북정책의 핵심기조로 내세운 바 있다.


박 교수와의 인터뷰는 자칫 사변적(思辨的)으로 이어지기 쉬운 통일문제를 현실적·안보적 측면에서 고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적실성을 지닌다. 인터뷰는 박 교수가 재직 중인 국방대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박민형 국방대학교 교수와의 인터뷰 전문]


-지난달 한미정상회담 결과 전작권 전환 문제 재검토에 관한 미국 측의 이해가 있었다. 전작권 전환 조건 설정을 위한 바람직한 기준은 무엇인가.


“박근혜 대통령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지난 정상회담에서 2015년 12월로 예정된 전작권 전환 시기를 재검토할 수 있다고 합의했다. 현재는 시기와 조건이라는 두 가지 중요한 변수 가운데 조건에 더욱 집중하는 상황이다. 안보문제, 즉 북한의 계속되는 위협으로 전작권 전환시기가 재(再)연기됐다는 것이 핵심인데, 이는 안보상황의 변화로 인해 전작권 전환 시기 연기에 대한 국민들의 양해가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한미 양국이 지난 2010년 6월 정상회담에서 내년 12월까지 전작권 전환일정을 미루기로 합의한 이후 이번이 두 번째 연기에 대한 합의라는 점에서, 국민적 양해를 구해야 하는 정부로서는 시기가 아닌 조건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는 정치적 고려를 한 측면이 있었다. 다시 말해 ‘조건에 부합하는가’가 전작권 전환의 핵심기준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조건의 핵심은 한국이 북한의 비대칭능력을 막을 수 있는지의 여부에 달려 있다. 한국은 재래식 군사력밖에 보유하고 있지 않지만 북한은 대량살상무기(WMD)로 대표되는 비대칭능력을 지니고 있다. 핵문제 역시 북한의 비대칭위협을 심각하게 야기하는 또 다른 문제다. 전작권 전환 움직임과 맞물려 노무현 정부 시절 국방개혁을 강화하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이 역시 재래식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북핵 문제와 관련한 한미 간의 공조에도 불구하고 전향적 대북정책 마련을 위한 뚜렷한 정책방향은 제시되지 않은 것 같다.


“‘전향적 대북정책’이라는 표현부터 생각해보자. 이른바 진보 진영의 사람들에 따르면 전향적 대북정책이란 북한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기보다 우리의 태도부터 먼저 변화시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러나 안보문제는 선(先)양보가 불가능하다. 한 번 양보의 결과 오류가 발생할 경우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다. 안보는 한 번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 부분이라는 점에서 전향적 자세가 있을 수 없다.


같은 맥락에서 북한의 위협이 있는 한 한미동맹은 계속 유지돼야 한다. 어느 국가도 절대적 안보(absolute security)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동맹은 한국에 있어 핵심적 가치이다. 물론 한미동맹이 발전해 오는 과정에서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개정 등 어려운 부분이 있었지만, 한국의 정책적 자율성을 늘리면서 안보수준을 발전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노력을 전개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다. 미국에게 한국이 지닌 국가로서의 중요성 또는 가치를 높여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인도주의적 측면에서는 북한에 대한 지원이 가능하다. 다만 우리의 지원물자가 북한 내부에서 사용될 때 투명성이 반드시 확보돼야 한다. 현 남북관계 하에서 핵문제와 인도주의 문제가 어느 정도 연계되는 것은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북한이 핵문제에 있어서 어느 정도 유연한 모습을 보인다면 과감한 인도주의적 지원이 가능하다는 충분한 의사표현을 할 필요는 있을 것이다.”


-북한 관영매체의 막말이 도를 넘는 가운데, 우리 정부에서도 공개적으로 북한 정권을 부정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북한 정권은 어떻게 규정돼야 하나.


“국가의 존재 목적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것이다. 이른바 국제체제에서 말하는 국가에 대한 정의다. 이 관점으로 볼 때 우리가 북한체제가 주민들의 행복과 평화, 이익, 생명보호를 위해 노력해 왔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물론 유엔(UN) 회원국으로서, 정권 혹은 레짐으로서 북한이 지니고 있는 명목상의 지위는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북한이 근본적으로 국가의 역할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물음에는 회의적이다. 북한체제가 국가의 기능적 차원에서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는 것이다.”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망 구축 양상이 구체화되고, 중국은 북핵불용 입장이면서도 북한 안정화에 최우선 순위를 두고 있다. 미중 간 각축이 현실화되는 가운데 ‘통일 한반도’를 위해 한국이 취해야 할 전략은 무엇인가.


“미중 간 각축은 위기지만 기회일 수 있다. 한국이 어느 정도까지 성장하느냐가 핵심이다. 만약 한국이 1960년대와 같은 국력으로 현재와 같은 상황을 맞이했다면 문제를 해결해 나가기가 매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2014년 현재 중진국 이상의 지위를 지닌 입장에서 보면 중국과 미국 모두 한국을 파트너로서 높은 가치를 두고 평가하고 있다.


미중 간 상호경쟁과 대결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한국의 가치가 지속적으로 높아진다면 충분히 자체적인 지위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미중 간 갈등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까지 더해진다면 더욱 바람직할 것이다. 결국 국제사회에서 우리의 역할과 범위를 확대시켜나가는 것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