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北주민들에게 ‘인권 대박’ 의식 갖게 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8일(현지시간) 통일 독일의 상징 드레스덴에서 한반도 평화와 통일 구상을 밝힌 이후 북한은 주민들을 내세워 원색적인 표현을 쓰며 맹비난했다. 북한이 남북 간 인도적 문제 해결, 북한 민생 인프라 구축 등 통일 기반조성을 위한 3대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구상’은 당분간 시행할 수 없게 됐다. 


특히 북한은 지난달 30일 ‘새로운 형태 핵실험’으로 위협, 31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에서 대규모 해상 무력시위로 도발 수위를 높였고, 지난 2일에는 김정은이 직접 “조선반도에 조성된 정세는 매우 엄중하다”며 “오직 총대로 최후 승리를 이룰 것”이라고 말해 더 높은 수위로 긴장을 조성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는 국제사회의 ‘북핵 공조’에 대해 강하게 반발하면서 외적으로는 대북정책 전환을 내부적으로는 체제 결속을 도모하려는 김정은의 의도로 읽힌다. 북한의 이 같은 의도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진정한 통일 협상 대상자인 북한 주민들을 우리와 함께할 수 있는 통일 세력으로 만드는 전략을 구상해야 한다는 주문이 나온다. 


특히 박근혜 정부의 통일 움직임을 ‘체제 붕괴’로 간주하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김정은 체제에 변화를 이끌 수 있는 다양한 전술을 구사함과 동시에 당국에 의해 인권 유린을 당하고 있는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전략도 통일 논의에서 빠져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에 대해 다년간 북한 체제를 연구해 온 김태우 전(前) 통일연구원장은(사진) 2일 데일리NK와 서면 인터뷰를 통해 “인권문제는 북한에 있어서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가능하게 하고 스스로 핵무기를 내려놓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와 자유민주주의 통일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라면서 “북한이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로 바뀐다면, 주민을 굶주리게 만드는 핵무기도 설 땅이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원장은 “통일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인권대박’으로 ‘궁핍과 압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면서 “인권은 북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출발점이자 통일로 인해 완성되는 귀결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정은 체제가) 연착륙을 하려면, 개혁개방과 함께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한국 등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해나가야 하는데, 북한 정권은 아무리 조그마한 변화라도 정권과 체제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주민의 궁핍과 고립을 눈으로 보면서도 핵무기에 연연하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많은 나라가 북한인권법을 채택하고 무수한 인권단체와 NGO들이 우려를 표명하는 중에도 한국은 북한인권법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북한 내 관리소(정치범수용소), 국군포로, 납북자, 북한 내 영유아 영양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 전 원장은 또 “그동안 한국사회에서의 통일논의는 지나치게 빈곤했고, 그 결과 통일의 가치, 내용, 과정, 통합준비, 흡수통일 대비 여부, 북핵과 통일과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 있다”면서 “(통일준비위원회는) 덕담을 나누기보다는 중요한 통일 의제들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정치권의 공감대를 선도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비전문적이고 피상적인 대화보다는 치밀한 통일 대전략을 논의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면서 “통일부, 국정원 등 기존 부처들의 업무와 중복되지 않는 차별된 업무를 개발함으로써 ‘옥상옥(屋上屋)’ 조직이 되지 않도록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어떤 경우에도 통일준비위원회가 화해협력과 통일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면서 “통일준비위원회가 진정 통일을 준비하는 단체라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략들을 창안하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고 제언했다.


한편 김 전 원장은 북한의 추가 핵실험 가능성에 대해 “북한이 핵무기의 다종화와 경량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핵실험을 원하는 기술적 동기는 매우 높다”며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은 고농축우라늄탄일 가능성이 높지만, 증폭핵분열탄의 제조에 성공했다고 선포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다음은 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 인터뷰 전문]


-북한이 외무성을 내세워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언급한 데 이어 해상 사격훈련까지 도발 수위를 높이고 있다. 


“북한이 ‘대형사고’를 칠 때에는 항상 복합적인 배경이 있다. 이번도 마찬가지다. 한국과 키리졸브-독수리 훈련을 벌이고 있는 미국을 향해서는 90여 기의 미사일 발사와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위협하면서 ‘핵보유국 대접을 받으면서 협상하겠다’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으며, 한국을 향해서는 ‘협박과 대화공세’를 번갈아 구사하면서 남북관계를 주도하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내부적으로는 수령의 강건함을 과시하고 군의 충성심을 결속시켜 정권생존을 도모하겠다는 의지를 나타내고 있다. 당연히, 호락호락하지 않은 박근혜 대통령을 향해서는 저속한 비방으로 기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런 맥락에서, 지금 북한은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3대 대북제안’이 자신들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못한다는 불만의 표시로 드레스덴 제안을 ‘잡동사니’로 욕하고 핵실험 위협을 가하고 있다.”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두고 고농축우라늄탄 및 수소폭탄 실험 등의 가능성도 나온다. 추가 핵실험 가능성은 어느 정도이고, 한다면 어떤 형태의 핵실험인지.


“북한은 미사일 발사로 긴장을 고조시켜 안보리 결의 등 국제사회의 제재가 결의되면 그것을 기화로 외무성 대변인 성명을 통해 분노를 표시하고 핵실험을 강행하는 전통(?)을 보여왔다. 이번에도 같은 패턴이 반복되고 있는데다, 북한이 핵무기의 다종화와 경량화에 열을 올리고 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핵실험을 원하는 기술적 동기는 매우 높다. 만약, ‘새로운 형태의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은 고농축우라늄탄을 폭발시키고 전 세계에 알리는 것이며, 가능성이 적지만 증폭핵분열탄의 제조에 성공했다고 선포할 수도 있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수소폭탄과 관련한 능력을 과시할지도 모른다.


북한이 핵보유를 결심한 이상 플루토늄탄 보유에 머물지 않고 우라늄탄과 증폭분열탄에 이어 수소폭탄까지 욕심낼 것이라는 점은 필자를 포함한 다수의 전문가가 십수 년 전부터 경고해온 것이기도 하다. 수소폭탄의 경우 북한이 폭탄제조 기술을 습득했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분명히 연구를 지속하고 있을 것이다. 물론, 우라늄탄 핵실험이 확인된다면 곧바로 핵무기의 대량생산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만으로도 우리 안보에 미칠 영향은 메가톤급이다.”
 
-북한이 올해 신년사에서 ‘남북 관계 개선’을 언급한 이후 유화적 태도를 유지해오다가 돌변한 것은 어떤 의도라고 보나.


“북한은 지금까지 항상 ‘긴장조성’과 ‘평화공세’라는 두 개의 카드를 번갈아 사용하면서 한국을 상대해왔으며, 전술적 계산에 따라 수시로 카드를 바꾸면서 남북관계 주도, 대미 접근, 대중관계 개선, 정권강화를 위한 내부 결속 등을 모색해왔다. 작년 상반기 동안 개성공단을 차단하고 전쟁위협을 가하다가 후반 들어 6자회담 재개를 요구하면서 대미 대화를 시도한 것이나 금년들어 대남 이산가족 상봉을 수용하는 등 부드러움을 보이다가 한미 연합훈련을 계기로 강공으로 전환하는 것 등은 북한에게 있어 ‘예외적·돌발적 행동’이 아니라 ‘전통적 패턴’이다.


당연히, 북한이 도발적 행동을 보이는 것에는 대외·대남용, 그리고 대내용 목적들이 있지만, 이번 서해 포격도발은 한국군의 대응을 떠보고자 한 측면이 추가된 것 같다. 어선을 NLL 이남으로 침투시켰다가 풀려나자 ‘귀순을 강요받고 폭행을 당했다’는 엉뚱한 시비를 한 점, 이후 4시간 전에 사격훈련을 통보 하면서 한국 언론을 대상으로 ‘노이즈 마케팅’을 펼친 점, 한국의 육지가 아닌 해역으로 100여 발의 포탄을 쏜 점 등은 우리 군의 대응방법, 강도, 속도 등을 알아보기 위해 치밀하게 계산된 시나리오다. 다시 말해, 한국군이 언급해온 ‘능동적 억제’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보고자 했을 것이다.”


-당분간 남북관계는 경색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우리 정부는 어떤 입장을 견지해야 하나. 


“정도를 걷지 않는 북한에 대해 정도를 걷는 대한민국이 취해야 하는 정책기조는 정해져 있다. ‘평화적 분단관리’라는 목표와 ‘북한의 변화’라는 목표를 조화롭게 병행 추구하는 것이며, 다른 각도에서 보면 ‘원칙’과 ‘유연성’을 조화시키는 것이기도 하다. 평화적 분단관리는 남북이 상생공영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북한 정권과의 화해협력 노력이 필수적이다. 하지만, 한국이 분단국으로서 통일을 지향한다면, 또한 통일 이전의 중간 목표로서 ‘상호호혜적 공생관계’를 추구한다면, 남과 북이 동일한 가치를 추구하는 사회가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즉, 북한의 변화가 필요하다.


북한이 자발적으로 변화를 택하는 것이 최선이며, 우리의 설득을 수용하여 변화한다면 그 또한 나쁘지 않다. 하지만, 지금처럼 북한이 근본적 변화를 거부하고 전술적 차원에서 긴장을 조성하거나 평화공세를 펼치는 상황에서는 북한을 변화시키는 영향력, 즉 대북 지렛대를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대북 지렛대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세한 국력, 경제력, 외교력 등이 있지만, 가장 근본적인 지렛대는 확고한 안보태세와 국민적 합의다. 북한이 한국을 도발의 대상으로 생각하고 걸핏하면 전쟁위협이나 가하는 상황에서, 또는 한국사회와 정치권이 대북·통일정책과 관하여 남남분열을 지속하는 상황에서는 북한을 변화시킬 지렛대를 가지지 못한다.”


-북한이 최근 행보는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대북 제안’을 사실상 거부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북한이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제안을 거부하는 직접적 이유는 성에 차지 않기 때문이다. 북한은 5·24 조치 해제, 금강산 관광 재개 등 ‘달러’ 사업들을 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박 대통령의 비핵화 촉구는 우리가 반드시 유지해야 하는 ‘원칙’이며, 3대 제안은 우리가 제공할 수 있는 ‘유연성’을 보여준 것이다. 즉, 원칙과 유연성을 조화시킨 하자 없는 현실적인 대북제안이다. 북한이 이것을 거부한다면 이는 북한의 문제이지 우리 정부의 문제는 아니다. 물론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북한 정권이 원하는 것을 조건 없이 들어주고 포용해야 ‘평화’를 담보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사람들이 있다. 이 주장대로라면 북한의 핵개발을 방관하고 천안함-연평도 도발을 잊고 대북 경협을 재개해야 하는데, 이는 지켜야 하는 원칙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런 대북접근은 매우 쉽고 당장 남북 간 관계를 개선시켜 가시적 성과를 가져오는 데 유리하다. 하지만 멀리 보면 ‘북한의 변화’라는 목표를 포기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의 호응을 이끌기 위한 방안이 있다면. 


“정부로서는 ‘원칙과 유연성의 조화’라는 범위 내에서 유연성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동시에 원칙고수도 병행하는 ‘투트랙(two-track)’ 기조를 유지해야 한다. 남북대화에도 열성을 다해야 하지만, 그러는 중에도 도발을 저지르거나 안보위협을 가하면 가차 없이 대응해야 한다. 이런 기조는 정부의 교체와 무관하게 지속되는 ‘무서운 일관성’을 가져야 한다. 국민과 정치권은 분열된 목소리를 내기보다는 한 목소리로 북한의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 한국사회가 대북접근에 있어 정반대의 시각들로 분열되어 있는 한, 또는 북한이 한국에서 정권이 바뀌면 대북정책도 180도 달라지는 것으로 믿고 있는 한, 한국은 38배의 경제력 우세에도 불구하고 북한을 변화시키는 추동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를 위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을 구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일에는 ‘만들어가는 통일’과 ‘대비해야 하는 통일’이 있다. 전자는 북한의 ‘착한 변화’를 선도·강제하여 남북이 가치관과 체제가 비슷해지면 가능할 수도 있는 합의통일이며, 후자는 붕괴하고 국제사회와 북한 주민의 절대다수의 의사에 따라 한국이 북한을 접수하는 흡수통일을 말한다. 여기서 한국이 고수해야 할 통일정론은 ‘합의통일을 추구하되 흡수통일에도 대비한다’라는 것이다. 흡수통일을 위해 북한을 붕괴시키는 공작을 하자는 뜻이 아니다. 그것은 결코 한국이 택할 수 있는 정책이 아니다. 하지만 북한이 우리의 뜻과 무관하게 내부모순에 의해 스스로 붕괴하고 국제사회가 한국에 의한 흡수를 요구한다면 한국은 당연히 그 요구를 수용해야 한다.


만들어가는 통일을 위해서는 북한의 변화가 핵심이며, 북한이 변화를 통해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고 경제적·문화적 교류를 통해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일원’이 되도록 도와야 한다. 이 과정에서 최대의 장애물은 그러한 변화가 체제와 정권에 대한 위협으로 되돌아올 수 있다고 믿는 북한정권과 권력층의 우려다. 이 딜레마를 극복하고 북한의 안정적인 변화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권력층에게 변화에 적응하면서 안전하게 변신해나갈 수 있도록 ‘시간적·공간적 여유’를 열어주는 일이다. 즉, ‘북한의 안정적·점진적 변화를 통한 평화적 합의통일’이 통일정책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박 대통령의 3대 대북제안도 따지고 보면 ‘교류협력을 통한 북한의 변화와 만들어가는 통일’을 제시한 것이다.


-일부에선 북한의 반발이 예상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에 대한 부분을 내세우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물론, 한국이 주도하는 자유민주주의 통일이 북한체제의 소멸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북한이 발끈할 수도 있고, 이 때문에 한국사회 내에서도 통일을 전면에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일정한 설득력을 발휘한다. 하지만, 북한은 어떤가. 북한은 노동당 규약에 ‘전국적 범위에서의 민족해방’을 천명함으로써 공공연하게 사회주의 흡수통일을 목표로 내세우고 있고, 군대와 주민에게 ‘남조선 혁명전략’을 가르치고 있으며, 사이버 심리전이나 사상전을 통해 한국사회에 혁명논리를 주입시키고 있다. 그러면서 완전한 사회주의 통일로 가는 중간단계로 연방제 통일을 주장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반발 때문에 한국이 자유민주 통일을 논의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은 성립하지 않는다. 통일을 지나치게 내세워서는 안 된다는 주장에는 분명 일리가 있다. 하지만 그동안 한국사회에서의 통일논의는 지나치게 빈곤했고, 그 결과 통일의 가치, 내용, 과정, 통합준비, 흡수통일 대비 여부, 북핵과 통일과의 상관관계 등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얻지 못한 상태에 있다. 이런 의제들에 대해 국민적 합의와 정치권 공감대가 부재한 상태에서 한국이 통일역량을 발휘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다.”


-김정은 정권에 대해 평가한다면. 또 김정은 체제가 연착륙할 가능성은 얼마나 된다고 보나.


“외형적으로 김정은 정권은 장성택 처형 이후 성공적으로 권력을 장악해나가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부는 복잡할 것이다. 권력 엘리트들 간의 눈치보기가 심할 것이며, 겉으로는 충성경쟁을 벌이면서도 속으로는 아무도 서로 믿지 못하는 불신이 팽배해 있을 것이다. 여기에다가 경제개발 전망도 어둡다. 중국마저 투자를 꺼릴 정도로 외국인 투자는 단절되어 있으며, 각종 경제개혁 조치들은 기득권층의 반발로 제대로 시행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합영법(1984), 7.1 경제관리개선조치(2002), 6.28조치(2012) 등의 경우에서 보듯 북한은 경제개혁 조치들을 내놓으면서도 그 조치들이 초래할 체제위협을 우려하여 스스로 개혁조치를 묵살하고 사회주의식 통제로 되돌아오는 악순환을 거듭해왔다.


이런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이 불안감을 가지는 것은 당연하며, 당장 의지할 수 있는 것은 군대, 미사일 그리고 핵무기 뿐이다. 이런 구조적 문제들이 북한의 연착륙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요인들이다. 연착륙을 하려면, 개혁개방과 함께 주민의 삶의 질을 높이면서 한국 등 외부의 도움을 받으면서 점진적으로 변화해나가야 하는데, 북한정권은 아무리 조그마한 변화라도 정권과 체제를 위협하는 부메랑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에 주민의 궁핍과 고립을 눈으로 보면서도 핵무기에 연연하고 있다.”


-그럼 북한 급변사태 가능성에 대해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급변사태로 인한 정권붕괴나 체제붕괴의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워낙 철저하게 통제된 사회이기 때문에 주민들의 조직적인 저항이나 동요가 중대한 사태로 번질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하며, 권력 엘리트 간의 암투가 심각한 사태로 발전할 수는 있어도, 그것이 정권붕괴나 체제붕괴로 확대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김일성 사망과 ‘고난의 행군’ 그리고 김정일 사망을 거치면서 보여준 북한체제의 내구성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한국은 이론적으로 존재하는 모든 가능성에 ‘조용히 그리고 철저하게’ 대비하고 있어야 한다.”
 
-진정한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북한 정권에 의해 인권을 유린당하고 있는 주민들을 우리 편으로 만드는 작업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데. 


“인권은 북한 문제에 접근할 수 있는 출발점이자 통일로 인해 완성되는 귀결점이다. 다시 말해, 통일은 북한 주민들에게 있어 ‘인권대박’으로 ‘궁핍과 압제로부터의 자유’를 의미한다. 인권은 인류 보편적 가치로서 국제사회에서 최우선 아젠다로 격상되고 있다. 유엔은 2006년 이래 유엔 인권이사회를 앞세우고 인권활동을 강화하고 있으며, 최근 리비아 사태에서 보듯 지금은 안보리도 ‘보호책임(R2P)’ 원칙하에 인권문제에 개입하고 있다.


북한인권 문제에 ‘당사자’인 우리의 자세는 지나치게 소극적이었다. 많은 나라가 북한인권법을 채택하고 무수한 인권단체와 NGO들이 우려를 표명하는 중에도 한국은 북한인권법을 채택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부터라도 인권문제를 제기하고 촉구함에 있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이산가족, 북한 내 관리소(정치범수용소), 국군포로, 납북자, 영유아 영양 문제 등에 대해 적극적으로 개입하고 목소리를 내야 한다. 이와 함께, 인권문제 해결에 더 많은 비용을 쓸 각오를 가져야 한다. 서독이 1962~1989년 사이에 동독에 억류된 3만 4000명의 정치범에 대해 일 인당 5천만 원의 비용을 쓰면서 석방시키고 2만 5000명의 가족까지 데려왔던 사례에 비추어 본다면, 지금까지 우리가 보여온 인권접근은 너무 무기력했었다. 인권문제는 북한에 있어서는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으로 우리가 주도할 수 있는 당당한 이슈로서 국제공조가 용이한 것이기도 하지만, 북한의 개혁개방을 가능하게 하고 스스로 핵무기를 내려놓게 만들며 궁극적으로 북한의 변화와 자유민주주의 통일까지 가능하게 만드는 만병통치약이다. 북한이 인권을 존중하는 나라로 바뀐다면, 주민을 굶주리게 만드는 핵무기가 설 땅도 없어진다.”
 
-박근혜 정부는 ‘통일준비위원회’ 설치해 진정한 통일을 준비하겠다는 입장이다. 위원회가 올바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주문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덕담을 나누기보다는 중요한 통일의제들에 대한 국민적 합의와 정치권의 공감대를 선도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비전문적이고 피상적인 대화보다는 치밀한 통일 대전략을 논의하는 위원회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통일부, 국정원 등 기존 부처들의 업무와 중복되지 않는 차별된 업무를 개발함으로써 ‘옥상옥’ 조직이 되지 않도록 운영하는 것도 중요하다. 하지만 위원회가 차지하는 정치적 비중이나 국민적 기대감을 감안할 때, 동 위원회의 일거수일수족이 정치권과 국민의 시선이 집중될 수도 있어 위원회 그 자체가 또 하나의 남남갈등 주제가 될 수도 있다. 이런 점들을 종합한다면, 위원회는 대외용 업무와 내부용 업무를 구분하는 방식으로 운영되는 것이 바람직하며, 그것이 가능한 조직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어떤 경우에도 위원회가 화해협력과 통일을 구분하지 않는 사람들의 모임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엄밀하게 말해, 화해협력에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북한 정부와의 화해협력이고, 다른 하나는 북한 주민과의 화해협력이다. 북한 정부와의 화해협력은 무력충돌을 자제시키고 교류를 촉진시키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평화적 분단관리’를 위해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 정권의 정당성과 북한 체제의 생존성을 강화시키는 측면이 있기 때문에 통일보다는 분단고착에 기여할 수밖에 없다. 이에 비해 투명성을 가진 대북지원이나 인권개선을 통한 북한 주민과의 화해협력은 주민의식의 변화를 축적하여 북한의 변화를 가져오는 씨앗이 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에는 ‘정부 간 화해협력이 평화통일의 길’이라고 주장하여 혼란을 부추기는 사람들이 적지 않고, 이 그럴듯한 주장에 속수무책으로 고개를 끄떡이는 국민도 많다. 위원회가 이런 혼란을 재현해서는 안 되며, 진정 통일을 준비하는 위원회라면 북한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전략들을 창안하는 모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