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핵문제의 국제정치적 함의

이란 핵문제의 국제정치적 함의

Ⅰ. 들어가는 글

2004년 11월 말 이란과 유럽연합(EU)이 핵협상에 돌입했다. 이란은 2004년 11월 14일 “이란-EU간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 모든 농축관련 활동을 중단한다”라는 일종의 ‘핵동결’에 합의했다. “이란을 유엔안보리에 회부하지 않는다”라는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의 결정이 이어졌고, 11월 29일에는 이란의 농축활동 중단 합의를 환영한다는 결의문도 나왔다. 이후 EU는 이란의 항구적이고 완전한 핵포기를 끌어내기 위해 이란과의 협상에 돌입했고, 일찍부터 대이란 제재조치를 원했던 미국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지켜보는 중이다. 그 동안 미국이 이라크 문제, 아프가니스탄 문제, 북핵문제 등에 발목이 잡혀 있는 동안 EU가 이란 핵문제를 진화하는 주역으로 등장하면서 미국과 유럽 사이에 자연스러운 업무분장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미국은 유럽과 IAEA가 너무 유화적이라는 불만을 표출해왔다. 이렇듯 북핵문제가 한반도에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을 무렵 중동 저편에서는 이란의 핵문제를 둘러싼 국제정치가 숨가쁘게 진행되고 있다.

이란은 2003년 10월 ‘농축활동 중단 및 핵투명성 보장’을 약속했고 이후에도 여러 차례 비슷한 약속을 해왔지만 번번이 지키지 않아 신뢰성을 상실했다. 여기에는 이란의 핵보유를 주장하는 강경파 이슬람 지도자들의 입김과 이들이 부추겨온 반미(反美) 여론이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 여기에 대처하는 미국과 EU는 서로 다른 자세를 보이고 있다. 강경조치를 원해온 미국과는 달리 EU는 ‘협상에 의한 외교적 핵해결’에 치중하고 있으며, 국제원자력기구(IAEA)도 대이란 제재를 유보한 채 EU의 평화적 해결방식에 찬동하고 있다. 요컨대, 현재 진행되는 협상은 경제지원을 조건으로 이란의 핵무기 개발을 포기시키려는 EU와 국내의 강경여론을 업은 이란 정부가 벌이는 한판의 핵승부라 할 수 있다.

국제핵정치의 역사를 살펴볼 때, 비밀스럽게 핵무기를 추구하는 나라치고 초기에 ‘평화용 원자력’을 강조하지 않는 나라는 없다. 1980년대 남아공화국도 그랬고 1990년대 초반 북한도 ‘전력생산용’임을 강조했었다. 이란의 경우에도 공식적으로는 “농축활동은 순전히 평화용이며 핵연료 제조를 위한 저농축에 국한할 것”을 수차 강조했다. 하지만 굴지의 산유국에다 막대한 천연가스 자원을 보유한 자원대국이 ‘에너지 생산을 위한 핵개발’이라는 주장하는 것에는 처음부터 석연치 못한 대목이 있었으며, 오늘날 이란이 군사적 동기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점에 이설을 제시하는 전문가는 없다. 현재 이란은 광대한 국토의 곳곳에 우라늄 광산, 연구용 원자로, 농축시설 등을 가동하고 있다. 러시아와의 협력을 통해 건설 중인 1,000 MW급 부세르(Bushehr) 원전 이외에도 중수공장, 우라늄 전환시설, 대형 농축시설 등을 건설 중이거나 계획하고 있다.

이란의 핵문제를 둘러싼 협상은 다양하고 막중한 국제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무엇보다도, 부시 대통령의 재선과 함께 이라크, 북한, 이란 등 ‘악의 축 (axis of evil)’으로 지목된 국가들이 제2기 부시 행정부에서도 최우선 타킷이 될 것이라는 점에서 이란 핵문제는 미국 비확산 정책의 향방을 결정짓는 중대한 변수일 수밖에 없으며, EU-이란 핵협상의 향방은 미국, 유럽, IAEA 등 삼자간 비확산 공조체제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미국으로서도 이란 핵문제의 성공적인 진화를 ‘도전받지 않는 미국의 시대(Pax Americana)’를 열어 가는데 있어 중대한 분수령으로 간주할 것이며, ‘악의 축’ 국가들의 핵개발을 저지하지 못한다면 부시 대통령의 비확산 정책은 참담한 실패로 낙인찍힐 것이다.

이란의 핵문제는 북핵 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란 핵문제의 향방은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선례가 될 수 있기에 향후 미국 및 국제사회의 대북정책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미국은 2005년 2월 10일 북한 외무성의 핵보유 성명에도 불구하고 ‘6자회담 틀 내에서의 외교적 핵해결’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만, 강경선회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시점에서 이란 핵협상의 결렬은 또 하나의 ‘악의 축’인 북한에 대한 미국의 초강경 정책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이란 핵문제는 한국에게도 결코 ‘피안(彼岸)의 불’이 아니다.

Ⅱ. 이란의 핵시설과 핵능력

이란 핵무기 프로그램의 핵심은 농축시설과 부세르 원전으로 압축된다. 이란은 이란-이라크 전쟁이 한창이던 1985년 가스원심분리법 농축프로그램을 가동함으로써 팔레비 국왕의 실각과 함께 중단되었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부활시켰다.) 이 사실은 2003년 IAEA 조사에서 이란이 실토함으로써 밝혀졌음. David Albright and Corey Hinderstein, “The Centrifuge Connection,”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March/ April 2004, pp. 61-66.

2002년 자국의 핵프로그램이 국제적 문제로 부상하자 이란은 1985년 당시 독일과의 협약을 통하여 독일이 제공하기로 되어 있던 부세르 원전에 사용될 핵연료를 제조하기 위해 핵개발 프로그램에 착수했었다고 설명하면서, IAEA 조사팀의 방문조사를 받아들였다. 하지만 설득력이 부족했다. 1985년은 독일이 부세르 원전사업에서 손을 떼기 위해 일체의 활동을 중단한 시점이었다. 이후 러시아와의 협약을 통해 1995년 이후 러시아가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부세르 원전 건설이 지지부진했던 1980년대 후반 및 1990년대 초반 동안 이란의 핵개발 노력은 농축에 집중되었다. 이란이 독자적 농축능력을 확보한 것은 1990년대 중반인 것으로 판단되며, 파키스탄이 결정적인 도움을 준 것이 분명하다. 1985년 이란은 독일의 라이팰트(Leifeld)사로부터 원심분리기에 사용되는 강철 및 알루미늄 튜브를 생산하는 장비를 수입했다. Leifeld사는 1987년 이라크에 대해서도 원심분리기 제조에 사용될 수 있는 고강도 강철 회전체를 판매하기 위한 활동을 벌인 적이 있다. Leifeld사와의 거래로 농축프로그램에 착수한 이란은 1980년대 후반 네들란드의 다국적 기업인 유렌코(Urenco)사가 개발한 초기 Urenco형 원심분리기의 설계도를 입수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란이 조립한 원심분리기들을 살펴본 IAEA 조사팀은 이란이 가진 원심분리기의 대부분이 1980-90년대 파키스탄이 Urenco 모델을 바탕으로 제작한 P-1 타입과 유사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와 함께 나탄즈(Natanz) 농축시설과 테헤란의 칼라예 전기회사(Kalaye Electric)에서 농축 활동의 흔적들을 발견했으며, 이것들이 파키스탄에서 발견된 농축 흔적과 유사하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이러한 조사를 바탕으로 전문가들은 파키스탄이 이란에게 농축 설계도와 원심분리기 부품들을 제공했을 것이라는 추정하고 있으며, 이 추정은 2003년 파키스탄 정부의 자체 조사시 파키스탄 기술자들이 이란, 리비아, 북한 등에 농축관련 기술과 부품을 제공했다는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상당 부분 증명되었다. 종합컨대, 이란은 Urenco형 원심분리기의 설계도와 독일 회사로부터 수입한 자재를 이용하여 원심분리기를 제작하려다 여의치 못하자 파키스탄이 제공한 기술과 설계도에 의거하여 주로 P-1형 원심분리기를 조립하여 농축실험을 해온 것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이와 함께 IAEA 조사팀은 이란이 위장회사와 중개인들을 앞세워 세계 각지로부터 농축관련 부품들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란이 실토한 구입물품 중에는 고강도 알루미늄, 내(耐)부식성 합금(maraging steel), 전자빔용접기(electron beam welder), 균형장치(balancing machine), 진공펌프(vacuum pump), 튜브용 자재 등 농축시설에 사용되는 민감한 물품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으며, 이란 스스로 1993-1995년 기간 동안 500대의 원심분리기를 설치할 수 있는 부품을 구입했다고 고백했다. 아울러, 이란은 1997년 이전까지 농축관련 실험은 테헤란 핵연구센타(Teheran Nuclear Research Center)에 있는 플라즈마물리실험실(Plasma Physics Laboratory)에서 행해졌다고 밝혔다. 이란은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많은 기술적 난관에 부딪쳐 1999년까지는 실제로 우라늄 농축을 하지 못했으며 생산한 농축우라늄의 농축도도 1.2% 미만이라고 설명했다.) ibid., pp. 66.

하지만 이 설명을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Natanz 농축시설과 Kalaye Electric사에서 이미 고농축 활동의 흔적이 발견되었으며, 1999년 이전부터 이곳에 농축시설들이 건설되고 있었다는 사실에서 “1999년 이전에 실제 농축 활동이 없었다”라는 이란의 설명은 설득력을 가지기 어렵다.

현재는 Natanz에 있는 농축시설이 이란 농축활동의 중심이 되고 있다. 여기에는 원심분리기 1,000대를 설치할 수 있는 pilot급 농축시설과 원심분리기 조립시설이 있으며, 이와 함께 원심분리기 50,000대를 갖출 대형 농축시설이 건설되고 있다. 이란은 2002년 농축관련 연구, 개발, 조립 등의 능력의 상당부분을 이곳으로 결집했다. 이란은 이곳의 pilot 시설에서 자국의 핵문제가 국제문제로 부상하여 농축실험이 어려워진 2003년 11월까지 농축실험을 계속한 것으로 추정되며, 원심분리기용 회전체 제작 등 농축관련 부품생산은 그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이상의 분석을 종합할 때 이란이 고농축우라늄(HEU)를 통한 핵무기 보유를 추구해왔다는 점에 있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다만,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북한의 경우와는 달리 이란이 무기생산이 가능할 만큼의 고농축 우라늄(HEU)을 확보했다는 증거나 정황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으며, 충분한 고폭실험을 수행한 흔적도 확인되지 않은 상태이다. 원폭설계, 중성자원 등 주요 부품 확보, 전기장치 장착 등 핵폭탄 제조에 필요한 각종 기술과 자료를 확보한 것으로 판단할 근거도 부족하다. 그럼에도 Natanz의 Pilot급 농축시설은 매년 10kg 정도의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으며, 건설 중인 대형 농축시설은 완공시 매년 500kg의 무기급 고농축우라늄을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란 정부는 이 시설이 부세르 원전의 연료를 생산하기 위한 것이므로 저농축에 국한될 것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이 시설로 고농축우라늄 생산을 시도할 것인가 하는 것은 결국 이란의 의도에 달려있다. 요컨대, 이란의 핵문제는 당장 핵무기 보유를 우려해야할 만큼 시급하지는 않으나 막강한 핵무기 잠재력은 충분히 증명된 상태인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

<이란 핵시설 개요>

– 중수공장(건설중), 중수로(Arak) 2004년 착공예정
– Pilot급 농축시설(Natanz), 대형 농축시설 완공(Natanz에 건설중,
실험운영 추정)
– 레이저농축 시설(Lashkar Ab’ad) 2000년 완공예정
⇨ “2003년5월 해체” 발표
– 연구용 원자로(Tehran)
– 경수로(Bushehr) 1,000 MW급, 2005년 상업운전 예정
(2006으로 연기 가능)
– 우라늄전환시설(Isfahan) 2007년 가동 예상 (UF6 생산시설)
– Kalaya Electric Company(가스원심분리기 생산, Teheran),HEU흔적
– 우라늄 광산(Yazd) 채광중

Ⅲ. 이란 핵문제의 전개

① 핵개발 동기

이란은 핵확산방지조약(NPT)이 발족되던 해인 1968년에 회원국으로 가입했으나, 1970년대 팔레비 국왕 시절 비밀리에 핵무기 개발에 착수했다. 핵개발은 1979년 팔레비의 실각과 함께 일시 중단되었으나, 1980년대 이란-이라크 전쟁 동안 재개되었고, 이후 이란의 핵개발은 국제사회의 주목을 피하면서 조용하게 진행되었다. 1990년대 초반 이란의 농축시도가 미국에 의해 제지당한 적이 있지만, 미국이 걸프전 이후 이라크에 매달려 있던 시기라 심각한 마찰은 없었다. 그러다가 2002년 중반 이란의 반정부저항세력(NCRI: National Council of Resistance of Iran)이 이란의 핵개발을 폭로하면서 이란의 핵문제는 본격적인 국제문제로 부상했다.

이란이 처음 핵보유를 추진한 동기는 주로 정치적인 것으로 판단되며, 안보적 동기는 부수적인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 최초로 핵개발에 착수했을 때 이란은 이슬람권내에서 이라크와의 맹주다툼이나 강자로서의 부상을 노렸을 것이며, 이스라엘을 견제한다는 것은 부수적인 목적에 지나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1970년대는 이란의 대미 및 대이스라엘관계가 양호했던 시기로 이란이 이들 국가들로부터 안보위협을 느낄 이유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팔레비 실각 및 이슬람 정통주의 정부 수립 이후 미국은 대이란 정책은 늘 적대적이었으며, 특히 1991년 걸프전과 2003년 이라크 전쟁 이후 이란은 미국의 선제공격 가능성을 의식하기 시작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슬람 테러세력들의 반미테러가 증가하고 미국이 이라크를 무력으로 공격하는 등 미-이슬람간 적대감이 높아진 현재 이란으로서는 핵무기를 미국의 군사개입 또는 내정간섭 가능성을 불식시키는 수단으로 생각할 여지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요컨대, 이란의 핵개발은 정치적 동기에서 시작되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안보적 동기가 추가된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② 이란의 핵의혹

2002년 9월 이란의 핵활동에 대한 조사에 착수한 이래 IAEA는 다양한 의혹들을 제기하고 있다. 첫째, IAEA 조사관들이 테헤란의 Kalaye Electric Company, Natanz의 농축시설 등에서 발견한 농축우라늄의 입자들에 대한 확실한 규명이 필요하다. 이와 관련하여 이란은 특정 지역에서의 저농축 실험만을 인정하고 있으나, 발견된 장소나 입자의 종류가 이란이 설명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하고 광범위하다는 점에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는 이란이 스스로 밝힌 장소 이외 더 많은 장소에서 비밀리에 농축활동을 전개했거나 농축 우라늄을 수입했을 가능성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예를 들어, 외국에서 구매한 원심분리기들에서 농축도가 36%에 이르는 우라늄의 입자들이 발견된 사실에 대해 이란은 “파키스탄으로부터 구입한 원심분리기 부품에서 묻어온 것으로 추정되지만 구체적인 출처는 알 수 없다”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설득력이 부족하다.) 농축도가 54%인 우라늄의 입자들이 발견되었다는 주장도 있음. “ElBaradei Cites Progress by Iran, But Investigation Continues,” Arms Control today, October 2004, pp. 29-30.
이란에서 생산된 원심분리기에도 문제의 우라늄 입자들이 발견된 것도 의혹사항이 되고 있다.

둘째, 신고 없이 진행된 우라늄변환 실험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예를 들어, 테헤란의 Teheran Research Reactor의 저장소에서 발견된 육불화우라늄(UF6)은 “Isfahan의 우라늄전환시설에서만 2004년 5-6월 동안 30-35kg의 육불화우라늄을 생산한 적이 있을 뿐”이라는 이란의 설명과는 맞지 않다. 이란은 “테헤란의 연구로에서 병속에 넣어 보관한 육불화우라늄이 유출된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나, 설득력이 부족하다. 육불화우라늄이 농축을 하기 위해 기화상태로 만들어진 우라늄이라는 점에서 이 부분의 의혹이 밝혀지지 않는다면 이란의 은밀한 농축활동을 시사하는 것이 된다.

넷째, P-2 타입 원심분리기와 관련한 의혹도 해소되지 않은 상태이다. 이란은 2003년 10월 농축활동 중단을 약속했을 때 P-2 원심분리기에 대한 언급을 누락시켰다. 이란은 단순한 연구개발용이고 순수한 국산이라는 이유로 언급하지 않았을 뿐이라고 해명하고 있으나 역시 석연치 않은 대목들이 많다. 이란은 나중에 P-2 원심분리기의 자석부품들(magnets)이 수입된 것이라고 밝혀 스스로 앞서 말한 사실을 뒤집기도 했으며, 수천 개의 자석 부품들을 구입하려 했던 증거가 드러남에 따라 기존의 P-1 원심분리기에 더하여 P-2 원심분리기를 설치한 대규모 농축시설도 계획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은 자석부품들의 용도와 목적에 대해 구체적인 자료를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란은 P-2 원심분리기의 설계도를 1995년에 외국에서 입수했으며 2002년까지는 부품실험을 하지 않았다고 밝히고 있지만, IAEA는 2002년 이전에 P-2 원심분리기 부품들을 농축실험에 사용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다섯째, 플루토늄 실험과 관련한 의문도 남아있다. 이란은 애초에 테헤란의 연구용 원자로에서 사용된 조사후연료봉(irradiated reactor fuel)에서 밀리그램 단위 이하의 플루토늄을 추출한 적이 있다고 밝혔으나, 나중에는 적어도 밀리그램 단위의 플루토늄이 추출되었을 것이라는 IAEA 조사팀의 결론을 시인했다. 아울러 IAEA 조사팀은 추출 시점도 이란이 주장하는 것보다는 더 최근일 것으로 보고 있다. 여섯째, IAEA는 1989년 라비잔 쉬안(Lavizan Shian)에 설립된 물리학연구센타(Physics Research Center)의 활동에 대해서도 의문을 가지고 있다. IAEA조사팀은 이 시설이 중수소 등 수소폭탄의 원료와 관련된 실험활동을 했을 가능성을 놓고 조사하고 있다. 일곱째, 파친(Parchin)의 군사시설(Parchin military complex)에 대한 조사도 미진한 대상으로 남아있다. 이 시설이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고폭 실험에 사용되었을 가능성을 지적한 미국의 주장이 과장된 것일 수 있으나, 어쨌든 완전한 규명이 이루어지기 전까지는 의혹시설 리스트에서 제외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➂ 국제사회의 설득노력과 핵동결 합의

이란의 핵문제가 부상하면서 국제사회의 관심도 증가되었다. 부시 대통령은 이란이 러시아와의 기술협력으로 건설 중인 부세르 원전에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 하지만, 러시아의 푸친 대통령은 폐연료봉을 전량 회수하는 등 러시아가 철저한 핵투명성을 확보할 것이라면서 원전 건설을 계속했다. NCRI의 폭로에 이어 2002년 9월 IAEA도 조사에 착수했지만 이란은 충분한 협조를 제공하지 않았다. IAEA 조사관들은 특정 핵시설에 대한 조사관 방문허가 지연, 사진촬영 불허, 담당관 면담 연기 등 다양한 장애를 겪어야 했다.

이란 핵문제는 2003년 이후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이란을 두둔하는 자세에서 탈피하여 미국의 비확산 노력에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새로운 전기를 맞았다. 러시아는 부세르 원전 완공 이후 사용후핵연료의 전량 회수가 보장되지 않으면 이란에 핵연료를 공급하지 않겠다고 경고했고, 이란은 즉각 반발했다. 2003년 2월 모하멧 하타미(Mohammed Khatami) 대통령은 “부세르 원전에 들어갈 핵연료를 국산화하고 폐연료봉을 러시아에 반납하지 않음은 물론 계획 중인 여타 핵시설들의 건설도 계획대로 추진하겠다”라고 밝힘으로써 국제사회를 긴장시켰다. 이후 이란의 핵개발을 포기시키려는 유럽연합의 설득은 번번이 좌절되었으나, 2003년 10월 21일 영국, 프랑스, 독일 등 유럽연합 회원국 외상들이 이란을 방문하여 협상을 벌인 결과 이란 정부로부터 최초의 ‘핵활동 중단’ 선언을 얻어낼 수 있었다. 이 선언에서 이란은 ‘IAEA 조사 수용,’ ‘농축 및 재처리 활동 중단,’ ‘핵확산방지오약 추가의정서(NPT Additional Protocol) 조속 서명,’ ‘추가의정서 비준이전 준수’ 등을 약속했다. 이어서 2003년 12월 이란은 추가의정서에 서명했다. 하지만, 이란은 이 선언 이후에도 농축부품 생산 및 농축시설 조립을 지속하는 등 의혹스러운 활동을 지속했다.

이 무렵 IAEA는 그 동안의 조사를 토대로 “이란이 20년 이상 신고없이 농축실험 등 핵활동을 해온 것으로 밝혀졌다”고 발표했다. 이로써 이란이 NPT 회원국으로서의 의무를 일탈하고 IAEA와 맺은 핵안전조치협정(Nuclear Safeguards Agreement)을 위배해왔음이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2004년에 들어선 이후 이란의 ‘농축관련 활동 중단’ 약속이 몇 차례 더 반복되었지만 핵의혹은 소멸되지 않았다. 이란은 2004년 2월에도 ‘원심분리기 건설 및 관련부품 생산의 중단’을 약속했지만 이후에도 원심분리기 부품생산은 지속되었다. 이란이 약속과 비준수를 반복하는 동안 EU와 IAEA의 설득노력도 배가되었고, 그 결과 2004년 11월 14일 이란으로부터 모 농축관련 활동을 중단한다는 또 한번의 ‘핵동결’ 합의를 받아낼 수 있었다. 합의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IRAN: Nuclear Negotiation,” Council on Foreign Relations. www.cfr.org/background/Iran_nucneg.php. 검색일 2005년 1월 3일

첫째, 이란은 농축활동(enrichment activities)을 즉시 동결(immediate freeze)하며, 농축활동에는 원심분리기 부품생산(building centrifuge parts), 우라늄 전환(converting uranium to uranium hexaflouride)) 농축을 하기 위해서 우라늄은 산회우라늄(U3O8) 상태에서 4불화우라늄, 육불화우라늄 (UF6) 등 기체상태로 변환된 후 원심분리기에 들어가게 됨. 따라서, 육불화우라늄은 농축 직전 상태의 우라늄으로 민감한 물질로 간주됨.
등이 포함된다. 둘째, IAEA는 NPT 추가의정서에 의거하여 강화된 사찰(increased IAEA inspections)을 실시한다. 셋째, 이란은 IAEA 사찰관들이 핵동결을 확인하기 위해(to guarantee that they can not be used) 원심분리기(centrifuges) 및 기타 핵관련 부품들(other nuclear components)에 인식표(tag)를 부치거나 봉인(seal)하는 것을 허용한다.

➃ 미국의 핵외교

한편, 북한 핵문제, 아프간 전쟁, 이라크 전쟁 등을 수행하면서 이란 핵문제에 본격적으로 대응할 여력을 가지지 못한 미국은 EU와 IAEA로 하여금 이란 핵문제를 처리하도록 하는 일종의 아웃소싱(outsourcing) 방법을 택해왔지만, 이들 국제기구들이 너무 유순하다는 불만을 가지고 있었고, 이란의 핵의혹 보도 등을 통해 직접 이란을 압박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2002년 12월 13일 CNN은 Natanz와 Arak의 핵시설들을 공개하면서 “미국은 이란이 비밀리에 핵시설 건설해왔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고 보도했음.

미국은 2003년 11월 IAEA의 첫 조사발표가 있기 직전 IAEA가 직접적인 표현으로 “이란이 안전조치협정 위배하고 있다”고 표명해주기를 바랬다. 그렇게 되면 이란 핵문제는 유엔 안보리에 회부될 수밖에 없고, 곧 바로 경제제재 등 조치들이 취해질 수 있었다. 아울러, 미국은 2003년 10월 이란의 ‘농축활동 중단’ 약속에 대해서도 IAEA가 ‘2003년 10월 31일까지 약속 준수’를 요구하는 등 구체적인 시한을 포함하는 결의문을 채택해 줄 것을 원했다. 미국의 기대는 번번이 빗나갔다. 2003년 11월 21일 IAEA의 조사발표는 미국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은 독자적으로 간접적인 제제를 취하기도 했다. 2004년 4월 1일 미국은 이란의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기여할 수 있는 민감물질을 수출한 혐의로 이란과 거래해온 13개의 외국회사들에 대해 향후 2년간 미정부와의 거래를 금지시키는 제재조치를 취했다.) “U.S. Punishes 13 Companies for Iran Deals,” Arms control today, May 2004, p. 27.
여기에는 중국회사 5개를 포함하여 마케도니아, 러시아, 벨루로시, 북한, 대만, UAE 등의 회사가 포함되었다.

미국은 Parchin Military Complex에 대한 IAEA의 조치에 대해서도 너무 미온적이라는 불평을 가지고 있다. 미국은 동 시설의 건물구조나 지형 등을 고려할 때 이란이 고폭실험장으로 활용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IAEA에게 현장조사를 해줄 것을 여청했다. 이에 따라 IAEA 조사팀은 2004년 6월 현장검증을 신청했으나 이란이 이런 저런 이유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9월에 가서야 꼭 보겠다면 반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에 대해 미국은 IAEA가 더 강력하게 현장검증 의사를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조사가 지연된 것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미국은 직접 이란을 비난하기도 했다. 2004년 6월 미국무부의 리차드 바우처(Richard Boucher) 대변인은 이란이 Parchin의 군사시설을 핵관련 실험장으로 사용한 후 시설물을 변형함으로써 실험사실을 은폐하려 한다고 비난했다. 이란의 IAEA 수석대표 호세인 무사비안(Hossein Moussavian)은 9월 19일 방송을 통해 “미국이 거짓말로 Parchin의 군사시설을 핵관련 실험장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반박하면서 “IAEA 조사팀이 원한다면 방문해도 좋다”고 밝혔다.) “U.S. Pushes IAEA to Probe Suspected Iranian Nuclear Site,” Arms Control Today, October 2004, p. 30.

그럼에도 미국의 강경자세는 EU나 IAEA의 대이란 정책에 그대로 반영되지 못했다. EU는 이란에게 추가적인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EU는 이란이 2003년 10월의 ‘농축 중단’ 약속을 충실히 지키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Natanz에 있는 pilot급 농축시설의 실험활동과 대형 상용급 농축시설의 건설을 동결했고 육불화우라늄(UF6)의 반입도 자제하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IAEA도 이란 핵문제를 유엔 안보리에 회부하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기보다는 협상을 통한 평화적 해결을 추진하는 EU의 입장을 견지했으며, 이러한 입장은 이란이 ‘핵활동 중단’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던 2004년 동안에도 지속되었다.

특히, 모하멧드 엘바라데이(Mohamed ElBaradei) IAEA 사무총장은 2004년 4월 16일 이란을 방문하여 이란 정부와 ‘행동계획(Action Plan)’에 합의했는데, 이란이 IAEA의 조사에 협조하고 4월말까지 농축관련 자료들을 제공한다는 내용이었다. 미국이 보기에는 이란에게 더 많은 시간을 허용하는 결과를 가져올 뿐이었다. 이어서 2004년 9월 1일 이사회에 제출한 보고서에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IAEA 조사를 ‘흡족한 부분과 미흡한 부분의 혼합(mixed picture)’이라고 표현했으며, 2004년 9월 18일 IAEA 이사회는 “농축과 관련한 모든 활동을 중단할 것,” “IAEA 조사에 충실하게 응할 것,” “추가의정서를 조속히 비준할 것” 등을 촉구하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또한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은 9월 20일 IAEA 총회 발언을 통해서 IAEA 조사가 성공적으로 수행되고 있음을 시사하기도 했다. 그는 IAEA가 레이저 농축 시설, 농축실험, 우라늄 변환실험 등을 조사할 수 있었다고 밝히고 ‘지속적인 성과(steady progress)’를 얻고 있음을 강조하면서 현재로서는 농축 우라늄 입자들이 어디서 왔는지를 밝히는 것이 남은 과제의 하나라고 밝혔다. 이렇듯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의 발언이나 이 무렵 통과된 IAEA 이사회 결의문은 이란의 불이행을 경고하면서도 미국이 요구하는 강경대응에는 미치지 못하는 절충적 수준에 머물고 있었다. 이렇듯 미국과 IAEA간의 접근방식의 차이 때문에 2004년말 미국이 사무총장의 경질을 시도한다는 소문이 나돌기도 했다.) 뉴욕타임즈지 2005년 1월 4일자는 느닷없이 “이집트가 1980년대 이후 비밀리에 불화우라늄(uranium tetraflouride) 관련 실험을 수행했다”고 보도했음. 미국이 엘바라데이 사무총장을 압박하기 위해 관련사실을 흘린 것으로 볼 여지가 있음.

⑤ EU-이란 핵협상 전망

현재 진행중인 협상은 EU가 이란에게 반대급부를 제공하는 대신 이란이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을 전면 폐기하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EU가 제시할 반대급부에는 경수로(LWR) 건설지원, 핵연료 공급, 이란-EU간 무역 및 경제협력 확대, 이란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지원 등이 포함될 예정인데, 이러한 제안이 이란의 핵의혹 해소의지를 유발하기에 충분한 유인책이 될지는 의문이다. 이란-EU간 핵협상을 어렵게 만들 수 있는 요인들이 산재하고 있기 때문에 낙관론은 허락되지 않고 있는 상태라 할 수 있다.

첫째, 이미 오랫동안 군사적 야심을 품고 핵개발 프로그램을 진행시켜온 이란이 핵무기에 대한 미련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며, 이미 이러한 증거는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 예를 들어, 이란은 2004년 11월 14일 핵동결 합의 직후 “농축활동을 잠정적으로 중단하기로 합의했다(agreed to temporarily suspend)”라고 발표한 뒤 국제사회가 얼마나 진지하게 나오는가에 따라 협상의 결과가 달라질 수 있음을 시사했다. 이란의 이러한 자세는 ‘지속적이고 검증 가능한 중단(sustained and verified suspension)’을 목표로 하는 EU의 입장과는 다르다. 비슷한 맥락에서 이란은 2004년 11월 14일 핵동결에 합의하면서 20개의 연구용 원심분리기를 동결에서 제외하겠다고 고집하기도 했다. 결국 이 문제는 이란이 한발 물러나 동결에 포함시키되 감시카메라만 부착하고 봉인은 하지 않는 것으로 낙착되었다. 이에 더하여 이란은 11월 14일 핵동결 합의와 함께 “합의는 일주일 이후부터 발효한다”라는 단서를 발표했으며, 그 일주일 동안 수 톤의 우라늄 변환을 서둘러 완료했다. 이런 사례들은 농축활동에 대한 이란의 강력한 의지를 확인시킨 예이다.

둘째, 핵포기를 수용하지 않을 경우 가해질 국제사회의 외교적, 경제적, 군사적 제재에 이란이 취약하다면 협상을 통한 핵해결의 가능성이 높겠지만, 이란이 스스로를 취약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할 이유가 많다. 이란은 산유국으로써 경제제재에 대한 취약성이 낮은 편이다. 현재와 같은 고유가 시대에 세계 석유매장량 5위 석유생산량 4위로 석유수출국기구(OPEC)내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이란을 제재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이미 이란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유럽, 일본, 중국 등이 대이란 경제제재에 찬성하기 어려움은 주지의 사실이다. 아울러, 이란은 걸프전 및 이라크 전쟁 이후 이슬람권의 대미정서가 악화된 상황에서 대표적인 이슬람 강국으로 등장했다. 이란을 외교적으로 제재하는 데에도 상당한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국제사회가 대이란 제재에 나설 경우 이란국민을 더욱 단합시켜 오히려 더 노골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촉발할 수 있으며, 미군이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평정작전을 전개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에 대해 군사행동을 취하기도 현실적으로 어렵다. 이란이 이런 사정들을 모를 리가 없다.

이란에 오시라크(Osiraq)식 폭격을 가하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으로 판단된다. 1981년 6월 7일 이스라엘의 F-15 및 F-16 전폭기들은 사우디와 요르단을 가로질러 이라크로 날아가 완공을 눈앞에 둔 오시라크 원자로를 폭격하여 이라크의 핵개발 계획을 10년 정도 지연시켰다. 오시라크 원자로는 1975년 이라크-프랑스간 계약에 의해 프랑스가 제공한 40,000 kw급 연구로였다. 당시 프랑스는 이라크가 NPT 회원국으로서 IAEA 핵사찰을 받게 되므로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지만 이스라엘로서는 우려할만한 많은 이유들을 가지고 있었다. 오시라크 원자로가 고농축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군사적 전용을 우려할 수밖에 없었고, 이라크의 1973년 중동전 참전, 계속적인 반이스라엘적 태도, 사담 후세인의 핵개발에 대한 의지표명 등도 이스라엘의 극단적 대응을 유발한 요인들이었다. 당시 이라크는 투와이샤(Tuwaisha)에 대규모 핵단지를 조성하고 있었으며, 구소련으로부터 제공받은 소형 원자로를 가동하고 있었다. 이라크는 브라질, 이태리, 니제르 등으로부터 우라늄 원광을 수입하고 있었으며, 유럽으로부터는 중수로 및 재처리 시설을 구매하는 거래를 추진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IAEA 핵사찰로는 이라크의 핵개발을 막을 수 없다고 판단했고 미국도 이스라엘의 입장을 지지했다. 이라크와 프랑스는 이스라엘과 미국의 판단을 무시하고 원자로 공사를 강행했었다.

여기에 비해, 부세르 원전은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통상적인 경수로인데다 제공국이 러시아이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나 이스라엘이 이 원전을 공격하기는 쉽지 않다. 이란도 오시라크 사건을 거울삼아 핵시설들을 산재시키고 있다. 남한의 16배에 이르는 광대한 국토에 산재한 핵시설들과 지하 등에 숨겨져 있을 핵시설들을 모두 찾아내 파괴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며, Kalaye Electric Company의 경우 사실상 농축실험을 위해 설립한 위장회사로 테헤란의 인구밀집 지대에 위치하고 있어 국부적 공격(surgical strike)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란 당국자들도 대이란 군사행동 가능성에 대한 서방 전문가들의 언급을 겁주기 위한 허풍(bluffing)으로 인식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스라엘이 이란의 핵개발로 인하여 생존위협을 느낀다면 또 다시 극단적인 대응을 할 가능성을 배제하는 것은 타당치 않으나, 문제는 이란이 그러한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다는데 있다.

셋째, 강경파들이 부추겨온 이란내의 반미 및 반서방 정서도 협상의 중대한 장애물이 되고 있다. 이란 내에서 핵문제는 강온파 간의 쟁점으로 부상한 상태이며, 강경파의 선봉에는 이란수호평의회(Iranian Guardians Council)의 아야톨라 아메드 자나티(Ayatolla Amhed Jannati) 등 종교지도자들이 있다. 이들은 “NPT에서도 농축은 금지대상이 아닌데 왜 농축활동을 중단하느냐” 및 “이란도 NPT를 탈퇴하고 핵무기를 개발하고 있는 북한모델을 따라야 한다”라는 두 단계의 애국논리로 이란국민의 반미 및 반서방 정서를 자극하고 있다. 그 결과 핵문제에 대해 비교적 무지했던 이란 국민사이에 반미감정과 애국심이 팽배한 상태이며, 이 정서가 ‘핵투명성 보장을 통한 국제사회 참여’를 주장하는 개혁세력들을 압도하는 형상이다. 2004년 11월 14일 이란정부의 ‘농축중단’ 합의 직후 이란 각지에서는 이에 반대하는 데모가 발생했으며,) 2004년 11월 1일 테헤란의 IAEA 건물은 농축중단을 위한 협상을 중지할 것을 요구하는 테헤란 시민들이 인간띠를 형성하여 건물을 둘러싸는 시위가 발생했으며, 29일도 영국 대 사관 앞에서 영국 국기를 불태우는 과격한 데모가 발생했음.

이란의 최고 지도자 아야톨라 알리 하메나이(Ayatolla Ali Khamenei)는 텔레비전 방송을 통해 “이란은 어떤 경우에도 핵활동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2005년 2월 9일 미국의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이 “이란이 EU의 제안을 수용하지 않으면 이란 핵문제의 유엔안보리 회부를 논의할 것”이라는 발언이 나온 다음날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은 이슬람혁명 기념식에서 반미구호가 난무하는 가운데 “외국의 불법적 요구에 의해 핵기술을 포기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 이란과 미국간의 언쟁이 진행될수록 이란내의 반미감정은 더욱 깊어지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란의 정치제도는 최고 지도자가 군 최고통수권을 장악하고 군사령관 임명권, 대통령 인준권 등을 가지는 등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제1대 최고지도자 호메이니의 사망 이후 제2대 하메네이가 1989년 이래 종신직 최고지도자로 재직 중임.
그 아래에 대통령을 중심으로 하는 행정, 입법, 사법의 3권분리제를 채택하고 있기 때문에 정부의 입장에는 회교 지도자들의 강경자세가 반영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이란의 IAEA 대표 Hossein Moussavian은 “유럽이 이란의 농축 권리를 인정한다면 이란은 일정수준 이상의 고농축을 하지 않을 용의가 있음”을 밝히면서,) 2003년 9월 25일 Islamic Students News Agency 와의 인터뷰. “In the News: IAEA Puts Off Showdown With Iran,” Arms Control Today, October 2004, pp. 27-28

이란의 농축권리 확보를 강조하고 있다. 11월 14일 농축중단 합의 직후에 이란정부가 “EU와의 협상이 진행되는 기간 동안 잠정적으로 농축활동을 중단한 것일 뿐”임을 강조한 것도 이러한 국내기류와 무관하지 않다. 이란의 상당한 양보를 강제하는 협상이 이루어질 경우 이란 국민이 거세게 저항할 것이 분명하며, 이러한 국내정서는 이란-EU간 협상을 어렵게 하고 있는 중요한 변수가 되고 있다.

넷째, 러시아의 대미협력에 한계가 있다는 점도 협상의 전도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다. 이란에 원전을 건설해주는 사업을 전면 중단하기를 원하는 미국의 요구를 거부하고 “사용후핵연료를 전량 회수할 것이므로 문제가 없다”를 자세를 견지해온 러시아는 2005년 2월 27일 이란과 핵연료 공급협정을 서명함으로써) 협정은 알렉산드로 루미얀체프 러시아 원자력부 장관과 이란의 골람레자 아가자데 부통령 사이에 서명되었으며, 러시아의 핵연료 공급, 사용후 핵연료의 반환, 핵연료 공급 일정 등을 골자로 하고 있음.

이란의 전면적 핵프로그램 폐기를 원하는 EU와 미국을 실망시켰다. 8억 달러가 투자된 부세르 원전은 러시아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상업적 이익이며, 이는 미국-러시아 간 비확산 협력의 한계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다섯째, 북한과 마찬가지로 이란의 경우에도 핵포기의 전제로 완전한 안보보장을 원할 것이고 그러한 보장을 제공할 수 있는 것은 미국이므로 협상과정의 어느 시점에서든 미국의 본격적 개입이 불가피하다. 하지만 미국과 이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상호불신을 축적해왔다. 1979년 이슬람 정통주의 정부가 수립된 이래 미국은 이란을 적대시해왔으며 이란-이라크 전쟁 중에는 사담 후세인을 지원했다. 미국은 이란이 시아파 테러세력인 헤즈볼라를 지원한 것으로 보고 이란을 중요한 테러 지원국으로 지목하기도 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이란 당국자들은 미국이 이란의 정권교체를 원하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으며, 이미 미국과 날카로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하산 로하니(Hassan Rohani) 이란측 핵협상 수석대표는 2004년 11월 29일 UN이 대이란 제제를 결정하지 않고 IAEA도 오히려 핵동결 합의를 환영하는 결의문을 채택하자 ‘미국에 대한 이란의 위대한 승리’라고 주장하면서 “이란은 EU와의 협상을 위해 당분간 농축활동을 동결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핵에너지 개발권을 포기하지 않을 것”임을 강조했다.) Interview with BBC News, November 30, 2004.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에게 충분한 안전보장을 제공한다는 것은 복잡한 문제이며, 미국, EU, IAEA 사이의 정책조율도 전제되어야 한다.

요컨대, 이란의 핵문제를 협상으로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국제사회가 수행해야 할 과제는 다양하다. 대이란 군사행동의 가능성이 희박하고 이란이 국제사회의 경제제재에 대한 취약성이 크지 않은 상태에서 이란의 핵보유 의지를 능가할 만큼의 반대급부를 마련해야 한다는 것이 큰 부담이다. 반대급부에는 안보보장은 물론 경제적 지원과 정치적 인정이 포함되어야 하는데, 미국이 이런 식의 포괄적 보장을 제공하겠다고 약속할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미국은 현재 핵포기의 대가로 “경제지원과 정치적 인정은 물론 불가침 조약과 체제 및 정권의 존립 보장”이라는 포괄적 보장을 원하는 북한을 외면하고 있으며, 이것이 6자회담의 표류를 몰고 온 최대 원인임. 한국의 일부 세력은 “포괄적 보장을 해주면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다는데 왜 미국이 수용하지 않는가”라는 의문을 표시하고 있지만, 포괄적 보장을 제공함은 미사일, 화생무기 등 북한이 가진 여타 대량살상무기를 인정하는 것이 되며, 인권부재의 부자세습 독재체제의 존속을 보장해주는 것이 되기 때문에 미국으로서는 북한문제의 적절한 해결방안으로 보지 않을 것임.

이란이 보기에 충분하고 종합적인 반대급부가 제시되지 않을 경우 이란 핵문제는 기복을 거치면서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 과정에서 잠정해결, 부분해결 등의 진전은 이루어질 수 있으나 근본적이고 항구적인 핵포기에 이르는 길은 좀 더 길고 험난할 전망이다.

Ⅳ. 국제정치적 함의

① 미국의 사활적 국익에 대한 위협

이란 핵문제의 향방이 향후 국제정치에 미칠 파장은 심대하다. 첫째, 이란의 핵문제는 북핵문제와 더불어 미국의 세계전략을 위협하면서 미국으로 하여금 미국주도의 세계질서(Pax Americana) 구축의 중대한 걸림돌로 인식하게 할 소지가 많다. 9ㆍ11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과 ‘대량살상무기 비확산’을 최대 목표로 내걸고 다분히 공격적인 신 세계전략을 구사해왔다. 미국의 신전략은 테러를 지원하는 나라,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려는 나라, 민주화와 시장경제를 거부하는 나라, 즉 ‘불량국가(rogue states)’를 주적으로 지목하고 있으며, ‘통제와 억제(control and deterrence)’를 근간으로 헸던 과거의 세계전략과는 달리 필요시 ‘선제공격(preemptive and preventive strikes)’을 마다하지 않는 공격적 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러한 세계전략이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표는 미국주도의 국제질서의 정착일 것이며, 이러한 목표는 소련연방 와해 및 걸프전 승리 이후 유일초강국으로 등장한 이래 미국의 변함없는 국가목표였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미국의 신전략이 우선적으로 겨냥할 나라들은 Pax Americana의 정착에 걸림돌이 될 것으로 우려되는 국가들이 될 것이다. 미국이 북한이나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하고 이들 국가의 핵개발 문제를 중시하는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인 것으로 볼 수 있다.

특히, 미국이 이란을 ‘악의 축’으로 지목한 배경에는 이란의 테러지원 활동에 대한 뿌리 깊은 경계심이 자리 잡고 있다. 이란은 오랜 기간에 걸쳐 레바논의 헤즈볼라(Hezbolla), 팔레스타인의 하마스(Hamas) 등에 대한 재정지원을 통해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평화를 저해하는 활동을 해왔으며, 이란의 정보기관인 이란혁명수비대(Iranian Revolutionary Guard Corps; IRGC)가 자금지원, 훈련, 무기제공, 은닉처 제공 등을 통해 테러활동을 지원하는데 관여한 적이 있다. 미국은 이란이 최근까지도 유사한 활동에 개입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여전히 이란의 무기들이 시리아를 통해 헤즈볼라에게 제공되며, IRGC가 헤즈볼라 요원의 모집 및 훈련에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Matthew Levitt, “Foremost State Sponsor of Terror,” 2005년 2월 16일 미 하원 「중동-중앙아시아소위」 및 「국제테러-비확산소위」 청문회 증언자료 참조.

미국은 과거 이란 또는 이라크가 중동의 패권국으로 부상하는 것을 막기 위해 이란을 지원하기도 하고 이라크를 지원하기도 했지만, 이라크의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현 시점에서 최대의 경계대상은 이란일 수밖에 없다.
이란의 핵문제가 해소되지 않는다면 인근국에게는 단순한 안보위협으로 인식될 수 있으나, 미국에게 있어서는 북한에 이어 NPT 체제를 약화시키면서 군사적 핵프로그램을 진척시킨 또 하나의 국제사례로써 미국의 근본적인 국익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될 것이다. 미국이 EU와 IAEA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직접 이란과의 협상에 나서지 않는 것을 두고 미국이 이란 핵문제를 중시하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은 잘못이며,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는 미국에게 있어 사활적 국익을 위협하는 ‘쌍둥이 위협(twin threats)’일 수밖에 없다.

② 미국 비확산 정책의 성패를 가늠하는 시험대

둘째, 비슷한 맥락에서 이란 핵문제의 향방은 부시 대통령의 비확산 정책의 성패는 물론 정치적 성패까지 판가름할 중요한 시험대가 될 전망이다. 현재 부시 대통령의 강력한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정책에 대해서는 대개 두 가지 부류의 결과가 나타나고 있다. 2003년말 카다피 대통령의 ‘핵포기 선언’을 통해 대량살상무기 개발을 포기한 리비아와 비슷한 입장을 보이고 있는 시리아 같은 나라가 굴복을 택한 경우라면, “미국의 핵위협에 대처하기 위한 핵억제력이 필요하다”라는 논리를 앞세우고 오히려 핵개발을 고수하는 북한은 저항을 택한 경우라 할 수 있다. 북한에 이어 이란마저 저항을 택하고 양국의 핵해결이 미궁으로 빠진다면 부시 대통령의 비확산 정책은 심각한 손상을 받게 될 것이다. 타협과 협상보다는 강압에 의존한 비확산 정책이 오히려 해당국들의 불안을 유발하여 더욱 확고하게 핵보유를 추구하도록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 것으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3년 대선기간 중에도 경쟁후보로부터 “북핵문제에 대해 강력한 표현들을 사용했지만 사실상 북한에게 더 많은 핵무기를 만들 시간만 주었다”는 비난을 받았다. 이런 이유 때문에 부시 대통령으로서는 북한과 이란의 핵문제를 중시하지 않을 수 없다. 일단 EU와 IAEA의 대이란 협상이 성공한다면 함께 결실을 수확하는 방향으로 나가겠지만, 일정시간이 경과하도록 진전이 없다면 대이란 제제를 추구할 가능성이 높다.

③ 중동평화의 중대한 걸림돌

셋째, 중동이라는 지역을 놓고 볼 때 이란의 핵프로그램은 역내 핵문제 해결에 커다란 암초로 등장했다. 중동지역은 이스라엘이 일찍부터 핵보유에 성공함에 따라) 필자는 1967년 중동전쟁과 1973년 중동전쟁 사이를 이스라엘의 핵보유 시점으로 보고 있음. 많은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의 핵보유가 아랍국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제거라는 목표를 포기하고 종전협상에 나가도록 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으로 보고 있음.

이란, 리비아, 이라크 등이 이스라엘의 핵무기에 대응하는 ‘이슬람 핵’을 거론하면서 대립각을 세우는 형상을 보여 왔다. 중동이 세계의 화약고로 간주되는 중에 중동을 비핵지대로 만들려는 국제적 노력은 꾸준히 지속되어왔다. 1974년 12월 9일 이란은 이집트와 함께 중동에서의 핵무기 제조 및 반입을 금지하는 「중동 비핵지대」창설을 권고하는 유엔총회 결의안을 주도한 적이 있다. 물론, 이스라엘이 핵무기를 강력한 생존수단으로 간주하는 한 그리고 주변 이슬람세계로부터의 안보위협이 불식되지 않았다고 판단하는 한 중동비핵지대 발상은 어떻게 이스라엘의 핵포기를 끌어낼 수 있는가 라는 난제에 가로막혀 있다. 현재 아랍국들은 이스라엘의 핵보유에 불평하고 있지만 이스라엘은 사실상의 전쟁상태가 먼저 종식되고 항구적인 평화가 정착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러한 상태에서 이집트 등이 유엔무대에서 거의 매년 중동비핵지대 창설을 주장하고 있다. 현재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그래도 중동비핵지대 창설에 대해 미련을 가진 전문가들이 없지 않다. 예를 들어, 베네트 렘버그(Benett Ramberg)는 이스라엘을 NATO에 가입시켜 안보위협을 불식시키면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 영토를 양보함으로써 양자간 감정을 해소하는 조건으로 아랍연맹(Arab League) 회원국 22개국에 이란과 이스라엘을 더한 24개국으로 구성되는 중동비핵지대를 산포하자는 안을 제안하고 있다.) Bennett Ramberg, “Defusing the Nuclear Middle East,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May/June 2004, pp.45-51
이외에도 사우디아라비아도 파키스탄의 무분별한 핵확산 행위를 개탄했으며, 중동의 온건 이슬람 세력들은 중동에서의 핵무기 확산이 알 카에다(Al Qaeda) 또는 동조자들에게 대량살상무기를 안겨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명하고 있다. 이란이 핵보유국으로 등장할 경우 터키나 여타 중동국들도 핵보유를 추구할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요컨대, 이란의 핵보유는 중동지역의 전략지도를 복잡하게 만들고 비핵지대 논의 자체를 봉쇄하는 효과를 가져 올 소지가 높다.

개연성이 높지는 않지만 이란이 핵보유를 강행하고 이스라엘이 국부적 공격을 감행하여 부세르 원전, Natanz 농축시설, 테헤란의 Kalaya사 등을 파괴한다면, 1980년 오시라크 사건 때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큰 파장이 예상된다. 오시라크의 경우 핵연료 장전 이전 단계에서 파괴함으로서 방사능 유출은 없었지만 국제적 파장은 작지 않았다. 아랍국을 위시한 다수국가들은 이스라엘의 공격을 비난했고, 유엔 안보리는 결의문 제487호를 채택하면서 이스라엘을 비난했었다. 미국은 이스라엘의 행위를 비난하면서도 이라크의 반이스라엘적 태도와 핵의혹 등을 이유로 이스라엘의 공격을 이해한다고 발표함으로써 “미국이 공격을 사주한 것”이라는 소문과 반미주의 정서의 확산을 초래했었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에 대해 마땅한 보복수단을 가지지 못한 이라크의 대응조치는 외교적 비난에 한정되었고, 사우디가 대체 원자로 건설자금 제공을 약속함으로써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하지만 이란의 핵시설에 대해 유사한 공격이 감행된다면 이슬람 세계의 단결과 함께 이스라엘-아랍 간 극한적인 대결무드가 고조될 것이 확실하다. 이미 아프간 전쟁, 이라크전 등으로 중동 각지에 팽배한 반미주의 정서는 더욱 악화될 것이며, 수니파와 시아파는 단결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 중국 등이 아랍 편을 들면서 미국이 주도하는 반테러 국제연대도 심각한 도전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이스라엘이나 미국이 과연 이런 수준의 리스크를 무릅쓸 것인가 라는 반문이 가능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이스라엘의 극단적 처방을 배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이스라엘은 국가생존을 위해 이미 통상적인 이성의 범위를 벗어나는 방식의 대응을 반복해왔다. 국제사회는 이스라엘의 군사행동 가능성을 둘러싸고 이란과 이스라엘 간에 상당한 인식차이가 존재함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6천6백만 명의 인구를 가진 중동 최대의 이슬람국인 이란이 국제사회의 만류를 뿌리치고 공개적인 핵보유국이 될 경우에도 국제안보환경은 크게 악화될 것이다. NPT 체제의 약화나 중동에서의 핵확산 무드 조성 등은 기본적으로 예상되는 것이며, 이란- 미국 그리고 이란-이스라엘 간의 관계가 불구대천의 원수로 악화된 상태에서 미국의 중동정책은 왜곡될 것이며 이스라엘의 생존전략도 강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란으로서는 미국에 대한 ‘비례적 억제(proportional deterrence)’가 가능해진 것으로 판단하기 쉬우나, 이와 관련한 미국-이란간의 인식차이가 클 것이기 때문에 무력충돌 가능성과 그로 인한 긴장은 높아질 것이다. 다시 말해, 이란은 제한된 숫자의 핵무기이지만 미국내 주요 목표들을 강타할 능력을 보유한 이상 미국도 이란을 함부로 다루지 못할 것으로 믿기 쉬우나, 미국으로서는 이란이 미 본토의 주요목표물들을 위협할 수 있는 투발수단을 갖추지 못한 것으로 판단하고 이란이 생각하는 만큼의 부담감을 느끼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④ 국제 핵확산 네트워크 규명을 위한 중대한 계기

넷째, 이란 핵문제의 철저한 규명과 성공적인 진화는 핵확산을 부추겨온 국제 네트워크를 파악하고 대처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전술한 바와 같이 이란은 핵개발을 위해 여러 나라 또는 다양한 거래선들과 은밀한 핵거래를 해왔다. 이미 파키스탄, 독일, 중국) 중국은 육불화우라늄(uranium hexaflouride; UF6)을 제공함으로써 이란의 농축실험에 기여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음.

등의 나라들이 이란의 핵개발과 관련되어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으며, 특히 2002년 후반 조사에 착수한 이래 IAEA는 이란이 위장회사와 중개인들을 앞세워 세계 각지로부터 농축관련 부품들을 구입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조사에 응하면서 이란은 구입한 물품의 중개인, 구입시기, 판매회사 등을 밝혔는데, IAEA는 상당부분 진실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즉, 비밀스러운 거래를 하는 국가들의 경우 거래 상대방을 보호하는 것이 관례로 되어 있으며, 이란도 이러한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다. 따라서 이란과의 핵거래에 참여한 거래처, 거래회사, 거래내역, 부품 제조자, 거래 시기 등은 아직도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져 있는 것으로 봐야 하며, 이것들을 정확하게 알아내는 것이 향후 이란의 핵문제에서 규명해야 할 중요한 과제로 남아있다.

특히, 이란의 핵개발 프로그램에 있어 파키스탄의 역할을 규명하는 것은 엄청난 국제정치적 함의를 가진다. 이란의 농축시설이 주로 파키스탄이 제공한 P-1 원심분리기 기술을 바탕으로 하고 있음은 이미 밝혀진 사실이며, 그 과정에서 ‘파키스탄 핵의 아버지’라 불리는 압둘 카디르 칸(Abdul Qadeer Khan) 박사의 역할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칸 박사는 Urenco사에서 일했던 금속공학자로 1976년 귀국하여 Urenco사에서 훔친 기술로 카후타(Kahuta)에 농축시설을 건설하는 등 파키스탄의 핵무기 및 미사일 개발의 주역으로 활동했다.) 1971년 인파전쟁에서의 패배, 1974년 인도의 핵실험 이후 알리 부토(Zulfikar Ali Bhutto) 수상은 칸 박사를 통해 핵무기 개발을 본격 추진했음. 칸 박사는 Kahuta에 엔지니어링연구실험실(Engineering Research Laboratories; ERL) 및 농축시설을 건설했으며, 독일로부터 농축관련 부품들을 그리고 중국으로부터 불화우라늄(uranium hexafluoride)을 구입하여 무기급 고농축우라늄(WGU) 생산을 연구했으며, Urenco 모델에 기초하여 P-1 및 P-2 타입의 원심분리기를 개발한 것으로 알려져 있음. ERL은 1981년 칸연구소(Khan Research Laboratory; KRL)로 개칭되었으며, 이후부터 KRL은 파키스탄핵에너지위원회(PAEC)와 함께 파키스탄 핵개발의 주역기관으로 활약했음. Zia Mian, “Pakistan’s Nuclear Descent,“ Int‘l Network of Engineers and Scientists Against Proliferation. www.inesap.org/bulletin16/bul16art.htm; David Albright and Mark Hibbs, “Pakistan’s Bomb: Out of the Closet,”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July/August 1992), pp. 38-43 등 참조.

칸 박사는 2004년 2월 4일 리비아, 이란, 북한 등에 핵기술을 유출한 사실을 증언하여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았으며, 그가 제공한 P-1 원심분리기 기술 및 부품이 이란의 농축활동에 크게 기여했음도 부동의 사실로 밝혀졌다. 파키스탄 정부는 이러한 핵기술 유출사건이 칸 박사 개인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칸 박사의 국가적 위상과 전 세계에 걸친 거래망 등을 감안할 때 파키스탄 정부와 무관한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이 보다는 어려운 재정 하에서 핵무기 개발을 추진했던 파키스탄이 칸 박사를 통한 핵기술 및 부품 유출을 통해 재원조달을 시도했을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성이 높다.) 예를 들어, 파키스탄이 핵실험에 성공하기 직전인 1997년 국가예산은 125억불 정도였으며, 이중 45%는 부채비용에 그리고 24%는 국방비로 사용되었음. 결국 파키스탄의 핵개 발은 국민경제의 도탄 위에 진행된 것으로 볼 수 있음. Ayesha Khan, “Pakistan Joins the Club,”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July/August 1998, pp. 34-39.

칸 박사의 역할을 보다 명확하게 규명할 수 있다면 파키스탄-이란-북한을 잇는 ‘농축 삼각형(enrichment triangle)’과 북한-이란-파키스탄을 연결하는 ‘미사일 삼각형(missile triangle)’의 내막을 파헤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마련될 수 있을 것이다. 이란과 북한이 파키스탄의 농축기술을 바탕으로 하여 우라늄농축을 시도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이란이 북한의 Scud-B, Scud-C, 로동 미사일 등을 토대로 하여 Shahab-1, Shahab-2, Shahab-3 미사일을 개발해왔고 파키스탄의 액체연료 미사일인 Ghauri 역시 북한의 로동 미사일을 토대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란에 의한 대북 재정지원, 이란에 의한 대파키스탄 재정지원, 북한-파키스탄간의 미사일-농축 교환거래 등을 충분히 추정할 수 있다. 현재, 북한은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를 부인하고 있으나, 칸 박사는 이미 증언을 통해 “파키스탄-북한간의 농축장비 판매와 관련한 거래는 1980년대 후반에 시작되어 1990년대 후반부터 본격적인 선적이 시작되었다“고 실토했다. 또한 칸 박사는 ”원심분리기 설계도와 함께 소수의 완성된 원심분리기를 팔았으며, 북한이 수천 개 이상의 원심분리기를 갖춘 농축시설을 세우기 위해 구입해야 할 장비들의 목록(shopping list)도 제공했다“고 고백했다.) 북한-파키스탄간 농축거래에 관한 자세한 분석은, 김태우 이호령, “칸 박사 북핵 증언의 의미,” 한국국방연구원 발행 주간국방논단 제994호(04-19) (2004년 5월 10일자) 참조.

칸 박사는 2004년 뉴욕타임즈지와의 인터뷰에서 “5년 전(1999년) 방북시 평양 인근의 비밀 지하핵시설(a secret underground nuclear plant)에서 3개의 핵장치(nuclear devices)를 목격했다”고 증언하기도 했는데,) 뉴욕타임즈 2004년 4월 13일자.

이렇듯 세계 핵확산에 있어서 칸 박사 및 파키스탄의 역할을 규명하는 것은 북핵의 실체를 밝히는 데에도 결정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세계 핵확산에 있어서의 파키스탄의 역할은 미국의 비확산 정책과도 복잡한 함수관계를 가진다. 미국은 기존의 핵확산방지법(NNPA)에 더하여 시밍턴 수정안(Symington Amendment; 1976), 글렌 수정안(Glenn Amendment; 1977), 솔라즈-프레슬러 수정안(Solarz and Pressler Amendment; 1985) 등 민감한 핵시설을 추구하는 나라에 대한 군사 및 경제원조를 금지하는 입법을 통해 핵확산을 억제하는 정책을 펼쳐왔지만, 이 법들은 파키스탄에는 발동되지 않았다. 1979년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한 이후 파키스탄은 미국 지원 하에 대소(對蘇) 항전을 벌이고 있던 아프가니스탄 반군에게 기지를 제공해주었기 때문에, 미국에게는 파키스탄의 계속적인 협력이 긴요했다. 이 기간 동안 파키스탄은 거짓과 위장으로 일관하면서 핵무기 개발을 지속할 수 있었다. 정부가 “파키스탄의 핵개발은 평화적 목적에 국한된다”라는 거짓말을 계속하는 동안 칸 박사는 “파키스탄의 핵무기 개발은 유태인들이 꾸며낸 이야기”라고 둘러댔고,) 1984년 2월 10일자 인터뷰. Leonard Weiss, “Pakistan: All Over Again,”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May/June 2004, pp. 52-59.
파키스탄의 핵의혹에 대한 미국의 조치는 생략되거나 솜방망이에 그치기가 일쑤였다.

1987년 캐다나 국적의 파키스탄인인 아르샤드 페르베즈(Arshad Pervez)가 미국회사로부터 원심분리기 제작에 사용될 수 있는 25톤의 고강도 철강과 핵폭탄의 중성자원으로 사용될 수 있는 베릴리움(beryllium)을 구매하려다가 적발되어 유죄를 선고받았지만 미국은 파키스탄을 제재하지 않았다. 미국 정부는 “대통령이 파키스탄이 핵폭발물을 보유하지 않고 있으며 미국의 지원이 파키스탄의 핵폭발물 보유 가능성을 줄이는데 기여한다는 점을 확인한다”는 조건을 첨부하는 방법으로 솔라즈-프레슬러 수정안을 우회하여 파키스탄에 대한 지원을 지속했다. 미국의 제재는 소련군이 아프간에서 철수한 1990년 이후에 재개되었지만 이미 너무 늦었다. 이후 파키스탄은 빈 라덴에게 반미 이슬람 테러전사들을 양성하는 기지를 제공하고 아프간에서의 탈레반 정권의 탄생을 돕는 등 반미적인 정책을 펼쳤지만 9ㆍ11 테러 이후 미국이 파키스탄에 반테러 전쟁을 위한 협력을 요청하면서 양국은 또 다시 동맹국 관계를 회복했다. 파키스탄은 인도의 핵실험 직후인 1998년 5월 28일과 30일에 도합 다섯 차례의 핵실험을 강행함으로써 핵보유국 대열에 올랐다.

국제핵정치의 복잡성을 감안한다면, 2004년 칸 박사의 고백, 거기에 대한 파키스탄 정부의 조치, 미국의 대응 등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진다. 칸 박사는 파키스탄 정부가 주도한 조사에 응하면서 2004년 2월 4일 핵유출 사실을 고백했다. 파키스탄 정부는 ‘정부와 무관한 칸 박사 개인차원의 핵기술 유출’로 정의했고, 2월 9일 칸 박사를 사면했다. 그러나 2003년 이라크 전쟁을 앞두고 파키스탄이 미국에 협력하면서부터 이러한 사태진전은 예고되어 있었다고도 할 수 있다. 미국으로서는 후세인 제거 및 이슬람 테러세력 제압을 위해 파키스탄의 협력이 필수적이었고, 자국의 핵보유를 기정사실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파키스탄으로서도 미국과의 전략적 제휴를 절실하게 필요로 했을 것이다. 한편, 또 다른 중대한 위협인 북핵문제에 있어 북한의 농축 프로그램을 규명하려는 미국의 노력은 농축 프로그램의 존재 자체를 부인하는 북한에 의해 가로 막힌 상태였다. 따라서 칸 박사의 ‘대북 및 대이란 농축기술 유출’ 증언은 미국의 이러한 노력에 돌파구를 마련해주기 위한 파키스탄의 대미협력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 파키스탄 정부로서는 그러한 협력이 부메랑이 되어 돌아와서는 안 된다는 보장을 원했을 것이며, 그렇다면 미국이 ‘파키스탄 정부와 무관한 칸 박사 개인차원의 일’이라는 이슬라마바드의 설명을 그대로 수용한 것도 이해할만한 대목이 된다. 여기에 더하여 양국간 전략적 협력에 연결고리 역할을 해준 칸 박사 또한 사면을 통해 보상을 받은 것으로 볼 수 있다. 결국, 칸 박사의 핵증언과 사면 등은 미국, 파키스탄 정부, 칸 박사 등 3자간의 전략적 이해를 대변하는 사건인 셈이다.

이란 핵개발에 있어서의 칸 박사의 역할을 확인하는 것이 핵확산을 부추기는 국제 네트워크를 규명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그럼에도, 복잡하게 전개되는 국제핵정치의 흐름들은 이러한 규명노력에 제약을 가하는 효과를 나타낼 수 있으며, 거기에는 미국 스스로 책임져야 할 부분도 많다. 무엇보다도 파키스탄이 핵보유국이 되고 이 나라 저 나라에 핵기술을 판매하여 핵확산을 촉발하게 된 데에는 파키스탄에 대해서는 무력하기만 했던 미국의 비확산 정책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이스라엘의 경우도 그렇지만 파키스탄의 핵보유는 미국이 더 우선되는 국익이 걸려있을 때에는 특정국의 핵보유를 허용하면서 그 국익을 추구했음을 의미한다. 즉, 이중잣대를 운용하고 있음을 드러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렇듯 이란 핵문제의 향방이 전문가들의 관심을 유발할 이유는 많다.

⑤ 북한 핵문제 해결에 대한 영향

다섯째, 이란 핵문제의 향방은 북한 핵문제에도 다양한 방법으로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란 핵문제의 향방은 북핵 해결을 위한 모델이 될 수도 있고 나쁜 선례가 될 수도 있다. 우선, 이란 핵문제가 협상을 통해 진화되고 핵개발의 진상이 밝혀진다면 이 과정에서 파키스탄이 이란에 제공한 농축시설과 기술에 대한 규명이 수반될 수 있는데, 이는 파키스탄이 북한에 제공한 농축시설이나 기술에 대한 추가적 정보를 얻을 수 있음을 의미할 수 있다. 이를 계기로 ‘농축 삼각형’과 ‘미사일 삼각형’의 진상을 파헤칠 수 있다면 인류의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노력에 있어 하나의 쾌거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둘째, 이란 핵문제의 조기 해결은 북핵을 다루는 미국의 자세에 대해 양 갈래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으로 하여금 더욱 홀가분하게 북한을 상대할 수 있게 함으로써 더욱 강경한 대북자세를 부추길 수도 있지만, 홀로 남는 북한이 버티기를 포기할 수 있다는 판단 하에 좀 더 인내하는 자세로 북한을 대할 수도 있다. 이는 부시 대통령과 북핵문제를 다루는 정책결정자들의 판단에 달린 일이다.

셋째, 이란의 핵문제가 더욱 악화되고 이란이 핵개발을 고수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을 경우에도 양 갈래의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미국의 힘이 여러 지역으로 분산되는 상황을 의미하게 때문에 북한에 대한 강경자세를 누그러뜨리는 역할을 할 수도 있지만, 부시 행정부에게 ‘쌍둥이 위협’을 더욱 부각시켜 강박감을 느끼게 할 수 있으며, 미국의 대북 강경자세를 더욱 부추길 수도 있다. 이와 관련해서는 20월 10일 북한의 핵보유 성명 이후 미국이 취하고 있는 태도를 면밀히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현재 ‘외교노력의 지속’을 천명하면서 인내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나 이것을 유화적인 대북정책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부시 대통령은 중국의 협력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준비 중인 대북 강경책 실행을 위한 명분을 축적하기 위해, 그리고 스스로 너무 일방적이라는 이미를 벗고 평화적 이미지를 구축하기 위해 북한에게 좀 더 기회를 주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북한이 핵보유 정책을 바꾸지 않는 한 조만간 미국주도의 대북 제재가 시작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 경우 반확산안보구상(PSI), 유엔안보리 회부 등이 우선적으로 고려될 것이다. 북한을 출입하는 선박들을 정선, 검색, 압류하는 조치를 의미하는 PSI는 일종의 해양차단작전(MIO)으로써 유엔안보리 회부보다 더 강력한 압박조치이나, 유엔안보리 회부에는 상임이사국들의 찬성이 필요하므로 미국은 중국, 러시아 등의 찬성이 확보되지 않는 경우 PSI를 우선적으로 고려할 수 있다. 이란 핵협상의 결렬이 한반도에서의 긴장국면을 재촉하는 변수가 될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물론, 현재로서 미국이 대북 군사행동을 심각하게 고려할 가능성은 희박하다. RAND 연구소 등에서 대북 군사공격을 위한 각종 시나리오를 연구하고 있으나, 유엔안보리 회부, PSI 등 여타 방법들을 소진하지 않은 상태에서 곧 바로 무력을 행사할 가능성은 희박하며, 중국의 태도도 중요한 변수이다. 미국이 군사공격을 위협할 가능성은 있지만, 군사공격을 위협하는 것과 감행하는 것은 전혀 다른 선택이다. 그럼에도, 만약 미국이 이란 핵문제의 좌초로 강박감을 느끼고 군사적 대처를 결심한다면, 그 첫 대상은 이란이 아닌 북한이 될 가능성이 높다. 2005년 재취임과 함께 ‘자유의 확산’을 중요한 대외정책의 목표로 내세운 부시 행정부가 북한에 앞서 이란을 공격한다면 “미국은 최악의 반인권 국가인 북한을 제쳐두고 석유를 탐하여 이란을 침공했다”는 비난을 자초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Ⅴ. 맺는 글

이란의 핵개발 정도는 북한에 비해 미진하고 폭탄제조에는 이르지 못한 상태인 것이 분명하나, 사태가 이란의 핵무기 보유가 기정사실로 굳어지는 방향으로 진전된다면 그것이 의미할 수 있는 국제정치적 함의는 다양하고 막중하다. 전문가들이 현재 진행 중인 이란-EU간의 협상을 주목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협상은 EU가 이란에게 반대급부를 제공하면서 이란의 핵프로그램을 전면 폐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지만 전망이 순탄치만은 않다. 중동의 강자로 부상한 이란의 오랜 핵야망을 포기시키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이란이 자국에 대한 무력공격이나 경제적 외교적 제제가 용이하지 않다고 판단할 소지가 높다는 점도 협상의 걸림돌이다. 여기에 더하여 종교지도자 등 이란내 강경파들이 부추겨온 핵보유 여론과 반서방 정서는 협상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란-EU간 협상이 실패로 끝난다면 미국은 북한 핵문제와 함께 이를 사활적 국익을 위협하는 ‘쌍둥이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며, 부시 대통령으로서도 정치적 성패가 걸린 일로 보고 강경한 대응을 하기가 쉽다. 이란의 핵보유는 중동평화의 중대한 걸림돌로 부상할 것이 분명하며, 미국의 대중동 정책이나 이스라엘의 생존정책은 중대한 시련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반대로, 이란 핵문제가 협상을 통해 해결되고 철저한 규명이 이루어진다면 그 동안 핵확산을 부추겨온 국제 네트워크를 파악하고 대처하는데 크게 기여하게 되며, 특히 핵확산의 주역으로 활약했던 파키스탄의 역할이 밝혀지고 파키스탄-이란-북한을 잇는 ‘농축 삼각형’과 북한-이란-파키스탄을 연결하는 ‘미사일 삼각형’의 내막이 파헤쳐진다면, 인류의 핵무기비확산 노력에 하나의 쾌거로 기록될 것이다. 이란의 핵문제는 북한 핵문제와도 무관하지 않다. 이란 핵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되느냐에 따라 미국의 대북자세는 더 강경해질 수 있으며, 이란 핵협상의 결렬이 미국의 강박감을 유발하여 북한을 심하게 몰아붙이는 사태로 연결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이렇듯 막중한 국제정치적 함의와 협상의 난관들을 종합할 때, 이란의 핵문제는 단순한 밀어붙이기 식으로 접근해서 될 문제가 아니다. 이란 스스로가 표현하듯 2004년 11월 14일 이란의 핵동결 합의는 ‘자발적이고 구속력이 없는 신뢰구축 합의(voluntary, non-legally binding confidence building agreement)’이기에, 이란은 상당한 자주적 공간을 가지고 협상에 임하고 있다. 인구, 국토, 석유생산량, 경제적 영향력 등을 감안할 때 중동에서의 이란의 비중은 만만하지 않으며, ‘통제와 거부’만으로 다루기에는 이란은 이미 너무 큰 나라이다. 미국의 입장도 쉽지 않다. 이미 이라크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는 마당에 또 다시 중동의 강자인 이란과 군사적 충돌을 감행할 처지가 아니며, 이란이 북한과 같은 인권부재의 국가는 아니기 때문에 그럴 명분도 부족하다. 2005년 2월 27일 러시아가 이란에 핵연료 공급을 약속하는 협력협정에 서명하면서부터 미국과 러시아간의 관계도 다시 경색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러시아에 이란과의 원전건설 협력을 중단하라고 요구해왔지만 푸친 대통령은 사용후핵연료를 러시아에 반환하게 되어 있으므로 문제가 없다는 자세로 일관했었다.

따라서, 적어도 당분간은 미국이 직접 나서 이란과 부딪치기보다는 이란-EU 협상이 타결되도록 측면에서 지원하면서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이스라엘의 극한적 대응을 자제시키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란에 관한 미국과 EU 및 미국과 IAEA 간의 입장 차이를 조정하고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일도 시급하다. 향후 대량살상무기의 비확산을 위해 두 세력간의 협력은 필수적이며, 유럽기업들의 무분별한 핵수출 활동이 핵확산을 부추기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온 것에서 보듯 유럽 스스로도 핵확산 문제에 책임을 지고 있다. 이렇듯 국제사회가 이란 핵문제를 둘러싼 협상을 주시해야 할 이유는 많다.

북핵문제에 시선을 집중시켜온 한국인들에게 있어 다른 지역의 핵문제는 생소할 수 있다. 하지만, 이란의 핵문제 역시 세계 비확산체제를 뒤흔들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또 하나의 핵문제라는 점에서 관심을 가져야 하며, 이란 핵문제의 해결과정이 한반도 핵문제의 해결과정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끝)

부록: 이란 핵문제 일지

1968: NPT 가입
1970년대: 팔레비, 핵에너지/핵무기 프로그램 추진
1979: 팔레비 축출로 핵무기 프로그램 중단
1984: 이란-이라크 전쟁 중 핵무기 프로그램 재가동
1989: 이란-러시아 핵기술협력협정 체결
1992: 이란-러시아 Bushehr 원전 건설협약 체결
1992: 카자흐스탄으로부터 고농축 우라늄(HEU) 구입 시도,
이란-러시아 원심분리기 구입계약 체결
⇨ 미 압력으로 취소(1994)
2000: Lashkar Ab’ad 레이저농축시설(pilot급) 완공
2002년 중반: 망명 반정부세력(NCRI: National Council of
Resistance of Iran)의 핵개발 폭로 ⇨ 이란핵 국제이슈 부상
2002. 9 : IAEA 조사 시작
2003.2 : 하타미 이란 대통령 발표: ‘Bushehr 원전 핵연료 사이클 통제 권 및 핵연료 국산화 능력 확보,’ ‘폐연료봉 러시아 회수 반대,’ ‘우라늄 광산 개발,’ ‘농축시설/핵연료 가공공장 건설,’ ‘우라늄 변 환공장(Yellow Cake➝이산화 우라늄) 설립 계획’ 등 발표
2003. 9: IAEA 결의문, 모든 농축활동(원심분리기 부품 수입 및 제조, 원심분리기 조립 및 실험, UF6 생산 등 )중단 요구➪ 미, UN 안 보리 회부 경고. 영불독 대이란 설득 착수
2003. 10. 21: EU(영불독) 외상 이란방문 및 협상➪이란 핵포기 발표 “IAEA 조사 수용, 농/재 포기, 추가부속서 서명” 등 약속 ➪ 이 후 농축부품 생산 및 농축시설 조립 지속
2003. 11. 10: IAEA 사찰단 보고서 ‘20년 이상 미보고 핵활동’ 발표
2003. 12.: 이란 추가의정서(Additional Protocol) 서명
2004. 2. : 이란, 농축부품 생산 및 농축시설 조립 중단 약속
2004. 3. : IAEA 결의문 농축 trace 답변 촉구
2004. 4. 6 : ElBaradei IAEA 사무총장 이란 방문, Action Plan(IAEA 조사 및 자료제공) 합의
2004. 4. : 미국, 대이란 WMD 관련 물품 수출 혐의로 15개 외국사 제 제(2년간 미정부와 거래 중단)
2004. 6. : IAEA 결의문: 약속이행 촉구. 농축부품 생산 및 조립 중단, 불화우라늄 생산중단, 중수로 건설 포기 등 촉구
2004. 11. 14: 이란, ‘모든 농축활동 동결’ 합의
2004. 11. 29: IAEA, 이란의 농축중단 합의를 환영하는 결의문 채택
➪ 이란-EU간 핵협상 시작
2005. 2. 9: 콜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장관, “이란이 EU의 제안을 받아들 이지 않으면 유엔안보리 회부문제를 논의할 것”이라고 발언. 또한, “어느 누구도 이란에게 할말을 분명하게 하지 않았다”면서 EU의 유약한 협상태도를 비난(유럽순방 중 기자회견)
2005. 2. 10: 하티미 이란 대통령, “이 땅을 밟는 침략자들에게 불타는 지옥의 맛을 보여줄 것” “이란 과학자들이 각고의 노력 끝에 독자 적인 핵기술을 개발했으며, 다른 나라의 불법적인 요구로 이를 중 단하지 않을 것” (이슬람혁명 기념식 연설)
2005. 2. 23: 카말 카라지 이란 외무장관, “어느 누구도 이란의 우라늄 농축활동을 막을 수 없다”(국영 뉴스통신 NRNA)
2005. 2. 23: 하타미 이란 대통령, “미국이 침략을 선택하면 이란이 치 르는 것보다 훨씬 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각료회의 후 기자회견)
2005. 2. 27: 러시아와 이란, 대이란 핵연료 공급을 골자로 하는 부세르 원전 건설 관련 3개 협력협정에 서명

▲ 필자 김태우(atomkim@kida.re.ke)

영남대, 한국외대 통역대학원
뉴욕주립대(SUNY Buffalo) 정치학 박사
한국국방연구원 책임연구위원
저서에 「미국의 핵전략 우리도 알아야 한다」외 다수

<논문 요약>

미국이 유럽연합(EU)과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에 대해 너무 유화적이라는 불만을 표출하는 중에 2004년 11월 EU는 이란의 핵포기를 끌어내기 위한 협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전망은 밝지 않다. 2003년 10월 ‘농축활동 중단 및 핵투명성 보장’을 약속한 이후 번번이 약속을 어겨온 이란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군사적 야심을 품고 핵개발을 강행해온 시설을 건설하고 농축실험을 해온 이란이 핵미련을 떨쳐버리기는 쉽지 않다. 산유국이자 중동 최대의 국가인 이란에 대한 군사제제가 쉽지 않다는 점, 이란의 종교 지도자들이 반미정서를 부추기면서 핵무장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 부세르 원전 등 이란이 러시아와의 협력으로 건설 중인 핵시설이 러시아에 있어 포기할 수 없는 상업적 이익이라는 점 등 여타 장애물도 많다. 이란 핵문제가 가지는 국제정치적 함의도 막중하다. 협상을 통해 이란핵 문제가 해결된다면, 국제적 핵확산 네트워크를 규명하는데 전기를 맞이할 수 있으며, 한국이 관심을 가지는 ‘농축 삼각형’과 ‘미사일 삼각형’의 진상을 밝히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반대로 이란이 끝내 핵보유를 강행한다면 미국은 북핵과 더불어 이를 ‘사활적 국익을 위협하는 쌍둥이 위협’으로 간주할 것이다. 이란핵은 중동 평화에도 중대한 걸림돌로 등장할 것이며, 북핵 문제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