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유족들도 똑같이 울고 있다

오늘(26일)은 천안함 폭침 사건 발발 7주기가 되는 날이다. 7년 전 이날 북한의 기습적인 어뢰 공격에 의해 꽃다운 나이의 우리 해군 장병 46명이 희생됐다. 매년 이맘 때 쯤 우리는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천안함 46 용사들을 추념하며 안보의식을 다져왔다. 그러나 올해에는 이들의 희생정신을 기리는 분위기가 세월호 인양 이슈에 묻혀 잊혀진 듯하다.

지난 3월 24일 충남 천안시 태조산 공원 천안함 추모비에서는 천안함 7주기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 행사에서 구본영 천안시장과 4급 이상 간부공무원, 시민, 기관 단체장 등 100여 명은 천안함 46명 용사들에 대한 헌화, 묵념, 분향 등의 순서로 숭고한 애국 용사들의 충절을 기렸다. 공식 행사는 그뿐이었다.

국민들의 시선과 관심은 온통 팽목항에 집중됐다. 2014년 4월 16일에 침몰한 세월호가 지난 3월 23일 1072일 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3년 여 만에 세월호를 인양할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과 기대에 최근 탑뉴스는 단연 세월호가 되고 있다. 세월호 인양 현장에는 희생된 안산 단원고 학생들 가운데 시신이 미수습된 9명의 희생자 유가족들이 안타깝게 인양 과정을 지켜보는 모습도 언론에 등장하여 보는 이들의 코끝을 찡하게 했다. 하늘도 성공적인 인양을 기원이라도 하듯 이날 원주 하늘엔 세월호 리본 모양의 구름이 나타나 관심이 집중되기도 했다. 주말인 25일에는 스물한 번째 촛불집회가 열려 세월호 침몰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던 사랑하는 아들, 딸들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을 어디에 비할까. 그리고 1070 여 일의 간절한 기다림 끝에 시신만이라도 회수할 수 있으리라는 실낱같은 기대감을 무엇에 견줄까. 두 아이를 키우는 필자의 심정도 아려왔다.

그러나 사람의 생명엔 귀천이 없다. 3년 전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학생들이 안타깝다면 7년 전 천안함 폭침사고로 희생된 장병들의 목숨도 마찬가지다. 세월호 사고로 자녀를 잃은 부모의 심정이 형용할 수 없는 슬픔과 절망이라면 천안함 폭침으로 아들을 잃은 유족들의 심정도 다를 바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엔 왜 이들의 희생을 똑같이 추모하지 않는 것일까.

천안함이 폭침된 지 7년이 지났고 국제합동조사단의 조사 결과까지 나왔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엔 북한의 소행이라는 점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세월호 사건은 업계의 도덕적 타락으로 발생한 참사였지만 일부 사람들은 그것을 어처구니없게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최종 책임으로 몰아가 정권타도의 호재로 활용했다. 그들은 사건의 본질을 자신들이 미리 정해놓은 프레임에 맞춰 규정하고 그것을 대중들에게 확산시키며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달성하려하고 있다. 예컨대 25일에 열린 21차 촛불집회에서 주최 측은 세월호 진상규명을 요구하면서 박근혜 전 대통령을 구속하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그 결과 천안함 폭침으로 인한 46명 장병들의 희생은 그 의미가 절하되고 세월호 침몰로 생명을 잃은 학생들의 희생만 부각되고 있다. 천안함 장병 유족들의 아픔은 도외시되고 세월호 희생자 유족들의 슬픔과 절망은 범국민적 애도로 확산되고 있다. 불순한 의도를 지닌 이들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초유의 사태에 세월호 관련 전 국민의 슬픔과 애도를 중첩시켜 시너지 효과를 얻음으로써 민감한 국면의 주도권을 계속 이어가려는 의도를 지닌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정치권의 움직임도 개탄스럽다. 세월호 인양이 시작된 날 각 정당은 두 번 다시 이런 참사가 되풀이되지 않아야 한다는 취지의 성명을 일제히 발표했다. 그러나 7주기를 맞는 천안함 관련 교훈이나 안보에 관한 경각심을 일깨우는 얘기는 없었다. 다만 바른정당 소속 의원들이 20일부터 26일까지 천안함 추모 주간으로 정하고 희생장병들을 기리는 ‘천안함 기억 배지’를 착용하고 지난 24일 천안함 유족 간담회 등의 행사를 열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마저도 대선 국면에서 안보에 대한 선명성을 강조함으로써 보수정당의 이미지를 각인시키려는 일회성 이벤트라고 폄하하는 사람들도 있다. 

정치적 목적이 인지상정보다 앞서는 것일 순 없다. 천안함 폭침으로 희생된 장병들이나 세월호 침몰로 부모 곁을 떠난 학생들은 모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생명을 빼앗겼으며,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유족들의 슬픔과 고통은 누구도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사람들의 보편적인 인정을 정치적 목적 때문에 차별적으로 대한다면 그것은 결코 진보나 혁신을 추구하는 사람들의 자세가 아닐 것이다. 정치적 목적 때문에 천안함 폭침 사건의 의미와 안보의 소중함에 관해서는 묵살하고 세월호 침몰 사건을 부활시켜 유족들의 아픔을 이용하는 게 진보정치일 순 없다. 세월호 유가족들처럼 천안함 유족들도 똑같이 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