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핵 정국에서의 외교안보 공백을 우려한다

우리 속담에 ‘쥐는 잡되 독은 깨뜨리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조금 더 나가게 되면 빈대 한 마리 잡으려다 초가삼간 불태울 수도 있다. 외교안보의 사령탑인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당한 현재 우리의 처지가 이렇듯 위태로울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지난 9일 국회에서는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를 가결했다. 대통령의 모든 직무와 권한이 정지됐고,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 결과가 나올 때까지 황교안 국무총리가 대통령 권한을 대행하게 됐다. 그러나 현 정부에 대한 탄핵 주도 세력들의 총체적 부정 인식으로 인해 황 총리도 대통령 권한을 온전하게 대행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산적한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커다란 공백이 심히 우려된다.

우리가 맞고 있는 가장 중요한 외교안보 분야의 쟁점은 주변국 정세변화다.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Donald Trump)가 당선되면서 새로운 한반도 정책을 예고하고 있고, 미중 관계는 갈수록 험악해지고 있다. 중국은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도 성실히 동참하려는 의지를 보여주지 않고 있으며, 연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철회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을 반대하는 데에만 열을 올리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더욱 밀착시키려는 움직임까지 보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정부는 외교안보의 구심점을 잃은 채 헌정 위기를 맞고 있다.       

가장 먼저 정상외교의 마비 사태가 심히 우려된다. 오는 19, 20일 열릴 예정이던 한일중 3국 정상회의는 사실상 무산됐다. 혼란한 국내정치 상황을 이용해 주한미군 사드배치를 철회시키라는 압력을 전방위적으로 가하고 있는 중국에 대해서도 우리 정부는 이렇다 할 외교적 외교력을 집중시키지 못하고 있다.

북한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김정은은 최순실 게이트가 본격 쟁점화됐던 지난 11월부터 연이어 군부대를 방문하며 긴장을 고조시켜 왔다. 박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다음날인 10일에는 김정은이 인민군 제525군부대(총참모부 작전국) 직속 특수작전대대 전투원들의 청와대 타격훈련을 참관하기도 했다. 이 훈련은 정부 요인의 암살 및 납치를 목적으로 하고 있었다. 당시 김정은은 “특수작전대대는 “청와대와 괴뢰정부, 군부요직에 틀고앉아 천추에 용서 못 할 만고대역죄를 저지르고 있는 인간추물들을 제거해버리는 것을 기본전투 임무로 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빅터 차(Victor Cha) 한국석좌가 거듭 경고했듯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은 항상 열려 있으며 북한 당국은 그 시기를 재고 있을 따름이다.

북한의 도발 가능성에 관한 황 총리의 관심도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를 차지했다. 그는 대통령 권한 대행을 부여받은 직후인 지난 10일 주요 국무위원 간담회를 열고 “전 군(軍)의 경계태세 강화를 통해 북한의 도발에 사전 대비하고, 사이버 심리전 등 분열을 조장하는 행위에도 적극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 상황에서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이 국가안보”라는 언급도 빼놓지 않았다.

정작 중요한 건 황 총리가 실제로 대통령의 권한을 온전히 행사할 수 있느냐의 여부다. 이 점은 우리가 맞고 있는 총체적 외교안보의 도전을 현명하게 극복해 나갈 수 있느냐의 물음과 직결된다. 하지만 현 국면에서 황 총리가 행사할 수 있는 외교안보 분야에서의 적극적인 대응책을 마련하고 그것을 관철시킬 수 있는 권한은 극히 제한적일 것 같다. 야권의 정치적 견제 때문이다. 황 총리가 외교·안보·민생·경제 현안을 적극 챙기며 권한대행으로서의 보폭을 넓히자 지난 13일 더불어민주당의 우상호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 흉내를 내며 폼 잡지 말라고 원색적으로 경고했다. 야권 정치인들은 황교안 총리가 현상을 관리하는 데에만 치중하고 권한을 적극 행사하여 월권하지 말라는 경고도 덧붙였다. 이런 상황에서 황 총리가 외교안보의 사령탑 대행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외교안보의 공백상황은 박 대통령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탄핵심판이 결정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아니, 문제는 그 이후에 더 심각하게 불거질 수 있다.

대통령 탄핵이 확정되고 조기 대선이 치러져 현 상황을 주도하고 있는 야권이 정권을 탈환하는 경우, 남북관계는 북한에게 더 없이 좋은 환경으로 흘러갈 것이다. 9년 여 북한을 옥죄던 우리 대북정책이 수정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신임정부에선 포용정책을 부활시킬 것이고, 북한은 위장평화공세를 앞세워 남북관계의 주도권을 챙길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비관적인 남북관계 시나리오가 현실화한다면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우리 정부는 미국 트럼프 정부의 대북강경 기조와도 갈등을 노정할 것이고, 심한 경우 대북정책을 둘러싸고 한미 간에 충돌이 발생할 수도 있다. 가뜩이나 미국은 자국 이기주의에 입각한 대북정책을 구사할 터인데 당사자인 우리 정부가 북한의 위장평화공세에 또 다시 말려들게 되면 트럼프는 한국에서 손을 털려 할 수도 있다. 중국 견제를 위한 지역 동맹국으로 일본과 호주, 뉴질랜드 등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면 노무현 정부 때의 험악했던 한미관계로 후퇴할 가능성도 배제하지 못한다. 국제사회 최강의 대북제재는 무색해질 것이고, 비틀거리던 북한은 기적적으로 다시 회생의 기회를 찾게 될 것이다.

이 같은 비관적 시나리오가 현실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 상황에 대한 엄중한 인식이 전제돼야 한다. 대통령이 사실상 궐위된 상황에서 정치권은 권한대행을 맡고 있는 황 총리의 국정운영 책임과 권한을 인정하고 위기수습에 초당적으로 협력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국민들도 분노와 좌절을 진정시키고 냉정하게 국가의 미래를 걱정할 때다. 정치권과 온 국민이 ‘배설의 정치’에만 매달려 대한민국의 미래를 팽개칠 수는 없지 않은가. 대한민국이라는 ‘독’을 깨뜨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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