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 북한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

9월 4일 북한인권법이 발효됐다. 지난 2005년 17대 국회에서 처음 발의된 지 11년 만의 쾌거다. 그러나 진통 끝에 첫발을 뗀 북한인권법은 앞으로도 넘어야 할 산이 많아 온전한 실행을 위해선 지속적인 관심과 응원이 필요하다.

북한인권법은 지난 11년간 갖은 산고(産苦)를 겪었다. 그렇게 된 데에는 한국 내 대북정책을 둘러싼 이견이 주된 요인으로 작용했다. 현 야당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며 북한인권법 제정에 반대했기 때문이다. 우여곡절 끝에 시행되는 북한인권법이 이 법의 목적인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와 증진에 기여(제1조)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주목되는 부분이 있다.

첫째, 정치적 독립성의 유지다. 지난 3월 북한인권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당시 이 법을 기초로 통일부에는 북한인권증진 자문위원회와 북한인권재단을 설치토록 했다. 북한인권재단의 이사진은 여야 추천 인사가 각 5명, 정부 추천 인사가 2명 등 총 12명으로 구성되는데, 이들이 대북정책과 관련하여 정치적 색깔을 분명히 한다면 북한인권법의 앞날은 많은 난관에 봉착할 수 있다. 특히 내년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대북정책이 화두에 오를 경우 각 당은 정치적 득실 계산에 북한인권법을 악용할 수도 있을 것이고, 정권의 향배에 따라 북한인권법의 제정 취지가 왜곡될 수 있다. 그러나 인권이라고 하는 것은 정치적 논란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인간이면 누구나 지니는 보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법이라고 해서 그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배제하려 한다면, 혹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이용하려 한다면 북한인권법은 방향성을 잃고 표류할 것이다.

둘째, 이 법이 적용대상으로 규정하고 있는 북한 주민의 범위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한인권법은 제3조에서 북한 주민을 ‘군사분계선 이북에 거주하며 이 지역에 직계가족-배우자-직장 등 생활의 근거를 두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정했다. 현재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삼은 것이다. 이 같은 북한 주민 규정에 따르면, 중국이나 제3국에 체류하고 있는 탈북민들은 북한인권법에 의해 보호받을 수 없게 된다. 그러나 대한민국 헌법에 따르면 북한 주민들도 엄연한 대한민국 국민이고 제3국을 유랑하는 탈북민도 그들이 제3국에 귀화하지 않은 이상 대한민국 국민이다. 따라서 북한인권법이 규정하고 있는 북한 주민에 대한 정의는 ‘군사분계선 이북에 거주하면서 이 지역에 포괄적 생활의 근거를 두고 있거나 그와 같은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는 문구로 수정돼야 한다. 이에 덧붙여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법’의 보완을 통해 제3국에 체류 중인 탈북민에 대한 인권 개선책에도 실질적인 개선책이 요구된다. 현재 법안대로라면 제3국에 체류 중인 탈북민에 대한 지원도 야당 추천 북한인권재단 이사진의 반대가 있으면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셋째, 북한 주민에 대한 법의 규정이 수정, 확장된 개념을 채택한다면 제3국을 유랑하고 있는 탈북민에 대한 지원뿐 아니라 국내 탈북민의 처우 개선도 필요하다. 사실 국내에 이미 들어와 있는 탈북민들에 대한 지원은 향후 통일 과정에 있어서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북한 붕괴 시 주민들이 대안 체제로 대한민국을 선택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들로부터 대한민국에 관한 정보를 제공받아야 하는데, 북한 주민들의 눈높이에 맞춰 이 같은 역할을 담당해줄 사람은 탈북민밖에 없다. 그런데 국내 탈북민들이 대한민국으로부터 소외받고 외면당한다면 이들이 대한민국의 밝은 면을 북한 주민들에게 홍보해줄 리는 없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당연시 하고 있는 남북통일의 희망은 무산될 수도 있다. 따라서 광의의 북한 주민 개념을 수용하여 탈북민에 대한 배려와 처우 개선까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이다.    

넷째,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것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 의식을 계몽시킬 수 있는 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은 오웰(George Orwell)의 소설 ‘1984’에 나오는,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가 말살된 전체주의 사회와 똑같다. 북한 정권은 외부 세계로부터의 정보를 차단하여 북한 주민들로 하여금 자유나 인권의 개념조차 알지 못하도록 한 채 김 씨 일가를 신격화하고 주민들로부터 무한한 충성심을 끌어내 왔다. 북한 주민들이 정권의 세뇌에 사로잡혀 있는 이유는 자신들의 삶과 견줘볼 대상이 없었기 때문이다. 북한에서는 체제에 대한 비판은 고사하고 삶의 질을 비교할 준거점 자체가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북한인권법이 지향하는 바는 북한 주민들에게 진정한 자유의 의미와 민주주의의 가치를 일깨워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에게 자유와 인권의 의미를 전파하여 그들 스스로 폭력에 저항하고 자유로울 수 있도록 도와주는 데 북한인권법이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북한 주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며 ‘우리 민족’이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북한 당국은 북한인권법의 시행에 긴장하며 막말을 퍼부어대고 있다. 지난 9월 1일 북한 남조선인권대책협회는 대변인 담화에서 북한인권법에 대해 “닭알(계란)로 바위를 깨보려는 것과 같은 가소롭고 부질없는 망동”이라고 비난했다. 그러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말이 있듯이, 북한에서 벌어지고 있는 인권 탄압과 유린 실태는 반드시 정상으로 돌아올 것이다. 북한인권법의 시행은 북한의 ‘비정상의 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