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수용 訪中 후 본심 드러낸 中에 환상 버려야

중국의 본심이 드러났다. 2013년 2월 북한의 3차 핵실험과 그 해 12월 친중파였던 장성택의 처형 이후 북한에 대해 싸늘하게 변했던 중국의 태도가 ‘채찍’이 아니었음이 판명난 것이다. 올해 1월 북한의 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미사일 발사강행 이후 국제사회가 내놓은 유엔안보리 결의안 2270호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겠다던 중국의 공약(公約)은 공약(空約)이었음이 명확해지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 전략에도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판단된다.

지난달 말 북한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 리수용이 중국을 방문해 6월 1일 시진핑 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시진핑 주석이 리수용 일행을 맞는 태도는 2013년 5월 최룡해의 방중 때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이었다. 시 주석은 얼굴에 잔잔한 미소를 머금고 리수용 일행을 국빈 대우했으며, 중북 우호협력 관계를 고도로 중시한다면서 “북한과 함께 노력해 북중 관계를 수호하고 돈독히 하고, 발전시키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핵·경제 병진노선의 고수를 확인하는 리수용에게 시 주석은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3원칙(한반도 비핵화, 한반도 평화·안정, 대화·협상을 통한 문제 해결)은 불변이며 북한의 ‘핵·경제’ 병진 노선은 수용할 수 없다는 뜻을 우회적으로 언급하면서 원론적인 얘기만 꺼냈을 뿐이다.

시 주석과 리수용의 회담 내용 전문이 공개되지 않은 상황에서 중북 관계의 향방을 구체적으로 전망하는 것은 섣부른 작업일 수 있다. 피상적으로만 볼 땐 중국과 북한이 북핵 문제에 관해서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리고 있을 가능성도 크다. 다만, 리수용의 방중 직후 일어난 징후들을 볼 때 중국은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다시금 재확인하며, 향후 국제사회의 전방위 대북제재에 북한의 숨통을 틔워줄 개연성은 존재한다고 볼 수 있다.

중국은 오는 9일 중북 접경 지역인 중국 랴오닝(遼寧)성 단둥(丹東)에서 개막할 예정이던 첫 한중(韓中) 국제박람회를 돌연 취소했다. 겉으로는 소방안전 문제를 내세웠지만 리수용의 방중 이후 남북한에 관한 달라진 중국정부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중국은 리수용의 방중 이후 북한과의 관계복원을 모색하고 있으며, 한국과의 밀착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다는 정치적 고려 때문에 한중 국제박람회를 갑자기 취소한 것으로 관측된다.

뿐만 아니라 중국 정부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에 균열을 가져오게 할 수 있는 조치도 취했다. 중국이 미국의 독자적 대북 금융제재에 반기를 들고 나선 것이다. 지난 6월 1일 미 재무부는 처음으로 북한을 ‘주요 자금세탁 우려 대상국’으로 지정했다. 또한 미 재무부는 산하 금융범죄단속반을 통해 북한을 국제금융체제에서 더욱 고립시키기 위한 특별조치도 제안했다. 여기에는 미국 금융기관들이 북한 금융기관들을 위한 계좌를 개설 또는 유지하는 것을 금지하고, 미국 계좌를 이용해 북한 금융기관들을 위한 거래를 진행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한 마디로 이번 미 재무부의 조치는 북한을 국제금융체제에서 완전히 고립시킨다는 조치로 2005년 김정일의 피를 얼어붙게 만든 BDA(방코델타아시아)은행식 제재보다 훨씬 강력한 금융 압박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런데 중국이 이 같은 미국 정부의 제재에 반대하고 나섰다. 표면적인 이유는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하게 되면 자국 금융기관들이 피해를 입게 될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하지만, 중국의 속내를 들여다보면 거기에는 보다 깊은 전략적 함의가 숨어 있다.

북한이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돼 국제금융체계에서 완전히 고립되는 경우, 북한 체제의 붕괴는 생각보다 빨라질 수 있다. 미국을 비롯한 대다수 국제사회의 제재뿐 아니라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아프리카 3개국 순방을 통해 이뤄낸 대북 압박, 남미의 핵심 우방국이던 쿠바의 미묘한 변화, 그리고 김정은의 ‘제2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스위스까지 국제제재에 동참키로 한 상황에서 국제 금융거래까지 완전히 차단되면 북한은 사실상 기능 마비 상태로 전락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북한 내부의 혼란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돼 결국 중국의 동북 3성으로 파급 효과가 전파될 것이다. 그 같은 상황은 중국의 국익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행위로 인식되기 때문에 중국은 미국 정부가 북한을 자금세탁 우려국으로 지정한 조치를 극구 반대한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그간 중국이 보여줬던 대북제재에 대한 동참은 국제사회의 인식과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고 할 수 있다.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목표가 북한의 비핵화 관철과 북한 당국의 잘못된 행위 교정에 있다면, 중국이 국제사회에 동참한 이유는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마지못해 국제사회의 대세에 따랐을 뿐이다. 중국 정부의 불변의 목표는 북한의 안정화에 있다. 지금까지 중국은 자신들의 의지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북한 당국을 길들이려는 차원에서 북한을 ‘훈육’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채찍이 아니었다. 중국은 단 한 번도 북한을 아프게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국제사회의 강도 높은 대북제재가 북한을 변화와 선택의 길로 내몰고 있는 중요한 시점에서 중국 정부의 이 같은 진심이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해 9월 박근혜 대통령은 미국, 일본 등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전승절 기념 열병식에 참석하면서 한중관계의 긴밀함을 과시했다. 일본과는 최악의 외교관계를 경험했고, 지금도 사정은 별반 나아진 게 없다. 한미관계도 겉으로 보기엔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밀월을 유지하고 있지만, 미국의 조야(朝野)에서는 중국에 밀착하려는 한국의 외교정책에 볼 멘 소리를 하는 인사들이 많았다고 한다.

한미일 삼각안보체제의 복원을 주문하는 전문가들도 상당하지만, 우리 정부는 미일보다 중국에 치우치면서 북한에 대한 영향력 행사를 기대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다. 그러나 중국의 진심이 하나 둘씩 나타나고 있는 현재, 자칫하다간 우리 정부는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는 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 뿐만 아니라 미국, 일본으로부터도 배제되어 동북아의 외톨이로 전락할 우려도 없지 않다. 한일관계가 갈등과 냉각 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한국과 중국이 밀착하는 상황에서 미국과 일본은 한국 대신 호주와 인도를 끌어들여 미-일-호주-인도의 4자간 안보협력의 틀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4년 미국의 대(對) 아시아 동맹전략에는 중요한 변화의 조짐이 감지됐다. 일본의 역내 안보역할이 강화되면서 미일 동맹을 기축으로 안보협력의 틀을 다자화하려는 양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특히 호주와 인도를 끌어들여 3자 또는 4자 안보협력을 꾀하려는 움직임이 주목됐다. 한국은 이 같은 아시아 안보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배제되는 듯한 분위기다. 중국이 본격적으로 북한을 다시 감싸 안고 한중 관계를 속도 조절하려 한다면 우리 정부의 대외정책은 표류하게 될 것이고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공조에도 누수가 불가피할 것이다. 물론 필자는 이 같은 불상사가 현실화되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그러나 안보는 만에 하나 있을지 모르는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다. 중국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한미동맹이라는 기본으로 돌아와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