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전 ‘왜 北인권 상관하냐’ 했던 南외교관 떠올리면…”



▲데일리NK와 국민통일방송이 공동기획한 <외국인 북한인권 활동가를 만나다>의 첫 번째 출연자 요안나 호사냑 (사)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사진=김혜진 인턴기자

“(10여 년 전) 북한인권 활동을 시작할 때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외교관을 만났었는데, 그는 ‘아무 관련 없는 너희가 왜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냐’며 비난만 했죠. 북한 외교관이 그런 말을 했다면 괜찮았을 텐데, 한국 외교관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충격이었어요.”

최근 데일리NK·국민통일방송이 공동 기획한 <외국인 북한인권 활동가를 만나다>에 출연한 요안나 호사냑(Joanna Hosaniak) (사)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은 북한과 연결고리가 깊은 사람이다. 폴란드 출신인 그는 1989년 폴란드의 공산주의 체제가 붕괴하기 전까지 자유를 누리지 못했다.  

요안나 부국장은 “폴란드인들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한참 후인데도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200만 명이 희생당한 아픔과, ‘자유와 인권’을 억압받았던 상처를 간직하고 있다”면서 “때문에 폴란드인들은 현재 유일한 공산주의 국가이자, 정치범 수용소 등에서 참혹한 인권유린이 자행되고 있는 북한에 관심이 많은 편”이라고 말했다.

북한 주민이 처한 참혹한 인권유린 상황에 공감하며 개선활동에 책임의식을 품고 폴란드에서 한국으로 건너왔지만, 이해할 수 없는 한 가지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폴란드인들보다도 직접적이고 북한과 가까운 한국인들이 정작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이 현저히 적다는 점이었다. 

요안나 부국장은 “당시 국내외에서 북한인권 활동을 시작하면서 겪은 비난과, 한국에 있는 여러 진보단체들이 북한의 인권문제를 부정하고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거짓말이라며 헐뜯는 모습 등 북한의 인권상황에 무관심한 한국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이어 그는 “그런데 2013년 COI가 설립되고 북한인권 보고서가 발표되면서, 국제사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점점 높아졌고, 한국의 북한인권에 대한 반응도 어느 정도 개선됐다”면서 “11년 만에 한국 국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 여러 단체들이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하는 것, 최근 한국 고등학생들과 함께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만 봐도 달라진 것을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끝으로 요안나 부국장은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것을 시작으로, 앞으로 한국에서도 국제사회만큼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지속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면서 “북한에서 희생당하고 있는 주민들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으로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요안나 호사냑 (사)북한인권시민연합 부국장 인터뷰 전문]

-폴란드 출신인데, 어떻게 처음 북한인권에 관심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게 됐나?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에서 한국어 문학을 전공했는데, 대학교 재학 중 국제인권단체 홈페이지에서 북한 정치범 수용소의 모습을 접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아우슈비츠 수용소(제2차 세계대전 때 존재하던 폴란드의 집단 학살수용소)에서 벌어졌던 끔찍한 반(反)인도적 범행이 아직까지 발생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었다. 당시 폴란드 사람들은 전쟁이 끝난 한참 후에도 이 같은 상처를 쉽게 극복할 수 없었는데, 북한 주민들 역시 인권유린을 당하면서 얼마나 힘들고 아플까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공산주의 체제를 경험한 탓에 이들의 상황을 더 공감할 수 있었고, 이 때문에 대학 졸업 후 북한인권 문제에 책임의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폴란드를 떠나 국내외에서 북한인권 관련 연구 및 캠페인 등에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했는데, 이러한 노력에도 당시 국제사회에서 북한인권 문제는 이슈가 되지 못했다. 그래서 유엔 인권총회가 열리는 스위스 제네바를 방문해 유엔이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안보리가 이를 조사할 수 있도록 촉구했다. 지속적인 노력이 받아들여져 결국 2013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설치로까지 이어지게 됐다.

-폴란드도 과거 공산주의체제였다가 1989년에 자유민주주의 체제로 전환이 됐다. 이런 점 때문에 북한인권문제가 더욱 남다르게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다. 어떤가?

공산주의체제를 직접 피부로 느껴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특별한 체제에 대해 잘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과거 폴란드도 공산국가였기 때문에 북한과 매우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학교에서는 잘못된 역사를 가르쳤고, 어린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공포의 상황을 감지할 수 있었다. 또한 북한의 배급체계와 비슷하게 사람들이 줄을 서서 밀가루를 1kg씩 받아가곤 했던 기억이 난다. 다만, 폴란드는 정보의 자유가 북한보다는 많았던 것 같다. 1995년도에 인터넷 보급이 활발해지면서 정보에 대해 어느 정도 자유로워진 수준이었다.

당시 북한도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비슷한 일이 벌어졌을 것이라고 예상했었다. 그러나 그건 잘못된 생각이었다. 북한 관련 자료를 찾아보며 ‘정보의 자유’가 전혀 없는 북한 상황을 그때서야 짐작할 수 있었다.

-현재 북한인권시민연합의 부국장으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나?

북한인권시민연합은 국내외에서 북한인권과 관련한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탈북민들과 함께 유엔에서 캠페인을 벌이기도 하고 국제회의를 통해 네트워크를 형성한다. 또한 중국에 있는 탈북민들의 강제송환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다른 나라에서 머물고 있는 탈북민들을 구출하는 활동 등도 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교육·진로 프로그램과 장학금 사업 등을 진행하고 있다.

단체에서 국제 활동을 위주로 했다. 2003년 유엔에서 북한인권결의안이 처음 발의됐을 때 많은 국가들이 이 결의안에 지지할 수 있게끔 활동을 시작했고, 그 후 2013년 유엔 북한인권조사위원회가 만들어지는데도 일조하게 됐다. 또한 최근 가장 중요한 문제인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지도부를 국제형사재판소(ICC)에 제소하는 것’에 대한 보고서가 나왔는데, 이를 국제사회가 잘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도울 예정이다.
 
-지난 10여 년간 북한인권 활동을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지금까지 이 일을 하면서 힘들 때도 굉장히 많았다. 특히 북한인권 보고서를 준비하면서 심각한 인권유린 경험이 있는 탈북민들, 특히 여성들을 인터뷰하면서 ‘더 이상 이 일을 못하겠다’는 생각도 종종 들었다. 그렇지만 우리 단체에 있는 탈북 청소년들이 힘이 많이 된다. 탈북 청소년들은 큰 경험(고통)을 다들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처음 낯선 땅에서 정착하는 과정에서 굉장히 힘들어하지만, 그것을 이겨내며 잃었던 웃음을 되찾아가는 모습을 볼 때, 더 열심히 활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실례로 며칠 전 경기도의 경마공원에서 푸드트럭 장사를 하고 있는 탈북민 친구를 만났는데, 15년간 혼자 한국에 정착하면서 어느덧 사장까지 됐다. 북한에서 꽃제비 생활을 하고 부모님을 잃는 고통을 겪었음에도 신기하게 한국에 와서 잘 살아가는 모습을 볼 때 자극이 된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해 정작 당사자인 한국의 관심은 국제사회만큼 높지 않은 거 같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그래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다는 생각이 든다. 처음 북한인권 활동을 시작할 때, 스위스 제네바에서 한국 외교관을 만났었는데 정말 힘들었다. 그들은 “외국인인 너희가 왜 이 일에 상관을 하냐”면서 비난만 했기 때문이다. 그런 비난을 북한 외교관에게 들었으면 괜찮았을 텐데 오히려 한국 외교관들에게 들으니까 충격이었다. 또한 한국에 여러 진보단체가 북한인권 문제를 부정하고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거짓말이라고 비난했는데, 그걸 보면서 어떤 이익을 위해서 그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COI보고서가 발표되면서 국내외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과 인식이 많이 달라졌다. 우선 한국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됐고, 다양한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북한인권에 대해 알리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고등학생들도 북한에 대한 관심이 굉장히 많아진 것 같다. 우리 단체를 직접 방문해 함께 프로젝트를 하고 싶어 한다.

-북한인권활동가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어떤가?

앞으로 북한의 상황이 개선된다면 북한에 가서 북한인권시민연합 평양지부를 세우고 그곳에서 인권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싶다. 또한 여동생·남동생인 탈북 청소년들과 함께 북한에서 머물며 그들이 남은 삶은 행복하게 살 수 있도록 돕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통일이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마지막으로 방송을 듣고 있을 북한 청취자들에게 한 마디 부탁드린다.

국제사회는 북한에서 고통 받으며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잊지 않고 있다. 그러니 희망을 가졌으면 한다. 북한인권 문제에 관심이 많은 외국인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