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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왔습니다

20개 이상 자격증 딴 든든한 아빠 “남보다 한 발 앞서야”

[탈북자 정착스토리 ⑭] "한국, 북한과 다르게 노력하면 길은 열려있어"
이상호 인턴기자  |  2017-11-09 09:55

국내 정착 탈북민 3만 명 시대. 이들은 한국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먼저 온 통일’이라는 사명감에 따른 이들의 노력은 향후 통일 한반도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남북 문화 이질화로 인해 여러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데일리NK와 국민통일방송은 취업, 창업, 학교진학 과정에서의 성공 사례와 실패한 경험이 있더라도 교훈을 줄 수 있는 사례를 발굴, 한국 및 해외 독자들에게 탈북민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김수현(2007년 입국·함경북도 무산) 씨는 전기기능장, 전기기사, 소방 설비기사 등 어렵다고 알려진 자격증을 20개 이상 취득했다. 취득한 자격증을 바탕으로 빌딩의 관리일과 학원에서 자격증 취득 강의를 하고 있다.

아직도 취득할 자격증이 많다고 말하는 김 씨. 현재 사랑하는 아내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9살 딸과 행복하게 살고 있다. 그러나 김 씨의 한국정착 역시 처음은 순조롭지 못했다. 

살기 위해 모든 것을 해야만 했던 시절

그가 북한에 있을 땐 1990년대로 고난의 행군 시절이었다. 모두가 먹고살기 힘든 시절, 그는 우연히 골동품 장사를 따라 중국으로 국경을 넘게 되고 그때를 기점으로 밀수업을 시작했다.

이십 대 초반의 나이로 밀수업을 다니며 집안 살림을 책임졌다. 어린 나이에 시작했지만, 장에 나가면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열심히 일했다.

중국을 제집처럼 왔다 갔다 할 정도로 밀수업은 익숙해졌지만 그만큼 얼굴이 알려지니 보위부 직원과 경찰에게 뇌물을 줘야만 했다. 벌이가 늘어도 크게 돈을 모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문제는 밀수업으로 인해 북한과 중국에 구속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었다. 결국 중국에서 발족까지 채워진 상태로 구속되는 상황을 겪고 나서야 끝내 탈북을 하기로 결심했다. 브로커 친구에게 부탁해 중국에서 아내와 만나 함께 한국으로 입국했다.

한국 생활, 또 다른 경쟁의 시작

밀수업을 해서 중국을 잘 알았기에 한국으로 오는 방법도 크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는 제3국을 통하지 않고 여객선을 타고 중국에서 한국으로 곧바로 왔다. 비교적 쉬운 한국 입국이었다.

또한 그는 이미 밀수업을 하면서 중국에서 한국 드라마와 영화를 많이 본지라 한국에 도착해서도 크게 놀라지 않았다. 그러나 문제는 하나원 교육이 끝나고 나오자 그가 할 수 있는 게 없었다는 것이다.

북한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의 충고로 그는 아내와 같이 컴퓨터 학원에 다녔다. 한국에서 살기 위해서는 컴퓨터는 필수라는 조언이었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반년동안 컴퓨터만을 배웠고, 파워포인트, 엑셀 등의 자격증을 따기 위해 무작정 열심히 공부했다.

그렇지만 돈을 안 벌수도 없었기에 그는 다시 한국에서 밀수업을 시작했다. 자격증 공부를 하면서 밀수업을 했고 중국을 오가며 일을 하던 중 단속을 당해 집행유예까지 선고받게 됐다. 그 뒤 그는 밀수업을 영영 그만두기로 했다.

경제력을 잃게 된 그는 더욱 예민해졌고 부부 싸움도 잦아졌다. 이대로 주저앉을 수만은 없다고 느낀 그는 학원을 다니며 공부도 하고 백화점 전기실에서 일도 했다. 교대 근무를 하며 일을 했지만, 월급은 130만 원 정도였다. 딸아이가 생긴 그에게는 생활을 유지하기 턱없이 부족한 금액이었다.

경쟁력을 갖추는 법밖에 없다

백화점에서 교대근무를 서면서 그는 법적으로 전기 변압기의 일정 용량 이상이면 자격증을 가져야만 관리할 수 있다는 점을 알게 됐다. 물론 변압기에 문제가 생기면 관리자가 책임져야 했지만 자격증이 있어야 다른 사람보다 더 경쟁력을 갖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전기기능사를 넘어 전기기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서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 시간이 나면 틈틈이 공부를 했고 일을 하면서 1년 반 만에 전기기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김 씨는 “한국 사람과 탈북민이 같이 면접을 봤을 때, 내가 면접관이라도 한국 사람을 뽑겠다”며 “다른 사람보다 나아 보이려면 자격증 하나라도 더 취득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에 만족하지 않고 미래를 위해 계속해서 노력 중이다. 현재 그의 꿈은 전기 기술사 자격증을 따는 것이다. 박사급으로 대우해주는 자격증이다 보니 쉽지 않지만, 포기하지 않고 계속 공부의 의지를 다지고 있다.

그는 북한 주민들에게 “대한민국의 생활이 순탄하다고 생각하지 말길 바란다”며 “그래도 북한과 다르게 이 사회는 자기가 노력하면 길은 열려 있으며 노력한 대가는 차려진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자신의 딸이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싶기에 최선을 다해 살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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