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보안원, 장애 가진 내게 ‘사는 게 공화국 망신’ 모욕줘”

북한에서 반(反)인도범죄가 벌어지고 있고, 북한 지도부에게 그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서울에 인권사무소를 설치해 북한의 인권 상황을 감시하고 피해자들의 증언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한국 정부도 북한인권기록센터를 만들어 북한 지도부에게 인권침해 책임을 물을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고 합니다. 국제사회와 한국이 왜 이런 조치를 취하고 있는지, 북한에서 인권유린을 당했던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보겠습니다.

오늘은 북한에서 15살에 불의의 사고로 다리와 손을 잃어 장애를 안고 살았던 지성호 씨를 만나, 북한 내 장애인 인권 실태에 대해 증언을 들어봅니다.

– 지성호 씨 안녕하세요. 본인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함경북도 회령시 학보탄광이라는 곳에서 살았습니다. 지도상으로 볼 때 제일 위쪽에 위치해 있는 곳입니다. 제가 살던 곳에서 15리(里, 약 6km) 정도 걸어 나오면 두만강을 만날 수도 있었어요. 2006년 4월엔 그 두만강을 넘었고, 같은 해 7월 대한민국에 입국했습니다.

– 지성호 씨는 북한에서 장애를 갖고 사셨는데요. 선천적인 건가요, 아니면 사고로 장애를 갖게 된 건가요?

북한에는 꽃제비들이 많잖아요? 먹고 살기 위해서 달리는 열차에 매달려 석탄이나 식량을 훔치는 아이들이 많은데, 저 역시 그런 일을 하다가 열차에서 떨어졌습니다. 화물열차들이 제 다리와 손을 짓밟고 지나가는 바람에 왼쪽 다리와 손을 잃게 됐죠.

– 안타깝습니다. 북한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어떤지 궁금한데요. 주민들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요?

안타깝게 여기기도 하지만, 일반적인 사회생활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죠. 당에 충성할 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여기기도 하고요.

– 아이가 선천적인 장애를 갖고 태어났을 경우, 그 아이를 키울 여력 안 되면 태어난 직후 방치하거나 의사를 통해 죽게 한다고도 하던데요. 사실입니까?

사실 그런 건 밖에 나와서 얘기할 만한 것도 못 됩니다. 아무리 북한이라도 그건 살인이니까요. 하지만 북한에서 암묵적으로 진행된다는 건 사실입니다. 특히 의사들이 그런 일을 돕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북한에서 장애인들에 대한 사회적 편견도 있나요? 혹은 사회적 배려가 있는지요?

제가 봤을 때 북한은 장애인에 대해 천대에 가까운 대우를 합니다. 사회가 발전하고 문명화될수록 장애인들에 대해서도 교육이 이뤄지고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줘야 하는데, 북한은 먹고 살 환경을 만들어주지도 않고 사회적인 교육도 해주지 않아요. 대한민국에선 상도덕 관념으로 볼 때 장애인을 천대해선 안 된다고들 알고 있잖아요? 장애인을 천대하는 모습이 적발되면 그것을 법적으로 제재하고 인권 보호를 해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북한에선 누가 장애인을 천대하는 모습을 봐도 문제시하지 않아요. 오히려 경찰관(보안원) 같이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야 할 사람들이 앞장서서 장애인을 천대한다든가 권력을 남용하려고 하죠.

– 장애인에 대한 물리적 폭행이 일어나기도 하나요?

네, 학대를 하기도 하죠. 특히 어린 애들은 장애인을 집단 구타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를 말릴 수 있는 사회적인 장치가 없어요. 그러니 장애인들은 그냥 수모를 당하고 살 수밖에 없죠. 물론 경제활동을 한다든가 돈을 갖고 있는 장애인들은 그나마 편견이나 수모에서 좀 나은 편이죠.

– 지성호 씨가 장애를 입게 됐을 때 몇 살이었나요?

제가 1982년생이거든요. 장애를 입게 된 게 1996년이었습니다. 한국 나이로 15살이었죠.

– 북한에선 장애인에 대해 정책적이나 경제적 지원을 해주지 않나요?

북한에서도 나름대로 사회보장제도라는 게 있기는 합니다. 장애를 입으면 중노동을 6시간으로 줄여주기도 하고요. 하지만 생각해보세요, 6시간을 일하는 것도 힘든 전신 장애인들도 있을 텐데 그들을 위한 지원은 없습니다. 특히 북한에선 탄광일을 굉장히 중요시 여기는데, 여기에도 배급이 제대로 가지 않는 상황에서 일도 못 하는 장애인들에게 배급이 가겠어요? 북한은 국제사회를 향해 ‘우리에겐 인권 문제가 없고 장애인도 행복한 나라’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주민들은 무슨 근거로 당국이 그런 말을 하는지 전혀 모릅니다.

제가 대한민국에 와서 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북한에 ‘장애자 보호법’이라는 게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법만 보면 정말 북한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처럼 보이더군요. 하지만 이는 그저 국제사회 보기에 창피하지 않기 위해 몇 가지 근거들을 명시해놓은 것이지, 북한 안에서 그 법이 실제 시행되는 건 아닙니다. 주민들이야 법을 잘 모르니,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조차 주장하지 못하죠.

– 북한에서 영예 군인이면 어느 정도 지원이 있지 않나요?

영예군인이라고 해도 그들에게 식량 지원이 되진 않아요. 그나마 지뢰나 열차 사고로 다리를 잃게 되면, 그들에게 의족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먼저 주긴 하죠. 하지만 먹고 살 수 있는 도움을 주지 않으니, 그들도 암담한 마음으로 무리지어 다니며 식량을 구하고는 합니다. 그들은 장사를 하기도 해요. 물동량을 마련해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열차에 싣고 다른 지역서 장사를 하는 것이죠. 그나마 북한 장애인들 중에서 가장 혜택을 보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하지만 말씀 드렸다시피 그들도 의족 외엔 지원이 없고, 그저 자구책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 지성호 씨는 불편한 몸을 이끌고 중국에 가셨다고 들었어요. 언제쯤 무슨 이유로 중국에 가신 건가요?

북한에서 석탄을 팔아 꽃제비 생활을 하려면, 특히 장애인으로 그런 삶을 살려면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2, 3kg 옥수수 사기가 힘들어요. 그런데 어느 날부터인지 꽃제비들이 하나 둘씩 중국에 다녀오는 게 아니겠어요? 다녀오면서 옥수수를 한 배낭씩 지고 오더군요. 그래서 ‘아, 저기에 가면 먹을 것을 구할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에 중국으로 갔습니다. 돌아올 땐 정말 몇 kg의 쌀을 배고 올 수 있었어요.

–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체포됐다고도 들었습니다. 무슨 일이었나요?

사실 중국에 갔을 땐 목발을 짚고 갔더니 중국 사람들도 가져가고 싶은 만큼 가져가라고 하더군요. 다만 몸이 불편하니 그렇게 많은 쌀을 가져오진 못했는데, 어쨌든 오랜만에 먹는 쌀이니 집에서 끓여먹으려 했죠. 그 순간 갑자기 경찰이 들이닥쳤어요. 체포돼 심한 구타를 당한 건 물론이고, 남은 쌀도 모두 빼앗겼습니다. 비법 월경을 해 구해온 쌀이라는 이유였죠.

– 체포돼 구타를 당하면서 ‘공화국을 망신시킨다’ ‘수령님 위신 깍아먹는다’ 라는 모욕도 많이 들으셨다면서요?

네, 그게 탈북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면 참 화가 나요. 사실 꽃제비 생활 할 때 석탄 훔치다 걸려서 매는 많이 맞아봤습니다. 하지만 장애인으로서 수치스러운 모욕을 들으면서 제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더군요. 내가 왜 장애인이 됐는가, 왜 중국으로 갈 수밖에 없었는가 하는 것들을 생각하니 문제의 중심이 결국 북한 체제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이건 나라도 아니구나, 하는 생각에 많이 서글펐어요.

특히 공화국을 망신시킨다는 둥의 이야기는 사실 장애인인 주제에 죽지 않고 살아서 망신을 시킨다는 뜻이었거든요. ‘너희들 같은 병신들이 죽어야 한다’ ‘아니면 조용히 엎드려 살아라’라는 게 경찰관들의 생각이었던 거예요. 우리를 지켜주기는커녕 모욕에 앞장서는 게 경찰들이었던 것이죠.

– 현재 의수와 의족을 하고 계신데, 북한에서도 의족과 의수를 하고 계셨나요?

북한에선 10년간 장애인으로 살았지만 의족과 의수는 생각할 수 없었어요. 평생 벌어도 의족과 의수를 할 돈을 마련할 수 없었죠. 그 때는 제 일생 최고의 소원이 의족과 의수를 하고 다시 한 번 세상을 걷는 것이었습니다. 대한민국에 와서야 그 꿈을 이룰 수 있었고, 다시 세상을 걷게 됐죠. 북한에선 계속 짝다리로 목발 짚고 다녔어요. 여름이나 겨울이나 항상요. 특히 겨울에 눈이 올 때면, 수제 목발이 미끄러져 넘어질 때가 많았는데요. 그럴 때면 고무 신발을 오려서 목발 바닥에 덴 뒤 다니기도 했습니다. 왼쪽 손 없는 건 끈으로 묶어서 고정시키고 오른쪽 손으로 목발을 들고 다녔고요. 그 상태로 석탄도 팔고 달리는 열차에서 22호 관리소에서 나온 옥수수도 훔치고 그랬습니다.

– 북한에서 장애를 갖고 생활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무엇이었나요?

우리 같은 장애인들에 대해 누가 관심 좀 가져줬으면 했어요. 물건을 훔치려 화물 열차에 올라탔다가 강 건너 중국 땅을 보면, 저기서 쌀 포대기가 날아와 떨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실하더라고요. 순간순간이 힘들었고 슬펐어요. 북한 체제 자체가 장애인들이 살 수 없는 곳이기도 했고요.

– 북한이 장애인 인권 개선을 위해 어떤 정책을 시행해야 한다고 보시나요?

최소한 생계는 유지할 수 있도록 기틀을 만들어줬으면 좋겠어요. 물론 다른 주민들도 식량 배급도 못 받고 살지만, 장애인들은 특히나 먹을 것 구하는 것도 힘들잖아요. 건강한 사람도 탈북하기 어려운데 장애인들이야 탈북은 쉽게 생각도 못할 것이고요. 누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이 참 많은데, 우선 북한 당국이 식량 배급부터 잘 해줬으면 합니다.

북한 당국은 장애인 차별 대우에 대한 국제사회 지적을 의식해 2003년 ‘장애자 보호법’을 채택했습니다. 그러나 장애인에 대한 그 어떤 의미 있는 국가적 배려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특히 팔다리가 멀쩡해도 먹고 살기 쉽지 않은 북한에서 장애는 곧 생존의 문제입니다.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더욱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장애인에 대한 차별에 앞장서고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장애자 보호법에서 규정한대로 장애인의 인격을 존중하고, 그의 사회·정치적 권리와 자유를 건강한 공민과 똑같이 보장해야 할 것입니다.

(본 방송 대담자인 지성호 씨는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 대표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