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의 사생아 김현, ‘정통성 문제’로 숙청 가능성

최근 김일성의 숨겨진 아들 김현이 2001년 사망했다는 보도가 나오면서 그의 사망 원인과 김일성-김정일 가(家)의 은밀한 사생활에 대한 궁금증이 다시한번 주목받고 있다.

김일성과 아주 많이 닮은 것으로 알려진 김현은 생전에 마약을 복용하고 방탕한 생활을 했으며, 최근 일부 보도에 따르면 2001년 처형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서는 김정일 외에 다른 사람이 주민들을 처형할 수 없다. 따라서 김현이 처형된 것이 확실하다면 김정일의 지시 또는 허가에 의한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른바 ‘곁가지’들을 철저히 외면하고 숙청해온 김정일의 소행으로 미뤄볼 때 김현의 처형은 소위 ‘정통성 문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북한 내부에서도 철저히 숨겨져 알 수 없었던 김현의 존재에 대해 기자는 한국에 입국해 이한영(본명 이일남, 김정일 첫 동거녀 성혜림의 조카)이 쓴 수기 ‘김정일 로열 패밀리’를 통해 비로소 알게 됐다.

이한영은 자신이 북한에서 직접 본 김현이 김일성의 숨겨진 아들임을 자세히 서술했다. 김현은 1971년에 김일성과 담당 간호사의 사이에 태어난 사생아(私生兒)다. 같은 해 5월 10일에는 성혜림도 김정일의 아들 김정남을 출산했다. 결국 환갑 나이인 김일성과 갓 서른 살에 접어든 아들이 동시에 ‘불륜’으로 아들을 얻은 것이다.

이한영의 수기에는 김현에 대해 김정일의 매제인 장성택이 ‘장현’이란 가명으로 자신의 호적에 올려 놓았다고 밝혔다. 김현은 1979년 2월 모스크바에서 자신과 동갑내기이자 조카가 되는 정남과 함께 지냈고, 그 해 9월부터 모스크바에서 공부했으며 김일성의 담당 간호사였던 그의 생모는 장현의 이모로 둔갑시켜 함께 지냈다고 밝혔다.

김현뿐 아니라 북한 주민들은 김정일의 부인이 성혜림, 김영숙, 고영희, 김옥 등이 있고 자식으로 김정남, 김설송, 김정철, 김정운, 김여정 등이 있다는 것에 대해서도 전혀 알지 못한다.

북한의 폐쇄정책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한국 사람들은 기자에게 ‘어떻게 그렇게도 모를 수가 있느냐’고 따져 묻을 수 있으나, 정말로 북한 사람들은 모른다.

북한이 김부자 사생활에 대해 철저히 정보 차단을 하고 있는 것은 김부자 우상화와 체제의 정통성이라는 이유 때문이다.

김일성, 김정일은 자신들을 신적인 존재로 부각시켜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훌륭하며 인품 면에서 누구도 따를 수 없는 고매한 인민적 풍모와 인격을 지닌 ‘불세출의 위대한 지도자’임을 부각시키기 위해서다.

그럼으로써 북한 주민들에게 ‘21세기의 태양 김일성’과 ‘인민의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에 대한 무조건적인 충성을 맹세하고 목숨까지 바칠 것을 요구한다. 만약 북한 주민들이 김부자의 부패하고 타락한 사생활을 안다면 지금껏 김정일이 쌓아올린 ‘김부자 신격화’ 누각은 순간에 무너져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김부자에 대해 인민들이 굶고 고생할 때 함께 생사고락을 나누는 ‘인민의 자애로운 어버이’로 부각시켜 주민들이 감히 머리를 들고 함부로 바라볼 수 없는 ‘숭배심’을 갖도록 선전, 교양하고 있다.

때문에 김정일은 자신과 아버지 김일성의 여자문제에 대해 철저한 비밀을 지키고 있으며, 만일 이같은 사실을 발설하는 경우에는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가고 만다.

‘조선인민군협주단’ 배우 출신의 탈북자 김영순 씨가 정치범수용소에 10년 가까이 갇혀 고생을 겪은 것도 친구인 성혜림이 김정일의 동거녀임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또, 김정일은 자신만이 김일성의 대를 잇는 정통성을 지녔다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 철저히 숙청작업을 단행하고 있다.

김정일이 권력의 자리에 올라서자 자신의 생모가 아닌 김성애와 그의 아들들인 김평일, 김영일을 ‘곁가지’로 규정했다. 이복동생 김평일은 줄곧 재외 대사를 지내며 철저히 외면하고 있다. 김영일도 독일주재 북한 대표부 참사관을 지내다 간암으로 사망했다.

이처럼 정통성을 주장하는 김정일이 수많은 불륜녀들과 그 사이에서 태어난 자식문제를 지금까지 숨기고 있지만 앞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의문스럽다.

김정일의 정식 부인이 누구인지도 일반 주민들이 모르는 것은 김정일이 아버지 김일성과 달리 외국수반들과의 접견이나 또 외국 방문시에도 절대로 부인을 동행하고 다닌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는 법적으로 본부인인 김영숙을 ‘거름 냄새’가 난다고 외면했던 것도 있지만, 자신에 관한 모든 것을 숨기기 좋아하는 김정일 스스로 어지러운 사생활이 세상에 알려지는 것을 꺼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김정일이 여자를 대동하고 다닌 것은 2000년대 초 인민무력부 4·25훈련소 지휘부 현지시찰시 함께 살고 있던 고영희를 데리고 나간 것이 처음이다.

당시는 김정일의 여자가 누구인지 군인들도 몰랐으나 그때 김정일이 방문했던 여성 통신 중대 정치지도원이 김정일과 고영희 간에 오고가는 대화와 행동거지를 보고 ‘어머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