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농장간부, 모내기 동원된 학생에 맡기고 시장에 나가기도”

진행 : 북한에선 해마다 5, 6월이면 모내기 전투가 벌어집니다. 이맘때쯤이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대부분의 주민이 생업이나 학업을 뒤로하고 동원되면, 뜨거운 햇볕 아래서 매일 같이 긴 시간 농사일을 해야 합니다. 오늘은 데일리NK 최송민 기자와 함께 북한 모내기 전투 풍경을 짚어보겠습니다.

1. 한국에서도 모내기철에 열심히 농삿일을 하지만, 모내기를 ‘전투’라고 부르진 않습니다. 아마 북한이 유일한 것 같은데요. 얼마나 힘들기에 모내기 전투라고 하나요?

일반적으로 전투라고 하면 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우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까? 북한과 같은 집단 체제에서는 주민 총동원, 총궐기 등을 운운하면서 툭하면 ‘전투’라는 말을 쓰는데, 이건 그만큼 주민들을 빠짐없이 동원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대체로 봄과 가을에 40일간의 ‘농촌지원 총동원 기간’을 설정해 두고, ‘모두 다 모내기 전투에로’ ‘가을 걷이 전투에로’ 등 구호를 외치게 하며 모든 주민들을 알곡 생산에 총동원시키는 것이죠.

2. 농기계라도 사용하면 그나마 덜 힘들 것 같은데, 주민들이 이런 기계들을 보장받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북한에서 농기계라고 하면 28마력 트랙터를 떠올리면 됩니다. 평양시 주변 일부 본보기 협동농장에선 모내기 기계가 간혹 도입되기도 하지만, 대다수 농장에선 그런 기계는 꿈도 꾸지 못하죠. 심지어 트랙터 기름이 없어 부림소(牛)로 논과 밭갈이를 하는가 하면, 더 심한 경우에는 사람이 가대기를 끌기도 합니다. 김매기 역시 수동식 제초기로 논밭에 들어가 밀어야 하는 등 북한 협동농장원들은 매우 원시적인 방법으로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3. 해마다 모내기 전투 때만 되면 공장 노동자들부터 학생, 가정주부 등 각계각층 주민이 모두 동원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하지만 이들은 각자 생업도 있고 학교도 가야 하지 않습니까? 모내기 전투 중에는 하루 일과가 어떻게 되는 건가요?

북한 당국이 왜 굳이 ‘농촌지원전투’라고 명명했겠습니까? 전투란 용어에 담겨 있는 뜻처럼, 그 어떤 사소한 이유와 구실도 통하지 않은 채 무조건 동원돼야 한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해마다 5월 중순부터 약 40일간은 모내기 전투기간으로, 9월 중순부터 40일간은 가을걷이 전투기간으로 불립니다. 이 시기엔 전국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들은 물론, 공장기업소 노동자들 모두가 지원노력으로 협동농장 현지에 나가야 합니다. 소학교(초등학교) 학생들과 가두 여성(전업주부)들도 주변 농장으로 매일 출퇴근을 해야 하고요. 때문에 이 시기 학생들은 학업을 일시 중지해야 하고, 공장에서는 몇몇 인원만 제외한 채 대다수 종업원들은 생산을 멈추고 모두 동원됩니다.

4. 그야말로 생업과 학업까지도 포기한 채 농사일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건데, 북한 당국이 모내기 전투에 동원된 주민들에게 보상을 해 줍니까?

보상이란 말조차 모릅니다. 수십 년간 농촌지원전투에 동원되다 보니, 그저 의무적인 사업으로 생각할 뿐입니다. 심지어 인민반장들과 동사무소 관리들은 이른 아침부터 마을 주변에서 ‘밥 먹는 인간들은 다 나오라’고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강박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가두여성들과 학생들은 집에서 도시락을 싸가지고 갈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주민들은 고된 노동에 시달리고도 고작 점심시간에 끓여주는 시금치나 시래기 된장국을 받아먹습니다.

5. 간부나 돈주들, 그리고 그 자녀들도 공정하게 동원이 되는지 궁금한데요. 뇌물을 주고 동원에서 빠지거나 하는 일도 많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농촌지원기간 동안에는 농장원들이 지원 나온 학생들을 마구 부려먹기 때문에 ‘지도농민’이라고도 불립니다. 농장의 주인인 협동농장원들이 정작 자기네는 일하지 않고 그저 벌판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학생들을 상대로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이죠. 심지어 농장을 학생들에게 맡겨둔 채 자기들은 시장에 나가 장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농촌지원전투 기간에 동원되면 그저 혹사만 당한다는 게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간부나 돈주들은 후방사업이라는 명목으로 돈과 식량, 부식물을 대준 뒤 그 대가로 자식들은 현장에 나가지 않도록 빼내기도 합니다.

– 이렇게 빠지게 되는 경우 ‘전민 모내기 전투에로’라는 김정은 지시를 어긴 셈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요. 이에 대해 처벌을 내린 경우는 없었습니까?

소위 ‘빽’ 없고 돈 없는 집 자녀들만 처벌을 받지, 돈과 권세를 휘두르는 간부와 돈주 자녀들은 이러저런 구실을 붙여 처벌도 면하고는 합니다. 아직까지 돈주와 간부 자녀가 농촌지원전투에 참여하지 않아 처벌받았다는 얘긴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6. 이렇게 고생한 만큼 수확이라도 좋아야 할 텐데요. 보통 모내기 전투를 비롯한 농촌지원 전투의 결과물은 어떻습니까?

강압적인 노동의 결과는 뻔합니다. 모두가 마지못해 동원되기에 주민들은 성심성의껏 일하려 하지 않고, 이에 따라 농업생산량은 해마다 감소하는 추세입니다. 김일성은 생전에 1,000만 톤 알곡고지를 목표로 내세웠지만, 여전히 그 절반도 실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억지로 동원된 농촌지원자들이 영농지표대로 농사를 짓지 않을뿐더러, 농장원들도 거짓으로 실적보고를 하다나니 결국 외부의 식량지원 없이는 절대 살아가지 못하는 등 빈궁에 허덕이게 된 것입니다.

7. 얘기를 들어보니, 모내기 전투 철이면 주민들 사이에서도 불만이 클 것 같은데요. 모내기 전투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어떻습니까?

그야 학생들 모두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지만, 함부로 얘기하지는 못합니다. 이 세상 모든 농민들도 그저 자기들처럼 농사일을 하겠거니 생각하면서 참는 것이죠. 해방 이후부터 지금까지 해마다 동원되기에 이제는 주민들도 의무적인 동원사업이라 여긴 채 농장으로 향합니다. 하지만 그나마 지난 시기에는 농장에서, 다시 말해 국가에서 지원자들에게 배급을 줬지만, 지금은 각자 집에서 식량을 가지고 나가야 하기 때문에 불만이 더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주민들 사이에선 “이처럼 지은 곡식은 다 어디로 가나” “해마다 뼈 빠지게 일해도 배급이 없는 건 마찬가지”라면서 노골적으로 투덜대는 경우도 있습니다.

– 사실 이런 불만은 오랫동안 이어져 왔다고 보아집니다. 그런데 북한 당국은 왜 이런 모내기 전투를 그만두지 못하는 걸까요?

수십 년간 민생은 돌보지 않고 핵과 미사일 개발에만 전념해온 북한으로서는 경제 개선 의지가 전혀 없다고 봐도 무방합니다. 특히 농촌에 대한 국가적인 투자가 없다 보니 군중 동원밖에 다른 방도가 없는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