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떨리는 첫 면접 앞두고 “취직이 곧 정착이다” 각오 다져

[탈북자 정착스토리③] 北교사 출신 이성민 씨 “근로장려금, 동기부여 제공”
김지승 기자  |  2017-06-23 15:47

국내 정착 탈북민 3만 명 시대. 이들은 한국에 제대로 정착하기 위해 각자의 분야에서 고군분투를 하고 있다. ‘먼저 온 통일’이라는 사명감에 따른 이들의 노력은 향후 통일 한반도에서 큰 자산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많다.

다만 이 과정에서 남북 문화 이질화로 인해 여러 갈등과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에 데일리NK와 국민통일방송은 취업, 창업, 학교진학 과정에서의 성공 사례와 실패한 경험이 있더라도 교훈을 줄 수 있는 사례를 발굴, 한국 및 해외 독자들에게 탈북민의 삶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한다.

2008년 한국에 온 이성민(50대 여성·가명) 씨는 인천학생교육원에서 NK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NK교사는 한국교육개발원(KEDI)이 북한에서 교사 생활을 한 전문인력에게 남북한 교과 지식, 교수법의 차이 등을 교육, 탈북민을 ‘지원의 대상’이 아닌 ‘변화의 주체’로 변화시겠다는 목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사업이다. 이 과정을 수료한 교사는 기초학력이 부족한 탈북학생들을 지도하고, 학교와 전문기관의 통일교육 특강 강사로도 활동한다. 
 
한국에선 컴퓨터 활용 능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 씨는 탈북청소년을 대상으로 IT교육을 하고 있다. 영어로 된 컴퓨터 프로그램을 다루는 것이 어려울 법도 하지만 흥미를 가지고 수업을 잘 따라온다고 한다. 북한에선 컴퓨터 수업이 생소하다보니 다른 과목보다 더 관심을 가지는 것 같다고 했다.

이 씨는 NK교사가 되기 전에는 탈북민 상담사로도 활동했다. 보건소에서 북한이탈주민을 위한 상담사를 채용하니 도전해보라고 주변의 권유가 계기가 됐다. 의학 분야는 전문 분야라 생각해 걱정이 앞섰지만 “탈북민의 상처는 탈북민이 잘 안다”라는 마음으로 지원했다. 하지만 채용에 필요한 자기소개서 작성, 각종 증명서류 등 서류 전형 준비부터 복잡했다. 접수 후 일주일 뒤 보건소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그는 나름대로 예상질문도 준비하고, 떨리는 마음으로 면접일을 기다렸다. 그러나 한국에서의 첫 면접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젊은 지원자와 비교는 되지 않을까’, ‘내가 나이가 좀 많은가’라는 걱정이 앞섰지만 ‘취직이 곧 정착이다’라는 생각에 더욱 열심히 준비했다. 다행히 면접에서 큰 실수는 없었고, 얼마 후 다음주부터 바로 출근이 가능하냐는 인사 담당자의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이 씨가 맡게 된 ‘북한이탈주민 트라우마 치유 프로그램’은 정신적인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탈북민이나 탈북 가정을 방문해 상담을 진행하고 상처를 치유하는 프로그램이다. 혼자 한국에 온 사람들부터 가족이 함께 온 사람들까지 다양한 탈북자들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됐다. 이 씨는 자신이 특별한 일을 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단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의 마음의 짐을 덜어줄 수 있었고, 북한이 고향이라는 공통점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렇게 1년, 탈북 가정을 매일 방문했다.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을 한다는 것만으로도 보람이 컸지만 그에 따른 금전적 보상은 일에 대한 열의를 더욱 높아지게 했다. 정부에서는 탈북민의 이직을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장기 근속시 보상금을 지원하는 지원 정책을 시행 중이다. 이 씨 역시 성실히 일을 한 덕분에 이 장려금을 받을 수 있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받아보니 많은 탈북민들에게 안정적인 취업 활동을 위한 충분한 동기부여를 제공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많은 탈북민들은 취업이 어려운 이유로 정보 부족과 넘기 힘든 채용 시장의 벽을 꼽는다. 탈북자들의 경우 구인 정보를 어디서 얻어야 할지 몰라 지인들을 통해 일자리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이성민 씨는 다양한 사례를 접했지만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기 보다 본인의 스스로 찾아 나설 때 더 성공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특히 정부 차원의 지원 정책이 잘 갖춰져 있는 데 반해 많은 탈북민들이 정보부족으로 인해 놓치는 경우가 많다며 이런 부분부터 꼼꼼히 살펴 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온 탈북민들의 경우 혼자 고민하면서 방황하는 경우가 많은데 복지센터나 종교기관 등 단체 생활하는 것을 권장한다고 말했다.  

한국에 온 지 어느 덧 10년이 넘어선 이 씨는 50대의 나이에 접어 들면서 점점 직장생활에서의 위기감을 느낀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도 나이를 먹으면 점점 설 자리가 사라지고 도태된다고 하는데 탈북민 역시 예외는 아니라는 것이다. 퇴직 후 창업도 고민해 봤지만 평생을 교육자로 살아온 만큼, 한국에서 배운 사회복지학과 평생교육을 접목해 학생들을 가르치고 싶은 것을 마지막 꿈으로 남겨두고 있다. 노후 걱정은 남북이 마찬가지이고, 여태 그래왔듯 이번 고비도 잘 헤쳐나갈 것이라고 자신감 넘치게 미소로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언론진흥기금 지원을 받아 작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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