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노동보다 설에도 콩밥 먹을 생각에 눈물 ‘펑펑’”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교화’라는 명목으로 강제노동에 동원되는 단련대 생활은 인권불모지인 북한에서도 ‘두 발로 들어가서 네 발로 나오는 곳’으로 악명이 높다. 탈북민들에 따르면 단련대 생활은 노동 강도는 물론 시설·생활면에서 최악이다. 고된 노동과 열악한 환경 때문에 과로·사고사로 사망하는 일도 부지기수라고 한다.

중국 전화기를 사용해 외부와 통화한 사람, 밀수에 가담한 사람 등 북한 당국 입장에서 ‘사회 질서를 위반’한 북한 주민들이 단련대에 수감되는데 탈북하다 붙잡히거나 중국에서 강제 북송돼 투옥된 사람도 많다고 한다.

과거 김정일은 1990년대 중후반 대아사기를 총화하면서 “과오(탈북 등)를 범한 사람들을 사상교양·노동교양을 통해 집으로 돌려보내라”는 방침을 내리기도 했다. 노동을 통한 사상개조, 단련대에 탈북을 감행한 주민들이 많은 이유다.

북한 내부 소식통들이 전해온 바에 따르면 최근 단련대에 수감된 북한 주민들의 숫자가 증가했다고 한다. 김정은 정권이 ‘사회질서 유지’ 명목으로 주민들을 보다 엄격하게 통제한 결과다. 또한 민심 이반도 한몫했다. 체제에 환멸을 느끼고 탈북하다 붙잡힌 주민들의 증가가 곧 단련대 수감자 증가로 이어졌다는 설명이다.

이처럼 올해는 최근 몇 년과 비교했을 때 좀 더 많은 북한 주민들이 단련대에서 설날 아침을 맞이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단련대에 수감된 북한 주민들은 민족 고유 명절인 설날을 어떻게 보내고 있을까.

데일리NK는 설날을 맞아 배고픔과 함께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커지는 곳, 북한 단련대의 설날 풍경을 관련 경험이 있는 탈북민을 통해 취재해 봤다. 2000년부터 2009년 사이 단련대에 있었던 탈북민 3명이 인터뷰에 응했다.

“배가 고팠던 것도 있지만 서러워서 하루 종일 울었던 것 같아요”

탈북민 A 씨는 2000년과 2001년 사이 함경남도 55호 노동단련대에서 수감됐었다. 수많은 아사자(餓死者)가 발생했던 1990년대 중후반 대량아사시기가 끝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A씨는 단련대에서 맞았던 설날을 “배도 고팠지만 서러워서 하루 종일 울었던 날”로 기억했다.

북한 당국이 공식적으로 대아시기 끝났다고 선포했던 시기였지만, 식량사정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었다고 한다. 일반 주민들도 하루를 연명하기 힘든 상황이었는데 단련대에서의 생활은 더욱 참혹했다.

평소 소량의 ‘콩밥’을 배급으로 받았던 A 씨는 설날이 다가오자 기대에 부풀어있었다고 한다. ‘돼지를 넣고 끓인 국물’ 등 무엇인가 특별한 음식이 배급될 것이란 기대 때문이었다. A 씨뿐만 아니라 수감자 모두가 비슷한 기대를 품고 있었다.

하지만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콩밥’만이 나왔기 때문이다. A 씨는 “탈북을 시도하다가 잡혔으니까 (북한 당국 입장에서) 우리는 배신자다. 죽이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인 상황이었다”면서도 “왠지 모르게 서러워서 하루 종일 울었다. 같은 고향사람(양강도 혜산)들과 신세타령을 하며 한없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고 소회했다.

배고픔이 가장 큰 고통이었다는 A 씨는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는 있는데, 설날이 다가오면 왠지 모르게 ‘특별한 일’이 생기지 않을까하고 기다리게 됐다”면서 “결국 아무것도 달라지는 것이 없는 것을 보고 더 허탈했던 것 같다”고 덧붙였다.

“새끼돼지 6마리 넣고 끓인 국물을 먹었지만, 그 국물을 600명이 나눠 먹어”

단련대에 있으면 ‘고기’ 생각이 더 간절해진다고 한다. 노동 강도에 비해 먹는 것은 턱없이 부족하니 자연스럽게 ‘고기’를 찾게 된다는 것이다. 2004년부터 2005년 사이 ‘정산 11호 단련대’에 있었던 탈북민 B 씨도 마찬가지였다.

B 씨는 설날 ‘고기’ 배급 여부가 당시 수감자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였다고 말했다. 소량의 ‘콩밥’도 배급받지 못해 평소에는 ‘썩은 옥수수’를 주로 먹었다는 B 씨는 설날 먹었던 돼지고기를 “입 대신 코로 먹었다”고 기억했다.

그는 “새끼돼지 6마리를 넣어 끓인 ‘국물’을 먹었다. 새끼돼지 한 마리가 성인 남자의 두 주먹만 한 크기라고 생각하면 된다”면서 “어미돼지가 새끼를 낳은 것도 아니고, 낙태돼 버려진 돼지를 수감자들에게 준 것이다. 이를 두고 보안원들이 ‘장군님(김정일)의 배려’라고 생색을 냈다”고 말했다.

이어 B 씨는 “600명이 이를 나눠 먹었다고 생각해 보라”면서 “돼지고기 ‘냄새’만 나고 ‘건더기’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 허탈했다”고 덧붙였다.

다만 그는 “내가 있던 단련대(정산 11호)를 놓고 북한에선 ‘이곳에 들어갈 바엔 차라리 교화소를 가는 것이 좋겠다’고 할 정도로 노동 강도가 센 곳으로 악명 높다”면서 “설날만큼은 노동을 쉬게 해줬다. 마음만큼은 편했을 때가 설날이었다”고 소회했다.

“북한 단련대에 비하면 한국 감옥은 천국이에요”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이 3만 명을 넘다보니 남북에서 유사한 상황을 경험한 사람도 찾을 수 있게 됐다. 탈북민 C 씨는 북한에서는 단련대 생활을, 한국에서는 감옥 생활을 경험했다.

2000년대 중후반 청진 수남구역 단련대에 수감됐었던 C 씨는 역설적이지만 한국 감옥 생활을 ‘천국’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한국에 정착해 살면서 법을 위반해 감옥에 들어간 것은 잘못한 일이다.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한국 감옥에서 설날 아침에 먹었던 밥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단련대에 있을 때 강냉이밥과 염장무 외에는 먹어본 기억이 없다는 그는 “‘죄인’의 몸으로 한국 감옥에 들어갔으니까 같은 상황에 놓일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감옥에 수감됐을 때 ‘엄마 밥보다 따뜻한 밥이 나오는 것’을 보고 무척 놀랐다”고 했다.

그는 “설날에도 모락모락 ‘김’이 나는 ‘따뜻한 밥’이 나왔다. 단련대에서 ‘배고픔’은 인간이 참아야 할 최악의 고통인데, 한줌 밥을 먹고 10시간 이상 노동을 하고 나면 하늘과 땅이 분간이 되지 않는다”면서 “400명이 서로 조금이라도 더 먹기 위해 투쟁했던 단련대를 생각하면 한국의 감옥은 그야 말로 ‘천국’이었다”고 소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