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자 상처 어루만지는 일에 앞장서고 싶어요”

탈북자 서귀복(사진) 씨는 일명 ‘회장님’으로 통한다. 탈북자들과의 만남에서도 누구보다 인사를 먼저 건네고 가장 먼저 손을 내민다. 서 씨의 말끝에는 항상 ‘감사합니다’가 따라다닌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현재가, 자신 앞에 주어진 현실이 무척 감사하다.

부산시 북구에 위치한 ‘평화의 집’은 서 씨가 한 달에 두 번 ‘북구 작은나눔 봉사단’ 소속으로 봉사활동을 하는 곳이다. 그는 봉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기쁨과 보람이 얼마나 큰지 몸소 느꼈다. 이 때문에 주변의 탈북자들에게도 적극적으로 봉사활동을 권하고 있다.

그는 “사람들이 가진 생각은 저마다 다르지만, 봉사 시간만큼은 하나로 단합이 됩니다. 그래서 일할 때 늘 웃음꽃이 피지요. 봉사를 통해 얻는 건 마음의 풍요입니다. 일을 다 마치고 정문을 나설 때는 뿌듯함이 밀려오지요. 장애인들이 ‘이모’라고 부르면서 반갑게 맞아줄 때에는 기쁨이 더욱 크고요. 그래서 잊지 않고 이곳을 꼭 찾아오게 됩니다”고 말했다.
 
2010년 6월, 북구경찰서 보안계 형사들과 처음 찾은 ‘평화의 집’에서 그는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평화의 집’ 장애인들을 보면서 자신이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지 진심으로 느끼게 되었다. 가족을 북한에 두고 온 아픔까지 잊을 수는 없었지만, 가슴에 꽉 막혀 있던 응어리를 이곳에 와서 조금씩 풀어낼 수 있었다. 자신의 손길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행복을 느끼는 모습을 보면서 그는 치유라는 것을 받았다.
 
현재 ‘평화의 집’에는 70명 남짓의 지적장애인들이 거주하고 있다. ‘북구 작은 나눔 봉사단’의 주요 활동은 이들이 먹을 식재료 정리와 음식을 만들기 전에 식재료를 씻고 다듬고 손질하는 일이다. 여기에서 서 씨는 한국으로 오기 전 국가안전보위부 주방에서 일한 경험을 십분 살렸다.
 
이렇게 서 씨는 무슨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앞장선다. 또한 ‘남이 아프면 자신이 더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평이 따라 붙는다.

희망의 땅 한국에서 다시 시작하는 제2의 인생

서 씨는 2004년에 한국으로 왔다. 한국에 정착한지도 어느새 십 년이 넘었다. 북한 함경북도 무산에 있는 딸을 보기 위해 휴가를 내고 중국의 언니 집에 들른 것이 한국에 오게 된 시발점이었다. 네 번에 걸친 북송 등 그때의 역경을 생각하면 시 씨는 아직도 눈물부터 흐른다.

그는 “한국에 발을 붙이자 안도와 기쁨이 무척 컸지요. 만약 한국에 쉽게 왔다면 눈물이 펑펑 쏟아지는 그런 감격은 없었겠지요. 인천공항에 도착해서 정말 많이 울었습니다”고 회고했다.

2005년 1월에 부산으로 온 서 씨는 새롭게 보금자리를 틀고 제2의 인생을 살게됐다. 하지만 처음부터 정착이 쉬웠던 건 아니었다. 피붙이 하나 없는 곳에서 어떻게 살까 싶은 생각에 걱정이 앞섰고, 무엇보다 그리운 가족이 옆에 없다는 생각에 형언할 수 없는 슬픔 속에서 살아야 했던 날들도 있었다.

그때 그는 남북하나재단 콜센터 상담사를 통해 많은 위안을 얻었다. 서 씨는 “가족 생각만 하면 마음이 착잡하고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겠더라고요. 그러다 우연히 남북하나재단 콜센터 번호가 눈에 보여 전화를 했어요. 그 때 상담원이 저에게 큰 위로가 되어주셨어요. 그분 또한 탈북자이라면서 저의 아픔에 공감을 해주셨지요”라고 말했다. 

그는 그 후로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더 가치 있게 쓰기 위해 애썼다. 주변 사람들을 돌아보기 시작했고, 정착을 못하고 힘들어 하는 탈북자의 마음을 위로하는 데 시간을 들였다.

나에게 주어진 과제

서 씨는 한국과 북한 사이를 오가며 자신이 겪은 경험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바람이 있다. 그래서 그는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글을 쓴다. 자신이 쓴 글이 모이면 언젠가는 탈북자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다. 이렇게 쓴 글이 경찰청에서 실시한 공모전에서 수상을 한 적도 몇 번 있다.
 
그는 “먼저 발을 디딘 사람으로서 앞으로 저와 같은 탈북자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했습니다. 저의 글이 작은 씨앗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요”라고 전했다.

서 씨는 탈북자가 한국에서 제대로 정착을 하려면 무엇보다 제일 먼저 자신을 깊이 들여다봐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필요한 것은 자신을 비우는 과정이다. 그는 “큰 욕심 부리지 말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찾는데 노력해야 합니다. 북한에 살았던 경험은 경험대로 살리고, 한국에서는 또 새로운 삶을 수용하는 자세를 가진다면 조금씩 변화된 삶을 살 수 있을 거라 믿습니다. 저처럼 봉사활동이 계기가 될 수도 있고요”라고 당부했다.

서 씨는 늦둥이 아이를 둔 엄마이다. 그는 자신이 누리고 있는 삶에 너무도 감사한 마음이다. 그래서 더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며 그것이 자신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그는 “지금 많이 행복하죠. 물론 마음 한 구석에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상처들이 있습니다. 저만 그럴까요? 상황만 조금씩 다르지 탈북자 모두가 그렇지 않겠어요? 상처가 빨리 아물려면 우리가 함께 어루만지면서 살아야 하겠지요. 저도 그 일에 앞장서고 싶어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