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빼로 데이’ 北엔 왜 없나?…’선물’ 수령만 줄수 있어

오늘(11월 11일)은 ‘빼빼로 데이’다. 빼빼로 데이는 숫자 ‘1’이 4개 들어간다는 점에 착안해 어느 한 회사가 자회사 상품을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낸 날이라는 등의 여러 설(說)이 있지만, 많은 사람들이 빼빼로를 선물로 주고받으며 행복한 하루를 보낸다.


한류(韓流)가 사회 깊숙이 침투한 북한에도 ‘빼빼로 데이’가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없다. 시장 활성화로 케이크도 수입산 못지않게 만들 정도로 개인 제과업자들이 있는데, 왜 빼빼로는 생산하지 않을까. 생산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 사회에서 국가가 정한 기념을 제외하곤 다른 날을 기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잠시 기억을 30여 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소학교 시절 국어 글짓기 시간에 기자는 “어머니는 10점 최우등을 한 딸의 성적표를 보시더니 환한 웃음을 지으시며 사탕을 선물하셨다”고 썼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선생님의 꾸중이었다.


선생님은 “존경어는 김일성 수령님께만 쓰는 거예요. 어머니가 준 것은 선물이라고 하면 안 됩니다. 선물은 오직 김일성 수령님께서 주십니다”고 학생들 앞에서 지적했다. 당시 10살밖에 안 되었던 기자에게 이 말은 지금도 기억에 남을 정도로 잊혀 지지 않는다.


선물은 오직 위대한 수령만이 줄 수 있는 특권을 만들어 놓은 국가가 바로 북한인 것이다.


북한 정권의 ‘선물 정치’로 부모님, 친구의 사랑과 정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오늘도 북한의 어린이들은 “우리의 아버지는 김정은 원수님, 우리 집은 당의 품”이라고 부르고 있는 게 북한의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한류를 접한 젊은 세대들이 늘어나면서 변화를 보이고 있다. 연인들은 생일이나 기념일에 꽃을 선물한다. 내부 소식통에 따르면 꽃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한 다발에 8만~10만 원 정도에 팔리고 있다.


북한 시장에서 판매되는 손거울 뒷면에 한국의 유명배우가 새겨져 있으면 가격은 두 배 가까이 웃돈다. 그 만큼 젊은 세대에서 이제는 선물을 주고받는 게 이상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만약 북한에서 생일뿐만 아니라, 한국의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등과 같이 남녀가 선물을 주고받는 날이 확산된다면 ‘선물 정치’로 유지되어온 북한 체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고 기자는 판단한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북한 당국은 자본주의 문화인 오늘의 ‘빼빼로 데이’ 같은 날을 만들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제 아이들은 당에서 지급되는 선물보다 부모가 시장에서 사주는 외국산 옷이 좋다는 것을 다 안다. 특히 젊은 세대에서는 연인이 주는 생일선물 등이 ‘원수님'(김정은)이 주는 그 어떤 표창장보다 더 ‘달콤하다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결국 ‘발렌타인 데이’ ‘화이트 데이’ ‘빼빼로 데이’ 등과 같은 날이 남녀 간의 사랑을 전하는 날인 점을 볼 때, 한류를 접한 북한 젊은 세대들도 자기도 모르게 북한식 기념일을 만들어 가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