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려명거리 입사못한 철거세대 주민들 어떻게 됐나

노동신문에 따르면 지난 17일부터 새로 건설한 려명거리에 새집들이가 시작됐습니다. 신문은 ‘김정은이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연구사들과 철거세대 주민들이 제일먼저 입사하도록 ”살림집 이용허가증“을 수여하는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 줬다며 인민에 대한 김정은의 끝없는 사랑’을 선전했습니다.

높이 솟은 70층 아파트, 대학생들이 새집에 입사하는 선생님들에게 꽃목걸이, 꽃다발을 안겨주며 축하해주는 모습, 방안을 둘러보고 베란다에 나가 바깥풍경을 보면서 행복에 넘쳐있는 입주자들의 모습 등 14장의 사진에 담아 새집들이 풍경을 전하기도 했습니다. 김정은이 직접 둘러봤다는 아파트에 입주한 마성수 박사, 젊은 교육자 부부인 김광혁, 김송이를 내세워 김정은을 찬양하는 것도 잊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보도에서 중요한 부분이 빠져 있습니다. 이 지역에 살던 철거세대 주민들 소식입니다. 김정은이 ‘철거세대 주민들을 제일먼저 입사하도록 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여기 살던 주민들 모두가 려명거리 살림집을 받아 기쁨을 함께 누렸다는 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동안 평양시에서 수없이 진행된 살림집 철거때마다 해당 지역 주민들은 큰 피해를 입었습니다. 하나 실례를 들어 봅시다. 1989년 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을 계기로 평양시 중심구역 안의 단층집들을 모두 허물고 새 아파트를 지으라는 김정일의 방침이 떨어졌습니다. 대동강변의 양각도 호텔을 마주한 지역도 기존 단층집을 허물고 아파트를 짓게 됐습니다. 김책공업대학 새 청사를 비롯한 확장공사를 함께 하다 보니 철거세대는 4천 세대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새 아파트에 입사할 수 있는 세대수는 344세대에 불과했습니다. 거기다 풍치 수려한 지역이라 이곳에서 살겠다고 노리는 간부들이 많았습니다. 결국 철거세대 주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150여 세대 정도가 입사할 수 있었습니다.

입사증을 받은 150여 철거세대 주민들도 그냥 들어온 게 아닙니다. 한 세대 당 5명의 청장년노력이 건설현장에 나와야했고 모래나 골재, 인발관, 유리, 목재 등 아파트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대는 조건으로 점수를 매겨 입주자격을 부여했습니다. 이런 조건을 감당하지 못한 수천 세대의 주민들은 수십 년을 살아오던 터전을 빼앗겨야만 했습니다.

이번에 려명거리 고층 아파트에도 본래 이 지역에 살던 철거세대 주민들이 많이 들어가지는 못했을 겁니다. 노동신문은 김정은과 려명거리건설 성과를 자랑하고 있지만, 지난 1년간 이 지역에 살던 철거세대 주민들이 어떤 고통을 겪었고,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한 주민들은 어떻게 됐는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김정은의 업적을 선전하기 위해 철거세대 주민들을 고통속에 몰아 넣었다면 려명거리는 반인민적인 행태를 상징하는 건설물로 기록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