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5人 의료실태 고발…”생명보다 돈 우선”

북한은 13일 무상의료 공식 선포 60돌을 맞아 노동신문 등을 통해 북한 인민들이 당국의 무상의료 혜택을 받으면서 풍족하게 살고 있다고 선전했다. 


신문은 이날 ‘무상치료제의 혜택 속에 꽃피는 인민의 행복’이라는 기사를 통해 “나라의 도시와 농촌은 물론 심심산골의 임산마을과 외진 섬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든 곳에 병원과 진료소들이 생겨 인민들이 무상치료제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게 됐다”고 주장했다.


1990년대 중반 체제난과 경제난으로 사실상 의료체계가 붕괴됐지만 북한은 아직도 무상의료의 지상낙원이라는 사회주의 슬로건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의료체계 붕괴를 목도(目睹)한 탈북자들은 무상의료는커녕 북한 주민들은 가장 기본적인 의료혜택도 받지 못한다고 증언한다.


특히 탈북자들은 북한이 무상의료를 선전하지만 반대로 기본적인 치료에서 수술에 이르기까지 돈이 없으면 받을 수 있는 치료가 없다고 증언한다. 이는 1990년대 중반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 당국은 의료 관련 기관과 의사·간호사들에 대한 배급을 중단하면서 대가를 지불해야만 치료를 받을 수 있게 됐다는 것이 탈북자들의 전언이다. 의사 등은 자신의 생계를 위해 대가를 요구한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북한이 무상의료 사회라는 체제선전에만 주력할 뿐 실제로 무상의료 체계 복원을 위한 노력을 벌이지 않는 등 주민들의 삶을 돌보지 않는 무책임한 체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데일리NK는 올해 입국한 탈북자 5인과의 인터뷰를 통해 최근 북한의 의료실태에 대해 짚어봤다.


“의사, 돈 없는 환자에 관심도 안둬…모든 절차에 돈 필요”


최근 탈북한 함경북도 청진 출신 김복순 씨는 “의사들은 오직 돈 있는 사람들만 환자로 보인다”면서 “수술도구 소독을 위한 알코올을 비롯해 약솜, 거즈, 주사, 수술실 사용료와 의사, 보조사, 간호사들에게 줄 수고비용까지 미리 합의가 이뤄져야 치료를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아무리 급한 환자라도 돈을 지불할 능력이 없으면 치료를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함경북도 도병원에서 급성 충수염으로 수술했던 2011년 상황을 회고하면서 “의사는 환자의 병을 치료하기 전에 먼저 보호자를 불러 수술비용을 놓고 합의를 했다”면서 “당시 의사 5만원, 보조사 3만원, 간호사 4명에게는 1만5000원씩 줬었다”고 덧붙였다.


함경북도의 한 병원에서 운전기사로 근무했던 최성호 씨도 “2011년 당시 병원에는 3대의 구급차가 있었지만 그 중 한 대는 병원장 전용차로 사용되고 나머지는 휘발유 공급이 없어 ‘삮벌이'(휘발유벌이)를 하러 다녀야만 했다”면서 “환자들이 퇴원할 때 구급차를 이용하려면 하루 전에 신청하고 휘발유 값을 지불해야만 다음날 이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입원했던 환자는 시내에서만 후송이 가능한데 비용은 대체로 휘발유 2kg값을 내야 했다”면서 “가정과 직장에서 발생하는 구급환자인 경우에는 짐 손수레꾼들에게 운반비를 지불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1km당 1만 원정도였다”고 덧붙였다.


강원도 의약품관리소에서 근무했던 이송철 씨는 “수십 년간 이어진 식량난으로 입원환자들은 하루 3끼 식사를 자기 집에서 조달해야 한다”면서 “환자가 입원하고 있는 동안에 한 주에 1, 2차례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음식대접을 하는 것이 하나의 병원문화로 정착됐다”고 말했다.


“일반 주민, 약 직접 구해야…간부들은 뒤로 빼돌려”


2011년 함흥 정형외과에서 3도 화상 이식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 조봉연 씨는 “병원에는 치료약이 없다고만 말한다”면서 “병원의사는 약 처방만 떼어줘 환자들은 처방전에 적힌 약명대로 주변마을의 약 장사꾼에게서 비싼 값을 주고 사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제약 공장은 청진, 함흥, 순천을 비롯해 여러 곳에 있지만 원료가 부족해 공장이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는데다가 제조량도 적고 생산된 제품 대부분이 장마당으로 흘러간다”면서 “제약공장 노동자들이 약 원료를 조금씩 훔쳐다가 집에서 제조해 판매하기 때문에 의약품질이 떨어져 주민들은 중국산 혹은 유엔에서 지원한 약 등을 비싼 가격에 구입한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그는 “공장에서 생산된 의약품 중 일부만 시장에서 팔리고 대부분은 전국에 있는 ‘도 약품관리소’를 통해 분배되지만 모두 도·시·군 간부들의 사업용”이라면서 “일부 병원으로 공급되는 경우에도 원장을 비롯한 병원 간부가 독점하며, 이는 환자들에게 매매하는 돈벌이용”이라고 설명했다.


이송철 씨도 “도와 시당, 보위부, 보안서 간부들은 직접 약품관리소 소장이나 당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자기 가족과 친척에게 필요한 치료약 3~6개월 분량을 공짜로 받아간다”면서 “약품 일부가 시내병원에 공급되지만 병원간부들의 사업대상용이거나 자재구입을 위한 비상 사업용으로 활용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전쟁 직후 사용하던 의료시설 태반”


청진시 결핵병원에서 치료를 받았던 김정학 씨는 “북한의 모든 병원 의료시설은 매우 뒤떨어져 세계 최악일 것이다. 한국전쟁 후 러시아와 체코에서 지원해준 의료시설이 가장 많다”면서 “링겔 병이 없어 음료수병 등을 사용하고 주사바늘이 없어 환자가 중국산 1회용 주사기를 장마당에서 사와야 한다”고 소개했다.


그는 이어 “병원 입원침대가 부족해 환자가 집에서 침대용 깔판 널판자를 가지고 와야 병원 창고에 있는 철침대를 제공 받을 수 있다”면서 “환자 한 명이 입원하려면 입원서류와 치료사항을 기록하는데 필요한 규격용지 50매 정도 가지고 가야 입원수속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그는 “담요와 이불, 밥그릇과 숟가락까지 환자가 준비하고 X-ray 검사를 받자면 수시로 발생하는 정전 때문에 발전기를 돌려야 했다”면서 “발전기에 사용될 디젤유 1kg씩 가지고 가서 검사받을 사람이 10명(디젤유 10kg) 모여야 검사기계를 가동했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