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괴담’ 입증 못하면 논쟁도 필요없다

I.


지난 7월 8일 필자는 국방부의 천안함 폭침 원인에 대한 정책설명회에 참여할 수 있었다. 국방부 회의실에서 합조단의 조사결과에 대한 브리핑을 관계자로부터 들은 후, 버스로 평택의 해군 제2함대사령부로 이동해 그곳에 운반되어 있는 인양된 천안함을 직접 보면서 역시 합조단에 참여한 해군관계자들로부터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런 좋은 기회를 갖게 된 것은 우연이었다. 국방부 정책설명회 참가신청을 인터넷으로 받는다는 소식을 한 군사정보사이트에서 보고 신청을 했더니 오라는 것이다. 직업이나 나이, 이념적 성향 같은 것은 전혀 무관하였다.


브리핑은 대략 5월 20일 합조단의 발표내용을 요약한 것이었고, 어뢰에 쓰인 ‘1번’이라는 글씨가 사후에 조작된 것이 아니라는 점에 대한 추가 설명이 흥미로웠다. 즉 페인트와 1번이라는 글씨를 확대해 보니, 동일한 미세균열 사이로 녹물이 나왔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1번’이라는 글씨가 녹물이 나오기 이전에 페인트 위에 쓰여졌다는 것이다.


평택 2함대사령부에서 인양된 천안함의 절단면을 보니 2~3평 되는 함체 밑의 철판이 70도 정도 위로 꺾어져 있었고, 달팽이 껍질처럼 말려 올려간 철편이 있었다. 또 좌초의 흔적이라고는 전혀 없는 선저, 그리고 뚝뚝 끊긴 전선과 전선안의 소면처럼 작은 전선 다발에는 폭발이나 화염의 흔적이 전혀 없었다. 필자와 같은 비전문가의 눈으로 볼 때에도 내부폭발이나 좌초, 피로균열이라고는 전혀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러나 한 중년 남자가 집요하게 어뢰에 의한 버블제트 공격가능성에 대하여 의혹을 제기하였다. 심지어 러시아 전문가의 말을 전한다면서, 만일 천안함이 북한 잠수정의 공격에 의해 침몰되었다면 한국 해군은 ‘밥통 해군’이라고 불러 마땅하다는 것이다. 러시아어로 어떤 표현을 ‘밥통’이라고 번역하였는지는 몰라도 이런 언사는 초상집에 와서 ‘밥통 집안’이라고 말하는 것과 다름이 없는 무례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는 지방 소도시의 종교인이었고 또 천안함 폭침에 대한 국제합동조사단의 원인규명에 의혹을 제기한 시민단체의 일원이었다.


합조단에 참가하였던 관계자들은 성심껏 설명을 하였다. 의혹을 제기하는 그 남자에게는 4~5명의 해군장교들이 마치 특별수업이라도 하듯이 열심히 해명을 하였지만 ‘의문 해소’가 아니라 ‘의혹 확인’을 목적으로 온 사람을 설득할 수는 없었다.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그런 인상을 주었다.


참가자 몇몇은 논란의 대상이 된 형광등을 볼 기회가 있었다. 연돌 밑으로 기어들어가 보니 실제로 형광등이 온전하였다. 그러나 그 형광등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두꺼운 주물유리에 철판과 손가락 굵기의 볼트 여러 개로 고정되어 있었다. 아주 튼튼한 물건이었다. 한편 형광등 옆에 있는 배전판의 유리는 깨져 있었고, 그 유리는 일반 창호에 사용하는 판유리였다.


데일리NK를 즐겨 본다는 한 해군장교가 필자에게 ‘국민들에게 죄송스럽기 짝이 없지만, 밥통소리를 들으면 가슴이 미어진다’고 말했다. TOD 영상 부분을 담당했다는 그는 잠수함을 10년 정도 탄 베테랑이었다. 그의 감춤이 없는 말투나 그을린 얼굴에서 거짓을 진실로 포장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사실 필자가 정책설명회에 간 이유 중의 하나는 이들과 사적 대화를 나누면서 이들의 표정과 어투 등을 보기 위해서였다. 거짓을 감추는 사람들에게는 어쩔 수 없이 드러나는 특징적 표정이 있기 마련이다. 인류학에서 직접 현장에서 자료를 수집하는 사람과 그 자료를 놓고 책상에 앉아 이론을 만드는 사람 간에 큰 간극이 있다는 점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현장에서 직접 본 합조단 관계자, 대부분 대령과 중령들인데 이들은 지적이면서 동시에 진실성이 있었다.


II.


천안함의 원인 규명은 증거를 구조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중요하다. 즉 두 개의 증거블록이 존재하고, 이 둘을 연결하는 증거가 존재한다.


우선, 누가 아니라 무엇이 천안함을 침몰시켰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는 인양된 천안함 자체가 첫 번째 증거블록이다. 그리고 누가 침몰시켰는지를 확인할 수 있는 증거가 쌍끌이 어선이 건져 올린 어뢰로서 두 번째 증거블록을 형성한다. 그리고 이 양자를 연결하는 증거물이 함체와 어뢰에 흡착된 물질의 동일성이다.


필자가 볼 때 인양된 천안함 함체를 보고 좌초, 피로균열, 내부폭발을 이야기하는 사람은 천안함 논쟁에 끼어들 자격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사람은 의처증과 같은 편집성 망상을 갖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하다. 이유는 단순하다. 내부폭발이나 좌초라는 사건에는 움직일 수 없는 본질적 특징, 흔적이 있고, 이러한 흔적은 쉽게 사라질 수 없기 때문이다.


여기서 합조단이 원인을 규명한 절차는 원인 후보들 중에서 가능성이 없는 것들을 지워나가는 이른바 제거법으로서 간접 증명의 한 종류다. 이런 제거법은 영국의 존 스튜어트 밀(J.S. Mill)이 정식화 하였지만 상식적으로도 매우 자명한 추론 방법이다. 범인 후보로 A와 B와 C만이 있을 경우, 앞의 두 명이 절대 아니라면 범인은 C일 수밖에 없다. 천안함의 경우 내부폭발 의혹은 이제 아무도 언급하지 않고 있는데, 그 이유는 내부폭발의 본질적 흔적, 특징이 전혀 남아 있지 않기 때문이다.


배가 순식간에 가라 앉을 정도로 심한 좌초의 경우에는 함수로부터 함미로 길게 암초에 찟긴 흔적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소나돔은 멀쩡하고 선저에는 이런 흔적이 전혀 없다. 좌초설 신봉자들이 지적하는 함체 옆의 긁힌 자국은 사실 쓸렸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만큼 미미하고, 또 함체에서 떨어져 나간 부분과 원래 연결이 되어 있지만, 이 부분에서는 쓸린 자국이 없다는 사실에서 인양시 발생한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지금 천안함 조작 의혹을 계속 제기하고 있는 좌초설 신봉자들은 천안함 함체를 직접 보았던 안 보았던 계속 좌초설을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도대체 이들은 어떤 정신의 소유자들인가?  예를 들어 ‘인양 전문가’라고 알려진 이종인씨는 천안함이 옆구리부터 암초에 걸린 후, 빠져나오려고 전후로 움직이다가 배가 찢어지고, 물이 함수와 함미에 들어와 가운데에 주름이 잡히면서 배가 전단파괴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비전문가인 필자로서 크게 말할 수는 없지만, 풍랑이 별로 없던 사고 당일, 어떻게 동력이 있는 군함이 옆구리부터 암초에 부딪힐 수 있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또 좌초를 했다면 생존자들이 반드시 이 사실을 알고 있을 텐데, 한 야당의원의 확신에 찬 예언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양심선언’은 나오지 않고 있다.


좌초설 신봉자들이 야기하는 더 큰 문제는 좌초를 하려면 암초가 있어야 하는데, 어뢰를 인양한 쌍끌이 어선이나, 백령도 어민의 이야기나 해도에 의해서도 사고해역에 암초가 있다는 사실은 확인되지 않았다. 물론 좌초설 신봉자들은 암초가 없다는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바로 이 점이 납득되지 않는다.


필자는 지난 며칠 합조단의 주장에 많은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인사와 메일을 주고받으면서 이 분이 정말로 조작설을 믿고 있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놀라운 일이었다. 왜냐하면 매우 날카로운 판단 능력이 있는 이 분은 합조단의 주장에 대해서는 조목조목 의혹을 제기하고 증거를 요구하면서, 좌초설 신봉자의 모든 의혹과 주장은 아무런 증거제시의 요구 없이 액면가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이다.


단순한 의문이 아니라 어떤 주장을 하는 순간 입증의 의무가 발생하며, 이것은 원인규명의 주체가 누구이든 무관하다. 뿐만 아니라 좌초설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우선 암초를 찾아 놓고 시작하는 것이 순서라는 점도 명백하다. 필자는 그 인사에게 다음과 같은 메일을 보냈다:


‘암찾사’라는 단체를 조직하면 아마도 순식간에 엄청난 성금이 답지하리라 믿습니다. 또 인양 전문가 이종인씨의 실력이라면 문제없이 그 해역을 탐사할 수 있을 것입니다. (…) 그쪽 바다 밑은 흙탕물로 매우 시계가 나쁘다고는 하지만 요즈음 수온도 올라가고 7, 8월의 작열하는 태양 밑에서 천안함을 두 동강 낼만한, 5~7m 수면 밑에 있는 암초라면 충분히 발견할 수 있으리라 추측합니다. 그리고 이 작업은 절대로 군대에 맡길 수가 없습니다. 암초가 없다는 것을 입증하기도 힘들뿐더러 없다고 주장한들 좌초설 신봉자들은 절대로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만일 암초를 발견하는 일이 그 어떤 이유에서 바람직하지 못하거나 귀찮다고 생각한다면, 천안함의 생존자를 찾아가서 증언을 받아내면 됩니다. (…) 병영에서 사는 것이 당연한 사병들을 ‘합숙훈련을 시킨다’는 식의 주장만 하지 말고, 이제 천안함에 근무했던 제대병을 찾아가서 진실을 찾기를 바랍니다.


위 둘 중의 어느 하나를 좌초설 신봉자들이 확인한다면, 이명박 정부는 그 순간 식물정권 정도가 아니라 아마 붕괴될 것입니다. 또 합조단의 권위는 물론 외국의 전문가들도 모두 음모의 공범으로 몰릴 것이며, 북한의 만행을 규탄한 유럽국가, G20 등 모두가 이제 한국을 규탄하는 성명을 낼 수도 있습니다. 또한 대북정책 역시 완전히 바뀔 것이고, 한미합동 군사훈련은 전쟁위협 내지는 전쟁도발로 간주될 것이며, 따라서 한미동맹도 와해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 한국의 보수세력이 완전히 참패하리라는 점도 명약관화합니다. 그냥 ‘천안함 날조당’, ‘전쟁광신도당’으로 몰면 20~30대, 군인, 주부는 물론 40대, 50대도 보수세력에게 완전히 등을 돌릴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국 내 진보세력의 꿈이 한 순간에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보물섬 암초를 찾지 않습니까?


사실, 좌초가 천안함 침몰 원인에서 배제된다면, 어뢰와 기뢰에 의한 외부폭발 이외에는 다른 원인이 있을 수 없다. 그렇다면, 형광등, 견시병 이야기, 부상의 유형, 프로펠러 등등에 대한 의혹은 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곁다리 의문’에 불과한 것이다. 굳이 합조단이 일일이 해명할 필요도 없고, 그냥 의혹 제기자에게 숙제로 남겨주어도 무방하다. 총알이 두부(頭部)를 관통해서 죽은 사람을 놓고 왜 고통스러운 표정이 없느냐고 물을 때 굳이 대답을 할 필요가 없는 것과 같은 이치다. 지금 천안함 좌초 신봉자들은 이런 사람을 놓고 고통스러운 표정이 없으니 연탄가스 중독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해군은 이런 곁다리 의문을 일일이 해명하려고 노력하였고 실제로 또 설득력 있는 설명을 내놓았다. 그러나 어쩌면 이런 노력이 문제를 더 악화시킨 측면이 있다. 증거와 해명에도 경중이 있고 그 의미는 다 다른 것이다. 그러나 합조단이 가장 중요한 천안함 함체 자체를 외부폭발의 증거로 제시하면, 조작설 신봉자들은 소소한 곁다리 의문 열 개를 늘어놓으면서 해명보다 의혹이 더 많다고 길길이 뛰고 있다.


이런 곁다리 의혹 제기자에게는 해명을 해주더라도 그것이 증거의 구조체 전체에서 갖는 의미를 분명히 밝히고 또 전제해야 한다. 즉 해명할 이유도 의무도 없지만, 적선 차원에서 해준다는 것이다.


중요한 점은 첫 번째 증거블록에 대하여 계속 의혹만을 제기하고 암초를 찾아 확인하는 것과 같은 입증 의무를 행하지 않는 자와는 더 이상 논쟁을 벌일 필요도, 논쟁을 벌여서도 안 된다는 점이다. 이들은 무자격자이며 따라서 철저히 무시하는 것이 필요하다. 검정색을 흰색으로, 흰색을 검정색으로 주장하는 자와 그 어떤 논의, 논쟁, 토론, 합의도 불가능하다. 한마디로 천안함이 외부폭발에 의해 침몰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논쟁의 출발점이어야 하지, 논쟁의 끝이 되면 안 된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