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뱅이 잡으러 갔다 골병든 이야기 ①

1989년 3월 선박수리 공작소 건립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대성무역 함경북도 김책사업소에 갔을 때다.

사업소 관계자들은 북한 동해안에서 생산되는 붉은 대게가 연간 2천 톤(생산량 미확인)에 달한다고 했다. 붉은 대게는 북태평양 알라스카에서 생산되는 ‘왕게(킹크랩)’와 거의 비슷하게 생긴 붉은 색의 큰 게인데, 속살이 많고 맛 좋기로 이름이 나있다.

여기서 잡힌 대게는 일본 수산업자가 조총련을 앞세워 일본으로 가져갔다. 일본 국적 ‘빙장 운반선’ 4척을 교대로 김책항에 대기시켜 놓고 매일 아침 잡아오는대로 중량만 확인하고 외상거래 형식으로 가져가고 있었다.

대금 결제방법은 일본 어시장에서 경매한다. 붉은 대게를 잡는 선박의 조업에 필요한 연료와 어구, 기타 필요한 비품 및 소모품 등을 사전에 외상으로 공급해준다.

일본 수산업자는 가져간 대게를 판매하여 발생된 제반경비를 일방적으로 계산 공제하고, 다음 조업에 필요한 보급품을 운반선이 적재하여 김책항에 입항, 정산을 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것저것 다 떼고 나면 때로는 인건비도 만족스럽지 않다는 불평이 있었다. 더 놀라운 사실은 기름값의 경우 국제시세의 3배를 받고 기타 보급품은 평균 2배로 계산하여 정산한다는 것이다. 이런데도 북한사람들은 이의를 제기하지도 못하고 그저 일본사람들이 하는대로 따를 뿐이었다. 거래조건이 맞지 않다고 항의하면 조업에 필요한 보급품마저 공급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조총련과 관련된 사업은 손대지 마라” 상부지시

일본 수입업자는 ▲기름과 어로장비가 없어 고기를 못 잡는 선박에 외상으로 공급해주면서 선심쓰는 척 폭리를 취하였는데, 이것을 북한사람들은 알면서도 기름과 어로 장비를 공급해주니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으며 ▲게를 잡아도 수출 못하면 이것 또한 걱정인데, 이를 걱정없이 수입해가는 데 고마움을 느꼈으며 ▲이래저래 일본 수입업자들만 큰소리 치면서 독점 사업을 하고 있었다.

당시 조업하는 북측회사는 2개였다. 회사는 각각 4척과 2척을 운영하고 있었다. 나는 2척을 운영하는 회사부터 그 억울함을 해결해 주려고 과감히 교섭했지만, 조총련과 관련된 사업은 아예 손대지 말라는 압력(?) 때문에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가슴 아픈 일이지만 조총련과의 관계가 그렇다니 어쩔 수 없는 사정이었다. 그러나 두고두고 마음에 걸리는 지난날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 있다.

후에 알게 된 일이지만 애써 이뤄놓은 사업일지라도 조총련이 인수하기를 희망하면 무조건 인계해 줘야 하고, 또 조총련이 직간접으로 관련된 사업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했다.

붉은 대게는 통발이라는 어구로 잡는다. 이 통발 안으로 게가 들어가는데, 이때 골뱅이도 제법 들어 있는 것을 보았기에 대성총국 사장과 골뱅이 잡이에 대한 상담을 했다.

게 통발 하나에 골뱅이가 평균 몇 마리가 잡히는지 조사를 시켰더니, 한달 평균 20일 조업에 껍질째 평균 50톤은 무난하다고 했다. 그러면 우선 대게를 잡으면서 덤으로 잡히는 골뱅이를 한 달만 시험삼아 따로 수집하여 냉동시켜 보관하고, 잘될 경우 골뱅이를 잡는 전용선박을 본격적으로 투입하기로 했다. . `

당시 북한의 김책시를 세 번이나 드나들면서 골뱅이잡이 전용선박을 투입하기 위해 현지 선원들과 냉동공장 직원들에게 골뱅이 잡는 방법과 냉동 처리법을 미리 교육시켰다.

골뱅이 사업 투자보장 합의서 체결

동해안 김책에서 신포 앞바다까지 풍부한 어장 형성이 되어 있었다. 사업소 관계자들도 골뱅이를 전문적으로 잡을 수 있는 선박과 장비를 투자하여 잡은 어획물을 전량 수출해 외화 벌이에 한몫을 하기위해 몇 가지 검토를 했다. 나는 이들과 사업 검토를 마치고 본 사업이 성공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 하기로 합의했다.

다음은 투자 보장 합의서다.

1.선박의 국적은 투입조건에 대한 보장만 된다면 공화국 국적 또는 제 3국적 선박으로 하여 기술지도 후 공화국 인민 선원으로 조업 할 수 있다.

선박 투입 조건
1).투자에 대한 보장 (수산성 과 중앙 수산위원회의 비준 보장)

2).처음 조업 때부터 수출 금액에서 20%를 선가 상환 금액으로 공제 상환한다. (선가계산은 선박과 그 시설물 전부와 어구 장비 기타 육상시설물을 투자 당시의 금액으로 계산한다)

3).2항차 정도 어로지도 기술자 3명승선(김찬구 외 2명을 조업 현장에 파견 계획임)
4).조업선에 이상이 발생하였을 때 투자자 측 기술자가 언제든지 공화국 입출국 보장이 되어야 한다.

5).골뱅이 배가 준비된 후 투자자측 선원이 공화국 목적 항구 까지 항해하여 선박장비에 대한 인수인계 및 선박운항과 조업에 대한 토론을 하고 그 선원들이 안전하게 귀국하는데 적극 협조한다.

2. 사업투자 예상 항목 및 자금
1)선박 및 어구(1척) USD300,000—
선박 : USD2000,000—
어구 : USD100,000—
육상 가공시설 : USD50,000—
50G/T금,300마력,빙장선

**육상 가공시설USD50,000—
*세척기, 자숙기, 탈각기, 각 1대씩 냉동 팬 15kg 300개-
푸라스틱 바구니 100개

총 투자금액 USD350,000—

2)육상 가공 방법
1.기본적으로 양육 항에 급속 냉동 시설 및 보관할 수 있는 냉장고가 필요함
2.골뱅이를 어선에서 육상에 양육하면 세척 후 자숙하고 난 뒤 탈각하고 다시 세척하여 잔 껍질을 완전 제거한 뒤
5kg, 10kg, 15kg 단위로 급속 동결을 시켜야 한다.
3.동결 후 제품은 냉장고에 보관해야함.(섭시-40도)
어느 정도 제품이 모여지면 운반선이 싣고 올 것임

3)조사확인 사항
1.육상에 급동 시설 및 보관냉장고가 있는지
2.빙장선 이므로 얼음 공급이 가능한지
3.선박의 유류 공급이 가능한지
4.골뱅이 잡이 경험션원의 확보
5.어장의 조업시기와 어장 위치
6.대성무역 제3상사가 책임지고 본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지
7.투자회수에 대한 보장은 약 3년 내로 회수가능한지

4)골뱅이 잡이에 필요한 자료(백고동:백골뱅이)
1.어장—동해안 근해 5-12 mile 등심선 따라 조업, 수심 200-300m
2.어기—년중이나 2월부터 7월이 성어시임(살이 단단하고 수율이 양호함. 수율 약 22%)
3.사용통발수량—1,000개 2교대 조업, 예비 500개.
4.미끼(Bait)—주로 정어리를 사용하나 고등어, 청어도 가끔사용함.
5.처리방법—조업선박에서는 빙장처리
6.조업선원—10명 정도
7.조업기간—??
8.하루 생산량—??
9.어법—통발간격 : 8m, Main Line : 20m P/P, 양 끝에 Buoy설치,
투승/양승 시간은 일정치 않으며, 양승은 투승시간의 3배정도 시간이 소요됨.

북한 대성총국에서 선박장비와 급한 대로 우선 어구 일체를 보내주면 조업을 시작할 수 있겠다는 연락이 왔다. 어구 준비 차 서울에 도착 포항에서 통발 견본을 구해 8일 만에 평양에 도착했다.(통발의 크기 지름 밑 부분 1.5m, 아랫부분 1.0m, 높이 0.5m 원통형이며 이것을 위에서 아래로 눌러 그대로 가져감)

투자하고 나면 북한 관리들 입장 딱 바꿔

다음날 평양 출발 김책에 도착했다. 우선 게통발을 개조하여 시험조업을 내보내는 데 일주일이 걸렸다. 골뱅이 잡이는 고등어나 정어리를 ‘미끼’로 고기 토막을 주머니에 싸서 통발 안에 달아두면 그 냄새를 맡고 골뱅이들이 통발 안으로 모여든다. 시험조업이라 내가 직접 승선하여 어장에 나가 조업지도를 해 주겠다 하였으나 거절당했다. 그리고 반 강제로 평양으로 돌아왔다.

이제 조업가능성 여부는 보고서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5일 후 조업 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계약을 했다.

미국으로 돌아와 신용장관계로 한국의 수입업자와 의논하여 동경소재 일본냉동주식회사에서 신용장을 개설했다
(참고: 당시 미국이나 한국은 북한으로 직접 신용장을 개설 할 수 없었음).

그런데 2개월이 지나도록 북한에서 중간 어획보고가 없다. 약속대로라면 아무리 어장상태가 불황이라도 50톤은 잡았다는 연락이 와야 하는데 소식이 없었다.

그 당시에는 북한에 FAX도 없고, 또 미국에서 직접통신 연락이 되는 것도 아니었다. 캐나다를 경유하여 북한의 중앙통신소로 텔렉스를 보내면 (이것도 영어 알파벳으로 한글 식 문장으로 만들어 텔렉스를 보냄) 중앙통신소에서 며칠을 묵고 통신 내용을 사전검색해서 아무런 이상이 없으면 대성총국으로 연락을 해줬다.

대성총국은 그때 비로소 통신을 찾으러 가게 되니 이것이 빨라야 일주일 이상 소요되고, 또 이에 대한 회신을 보내려면 똑 같은 역과정을 거쳐야 했다. 어떤 때는 의사소통 한번 하는데도 빨라야 3~4주 정도는 그냥 지나가기도 했다.

김책에서 통발어구 만드는 방법과 잡는 방법 그리고 어장선택방법, 선상에서의 제품취급요령 등 현지지도를 하고, 그 동안 골뱅이를 잡지 않아 바다 밑에 많이 깔려 있으니 열심히 잡으면 다른 어업보다 쉽게 외화 벌이를 할 수 있다는 격려도 해주고 돌아왔는데 소식 없어 답답했다.

한 달을 더 기다렸다. 궁금해서 연락을 하니 회답도 없다. 계속 무소식이다. 신용장은 처음 3개월에서 아예 1년으로 연장을 했다. 답답해서 또 먼 길을 나섰다. 평양에 도착하니 9월 하순, 대성총국 제3무역상사(북한의 공식 명칭은 대성총국 제 3국이다) 사장(김호만)은 김책 출장중이라고 없었다.

끝내 약속을 지키지 않는 담당자

담당 과장급인 책임 지도원(리성동)을 만났다. 어떻게 돌아가느냐고 물었다. 며칠 후에 사장이 오니 만나봐야 알겠단다.
골뱅이 어장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었다. 나는 1989년 1월 평양방문을 시작으로 1년 동안 무려 6번을 그 머나먼 미국에서 오고 가고 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마치 내가 옆집에서 온 것처럼 애가 타는 것도 없이 담당 사장이 없어 별 방법이 없다는 듯 무성의하다.

출장에서 돌아온 사장을 만난 것은 이날부터 5일 후였다. 만나본 사장은 현재 30톤을 잡아 냉동 창고에 있단다. 왜 그것밖에 못 잡았냐고 물었더니 대답이 없다. 그냥 사정이 좀 있어서 그렇단다.

사업은 신용이 가장 중요한데 처음부터 약속대로 안 되면 어떻게 사업을 추진할 수 있겠으며, 모든 것이 다 불편한데도 (북한 경제에) 뭔가 도움이 될까 하고 열심히 다니는데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묻고 싶다고 했다. 다음날 오후 늦게 호텔로 사장이 왔다. 앞으로 두 달 내로 100톤을 만들어 놓을 테니 일단 돌아가란다.

4개월 후에 연락이 왔다. 50톤을 완제품으로 만들어 냉동 창고에 보관하고 있는데 일본 어디로 보내면 되느냐고, 즉 수취인 회사를 알려 달라는 것이다. 기다리다 지쳤지만 한편으로는 반가워서 한국수입업자에게 연락을 했다. 북한에도 일본냉동으로 보내라고 연락을 했다. 또 한 달이 지났다.

일본 니가타로 보내면 일본회사에서 받아 다시 한국으로 수출품 원자재 형식으로 보내고, 한국에서는 보세구역 내에서 제품을 만들어 일본으로 다시 수출을 하면 일단 거래가 끝나는 것이었다.

보냈다는 연락만 기다리고 있는데, 이해하기 어려운 연락이 왔다. 운반선 회사에서 대성 제3무역상사와는 계약을 할 수 없고 화주와 운반선 계약을 직접 하겠다고 하니 평양으로 와서 계약을 하라는 것이었다.

“대성무역과 일본 도착 가격으로 계약을 했는데 무슨 소리냐?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니 대성에서 해결하고 하루속히 물건을 보내라”고 했다.(참고. 북한은 냉동운반선의 부족으로 냉동 물 운반에 어려움이 많다).

이유인즉 운반선 회사가 대성무역상사와 직접 계약을 하면 “인민폐”로 결제가 되기 때문에 외화벌이도 안되거니와 외화실적도 안 오른다는 이유였다. 참으로 이해가 안 되는 이유였다.(계속)

김찬구 /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연구위원

<필자약력> -경남 진주사범학교 졸업 -국립 부산수산대학교 졸업, -LA 동국로얄 한의과대학졸업, 미국침구한의사, 중국 국제침구의사. 원양어선 선장 -1976년 미국 이민, 재미교포 선장 1호 -(주) 엘칸토 북한담당 고문 -평양 순평완구회사 회장-평양 광명성 농산물식품회사 회장 -(사) 민간남북경협교류협의회 정책분과위원 -통일부 통일교육위원 -경남대 북한대학원 졸업-북한학 석사. -세계화랑검도 총연맹 상임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