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주자들, 北인권법 마비에도 수수방관…진정성 의구심”

어제자(2일)로 첫 돌을 맞은 북한인권법에 대해 날선 평가가 쏟아지고 있다. 2005년 첫 발의 후 무려 11년 만에 만장일치로 본회의를 통과해 기대를 모았지만, 그 이후엔 국회가 정쟁에 빠져 법안 시행에 발목을 잡았다.

특히 법안의 주요 골자인 북한인권재단은 상근 이사직을 둘러싼 여야 간 싸움에 출범조차 못 하고 있다. 재단 이사진 12명 중 통일부 장관이 2명을, 여야가 각각 5명씩 추천해야 하나 야당이 아직까지 4명의 이사 추천을 거부하고 있어 재단 출범은 깜깜무소식이다.

김태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대표, 사진)는 2일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인권법에서 명문화해 놓은 북한인권재단 출범에 야당이 이렇게까지 비협조로 나올 줄은 예상치 못했다”면서 “법안 통과에 찬성했던 사람들이 되레 법을 위반하고 있다. 징계나 탄핵감이 아닌가”라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유엔이 2003년부터 북한인권결의안을 계속 채택하고,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설립한 게 누구 힘으로 된 것인가. 정부만이 아닌, 북한인권 NGO들의 역할이 컸다”면서 “그런데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이념화돼 있어서 북한인권이라 하면 ‘극우’ ‘극보수’ 라는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북한인권은 본래 진보적인 가치다.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 정국으로 국내 정세가 요동치면서 국회에서 북한인권법이 후순위로 밀리고 있는 데도 우려를 표했다. 특히 조기 대선을 염두에 둔 대권주자들이 정작 북한인권법 시행 문제에는 수수방관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 변호사는 “마이클 커비 전 COI 위원장까지 모시고 2일 북한인권법 통과 1주년 세미나를 하는데, 다음 대선 후보라고 자신하던 의원들이 단 한 명도 초청에 응하지 않았다”면서 “그들이 과연 민주주의나 인권을 운운할 자격이 있는 사람들인지 진정성이 의심스럽다”고 비판했다.

그는 “북한 주민도 헌법상 우리 국민이다. 2400만 국민이 인권 탄압에 시달리고 있는데, 이들의 인권은 경시한 채 말로만 민주주의니 인권이니 운운하는 건 포퓰리즘”이라면서 “대한민국 주재 외교 사절들이 세미나에 대거 참석해 자리를 지킨 데 비해 대권주자라는 이들이 얼굴도 비치지 않는 걸 보고 너무나 부끄러웠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매주 광화문에서 촛불과 태극기 집회가 서로를 향해 분노하고 있는데, 북한인권을 향해서는 촛불이고 태극기고 모두 힘을 합쳐 한 목소리를 내야 한다”면서 “북한인권에 분노할 수 있어야 한다. 시민사회가 먼저 깨어나 북한인권에 목소리를 내야 정치인들도 그 함성이 무서워서라도 함께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권 측면에서 본다면 한반도는 도덕적 위기에 처해 있다. 1990년대 말 북한에서 대기근으로 300만 명이 굶어죽었고 수십만이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는데 그걸 보고도 분노할 줄을 모른다”면서 “2400만 북한 주민의 고통에 분노하지 않는 한 우리는 이류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음은 김태훈 법무법인 화우 변호사와의 인터뷰 전문]

– 야당이 북한인권재단 이사 추천을 미루면서 재단 출범이 깜깜무소식이다. 마냥 기다릴 수밖에 없나.

아무도 예상치 못한 사태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됐고,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키라고 명문화했다. 상식이라면 당연히 재단 설립에 주력해야 한다. 야당은 지금 법을 위반하는 것이다. 법 위반 시 누구나 그래야 하는 것처럼, 이건 징계와 탄핵감이다.

– 정부는 이사진 추천이 완료되지 않더라도 재단 출범부터 하는 방안을 고민해보겠단 입장이다.

북한인권재단의 헤드 쿼터가 이사회인데 그게 무슨 의미가 있나. 이사회가 의결을 해야 정책이 집행되는데, 이사회 없이 재단이 잘 운영될까.

– 본래 북한인권재단이 해야 할 일은 무엇인가.

재단의 본질은 북한인권운동에 앞장섰던 단체들을 지원하는 것이다. NGO들과 국기기관인 통일부 사이의 가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재단 지원이 시작되면, 정부 차원에서 진행하기엔 껄끄러운 부분을 NGO들이 대신 진행할 수도 있다. 정부가 남북관계 등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했던 대북 정보유입 혹은 정보 수집을 NGO들이 담당하는 식이다. 비록 법안에 대북 정보유입 조항이 없긴 하지만, 명문화 돼 있지 않을 뿐 반대하는 건 아니지 않나. 결국 재단의 의지에 달린 셈이다.

– 재단이 출범하더라도 지원금 배분 문제라는 또 하나의 산이 있다. 일각에선 벌써 특정 북한인권 단체들을 ‘극우’라 왜곡하며 제동을 거는 모습이다.

우리 사회는 지나치게 이념화돼 있어서 북한인권이라 하면 ‘극우’ ‘극보수’ 라는 색안경부터 끼고 본다. 정부 지원은 물론, 기업들도 지원 요청에 두 손 들고 피한다. 북한인권은 본래 진보적인 가치다. 창피한 줄 알아야 한다.

유엔이 2003년부터 북한인권결의안을 계속 채택하고, 북한인권조사위원회(COI)를 설립한 게 누구 힘으로 된 것인가? 정부 힘만으로 된 게 아니다. 비정부기구(NGO)의 역할이 컸다. 이들은 누가 시켜서가 아닌, 자발적으로 나서서 북한인권운동을 전개해왔다. NGO 지원 인프라가 잘 돼 있는 선진국과 달리, 한국은 상황이 너무 열악하다.

– 시국이 뒤숭숭해 국회에서도 북한인권법이 우선순위가 아닌 듯하다.

북한인권법 통과 1주년 기념 세미나를 열면서 이른바 대선 후보들이라는 사람들을 초청했다. 세미나에 참석해 북한인권법 시행이 시급하다는 걸 이야기해달라고 했다. 하지만 끝내 아무도 오지 않았다. 이들이 정말 인권이나 민주주의를 운운할 수 있는 사람들인지, 진정성에 의심이 간다.

2400만 북한 주민도 헌법상 우리 국민이다. 이들이 당장 인권 탄압에 시달리고 있고, 그 위에 있는 독재자는 자기 이복형까지 대낮에 암살할 만큼 잔혹한 사람이다. 여기에 일절 관심 없는 정치인들이 어떻게 대선 후보가 될 수 있나.

국민들도 잘 판단해야 한다. 대권 주자들이 나와 인권이고 민주주의고 떠들어도, 그들이 정말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살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포퓰리즘에 넘어가게 된다. 대한민국 주재 외교 사절들이 세미나에 대거 참석할 동안 대권 주자라는 사람들이 얼굴도 비치지 않는다니… 창피한 일이다.

– 어떻게 하면 정치권을 움직일 수 있나.

시민이 깨어나야 한다. 정치권이 국민을 무서워해 결국 함께 북한인권에 목소리를 내게끔 해야 한다. 이제까지 시민사회가 힘겹게 북한인권운동을 이어왔는데, 앞으로도 당분간은 풀뿌리처럼 계속 힘을 합쳐야 할 것 같다.

3·1절에 광화문에서 촛불과 태극기 집회가 동시에 열리더라. 국민들이 서로를 향해서 마구 분노하던데, 북한인권을 향해서는 같은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대립할 힘을 모아서 북한 정권에 한 목소리를 냈으면 한다. 대통령 탄핵이 되든 안 되든, 정권이 바뀌든 안 바뀌든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과 정성은 계속돼야 한다.

– 그나마 북한인권기록센터과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법안에 의해 설립됐다. 1년간의 활동을 평가해본다면?

두 기관이 설립돼 움직이기 시작한 건 고무적인 일이다. 다만 북한인권기록센터와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이원화해 놓은 건 그다지 바람직하지 않다. 원래대로라면, 법무부와 국가인권위원회 등 조사기관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맡았어야 한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말 그대로 북한 내 반(反)인도범죄, 북한인권 침해 사례를 조사하고 수사해야 하지 않나. 당연히 수사 기관이 이를 도맡아야 한다.

그런데 통일부에 북한인권기록센터라는 것을 따로 두니 업무가 그다지 효율적이지 않다. 게다가 통일부에게는 북한과의 대화·협력 방안까지 고민하라 하면서 인권 조사까지 맡기니 제대로 되겠나. 법안에 북한과의 대화를 강제해놓은 것도 문제다. 

– 남북대화는 법률상으로 명문화해놓을 만한 사항이 아니라는 얘긴가.

남북관계는 대북정책 일환으로 상황에 맞춰 하면 되는 것이지, 그것을 의무적으로 하도록 하는 건 무의미하다. 의무조항으로 두기 보다는, 대북 부서에 재량권을 넘겨 대화가 가능할 때 하게끔 해야 한다. 주민들을 탄압하고 대화 제의에 응하지도 않는 상대와 뭘 그렇게 의무적으로 대화하려고 하나.

인도적 지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남북교류협력법에 이미 명시돼 있는 내용을 왜 북한인권법에 넣나. 인권 압박도 하고 인권 대화도 하고, 거기에 지원까지 하라 하니 상충되는 게 너무 많은 것이다.

– 인도적 지원은 인권 범주에 포함되는 게 아닌가? 

인도적 지원이야말로 대북정책의 일환으로 하면 된다. 법에 의해 인도적 지원을 ‘인권’이라 강제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사실 지금도 주민들을 돕기 싫어서 지원을 끊은 상태는 아니지 않나. 북한 정권이 몽땅 가로채니 지원이 소용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게다가 이제는 북한 내부가 장마당으로 돌아가기 때문에 예전처럼 먹거리나 물품이 아주 부족한 건 아니다. 수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그대로인 건 자유권 박탈 상태다. 자유부터 되찾아주는 게 근본적 인권 개선이다.

– 법안 시행 과정은 물론 법안 내용까지 많은 지적을 했다. 미흡한 법안으로 북한을 압박할 수 있을까.

다행히 북한인권법은 존재 자체로 상징성을 갖는다. 북한에 물론 상당한 압박이 된다. 법안 통과 직후 북한은 각종 대내외 선전매체들로 남한이 내정간섭을 하느니 하며 격한 반응을 보였다. 남한에서 자신들의 범죄와 비리를 모조리 기록한다는 것은 북한 정권에게 분명 상당한 압박이 된다.

– 2년 차에 접어드는 북한인권법의 방향성을 제시해준다면.

한반도는 지금 도덕적 위기에 처해있다. 1990년대 말 북한에서 300만 명이 굶어죽었고, 수십만 명이 정치범수용소로 사라졌는데 그런 걸 보면서도 분노할 줄을 모른다. 3·1절을 맞아 촛불과 태극기가 대립했던 것, 그것만이 참다운 분노인가? 2400만 북한 주민의 고통을 외면한 채 분노할 줄 모른다면, 우리는 영원히 이류 국가로 남을 수밖에 없다.

대한민국은 법치국가다. 제정해놓은 북한인권법, 당연히 지켜야 한다. 국제사회가 한국에 거는 기대가 크다. 김정은을 국제형사재판소에 회부해야 한다는 등 다양한 논의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은 아직 시류에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가일층 분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