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관자 자청 韓정부, ‘북한인권법’ 이끌 의지 있나?”

11년째 우리 국회에서 잠들어 있었던 북한인권법 통과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 커지면서, 지난 20년간 민간에서 참혹한 북한인권 유린 실태를 조사해 온 북한인권정보센터(NKDB)의 역할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 2003년 설립된 NKDB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개선과 북한인권침해(과거사) 청산을 주요 목표로 북한인권침해 실태조사, 북한인권 피해자 보호와 정착 지원 등 활발한 활동을 벌여왔다. 

특히 NKDB는 북한인권침해 기록 데이터베이스(DB) 구축 및 관리가 절실하다는 점을 오래전부터 인지하고,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운영을 통해 꾸준히 실천해 왔다. 국내에 입국한 탈북민들의 전수조사를 통해 3만 명의 인물 파일, 5만 6000여 건에 이르는 북한인권 침해 관련 파일을 집대성했던 것이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사진)은 최근 데일리NK와의 인터뷰에서 “탈북민를 포함한 많은 개인·단체들이 한국 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토양 조성이라는 ‘건강한 숲’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면서 “북한인권법은 그 숲을 구성하는 튼튼한 한 그루의 나무”라고 전했다.

그는 “북한인권법 통과가 (아직 통과되지 않았지만) 이렇게 오래 걸릴지 예상하지 못했다”면서 “북한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시각차·한국 사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무관심·정부의 방치 등 여러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오랜 시간이 걸린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사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무관심을 “절벽과 같다”고 비유하기도 했다. 그는 “합리적인 정보와 객관적인 데이터를 통해 북한의 인권상황이 나쁘다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겠다”는 의식이 팽배해 관련활동이 위축됐었다고 지적했다.

윤 소장은 ‘남북한 체제 대결’ 이란 프레임이 한국 사회 내에서 ‘북한인권’에 대한 목소리마저도 억누르고 있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북한 주민들에 대한 ‘인권의식’이 한국에서 발현되지 않는 까닭은 “‘북한’과 연관된 어떤 언급도 금기시됐던 과거의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에서 한국 사회가 여전히 벗어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윤 소장은 또 북한인권법 관련 정부의 움직임에도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북한인권법 통과가 가시화되면서 정부 내 부처 들이 그동안의 민간의 노력을 배재한 채 정부 주도로 북한인권법 통과 이후의 상황을 논하고 있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주장이다.

그는 “국가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면서도 “그동안 열악한 환경 속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일 해온 북한인권단체·탈북민 등이 배제될 수 있는 구조에 우려를 표한다”고 토로했다.

그러면서 윤 소장은 “정부가 북한인권법 향후 조치 관련해서 앞장서는 것은 실무적 차원에서 존중한다”면서도 “기존의 민간 활동역량이 위축되지 않도록 상호·협동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면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신규로 통일부 산하에 설치한다는 움직임과 관련, 윤 소장은 “NKDB가 지난 20년간 전문성을 가지고 축적된 역량을 통해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을 해온 것이 아니냐”면서 “위탁 등의 방법으로 정부와 민간이 북한인권 침해 사례를 수집·조사하는 것이 연속성·효율성 측면에서도 더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그는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향후 역할에 대해 “(인권탄압)가해자인 북한당국과 직접적 피해자인 주민들이 북한에 있는 상황에서 이들에 대한 처벌 혹은 보상에 대한 논의를 할 결정권이 현재 한국 사회에는 없다”면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통일 전·후 과정에서)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이러한 결정이 내려질 때를 대비해서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는 기관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윤 소장은 또 “북한인권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할 의지가 있었다면 법을 만들지 않고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었다”면서 “기록보존소도 만들 수 있었고, 재단도 만들 수 있었지만 정부의 의지가 없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북한인권법을 만들면 북한인권이 개선된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이제 시작도 안 된 것”이라면서 “앞으로는 얼마나 진정성 있게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게 됐다. 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하는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다음은 인터뷰 전문)

-어느 때보다도 북한인권법 통과 가능성이 높아졌다. 북한인권정보센터(NKDB)를 포함해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활동해온 많은 분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가 온 것 같다. 그동안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한) 노력들에 대해 소개 부탁한다.

우선 북한인권활동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 상황이 매우 열악한 처지에 놓여 있다는 상황 인식에서 출발했다. 이런 내용을 알리는 것이 ‘북한인권활동’의 본질이고, 이를 위해서 많은 단체들이 다층적인 노력을 해 왔다.

우선 1차적인 방법으로 열악한 북한인권 상황을 (국내외에) 알리는 노력을 해 왔다. 북한인권법 통과를 위한 여론 조성을 위해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단체들이 그런 노력을 했다고 말할 수 있다. 2차적인 방법은 북한 주민들의 인권을 개선하려고 시도했던 연구자나 연구기관들의 노력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인권법도 2차적 노력의 과정에서 하나의 방법으로 나온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3차적인 방법으로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기 위해서 직접적으로 입법 활동을 하거나 입법 활동을 촉구하는 기관의 노력을 꼽을 수 있겠다.

비유하자면 각 개인·단체들은 한국 사회에서 북한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토양 조성이라는 ‘건강한 숲’을 만드는 작업을 해왔다. 북한인권법은 그 숲을 구성하는 튼튼한 한 그루의 나무라고 보면 된다. 그 한 그루를 가꾸고 꽃을 피워 내는 역할을 목표로 해 온 개인·단체들이 그 동안의 노력을 해온 것이다.

-그 숲을 만들고 한 그루의 나무를 길러내기 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물론 지금도 북한인권법이 통과된 상황이 아니지만). 법이 처음 발의되고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통과되지 못할 것이라고 예상했나?

예상 못했다. 한국에서 김문수 의원(당시 한나라당)이 2005년 ‘북한인권법’을 처음 발의했을 때 한국 사회에 ‘북한인권’과 ‘북한인권법’ 통과에 대한 공감대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북한인권법이 미국에서 먼저 2004년에 통과됐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통과되고 그 이후 한국에서 김 의원이 발의한 것이니까 ‘북한 주민의 인권’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황무지 같은 상태가 아니었다. 또 우리는 무엇보다 당사자 국가이기 때문에 이렇게 오래 걸릴 것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결국 여야 간에 갈등·한국 사회 북한인권에 대한 무관심·정부의 방치 등 여러 요인들이 맞물리면서 처음에 예상했던 것보다 긴 시간을 끌어온 거라고 본다.

-11년째 국회에 계류 중이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지 않고 있는 근본적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나?

근본적 이유는 한국 사회의 인권 감수성이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인권 감수성? 과거 한국 사회에서 인권에 대한 탄압도 많았다. 북한의 인권 개선에 대한 공감대가 형성되지 않는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가지 않는데?

탄압을 받아서 인권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과 인권 자체에 대한 감수성이 높은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한마디로 탄압을 받아서 인권에 대한 의식이 높은 것은 감수성이 아니다.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라고 하는 것은 제3자·3세계에서 타인의 삶에서 인권 침해가 나타나는 것을 보고 인권의식을 갖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사회가 가지고 있는 인권에 대한 의식은 (비유하자면) 과거에 맞아서 아픈 기억 때문이다. 감수성은 맞지 않고서도, 내가 피해의 체험자가 아님에도 인권에 대한 의식을 갖는 것을 말한다.

사실 인권 탄압의 피해자·당사자들이 문제를 제기해서 해결하는 방식은 후진국형이다. 이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는 후진국형 인권의식 구조를 가지고 있다. 전후 납북자들이 직접 나서 납북단체를 만들고 또 피해보상을 위한 법이 만들어지는 시스템은 감수성과 전혀 상관이 없다.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당사자가 말하는 것은 감수성이 아니란 말인가?

그렇다. 맞은 사람이(피해자가) 자기의 상처를 가지고 저항하고 이것을 억울하다고 풀어달라고 하는 것은 신원(伸寃)이다. 억울함을 풀어달라고 하는 것, 그러니까 한을 푸는 것은 인권이 아니다.

이를테면 팔레스타인 등지에서 전쟁으로 피해를 입은 분들의 상처, 내가 직접 피해를 입은 당사자가 아님에도 이런 분들의 삶에 관심을 가지는 것, 이런 조건에서 인권 문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관심을 보이면 이것이 바로 인권의식이다. 그런 관점에서 한국의 인권 의식은 매우 낮다. 북한인권 문제도 어떻게 보면 내가 직접적인 피해자가 아니기 때문에 감수성이 없는 것이다.

-국제 사회의 북한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오히려 한국 사회 내 북한인권 활동을 촉진시킨 것 같다고 생각하는지?

사실이다. 오히려 유엔·국제사회가 북한인권 문제를 주도적으로 다루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논의가 활성화 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사자 국가인 한국이 못하는데 외부세계가 북한인권 문제를 거론하는 것을 보고 일종의 부담감을 느낀 것이다. 한편으론 우리 사회가 부끄러워했던 측면도 큰 것 같다.

직접적으로 관계없는 서방세계가 나서는데, ‘왜 우리는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목소리가 없는가에 대한 자기비판. 그것에 대한 부끄러움’. 북한 인민들의 고통을 이해했다기보다는 부끄러움이 북한인권 운동을 촉발시켰다고 볼 수 있다.

-국제사회가 북한인권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가 무엇이라고 보나?

서방세계가 북한인권의 참혹상을 알기 시작하면서다.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상황이 나빠지면서 중국으로 대규모 탈북민이 넘어갔다. 또한 이들 탈북민에 대한 강제 송환 문제가 국제 사회의 이슈가 되고 이런 사건들이 주요 매체들을 통해서 알려지면서 서방세계가 북한인권에 대해 주목하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탈북민들이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사건(2002년)을 들 수 있다. 이 사건이 북한인권에 대한 국제 사회의 관심을 확산시켰고 결국 유엔인권이사회에서 대북결의안을 처음 통과(2003년)시켰던 바탕이 되기도 했다.

인권 감수성을 가진 서방세계가 북한에 대한 정보를 접하기 시작하면서 북한인권에 대한 관심이 생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이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정보가 있음에도 북한의 인권을 외면했던 것과는 달리 국제 사회는 부족한 정보를 확충해가면서 북한에 대한 인식을 확대했다고 보면 된다.

-인권에 대한 감수성이 부족한(북한인권 문제를 외면한)한국 사회에서 북한인권운동을 하는 것 자체가 힘들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힘들었던 것이 뭔가?

역시 가장 큰 어려움은 무관심이었다. 또 극복해야 할 난관이기도 하다. 북한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국민들의 무관심은 여론의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고 이것은 정부와 정치권의 무관심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따라서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지 않았던 것에 대해서 정부만을 탓할 수 없다고 본다. 국민들이 관심과 의지가 있었다면 정부는 북한인권법을 벌써 통과시켰을 것이다. 국민들의 의지가 여론을 형성했을 것이고 결국 정부는 이를 따를 수밖에 없었을 테니까.

따라서 철저한 국민의 무관심 속에서 북한인권활동·단체활동이 어려웠다. 말해도 귀를 기울여 듣는 이가 없었고, 후원을 받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고립된 여건에서 인권운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북한인권에 대한 한국 사회의 무관심이 감수성 문제만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 기본적으로 인권 감수성이 약한데다가 무엇인가 (북한인권을 말하지 않으려고 하는) 의도성이 있다고 본다. 참혹한 북한인권의 상황을 정리하고·계량화하고·감정적으로 호소하는데도 불구하고 무관심이 개선되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무관심·외면하거나 혹은 다른 가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강박 같은 것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니까 남북 화해 협력·북한에 대한 지원, 이런 가치를 북한 주민의 인권보다 무조건 상위에 둬야한다는 그런 인식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이야기 하는 것은 이런 가치에 위배된다고 보는 인식이 의도적인 외면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인권을 말하는 것 자체가 정말 어려울 것 같은데?

이런 상황을 ‘절벽’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절벽과 같은 느낌을 받는 것이다. 종교적 신념과 비슷한 수준의 것들이 (한국 사회에) 내재화 되어 있는 것 같다. 이를테면 “합리적인 정보와 객관적인 데이터를 보고 북한의 인권상황이 나쁘다는 것은 이해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행동은 하지 않겠다”, 이런 의식이 팽배해 있기 때문에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것이고 활동도 위축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남북한 체제 대결이란 전유물이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본다. 물론 이 기저에는 레드 콤플렉스(Red Complex)도 작용했을 것이다.

-어려운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NKDB는 북한인권 관련 일을 꾸준히 해 왔다. 북한인권 상황에 대한 책도 발간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일단 NKDB는 기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겪는 인권 피해를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기록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충실하게 신뢰할 수 있는 정보를 기록해서 학술적인 분석, 특히 계량화한 방법으로 정리 분석해서 그것을 독자들(정부를 포함한 외부세계에) 전달하는 것이 모토다. NKDB에서 발간되는 모든 책은 이 목표를 가지고 있다.

발간된 모든 책의 내용은 NKDB가 실시한 탈북민분들의 전수 인터뷰 내용을 바탕으로 한다. (NKDB는 기본적으로 국내에 들어오는 탈북민 모두를 전수 인터뷰를 한다. 탈북민들이 국내에 들어오면 입국 초기에 어린 아이를 빼고 전수조사를 한다. 또한 인터뷰 내용을 데이터베스화해서 관리해 오고 있다. 3만여 명의 인물 파일, 5만 6천 건에 관한 사건이 DB화 되어 있다고 한다).

이런 내용을 바탕으로 상황에 따라서 외부세계에 알려야 할 사실들을 정리하고 (그것과 관련된) 필요한 정보를 가진 탈북민들을 찾아서 추가적인 심층 인터뷰를 진행해서 책을 발간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북한 ‘교화소’ 관련 총서도 발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총서를 발간한 것은 이제는 단순하게 ‘북한인권이 나쁘다’ 수준의 정보로는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서이다. 1차적인 정보 전달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북한인권 상황이 얼마나 나쁜가’하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서 ‘교화소에 갇혀 있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 유린 실태가 심각하다’가 아니고 ‘교화소 중 강동 교화소의 실태는 이렇다’ 정도까지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총서는 북한 내 6개의 교화소의 실태를 7권의 총서로 발간한 것이다.



▲최근 NKDB가 발간한 북한 교화소 총서. /사진=단체 제공

-이처럼 북한 정권은 주민들에 대한 유린 상황이 구체적으로 드러난 지금도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지 않고 있다. 정치권에선 여전히 북한인권법에 들어갈 문구를 놓고 이견을 보이고 있는데, 여야의 입장차, 왜 존재한다고 보는가?

결국 북한인권과 관련한 우리 사회의 입장차를 정당이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정당은 그 나라 국민들의 정치를 대변하는 것인데, 대한민국 국민들이 양 쪽의 입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북한인권법 2조(기본 원칙 및 국가의 책무) 2항에 들어가 있던 ‘함께’라는 단어의 위치에 대한 입장차를 보이고 있는 상황. 새누리당은 “국가는 북한인권 증진 노력과 ‘함께’ 남북관계의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을 위한 방향으로도 노력해야 한다”는 문구를 주장하고 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국가는 북한인권 증진 노력을 남북관계 발전과 한반도에서의 평화 정착과 ‘함께’ 추진해야 한다”는 문구를 넣어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새누리당은 ‘남북관계’보다는 ‘인권’에 방점을 찍은 것이고, 더민주는 ‘남북관계’와 ‘인권’을 같은 비중으로 다루자고 주장하고 있다.)

-이쯤에서 본질적인 질문을 던져봐야 할 것 같다. 인권이란 무엇인가?

예를 들어보자. 우리가 저수지에 빠져서 죽어갈 때 “사람 살려”라고 외치지 않나. 그런 것이 바로 인권이다. 이 말이 인권을 가장 잘 표현하는 것이다. 성별·종교·학력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사람살려주세요” 라고 말하는 것 자체가 인권이다.

사람이라면 “살려 달라”는 소리를 들으면 누구나 반응하게 돼 있다. 그래서 천부적 인권이라고 부른다. 모든 사람이 천부적으로 그것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처럼 인권은 (무엇인가로부터)고통 받은 사람의 호소에 귀를 기울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사람이라면 그 호소를 듣게 되면 행동하게 된다. 그것이 인권이다.

-그런데, 인권이 정책(Policy)의 영역으로 들어가면 좀 달라지는 것 같다?

그렇다. 실제 정책 영역에 가면 인권은 절대적인 개념이 아니라 국가의 정책 중 일부분에 불과하게 된다. 국가의 정책은 국정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상·하위 목표로 구분되게 된다. 따라서 정책 영역에선 인권 정책도 하나의 정책에 불과하다. 그렇게 되면 국가의 이념 등에 따라서 인권 정책의 방향은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선순위에 따라서 인권 정책이 후순위로 밀리기도 한다.

인권 정책의 집행은 각 나라의 전통에 따라서 달라진다. 유럽처럼 인권의 본질적인 개념에 맞게 정책을 우선적으로 집행하는 국가도 있다. 그래서 유럽권 국가들이 인권문제를 제기하면 국제사회의 공감대가 커지기도 한다(이들 국가들은 정치·경제적 등의 가치를 배제하고 진지하게 인권 문제를 접근한다는 공감대가 국제 사회에 있다). 그런 면에서 미국은 (공감대가) 훨씬 약하다. 미국은 인권정책을 국가의 전략적 차원에서 의도를 가지고 활용한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한국은 어떤가?

한국도 유럽이 인권 정책을 집행하는 것처럼 방향성을 정할 필요가 있다. 이것이 모범적인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분단 상황에서 북한에 대한 언급하는 것 자체를 억압하고 통제해 왔기 때문이다. 정책에 대해서도 그런 억눌림이 있는 것 같다. 또 오히려 과거 인권 침해 피해를 입은 우리 지식인들이, 역(逆)으로 인권 정책을 펼침에 있어서도 제한성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북한인권법도 결국 정책의 영역이다. (통과되면) 한국 정부가 북한 주민들의 인권 개선을 위해 적극적으로 임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했다고 볼 수 있을까?

그동안 시민단체·인권단체가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했던 것이 “국가 단위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개선하는 노력을 해달라”였다. 왜냐하면 국가가 북한인권 문제와 관련해 너무 무관심하고 방치해 왔으니까.

그 하나의 수단과 방법이 북한인권법이었다. 정부는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서는 법제, 그러니까 근거가 있어야 한다면서 북한인권법이 통과가 안돼서 “(적극적인 노력을)못하겠다”는 말만 반복해 왔다. 그런데 이제 드디어 현실화되는 과정에 와 있다. 북한인권 개선과 관련해서 국가가 주무적인 역할을 할 수 있게 된 것이니까, 열심히 해야 한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면 북한인권재단과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통일부 산하에 만들자는 논의가 있다. 정부 주도적으로 북한인권 문제가 다뤄지면서 그동안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애써온 민간단체들의 노력이 배제됐다는 논란이 있는데?

그렇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국가 차원에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하지만 그동안 북한인권 문제 공론화라는 숲을 만들어 오고 토양을 가꾸어 북한인권법이란 나무를 가꾼 사람들, 그러니까 열악한 조건에서 일 해온 북한인권단체·탈북민 등이 배제될 수 있는 구조에 우려를 표하고 반발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법제화해서 앞장서는 것은 실무적 차원에서 존중한다. 하지만 나무를 심고 숲을 가꾸어 온 기존 활동역량을 위축시키지 않도록 상호·협동하는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모든 것을 정부 주도로 하게 되면 민간에서 해왔던 그동안의 일들이 계승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은 지난 20년간 NKDB가 해 오지 않았나. 통일부 산하에 신규로 설치하는 것보다 정부가 NKDB에 위탁하는 방법을 통해서 기존의 역량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일 수 있다고 보는데?

그렇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 그런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북한 정권이 북한 주민들에게 자행한 인권 유린 사례를 기록할 북한인권기록보존소가 없어서 신규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앞서 설명한 것처럼, NKDB는 20년 동안 탈북민들의 전수조사를 진행 해왔다. 탈북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15명의 연구원이 전문성을 가지고 객관적인 인권 침해 사실을 수집하고 국내외에 알려왔다. 연속성 측면에서 또 효율성 측면에서 민간의 영역을 활용하는 방법을 고려해야 한다. 질문한 것처럼 정부에서 민간 영역에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을 위탁시키는 것도 방안이다.

-NKDB의 그동안의 역할을 알게 되면, 앞으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도 유추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우선 NKDB의 사명을 말해주고 싶다. NKDB는 북한 주민들의 인권탄압에 대한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것에 일차적인 목적이 있었다. 물론 NKDB는 이 자료가 향후 어떻게 쓰일지 알지 못하고 결정할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다.

다만, 어떤 용도로도 쓰일 수 있도록 폭넓게 조사하고 연구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다. 그래서 체계적으로 5만 6천여 건의 피해기록을 DB화하고 있다. 그리고 이 자료를 잘 보관하고 있다가 활용할 수 있는 시점(이를테면 통일 전후 과정)에서 사회적 합의가 있을 때 이 자료를 공개할 것이다. 가해자를 용서할 수도 있고 처벌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그 당시 남북한 국민들이 결정할 것이다.

왜냐하면 지금의 한국 사회의 어느 누구도 이 자료를 사용하여 가해자와 피해자를 처벌 혹은 보상할 수 있는 권리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에겐 결정권이 없다.

-가해자인 북한 정권과 피해자인 북한 주민들의 목소리를 들어봐야 한다는 지적인가?

그렇다. 피해자·가해자 모두가 북한에 있지 않나? (여기도 물론 탈북하신 분들 일부가 있지만) 통일전후 과정에서 이들의 설명이 충분하게 반영된 조건에서 사회적 합의를 바탕으로 북한인권 탄압을 기록한 자료가 쓰여야 한다.

그때 남북한 주민들이 남아공의 사례처럼 가해자를 용서 할 수도 있고, 또 죗값을 물어 처벌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는 사회적 합의를 뒷받침할 수 있는 객관적인 자료를 수집하는 데 일차적인 목적을 둬야 한다.

-안타깝게도 우리사회에서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부족한 것 같다.

지적하고 싶은 부분이다. 한국 정부를 포함한 한국 사회는 그동안 북한인권 문제에 있어서 방관자나 다름없었다. 인권 탄압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북한에 있는 상황에서, 한국 사회가 북한인권법 등을 활용하여 피해자를 보상하고 가해자를 처벌한다는 등의 논의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어떤 자격·권한도 없다. 방관자가 어떤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따라서 지금 우리 사회가 해야 할 일은 통일 전·후를 대비해서 북한 정권의 인권 탄압에 대한 자료를 잘 축적하고 규모를 확대해 나가는 일이다. 용도는 나중에 사회적 합의를 통해서 결정될 테니까, 지금은 고려하지 않아도 된다. 따라서 어떻게 잘 자료를 조사하고 축적할지를 고민해야할 때에, 그 어느 누구도 이 점을 말하지 않고 있어서 안타깝다. 북한인권기록보존소를 어느 부서에 만들고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정확하게 기록하고 자료를 축적하는 것이 중요한 때이다.

-북한인권법을 폐기하자는 주장도 한 걸로 알고 있다.

그렇다. 오랜 시간 (통과가) 지연될 때 ‘폐기하자’는 주장도 폈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되지 않아서 제일 덕을 본 곳이 어딘 줄 아는가? 바로 정부다.

북한인권 개선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한다, 무엇을 해달라’고 요구했을 때 정부는 ‘북한인권법이 통과가 안 돼서 해줄 수가 있는 것이 없다’고 말해왔다. 정부 입장에서 최고의 명분이었고 이것이 10년 동안 보호막이 됐다.

그런데 사실 북한인권에 대해 정부가 관심을 가지고 할 의지가 있었다면 법을 만들지 않고서라도 할 수 있는 일이 많이 있었다. 기록보존소도 만들 수 있었고, 재단도 만들 수 있었다. 정부가 의지가 없었다. 그래서 북한인권법을 페기하자고 말한 거다. 이 법안 자체를 폐기하고 다른 방안을 통해서 재단과 기록보존소 설립을 제안하자고 했다. 하려고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방법은 있다.

-북한인권법이 통과되더라도 앞으로 많은 과제가 더 남아있을 것 같다.

그렇다. 북한인권법을 만들면 북한인권이 개선된다고 생각하면 절대 안 된다. 이제 시작의 시작도 안했다. 앞으로는 얼마나 진정성 있게 북한인권 개선을 위한 활동을 하는지가 더 중요하게 됐다. 정부가 어떻게 하는지를 잘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NKDB의 목표가 궁금하다.

우리는 그동안 해왔던 것처럼 기본에 충실할 것이다. 사실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의 역할을 민간에서 20년간 해왔다. 기본적으로 북한 주민들이 겪는 인권 피해를 객관적으로 충실하게 기록하겠다는 목적을 가지고 계속 우리의 사명을 수행할 것이다.

북한의 인권상황을 고발하기 위해 정치범수용소 관련 서적도 총서 형태로 발간해 나갈 계획이다. 교화소 관련 총서를 발간한 것처럼 앞으로도 단련대·집결소 등에 대한 총서를 발간할 예정이다. 이렇게 인권 유린 관련 부인할 수 없는 증거를 국제 사회에 알려서, 북한이 더 이상 부인할 수 없게 만들 것이다.

또한 한국 사회 내 통일을 준비하는 외교 방안 등을 모색하기 위해 ‘통일외교아카데미(전문과정)’을 개최할 예정이다. 매주 수요일 12주간 열릴 예정인데 ▲한반도 통일과 미국·중국·일본·러시아의 역할▲국제연합과 통일외교▲북한의 외교 정책과 현황▲독일 통일외교의 교훈▲북한 핵문제 해결 방안 등의 내용을 다룰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