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후유증은 어떤 것들이 있으며 얼마나 심각한가?

[염돈재의 독일통일 이야기] 경제적 후유증과 서독체제 적응과정에서 격게 된 사회적·심리적 후유증

'염돈재의 독일통일 이야기'는 1990년부터 3년 동안 독일 통일을 직접 목도(目睹)한 염 교수의 소중한 경험과 이를 통해 얻은 교훈 등으로 채워집니다. 2011년 염 교수가 집필한 '올바른 통일준비를 위한 독일통일의 과정과 교훈' 단행본 내용을 바탕으로 게재합니다. 총 50여회 계획으로 연재 중이며, 남북 분단에서 통일로 가는 과정에서 없어서는 안 될 교훈을 얻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해봅니다.

동서독은 45년 간 별개의 나라, 상이한 체제와 가치관 속에서 살아오다가 1989년 11월 9일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후 불과 8개월 만에 화폐·경제·사회통합이 이루어지고 다시 3개월 만에 통일이 이루어짐으로써 여러 가지 후유증을 겪게 되었다.

독일이 겪은 통일후유증 가운데서 경제적 후유증과 사회적·심리적 후유증이 가장 심각한 후유증으로 알려졌다. 경제적 후유증은 동독 재건과 동독 실업자의 생계지원에 예상보다 훨씬 많은 재원이 소요된 데서 비롯된 것이며, 사회적·심리적 후유증은 동독 주민들이 서독체제 적응과정에서 격게 된 어려움과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나 독일이 겪은 통일후유증은 대부분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기본질서를 위협하지 않는 가운데 이질적 체제 간의 통합과정에서 반드시 겪게 될 불가피한 후유증들이라고 볼 수 있다. 독일은 아직도 일부 갈등과 문제점이 존재하기는 하나 통일후유증을 대부분 극복했으며, 앞으로는 갈수록 점점 더 많은 통일의 혜택을 향유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경제적 후유증

독일통일 후유증 가운데 가장 심각한 후유증이 경제적 후유증이다. 통일비용 부담으로 성장률이 후퇴하고 재정적자가 격증한 데다. 통일비용의 절반 이상이 소비성 지출이기 때문이다. 통일독일은 1991년부터 2005년까지 15년 간 총 1조 4,000억 유로(약 2조 7,000억 마르크, 1,750조 원)의 통일비용을 지출했다. 매년 연방예산의 25~30%, 국내총생산(GDP)의 4~5%를 통일비용으로 지출한 것이며, 통일비용 가운데 실업급여 등 소비성 지출이 60%에 달해 통일독일의 경제를 어렵게 하는 요인이 되었다.

통일독일의 GDP 성장률 변화추세를 보면, <표1>에서와 같이 통일 전년도인 1989년 3.8%에 달하던 성장률이 1991년에는 동독지역의 마이너스 성장으로 0.6%로 하락했으나 1994년에는 동독 건설경기 활성화에 힘입어 5.1%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그러나 1996년 이후부터는 신연방주에 대한 이전지출의 증가로 성장률이 대폭 하락하기 시작하여 1996년부터 2005년까지 연간 성장률이 3%를 넘는 경우가 한 번도 없었다.

또 통일 전 서독은 유럽국가 중 가장 건전한 재정 상태를 유지해왔으나 통일 후 재정적자가 대폭 확대되어 1990년부터 2007년간 연평균 464억 유로의 재정적자를 기록했고, GDP 대비 재정 적자비율이 유럽연합이 규정한 상한선(GDP의 3%)보다 높은 경우가 많아 '유럽의 문제아' 또는 '유럽의 병자'라는 평가를 받았다.

통일 이후 통일비용 부담을 위해 2차에 걸쳐 한시적 세금인 「연대세」(連帶稅)를 신설하여 유류세, 보험료, 보험세, 연초세, 부가가치세 등을 인상하고 소득세, 법인세에 7.5%의 「연대부과금」을 부과하는 등 각종 세율과 보험료의 인상이 이어졌다. 통일 직후 월 5,000마르크의 소독을 가진 4인 가족 가정이 추가로 부담한 세금은 총소득의 2%, 월 100마르크(당시 환율로 약 5만원) 정도에 불과했으나 그 후 근로소득세가 5.5% 포인트, 부가가치세가 5% 포인트 인상된 데다 각종 보험료의 인상, 보험 및 감세 혜택의 축소 등이 이어져 가계를 압박하고 투자부진으로 이어지는 요인이 되었다.

그러나 독일은 2003년 이후 슈뢰더 정부가 사회적 시장경제 체제의 개혁, 즉 독일의 선진병 치유를 위한 「어젠더 2010」(Agenda 2010)에 착수한 후 경제상태가 급격히 호전되었다.

앞의 <표1>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2005년까지 1.5% 수준에 머물던 성장률이 2006년 3.5%에 달하여 12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를 앞질렀으며 2007년에는 유럽연합 국가로서는 유일하게 4%를 넘는 4.4%의 성장률을 달성했다. 2006년도 재정적자도 GDP의 2.7%로 2001년 이후 5년 만에 처음으로 마스트리히트 조약 상한선인 3% 이하로 떨어졌으며, 2008년 수출액이 1조 4,639억 달러에 달해 2003년 미국을 추월한 이후 6년 연속 세계 1위의 수출국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동서독 지역 간의 생산력 격차도 다소 완만하기는 하나 계속 좁혀지고 있다. 1992년 이후 2004년까지 신연방주 국내총생산(GDP)이 두 배 가까이 성장하여 1991년 통일독일의 국내총생산(GDP)에서 7%에 불과하던 비중이 2008년에는 11.7%로 상승했다.

<표2>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1991년 동독지역 취업자 1인당 GDP생산량은 서독지역의 35%에 불과했으나 2000년에는 72%, 2008년에는 79%에 달했다. 그리고 동독지역에서 자동차 1대 조립시간은 서독 31시간보다 훨씬 적은 20시간에 불과하다. 아직도 동·서독 지역 간의 격차해소에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독일경제는 통일후유증에서 거의 벗어나 과거 서독 수준의 활력을 되찾아가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사회적, 심리적 후유증

통일 이후 동서독 국민들이 모두 사회적, 심리적 후유증을 겪었다. 동독 주민들은 지난 45년간의 세월을 백지로 돌리고 시장보기에서부터 직업선택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체제에 적응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또 동독시절에는 공산권 가운데 가장 근면한 국민이라는 평가를 받았고 세계 10위의 공업국가라는 자부심을 가졌으나 통일 후 2등 국민의식과 실업의 공포에 시달려야 했다.

통일 후 대부분의 구동독 주민들이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유롭고 풍요한 생활을 향유하고 있다. 그러나 <표3>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2009년 동독지역 실업률은 13%로서 서독지역 6.9%의 2배 가까이 된다. 비록 생활수준은 동독시절보다 나아졌지만 특히 부부가 함께 실직한 가정과 10-10세대는 깊은 좌절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나 구동독지역 실업률은 2005년을 정점으로 지속적으로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어 앞으로 더욱 호전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표4>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구동독 주민들은 구서독 지역 주민들에 비해 보유재산 면에서도 큰 차이가 난다. 이는 근본적으로는 공산체제가 물려 준 불가피한 유산이지만, 동서독 주민 간의 재산격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을 것임을 시사한다. 따라서 아직도 동독주민들은 2등 국민 의식에 시달리거나 동독시절에 향수를 갖기도 한다. 이렇게 하여 ‘오스탈기’(Ostalgie)라는 말도 생겨났다.

그동안 동독지역에 대한 집중적 투자로 동서독 지역 간의 경제격차가 좁아지고 있기는 하나 아직도 통일 후 5년 내에 동독경제를 서독의 못사는 주 수준으로 향상시키겠다던 약속과는 거리가 멀다. 독일통일연례보고서에 의하면 2006년 신연방주의 1인당 소득은 서독지역의 67% 수준이고 납세능력은 37.8%, 근로자 수입은 77%에 불과하다. 따라서 볼프강 티펜제 건설부 장관의 언급대로 신연방주가 구연방주를 따라잡으려면 10년 내지 20년이 더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통일 후 동독지역의 인구도 계속 줄어들고 있다. 1991년 통일 직후에는 총 7,998만 명의 총 인구 가운데 동독지역 인구가 1,463만 명으로 18.2%를 차지했으나 2005년에는 1,339만 명으로 16.2%에 불과하다. 통일 이후 서독지역 인구는 373만 명이 증가한 반면, 동독지역은 125만 명이 감소한 것이다.

동독주민들의 불만도 줄어들지 않고 있다. <표5>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통일전과 현재의 상황을 비교하는 여론조사에서 구동독 주민들은 1999년에는 좋아졌다 65%, 나빠졌다 13%, 변함이 없다 22%였으나 2008년에는 좋아졌다는 응답이 54%로 줄고 나빠졌다는 응답이 21%로 증가하고 있다. 더 많은 지원을 기대하는 동독인들이 의도적으로 불만을 과장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으나 동독주민들이 여전히 불만에 차 있는 것은 사실인 것 같다.

 

그러나 신연방주 주민의 복지수준이 대폭 개선되어 구연방주 주민들과의 격차가 많이 좁혀지고 있다. 동독지역 노동자의 소득은 서독지역의 83%에 달하고 임금은 90%에 달한다. <표6>에서와 같이 1990년 신연방주 여자의 평균수명은 76.70세로 서독과 2.55세 차이가 났으나 2002년에는 81세로 12년 동안 평균 수명이 4.59세 높아지고 구서독 주민과의 격차도 0.34세로 줄어 들었다.

통일 이후 불만을 갖기는 서독주민들도 마찬가지다. 통일 전 콜 총리는 "누구도 더 나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약속했으나 통일비용 조달을 위해 각종 세금이 인상된 데다 통일 이후 경제, 복지 및 치안 문제 등에서 안정기반이 흔들리게 되자 미래를 불안하게 생각하기 시작했다. 앞서 지적한 바와 같이 통일초기에는 통일에 따른 조세부담이 크지 않았으나 시간이 갈수록 여러 가지 명목으로 세금이 인상되었다.

통일 후 15년 동안 지출된 통일비용 1조 4,000억 마르크는 구서독 주민 1인당 10만 유로(1억 2,500만 원)에 해당된다. 더욱이 통일비용 부담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인식이 높아지자 구서독지역 주민들도 통일비용 부담을 지켜워하기 시작했다. 이런 과정에서 동서독인들이 서로 상대를 비하하는 '오씨'(Ossi)와 '베씨'(Wessi)라는 용어도 생겨나고 동서독 주민간의 갈등도 깊어지게 되었다.

공식적인 여론조사에서는 동서독 주민이 모두 통일 이후의 생활에 불만을 가진 것으로 나타나지만 통일이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통일 후 구동독 주민들은 공산치하에서는 조금도 누릴 수 없었던 자유와 풍요를 향유하고 있다. 아직도 서독지역 주민들과의 격차 때문에 2등 국민으로 생각한다는 사람들이 많지만 메어켈 총리, 플라첵 사민당 당수, 티어제 전 연방하원 의장 등 동독 출신 인사들이 통일독일을 이끌고 있다. 때묻지 않고 항상 주민들 편에 선다는 점 때문에 동독 출신 정치인들 가운데 전국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정치인들이 많다.

1993년 10월 저명 일간지 「디 자이트」가 동독인 1,23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85%가 통일이 되어 매우 기쁘다고 응답한 반면, 통일이 안 되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경제 상태에 대해서도 좋다거나(62%) 그저 그렇다(31%)는 긍정적인 답변이 93%이고 나쁘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2000년 통일 10주년 계기로 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동독 주민의 91%가 통일후유증에 시달렸으나 75%가 통일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으며, 94%가 자유향유를 높이 평가했고 동독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다는 응답은 15%에 불과했다. 또한 구동독 주민 50%가 동서독 지역 간의 불균형 발전을 비판하면서도 85%가 이를 숙명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나 근래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엉뚱한 반응이 나타나기도 한다. 2008년 12월 여론조사 기관인 포르사(Forsa)가 구동독 주민 1,8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를 보면 현 상황이 통일 전보다 좋아졌는지에 대한 질문에서 좋아졌다는 답변이 54%에 불과했다. 통일이 이익이 되었느냐는 질문에서 이익이 됐다는 답변은 39%에 불과한 반면, 손해라는 응답이 12%,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응답이 49%에 달했다. 사정이 더 안 좋았던 1999년에 "좋아졌다"는 응답이 65%였던 점에 비추어 이례적인 결과이다.

동독지역 주민들은 억압과 빈곤으로 고통 받던 옛 시절을 까마득히 잊고 있는 것 같다. 더욱이 비슷한 시기에 공산치하에서 해방된 폴란드, 헝가리 등 다른 동유럽 국가 국민들에 비하면 구동독 주민들의 생활수준은 현격히 높다. 따라서 동독인들의 이런 답변은 상대적 빈곤감에서 비롯된 불만이거나 더 많은 정부지원을 받기 위한 의도적 답변으로 해석된다.

이러한 동서독 주민간의 갈등과 불만은 쉽게 해소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또 이러한 후유증은 '준비 없는 통일' 때문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분단'과 함께 잉태된 것으로 통일과정에서 반드시 겪어야 할 '통과의례'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통일 후 독일이 겪게 된 어려움이 "누구도 더 나빠지는 일이 없을 것"이라던 콜 총리의 말 때문에 비롯된 것처럼 모든 죄를 콜 총리에서 씌우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는다는 자성론도 많다. 이런 점에서 콜 총리가 통일 4주년 기념식에서 "서독의 풍요가 단 4년 동안에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을 동독인들이 납득할 때, 동독인들이 40년을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서독인들이 이해할 때에야 인간적 통일이 완성될 수 있을 것"이라고 언급한 것은 문제의 본질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일독일이 아직도 통일후유증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하고 있으나 통일 후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 체제의 기본질서를 위협하는 혼란이나 갈등은 전혀 없었다는 점은 특기할 만하다. 그리고 독일 사람들은 아직도 남아있는 문제점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나타날 수 있는 일반적인 문제들로 생각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독일국민은 지난 20년간 통일후유증을 대부분 극복하고 21세기에 더욱 부강하고 활력에 찬 나라를 만들어 갈 발판을 마련한 것으로 평가된다.

저작권자 ⓒ데일리NK(www.dailynk.com) 무단전재 배포금지
    본사는 한국신문윤리위원회의 인터넷신문 윤리강령을 준수합니다.
오탈자신고

염돈재

-(現)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 초빙교수
-(前) 성균관대학교 국가전략대학원장
국가정보원 제1차장
주 독일대사관 공사

관련기사
상대방에 대한 욕설 및 비방/도배글/광고 등은 삭제될 수 있습니다.
네티즌의견  총1
덧글 입력박스
덧글모듈
0 / 1200 bytes

이모티콘 캐나다 방랑자

한국의 통일과 독일의 통일을 단순-직접 비교하여 호불호를 결정하려는 잡문은 그 어떤 경우에도 아무런 가치를 갖지 못한다. 서로 살상의 경험이 없는 동서독의 소득 격차가 100대 80인 현재, 상대적인 빈곤의 차이로 불만이 역연하다.
반면에, 무서운 살상의 과거사를 가지고 있는 남북한은, 독일에 비하여 너무나 엄청난 빈부의 격차로 문제가 더욱 복잡해질 것이다. 그 혼란은 50년이 지난다 해도 쉬게 치유되지 못할 것이다. 그것이 또다른 분란을 만들 가능성이 크고, 결국 대한 민국은 언젠가 옛날의 3국 시대로 돌아가기 쉽다. 지금 형태의 3국 시대가 오히려 대한 민국으로서는 안전한 형편인 것이 분명하다. 너무 지나친 통일의 소망을 꿈꿔서는 안 된다. 지금 현재의 남쯕의 전라 공화국 하나도 콘트롤이 되지 않는 증상을 보라. 북한의 흡수는 그만큼 어렵고 힘겨운 다른 불씨 중의 하나이다. 이것은 다만 비관적-부정적 전망은 아니다.    | 수정 | X 
북한 당국에 묻고 싶습니다
김영환의 통일이야기(새창)
북한의 변화가 시작되는 순간데일리NK의 후원인이 돼주세요
아시아프레스 북한보도(새창)

OPINION

  • 많이 본 기사
  • TOP 기사

北장마당 동향

2017.11.06
(원)기준 평양 신의주 혜산
시장환율 8,005 8,050 8,110
쌀값동향 5,810 5,760 5,600

오늘의 북한날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