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독은 1961년 동서독 국경지역인 잘츠기터(Salzgitter)에 동독의 악행기록과 인권탄압 사례를 수집, 보존하기 위해 중앙기록보존소(Erfassungsstelle)를 설치하여 통일 시까지 30여 년간 약 8만 건의 기록을 유지해왔다.
그동안 동독정부와 서독 사민당 인사들이 이 기구의 폐지를 강력히 요구했으나 서독 정부는 동독 공직자에 대한 경고적 목적과 불법행위 기록유지를 위해 이 기구를 계속 유지해 왔으며, 통일 후 이 기록보존소의 자료는 동독의 사법제도 정착과 판·검사 및 공직자들의 임용 여부 심사를 위한 중요한 자료가 되었다.
설치 배경
1961년 8월 13일 동독의 베를린 장벽 설치로 동서독 간의 왕래가 차단된 후 동독 내부의 사정은 더욱 알기 어렵게 되었고 국경 탈출자들에 대한 총격 및 가혹한 처벌로 동독주민에 대한 인권 침해 상황은 더욱 심각해졌다.
이에 대응하여 1961년 11월 15일 서독 각 주 법무장관들은 동독에서 자행되는 반 법치국가적, 정치적 폭행 사례를 기록하기 위해 니더작센주 법무성 산하에 중앙기록보존소를 설치하기로 결의했다. 서독 측이 이 기구를 설립한 것은 ➀동독주민의 인권보호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점 ➁통일 후 법치국가적 질서 확립을 위해서는 정치적 목적으로 악행을 저지른 사람들을 처벌할 근거를 마련해 놓을 필요가 있다는 점 ➂언젠가 동독지역이 자유민주국가가 되면 자연법적 질서를 어긴 악행은 처벌 받는다는 점을 경고함으로써 가해자들이 정치적 폭력행위를 자제토록 한다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 기록보존소는 2차 대전 이후 나치전범들을 지속적으로 추적하여 처벌하기 위해 설립한 나치만행기록소(Zentrale Stelle der Landesjustizverwaltung)를 모델로 삼았으며, 그 외에도 스탈린주의 희생자 협회, 베를린장벽 설치 관계자 조사협회, 국제인권연맹 등의 조직과 활동내용을 참고하여 설립되었다. 이 기록보존소가 니더작센주 잘츠기터(Salzgitter)에 설치된 것은 니더작센주가 동독과의 국경이 가장 긴 주이고 국경근방 도시 중에서는 잘츠기터가 지방법원이 소재하고 있는 비교적 큰 도시였기 때문이다.
조직·임무·기능 및 운영
이 기록보존소는 검사 2명, 주 법무성 공무원 1명, 4명의 계약직 공무원 등 총 7명의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다. 검사 가운데 1명은 부장검사로서 소장직을 맡아 주 1회 근무했고 평검사는 주 2회 근무했으며, 실무책임을 맡은 법무성 공무원과 기록전문 요원인 계약직 공무원들은 상근요원이었다. 예산과 인사문제는 니더작센주 법무성이 관할권을 가지고 있었으나 실제 임무수행은 완전히 독립기관의 형태로 운영되었다. 각 주에 협조사항이 있을 경우 니더작센주 법무장관을 통해 각 주 법무장관회의에서 제기했으며, 개개 사건의 자료수집 업무는 해당 주 경찰과의 직접 접촉을 통해 수행했다.
기록보존소에 파견된 검사들은 형사소추권이 없었으며 동독에서 정치적 목적으로 자행되는 4가지 폭력 및 인권침해 행위에 대해 사례별, 인물별로 기록을 유지하고 증거자료를 보존하는 임무를 수행했다. 4가지 기록대상 행위 가운데는 ▲국경탈출자에 대한 발포행위 ▲동독 형법에 규정된 형량이라도 초실정법적인 견지에서 과도한 형량을 부과한 행위 ▲수사기관원이나 간수들의 고문 등 가혹행위 ▲비밀경찰(Stasi)이나 경찰에 밀고나 정탐을 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다.
사례 수집을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이 활용되었으며, ➀정치범 석방교섭을 통해 석방된 정치범 ➁서독으로 탈출한 동독 군인(장벽설치 후 약 2600명) ➂동독 발행 각종 간행물 ➃동독인이 서독 친지에게 보낸 서신 및 통화내용 ➄동독 방문 서독인 ➅동독으로부터의 합법적 이주자 ➆정보기관과 같은 연방기관 등 활용 가능한 대상은 모두 활용했다.
사례수집 대상자들에게는 각 주 경찰을 통해 질문서를 보내 진술을 청취하고, 국경선에서의 동독 군인들의 발포행위에 대해서는 서독 국경수비대의 협조를 받아 사례를 수집했으며, 수집된 자료는 분류 및 정리되어 컴퓨터에 수록되었다. 자료가 수록된 8만 명 가운데 만 명은 통일 후 형사소추가 가능한 피의자에 해당됐고 나머지 7만 명은 증인 및 피해자들이었으며 동독 판·검사 중에서 6500명의 명단이 수록되었다.
기록보존소의 운영경비는 각 주 정부에서 분담했는데 동서독 기본조약 체결 이후 일부 사민당 집권 주에서 기록보존소 폐지를 주장하면서 분담금 지불을 거부하여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통일 후의 역할
이 기록보존소는 당초 통일을 염두에 둔 실용적 목적보다는 동독 관리들에 대한 상징적·경고적 목적으로 설립되었으나, 통일 후 ➀동독지역 사법체계 신설을 위한 동독 판·검사의 재임용 심사 자료 ➁동독치하에서 박해받은 사람들에 대한 복권 및 보상심사 자료 ➂반 법치국가적 범죄행위 가담자에 대한 형사처벌 근거 자료 등으로 요긴하게 활용되었다.
그러나 이 기록보존소에서는 동독에서의 형사처벌과 관련된 자료만을 기록하고 민사사건의 경우 정치적 박해로 재산이 몰수된 경우만을 기록했기 때문에 좀 더 광범위한 기록을 유지했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