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독 정치범 석방한 ‘프라이카우프’, 北에도 적용 가능?


▲북한인권정보센터와 과거청산통합연구원, 콘라드아데나워재단이 공동주최한 ‘북한의 인권상황 : 구동독 인권 사례 비교를 중심으로’ 세미나에 참석한 발표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이상호 인턴기자

진행 : 동서독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독일은 한반도 통일은 물론이고 북한인권 및 과거청산 문제를 논하는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사례로 꼽히고는 합니다. 한국의 북한인권정보센터와 과거청산통합연구원, 독일 콘라드아데나워재단 공동 주최로 23일 서울에서 열린 세미나에서 북한과 구 동독의 인권 상황에 대한 비교와 함께 향후 과제 등이 논의됐다는데요. 김 기자, 일단 구 동독의 인권 상황은 어땠다고 하던가요?

기자 : 구 동독의 인권 실태에 관해선 독일연방독재청산재단과 사단법인 독일 협회 ‘시대의 증언’에서 일하고 있는 페터 코입(Peter Keup) 씨가 증언했는데요. 코입 씨는 동서독 분단 시절 청년기를 보내다가 서독으로의 탈출을 꾀하는 과정에서 동독 국가보안부인 ‘슈타지’에 적발돼 10개월간 수용소 생활을 했던 인물입니다. 청소년기를 거치며 동독 체제에 환멸을 느끼게 됐다고 이야기 했는데, 코입 씨의 발언을 직접 들어보시죠.

[페터 코입(독일연방독재청산재단 소속) : 서독에 친척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동독에서 ‘계급의 적’으로 분류됐습니다. 어린 마음에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죠. 무엇보다도 가족들끼리도 자유롭게 대화할 수 없고, 정권에 반하는 생각을 할 수 없다는 게 너무나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결국 동독 체제가 크게 잘못됐으며, 변화가 필요하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코입 씨는 1982년 가족들과 비밀리에 동독 탈출을 시도했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슈타지에 적발돼 3개월간 혹독한 조사를 받아야 했습니다. 다행히 코입 씨는 동독에 경제적 대가를 주고 정치범을 석방하던 서독의 ‘프라이카우프(Freikauf)’ 정책을 통해 마침내 서독으로 이주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코입 씨의 동독 탈출 사실을 슈타지에 고발한 인물이 바로 그의 친형이었다고 하는데요. 동독 정권이 얼마나 치밀하게 주민들을 감시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죠.

진행 : 정권이 주민을 상대로 조직적인 인권 침해를 자행하고, 탈출을 도모할 시 구금이나 처벌을 한다는 데서 북한과 유사점이 있는 것 같네요. 하지만 인권 침해 수준에 있어서는 차이도 분명해 보이는데요?

기자 : 그렇습니다. 물론 동독에서도 국경 탈출을 시도한 주민을 체포하면 격리조치부터 수면 고문, 암실고문 등을 가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형식상으로나마 변호사를 선임할 수도 있었고, 가족들의 면회도 가능했다고 합니다. 종교의 자유도 보장됐고요.

반면 북한은 어떻습니까? 정치범으로 낙인찍힐 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 박탈당한 채 극악한 고문과 학대에 시달린다는 게 탈북민들의 공통된 증언이죠.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김규민 영화감독은 북한에서 목격한 공개처형 장면을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김규민 영화감독 : 북한에서 공개처형을 할 때 중앙에 가족들을 앉힙니다. 그 주변에는 같이 일하는 사람을 앉히고요. 그렇게 앉혀두고 그들이 슬퍼하는지, 우는지 감시합니다. 그래서 자기 동생이 죽는 걸 보면서 눈이 새빨개져도 울지 못하더라고요. 북한에도 변호사가 있대요. 하지만 북한에 있을 당시엔 변호사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사상 통제 수준도 구 동독과 비교하면 북한이 훨씬 심각합니다. 청소년 시기를 북한에서 보낸 김필주 씨는 인생의 목표조차 자유롭게 정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습니다.

[김필주 나우(NAUH) 교육팀장 : 17살이 되도록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몰랐어요. 당이 시키는 대로 살면 그만이라 생각해 꿈을 가진 적도 없었고, 그 꿈을 갖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것처럼 느껴졌어요. 인권이란 말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사랑이란 말은 당과 수령을 향해서만 썼고…]

진행 : 서독이 동독 정권에 경제적 대가를 주고 정치범들을 석방시킬 수 있었던 사례, 즉 ‘프라이카우프’ 정책이 가능했다는 것만 보더라도 구 동독과 북한의 상황이 얼마나 다른지 알 수 있는데요. 한국 정부가 북한 정치범들의 석방을 위해 ‘프라이카우프’와 유사한 방안을 찾는 것은 어렵습니까?

기자 : 사실 ‘프라이카우프’ 정책은 동독 주민들에게 언젠가 서독으로 탈출해 자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란 희망을 줬다는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봅니다. 다만 ‘프라이카우프’를 시행할 당시, 동서독은 비밀 교섭, 경제적 대가 제공, 석방 정치범들의 정치적 활용 금지라는 세 가지 조건을 약속했습니다. 그 결과 3만 5천여명의 동독 주민들이 이 정책을 통해 서독으로 이주할 수 있었죠.

반면 남북한의 경우 여건이 좀 다릅니다. 특히 북한 당국은 남한이 프라이카우프의 세 가지 조건을 지키기 어려운 환경이라고 주장하며 경제적 대가를 통한 정치범 석방을 반기지 않는 눈치인데요.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이 10년 전 평양을 방문했을 당시, 북한 보위원이 이렇게 설명했다고 합니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 : (북한 보위원이 말하기를) 비밀교섭을 해야 하는데 대한민국은 인터넷 사회라 비밀 유지가 안 된다는 겁니다. 또 이미 정치범들이 처벌을 받았기 때문에 경제적 대가를 제공하는 것도 안 될 것이고, 한국으로 넘어간 북한 사람들이 북한에서의 경험을 다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에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것을 해결하려면 남북한 정상회담이나 한국 사회 내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진행 : 구 동독과 북한 사회 간 차이점이 꽤 크다는 점에서 쉽지 않겠군요. 그렇다면 구 동독의 인권범죄 청산 과정에서 참고할 만한 점은 없을까요?

기자 : 코입 씨는 독일 통일 후 동독에서 일어났던 범죄 행위에 대해서는 동독법에 근거해 처벌을 했다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사회통합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었다고 하는데요. 이는 북한 과거청산의 수준과 범위를 결정하는 데도 중요한 시사점을 남깁니다. 전문가들도 북한에 거주하는 주민, 즉 인권침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 그리고 관계자의 입장이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주문합니다.

아직 북한 내부에선 자국의 인권범죄 청산에 관한 논의가 전혀 없는 터라 현재 북한 과거청산에 관한 논의는 주로 한국의 정치 상황이나 여론에 따라 이뤄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과거청산은 북한의 체제 전환이나 통일 이후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을 이루는 데 매우 중요한 요인이 될 것이기 때문에 인권범죄로 피해를 입은 북한 주민들과의 합의가 필요합니다. 이에 윤 소장은 “북한의 과거청산은 사회정의와 통일, 남북 사회통합, 그리고 통일 한국의 국가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목적성을 전제로 실시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진행 : 네, 잘 들었습니다. 지금까지 <라디오 현장> 김가영 기자와 살펴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