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법, ‘인권지옥’ 몰두 김정은 압박할 수 있나?

발의된 지 11년 만에 북한인권법이 오늘(4일)자로 시행된다. 우리 정부가 북한 주민의 인권 정보를 낱낱이 기록하고 김정은 등 북한 지도부에 인권 탄압 범죄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한다는 점에서 실질적 인권 개선을 도모할 수 있다는 기대가 적지 않다.

또한 우리 정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북한인권 문제를 다루게 됐다는 점도 상당한 의미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권유린 피해자인 북한주민과 가해자인 정권을 분리하는 정책과도 연결된다는 것으로, ‘인권 지옥’ 국가 건설에 몰두하는 김정은 ‘공포정치’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기대도 크다.

일각에서는 남북 교류와 대화 및 화해를 전담해왔던 통일부에서 북한 당국의 인권유린 행위 등을 조사·기록·연구한다는 것이 모순된 것 아니냐는 주장도 있지만, 북한인권 개선을 우리 정부의 기본 책무로 천명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진전으로 평가하는 목소리가 더 많다. 헌법상으론 우리 국민인 북한 주민들에게 ‘우리가 보호해주겠다’는 메시지를 간접적으로 줄 수 있다는 얘기다.

다만 여야 정쟁과정에서 남북 관계 특수성·대외관계를 고려해야한다는 명목 하에 ‘제3국 거주 탈북민’이 적용대상에서 빠지는 등 북한 주민의 인권을 보호하겠다는 당초 법안 취지에 부합하지 않다는 지적도 나온다.

또한 북한인권재단 이사진 구성 방법·법안 상의 인권보호(Protection)와 인권증진(Promotion)개념간의 모호성 등으로 인해 향후 정치적 갈등이 표출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만만찮다. 때문에 통일부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한 채 북한인권 증진 기본계획을 수립·실행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아울러 시행되는 법을 자세히 살펴보면 여야 합의로 타결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의 북한 문제에 대한 시각차가 그대로 드러나는 등 몇 가지 문제점도 확인된다. 특히 미국의 북한인권법(2004년 이후)과 비교해 봤을 때 적극적으로 인권유린 가해자를 압박하면서 실질적인 북한주민의 인권개선으로 나아가기엔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물론 미국은 남북 관계의 특수성 등을 우리처럼 고려할 필요가 없다는 점에서 상대적으로 정치적 합의 등이 쉬운 것이 아니었냐는 반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인권이 전 세계 모든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라는 점을 고려했을 때 빠른 시간 내 조정·보완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美 북한인권법…인류 보편의 가치 수호를 위한 초당적 협력물

미국 북한인권법은 정치권을 중심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 북한 대량아사시기로 상황이 악화되면서 중국으로 탈북민이 넘어갔고 이들에 대한 강제 송환 문제가 국제 사회의 이슈로 떠오르면서 미 정치권은 북한인권을 주목하게 됐다.

결정적인 계기는 탈북민들이 주중 스페인 대사관에 진입한 사건(2002년)이었다. 이 사건 이후 북한인권 문제는 국제 사회 관심사로 대두됐고, 다음해 유엔인권이사회에서는 대북결의안이 처음으로 통과됐다. 이어 미국 의회도 2004년 10월 북한인권법(North Korea Human Right Act of 2004)을 제정한 것이다. 

당시는 6자회담에서 북한 비핵화 논의가 탄력을 받는 시점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조지 부시 행정부에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는 북한인권법을 정작 공화당 의원들이 주도했고, 의회에서도 만장일치로 가결됐다. 당시 법안에는 탈북민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난민 지위 확보를 돕는다는 내용 외에 북한 주민들이 기본권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는 내용도 명기됐다.

이 법안으로 인해 탈북민들의 미국 망명이 성사됐으며, 북한의 인권문제가 미국사회에서 주요 이슈로 떠올랐다. 이 법은 ▲북한 주민의 인권신장 ▲궁핍한 북한 주민 지원 ▲탈북자 보호 등 크게 3개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법은 이를 위해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매년 최대 2400백만 달러 한도의 지출 승인 등을 규정했다.

구체적 예산 내역을 보면, 중국 등지에서 떠도는 탈북민 지원을 위해 2000만 달러, 외부 세계의 정보를 북한에 전파하기 위해 자유아시아방송(RFA) 및 미국의 소리(VOA)방송 등 대북 라디오 방송 강화에 200만 달러가 배정됐다. 또한 북한 인권·민주주의·법치주의·시장경제 증진 등 북한 민주화를 지원하는 비정부기구(NGO)에도 200만 달러가 배정됐다.

북한 전문가들은 미국의 북한인권법 제정은 인권문제와 관련해 당파와 정세를 초월한 일관된 목소리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2012년에 승인·연장된 북한인권법에 양당의 정치인 제임스 릴리(공화당·1928~2009)와 스티븐 솔라즈(민주당·1940~2010)의 이름을 붙인 것은 북한인권법이 인류 보편의 가치 수호를 위한 초당적 협력물이라는 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또한 미국 북한인권법이 북한에 대한 건설적 비판과 투명한 지원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준 것은 제재 아니면 유화정책이란 이분법적 시각으로 북한인권을 보는 국내 일부 세력에 ‘시각 교정의 필요성’에 대한 경종을 울려줬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韓 북한인권법, 北주민 인권 문제 개선을 정부 책무로 천명했지만…

물론, 미국 북한인권법을 중심으로 우리의 북한인권법을 단순하게 비교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이와 관련, “한국을 포함한 미국과 일본 등 각 국가들은 그 나라의 상황에 맞게 강조하고 싶은 부분을 북한인권법 조항에 포함시켰고, 이러한 관점에서 각 국가 북한인권법은 상대적으로 평가받아야 한다”(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북한인권법은 미국·일본의 북한인권법과 확실히 구분되는 조항이 존재한다. 바로 헌법의 영토조항 연장선상에서 북한 주민의 인권 문제를 대한민국 정부의 책무로 규정한다는 원칙을 천명했다는 점이다.

이원웅 가톨릭관동대 교수는 4일 데일리NK에 “북한인권법의 목적(1조)을 보면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을 위하여 국제 인권규약에 규정된 자유권과 생존권을 추구함으로써 북한 주민의 인권 보호 및 증진에 기여함’으로 규정되어 있다”면서 “이 같은 원칙은 상당히 (한국 사회에서) 전향적인 것”이라고 평가했다.

이 교수는 이어 “특히 북한인권법의 목적에 관한 부분이 여야 합의로 이뤄졌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까지 야당 등에서는 평화적인 남북 체제의 공존과 1국가 2체제를 기본으로 하는 기존 ‘합의통일 원칙’을 주장해 왔었는데, 북한주민의 인권 개선을 대한민국 정부가 해야 할 의무로 여야가 합의·규정하면서 적극적으로 김정은 체제 붕괴를 모색하는 ‘능동적 통일정책’ 추진이 가능해졌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향후 우리 정부가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의지를 지속시켜 나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온다. 전향적인 합의에도 불구하고 초당적이었던 미국 북한인권법 제정 과정과는 달리 우리의 북한인권법 합의 이면에는 여야의 정략적 셈법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우선 통일부에 설치하기로 한 북한인권증진자문위원회 및 북한인권재단의 이사진이 정당 배분 원칙으로 구성된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여야의 정치적 입장에 따라 통일부의 정책 방향·인권재단 활동이 위축될 가능성이 있다.

특히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게 될 북한인권재단의 행보가 정당 배분원칙으로 선출된 이사진들 결정에 의해 좌우된다는 점에서 핵심적 사업에 집중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게 됐다. 당장 국내에서 북한인권 단체들에 대한 지원기준을 결정하는 과정서부터 갈등이 분출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또한 우리의 북한인권법이 국제인권법에서 ‘국가나 국가기관의 침해행위(Abusive Action)로부터 개인이나 집단의 권리를 지키는 것’을 의미하는 인권 보호(Protection)보다는 ‘제반 인권 상황을 개선하고 촉진한다’는 인권 증진(Promotion)에 방점을 두면서 소극적인 성격을 띠게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제3국 거주 탈북민 제외 등 보완 사항 존재…“인권 의식 개선 등 변화 꾀해야”

전문가들은 북한인권법이 규정하고 있는 북한주민의 개념에 제3국 거주 탈북민이 제외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지적한다. 대외관계·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서 법안을 수정·결정했다는 정부의 설명은 상대적으로 적극적인 인권보호의 개념보다 인권증진을 택하면서 정치적 현실과 타협했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북한인권법이 인권보호의 개념에 입각해 적극적인 정책을 펼친 것과는 대조적이다.

이와 관련 이원웅 교수는 “11년간 새누리당(한나라당 포함)이 제출했던 북한인권법 조항에는 항상 제3국 거주 탈북민이 보호되어야 한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었다”면서 “분명 정당 간 협의 과정에서 빠진 것이고, 이는 인권보호라는 관점에서 보면 제 1순위인 분들이 빠졌다는 점에서 보완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중국 등 제 3국에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들은 북한권력의 실효적 지배를 벗어난 사람이다”면서 “북한인권법의 제정 목적을 고려해서라도 당연히 이분들이 최우선적인 보호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은 인간의 보편적 권리인 ‘인권’문제에 대한 감수성 부재를 개선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한다. 또한 북한인권법이 실질적 북한 변화로 이끄는 데 역할을 수행해 나갈 수 있도록 지속적인 논의도 이뤄줘야 한다고 제언했다.

윤여상 북한인권정보센터(NKDB) 산하 북한인권기록보존소장은 “북한인권 문제 인식 부족이라는 우리사회 현실이 이번 북한인권법에서 북한 주민의 실질적 인권보호로 이어지지 못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본다”면서 “북한인권법에 따른 여러 활동을 통해 이런 인권 감수성 결여 문제 해소도 이뤄져야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 대북 전문가는 “분명 여러 가지 문제점이 있지만 우리 정부가 북한인권 개선 관련 사업을 시작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면서 “세계 역사를 놓고 볼 때 어떤 일이든 지속하다보면 의미 있는 방향으로 흘러갔었다는 점에서 끈기 있게 북한인권 개선 활동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라고 전했다.

그는 이어 “북한인권법 시행이 북한을 단박에 변화시키지는 못하겠지만, 북한을 서서히 변화시키는 데 일조할 것으로 본다”면서 “정부가 그동안 북한인권 활동에 열성을 바친 사람들의 목소리를 어떻게 제대로 반영할 수 있을지 노력하는 게 관건이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