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김정은 첫 제재…北인권유린 자행 ‘최고존엄’에 직격탄



▲ 지난 달 29일, 최고인민회의에 참석한 김정은./사진=연합

미국 정부가 6일(현지시간) 북한 김정은을 인권유린 혐의 제재대상자로 처음 지명함으로써 당국에 의해 자행되는 북한인권 문제를 더 이상 좌시하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드러냈다. 겉으로는 인민애를 선전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주민인권 유린을 자행하는 ‘최고존엄’ 김정은에 직격탄을 날린 셈이다.

미 국무부는 이날 미 의회에 북한인권 유린 사례와 책임 소재를 분석한 보고서를 제출했고, 재무부는 이를 근거로 개인 15명과 기관 8곳에 대한 제재명단을 공개했다. 애덤 주빈 미 재무부 테러·금융정보담당 차관대행은 성명을 통해 “김정은 정권하에서 수백만 명의 북한 주민들이 사법외 처형, 강제노동, 고문을 비롯해 견딜 수 없는 잔혹함과 고난을 겪고 있다”며 인권제재 이유를 밝혔다.

공개된 제재 명단에는 김정은 이외에 국방위 부위원장인 리용무·오극렬, 황병서(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겸임) 등이 포함됐고, 최부일 인민보안부장, 박영식 인민무력부장, 조연준·김경옥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강성남 국가안전보위부 3국장, 최창봉 인민보안부 조사국장, 리성철 인민보안부 참사, 김기남 선전선동부장, 리재일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 정찰총국 오정억(1국장) 조일우(5국장) 등이 들어갔다.

기관은 국방위원회(6월29일 최고인민회의에서 폐지·현 국무위원회에 해당), 조직지도부, 국가보위부와 산하 교도국, 인민보안부와 산하 교정국, 선전선동부, 정찰총국 등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미국이 인권 침해를 이유로 해외 지도자를 직접 제재하는 조치를 전격 단행함으로써 주민인권을 터부시하는 ‘김정은 체제’가 변화하지 않는 한 대화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함께, 핵·미사일 등 도발에 대한 경제 제재와 인권 제재를 통해 북한 변화를 유도하겠다는 의도를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전현준 동북아평화협력연구원 원장은 데일리NK에 “이번 조치가 미국의 독자제재이지만 김정은을 북한인권 침해 가해자로 명시했다는 점에서 국제적으로 인권탄압자로 규정하는 효과가 있다”면서 “미국은 핵 문제를 가지고 북한을 계속 압박해 왔었는데 여의치 않은 부분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인권문제를 부각시켜 북한을 압박하고 그로 인한 변화를 꾀하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고명현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그동안 북한은 비핵화 관련해서 미국과 협상하기 위해 대화의지를 강조하기도 하고 위협을 가하기도 했다”면서 “그런데 미 행정부에선 (협상의 전제 조건으로)비핵화 위에 북한인권을 올려놓은 것이다. 더 대화가 어려워진 상황”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만약 미국이 북한과의 협상 여지를 남겨둘 의도가 있었다면, 김정은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면서 “(이런 측면에서) 이번 조치는 비핵화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의지를 드러낸 것과도 같다”고 덧붙였다. 



▲ 유엔 제3위원회는 2014년 11월 19일, 북한 인권 문제의 국제사법재판소(ICC) 회부 조항이 담긴 북한 인권결의안을 채택한 바 있다. 북한은 ICC 회부 조항이 자신들의 최고존엄에 대한 모독이라며 반발하고 채택을 저지시키기 위한 노력을 기울였으나 무산 됐었다./ 사진=연합

특히 북한에서 자행되는 반(反)인도적 범죄가 북한의 최고지도자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점을 공식화했다는 점에서 추후 김정은의 국제형사재판소(ICC) 제소를 포함한, 북한인권 침해 가해자들에 대한 압박 등 본격적인 후속조치들도 등장할 수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이번 제재 조치는 북한의 참혹한 인권 문제가 이미 유엔 안보리 등을 통해 공론화 됐고, 유엔 북한인권 조사위원회(COI)가 그 책임이 김정은 정권에 있다며 ICC 회부라는 형사처벌을 권고한 것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으로 봐야한다는 평가다. 

윤여상 북한인권기록보존소 소장은 “북한인권 침해 문제와 관련하여 국제사회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책임규명이었다”면서 “책임을 규명하는 것이 형사처벌로 가는 마지막 단계라는 점에서, 이번 미국의 독자제재가 김정은을 북한인권 침해의 책임자로 명확하게 제시·제재했다는 것은 그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윤 소장은 “최종단계인 형사처벌을 하기 위해선 책임규명에 관한 것을 충분하게 검토하고 논의되어야 하는데 그동안 그런 과정이 빠져 있었다”면서 “이번 독자제재를 통해서 책임규명에 관한 사항을 논의할 수 있게 됐고, 이는 북한인권 문제를 좌시하지 않겠다는 미국의 의지를 김정은 정권과 국제사회와 강력하게 보여준 것”이라고 부연했다.

김수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COI의 북한인권 보고서에선 안보리의 표적제재(targeted sanction)를 권고하고 있었다”면서 “이번 미국의 제재는 독자적인 입법에 기반을 두고 구체적으로 가해자(조직과 인물)들을 특정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특히 김정은을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향후 ICC 제소과정에서 처벌의 근거가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김 연구위원은 “이번 제재가 북한에게 그동안 미국이 해왔던 자산동결 등의 경제제재 보다 타격이 될 수 있다”면서 “보편적 가치인 인권을 유린한 가해자로 김정은을 직접 지명했다는 점에서 북한 정권에게 심리적 압박을 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이번 제재는 지난 2월 18일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서명한 첫 대북제재강화법(H.R. 757)에 따른 조치로, 이 법은 국무장관으로 하여금 인권유린과 내부검열에 책임 있는 북한 인사들과 그 구체적인 행위들을 파악해 120일 이내에 의회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 제재 대상에 오르면 미국 입국 금지와 함께 미국 내 자금 동결 및 거래 중단 등의 조치가 취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