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했던 북송 사업의 비극…“조직적 인권유린에 정신병 앓아”



▲ 취재 과정서 만난 북송재일조선인. 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남신일(가명), 고정미, 이태경, 김명훈(가명), 김소자 씨. /사진=국민통일방송 정은주 PD

아버지가 거기(북한에)가서 1년도 안 돼 정신병에 걸렸어요. 조총련에선 (북한은) 무상의료니까 어머니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해서 북한으로 갔는데 약도 없어 아프고, 또 ‘왜 이런 곳으로 나를 데리고 왔냐’하면서 아버지한테 짜증냈죠. (중략) 속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런 사람도 없어 더 좋지 않았던 것 같아요. 동네마다 귀국자(북한에선 재일조선인을 귀국자라고 부른다) 중 정신병이 걸린 사람이 많았어요. 
-김소자(북송 1961년, 탈북 2003년)

조총련 간부였던 아버지는, 1976년 북한 보위부 독방에서 심한 고문을 당했어요. 이후, 재일조선인들을 지팡이를 짚고 찾아다니면서 ‘잘못했다’ ‘죄송하다’고 한생을 용서를 빌었습니다. (중략) 부모님은 집에서는 자식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이런 곳에 데려와서 정말 미안하다고 빌었습니다. 그때 어린 마음에 아버지가 나쁜 사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내가 김일성의 전사가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너무나도 후회됩니다. 지금은 아버지가 그때 재일조선인들에게 못했던 사죄를 대신해서 하려고 합니다.
– 고정미(북송 1963년, 탈북 2003년)

북송실태를 조사하면서 파악한 북한 내 재일조선인들의 단상이다. 일본에서 당한 민족 차별로부터의 탈출, 북한 당국과 조총련의 지상낙원에의 선전 등으로 조국을 북한으로 택해 북송선에 올랐던 9만 3339명의 재일조선인. 잘못된 선택의 결과는 처참했다.
 
국제 인권단체인 ‘엠네스티 인터내셔널’은 지난 2월 전세계 160개국의 인권 상황을 담은 연례 보고서를 통해 북한 당국이 거의 모든 분야에서 주민들의 인권을 침해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탈북민 전수조사를 통해 북한 인권실태를 지속적으로 조사·연구해 온 통일연구원·북한인권정보센터(NKDB) 등의 조사를 통해서도 북한 주민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조직적이고 광범위한 인권유린 실태를 파악할 수 있다.

다만, 이들 조사로는 북한 내 북송재일조선인인들의 인권 유린실태를 파악하는 것은 쉽지 않다. 전체 북한 인구(지난해 통계청이 발표한 북한 인구는 2466만2000명, 2014년 말 기준) 중 재일조선인(북송선을 탔던 재일조선인과 그 직계 가족)이 차지하는 비중이 작을뿐더러, 한국으로 입국한 전체 탈북민 중 재일조선인 출신의 비율 역시 낮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북송선을 타고 입국한 순간부터 ‘째포·반쪽발이’로 불려야 했고, 심지어 동요계층 또는 적대계층으로 분류돼 북한 당국의 조직적인 감시를 받았던 북송 재일조선인에 대한 인권유린실태는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13일, 특수 경험 탈북자로 포함돼 그동안 심층적인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던 북송재일조선인들의 인권실태에 대한 조사 보고서가 나온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사)통일아카데미(대표, 강신삼)는 지난 2월 15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한국과 일본 도쿄·오사카 등지에서 한국·일본 거주 북송재일조선인 출신 탈북자 40명을 대상으로 북송과정과 북송 후 북한에서 겪은 인권실태에 대한 조사를 진행, 이 조사결과를 이날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북송 재일교포 실태를 통해 본 북한의 인권 현실과 과제’ 세미나에서 발표했다.

조사 보고서가 한국과 일본(도쿄·오사카)등지에 거주하고 있는 북송재일조선인만을 대상으로 했다는 점과 모집단이 40명이란 점(전체 북송재일조선인 출신 탈북민은 400~500명으로 추산되고 있다)에서 추후 추가조사·보완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이번이 북송재일조선인 출신만을 특정하여 진행하는 첫 조사사업이라는 점과 향후 이와 관련한 정책 수립의 기초 자료를 제공하고 북송재일조선인 인권 문제에 대한 한국 및 국제사회의 관심을 촉구했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가 나온다.



▲(사)통일아카데미(대표 강신삼)가 지난 2월 15일부터 지난달 31일까지 한국과 일본 도쿄·오사카 등지에서 한국·일본 거주 북송재일조선인 출신 탈북자 40명을 대상으로 북송과정과 북송 후 북한에서 겪은 인권실태에 대한 조사를 진행, 조사결과를 1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개최된 ‘북송 재일교포 실태를 통해 본 북한의 인권 현실과 과제’ 세미나에서 발표했다./사진=통일아카데미 제공

조사 결과에 따르면 북송재일조선인들은, 재일조선인 신분이라는 이유만으로 북한 당국의 감시와 조사(25명, 62.5%)를 받았다. 또한 당국의 감시와 조사를 받았다는 25명 중 20명(80%)이 보위부의 일상적 감시에서 생활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북한 당국은 자유체제·자본주의의 체제를 경험한 북송재일조선인들이 체제의 안정성에 걸림돌이 될 수밖에 없다고 판단하고 또한 이들이 일반 주민들과 접촉하는 것이 자유세계에 대한 동경을 심어줄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철저한 통제와 감시를 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은 1967년 이후 정치적 불만자와 자본주의 사상을 가진 자를 청산하라는 지침을 내리고 다수 북송재일조선인을 탄압했다. 북송사업의 실태를 조사한 장명수(張明秀) 씨는 저서 ‘북한, 배반당한 조국’을 통해 1967년 이후 조총련 중앙과 지부 출신으로 북송선을 탔던 많은 활동가들이 소식이 끊겼고 행방불명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한 이태경 재일북송피해가족협회 회장은 “북한에서의 삶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감시의 인생’이라고 할 수 있다”면서 “매일 누군가로부터 감시 받는다는 느낌을 받았다. 당해보지 않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친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감시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배신감이 정말 컸다”고 털어놓기도 했다.

그는 “같은 마을에 살던 20세대 가구의 100명에 가까운 북송재일조선인 중 16명이 북한 당국에 의해 잡혀갔다”면서 ▲탈북하다 발각된 인원이 7명 ▲간첩 죄목을 받은 사람이 2명 ▲연좌제로 혁명화 구역에 간 사람이 3명 ▲전단지를 뿌렸다는 모함에 걸린 사람이 1명 ▲일본이 살기 좋다, 조선에서 살기가 딱하다는 등의 불평을 했다가 잡혀간 사람이 2명 ▲(죄목은 정확히 모르지만) 교화소에서 사망한 사람이 1명이었다고 증언했다.



▲(사)통일아카데미의 강신삼 대표는 이날 세미나에서 북송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관심을 촉구하며 향후 지속적으로 북송문제 관련 실태조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사진=통일아카데미 제공

또한 북송재일조선인들은 일상적인 차별과 불이익을 받아왔던 것으로 조사됐다. 조사대상자 가운데 33명(82.5%)이 차별과 불이익을 겪었다고 증언했으며, 이들은 결혼·직장배치·승진·거주지 이동에서의 불이익을 당했다.

보고서는 “북한 당국이 온갖 선전과 회유를 통해 이들을 북송시켰지만, 조사 결과로 볼 때 재일조선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일반 주민들과의 차별이 심했다고 볼 수 있다”면서 “특히 결혼과 직장배치, 승진에서 차별한 것은 재일조선인들이 간부로 올라갈 경우 체제 불안정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고 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북송재일조선인들은 거주지에서도 제한을 받았다.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이번 조사대상자 중 북한에서 최종 거주지는 함경도가 20명(45.0%)으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평안도가 10명(25.0%)으로 조사됐다.
 
보고서는 북송재일조선인들이 조총련의 ‘북한은 지상낙원’이라는 선전에 속은 것을 알고 불만을 토로하자 북한 당국이 지방으로 추방시킨 결과라면서 일반 주민들이 북송재일조선인들과 접촉할 수 없도록 국경지역으로 보낸 의도가 담겨 있다고 분석했다.
 
이날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석한 오경섭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북송재일조선인들은 북한 내에서 자유와 인권을 심각하게 침해당하는 생활을 강요받았다”면서 “또한 일단 북한에 들어가면 자유의사에 의해 일본으로 돌아올 수 있는 가능성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북송재일조선인의 문제는 장기적으로 재일조선인 북송사업의 진상 규명, 북한 당국과 조총련의 공식사과 이뤄져야 한다. 동시에 북송재일조선인의 인권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우리정부의 관심과 노력도 중요하다”면서 “정부는 북송재일조선인 문제를 북한인권 문제의 중요한 의제로 설정하고, 북한 내 인권실태에 대한 연구·조사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