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본 검열하는 北 당국 피해 反인륜범죄 고발”



▲영화 ‘태양 아래’를 연출한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26일 언론 시사회에 참석해 발언하고 있다. / 사진=김가영 데일리NK 기자

북한 실상을 담아 화제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 ‘태양 아래’의 비탈리 만스키 감독이 26일 “북한에 살지 않는 사람들이 누리는 자유와 삶이 얼마나 행운인지, 북한에서 얼마나 반인륜적인 범죄가 일어나고 있는지 보여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만스키 감독은 이날 서울 행당동 왕십리 CGV에서 열린 기자간담회에 참석, “북한은 감옥을 마치 5성 호텔처럼 보여주고, 실제 모습을 감추고 왜곡하고 있다”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어 “북한 당국이 이 영화를 위해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고 한 행위는 일반 국가에서 홍보 영상을 만들 때 하는 일과는 차원이 다르다. 북한에선 범죄가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러시아와 북한 당국의 지원을 받아 2014년부터 촬영된 영화 ‘태양 아래’는 북한의 8세 소녀 진미가 조선소년단에 가입해 북한에서 최대 명절로 여기는 김일성의 생일 기념행사를 준비하는 과정을 조명하고 있다.

특히 리얼리티를 살려야 하는 다큐멘터리 영화임에도 불구, 모든 장면을 촬영하는 데 있어 북한 당국 측 인사가 관여해 등장인물들의 행동과 대사 하나하나까지 조작하는 장면이 그대로 담겨있어 화제가 됐다.

감독은 “북한에 촬영을 하러 갔을 때 북한의 철저한 통제 때문에 계획대로 촬영할 수 없겠다는 걸 깨달았다. 이렇게 촬영을 100% 통제하려는 나라는 없었다”면서 “북한 당국은 매일 촬영분을 검사 받도록 했고 검열을 통과하지 못하면 삭제해야 한다고 말했다. 촬영분이 빼앗기는 것뿐만이 아니라, 본인과 제작진이 구금되는 등 생명의 위협을 받을 우려도 컸다”고 회상했다.

그래서 그는 매 촬영이 끝난 후 모든 분량의 복사본을 만드는 방법으로 촬영본을 빼냈다. 검열을 위해 당국에 촬영본을 제출할 때는 감시를 피해 약 70%를 삭제한 뒤 당국이 허용할 만한 내용만을 건넸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찍고 싶었던 건 하나도 찍지 못했을 정도”라면서 “북한에는 인간적인 리액션이나 반응이 전혀 존재하지 않아 매우 놀랐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한편 직접 만난 북한 주민들을 보면서 이들에게서 변화의 가능성을 감지할 수 있었는지를 묻는 기자의 질문에 감독은 다소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였다.

그는 “북한 사람들은 세상이 자신들이 가진 문제를 폭력적으로 해결한다고 믿고 있다”면서 “이들의 삶이 실제로 폭력적으로, 즉 전쟁과 같은 수단으로 바뀌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운을 뗐다.

만스키 감독은 또 “북한 체제를 바꾸는 일은 수십 년에 걸쳐 조심스럽게 이뤄져야 한다”면서 “북한 당국이 주민들을 국제 사회로부터 단절시킨 상황에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지만, 만약 북한 시스템이 바뀐다면 2세대에 걸쳐 정신적인 부분이 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그는 “스탈린이 사망한 지 약 60년이 됐지만, 러시아 사람들 머릿속엔 아직도 스탈린이 살아있다. 북한 문제 역시 오랫동안 북한 국민의 머릿속에 남아 있을 것”이라면서 북한 주민들의 의식 변화에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을 우려했다.

그러면서 그는 “본인 역시 소련 시절 소년단에도 가입하고 행군에 참여해 레닌에 대한 노래를 부른 적도 있다”면서 “소련의 시기가 끝났다는 게 본인에게는 행운이다. 그만큼 북한 아이들의 삶을 보면서 아픔 외에는 느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을 정도”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와 함께 그는 한국 관객들을 향해 “한민족의 재앙을 다룬 영화를 한국에서 선보이는 것에 대해 큰 책임감을 느낀다”면서 “한국 관객들이 북한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본인과) 같은 마음으로 공감하고 안타까워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어 영화에 출연했던 북한 소녀 진미에 대해서도 “진미와 가족들이 아무 일 없이 무사히 잘 지내길 바란다”면서 “이들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어서 접촉할 길은 없다. 다만 한국에서 이 영화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도 진미와 가족들의 안전을 보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영화 ‘태양 아래’는 일찍이 제40회 홍콩 국제 영화제 다큐멘터리 경쟁 부문 심사위원상과 제19회 에스토니아 탈린 블랙 나이츠 국제 영화제에서 베스트 감독상 등 해외에서 먼저 주목을 받은 바 있다. 한국에서는 오는 27일 개봉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