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김정은, 이복형 암살 조급함에 검증 안 된 공작법 사용?

북한 김정남 암살 용의자들이 국가보위성과 외무성, 고려항공, 내각 직속 신광무역 소속이라는 관측이 제기되는 가운데(국가정보원 지난달 27일 발표), 이 같은 방식은 이제까지의 북한식(式) 공작 방식에서 크게 벗어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대남·대외 공작을 전문으로 하지 않는 부서들이 사건을 주도했다는 점, 수장(首長) 김원홍과 직속 부하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보위성 요원들이 공작에 가담했다는 점, 극비에 이뤄져야 했을 공작에 지나치게 여러 부서들이 연루됐다는 점 등이 이전과 다른 양상이라는 것이다. 김정남 암살이라는 ‘특급’ 프로젝트를 이제껏 검증되지 않은 수법으로 진행한 셈이다.

◆ 노련한 정찰총국 대신 보위성이 왜?= 그간 김정남 암살은 북한 정찰총국 소행이라는 관측이 우세했다. 대남·대외 공작을 주도하며 정찰과 정탐, 파괴, 납치, 암살을 도맡았던 부서가 바로 정찰총국이기 때문. 북한 공작원이나 현지 고정간첩, 피스톤 간첩(임무 수행 때만 파견됐다가 복귀)이라 불리는 요원들이 대부분 정찰총국 소속이다.

반면 국가보위성은 명칭 그대로 북한 체제 보위가 주 목표로 둔다. 북한 전역에 파견된 보위부원들은 반(反)체제 세력을 색출하는 게 주 업무다. 정치범수용소 관리나 고위 간부 호위도 보위성이 담당한다. 정찰총국이 ‘정탐’을 사명으로 한다면, 보위성은 ‘반탐’에 주력하는 셈이다.

물론 보위성에서도 해외에 보위성원을 파견한다. 다만 이들은 정찰총국의 공작원 개념이라기 보단, 정보 수집과 방첩을 담당하는 ‘정보원’에 가깝다. 일례로 보위성원들은 해외 파견 노동자들의 이탈 방지를 위해 부지배인으로 위장한 채 동행한다. 혹은 중국을 찾는 북한 친척 방문객이나 화교들에게 반탐 임무를 주고 간첩 색출에 나서는 식이다.

때문에 장기간 암살과 테러를 전문으로 하던 정찰총국 대신, 담당 분야가 전혀 다른 보위성이 나섰다는 데 의문이 남는다. 특히 이번 공작은 실패시 되레 북한의 잔혹성을 부각하고 김정남의 존재를 재확인하는 역풍이 될 위험도 있었다. 김정은이 굳이 노련한 암살 전문 부서 정찰총국 대신 보위성에 임무를 부여한 이유는 안개 속에 있다.

한편 외무성 소속 요원이 공작에 가담한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외무성은 해외서 북한 체제 선전을 도맡는 만큼, 되도록 ‘소란’을 일으킬만한 일에는 관여하지 않아 왔다.

북한 고위 기관 간부 출신 탈북민 A 씨는 1일 데일리NK에 “외무성 사람들은 자칫 꼬투리를 잡히면 나라 이미지에 큰 손상을 준다고 생각해 되도록 나서지 않았다”면서 “공작 임무를 돕게 되더라도 직접 가담하지 않고 현지 정세 파악 등 측면 지원만 했다”고 전했다.

반면 국정원은 외무성 소속인 리지현(33)과 홍성학(34)은 각각 보위성 요원들과 조를 이뤄 베트남·인도네시아 국적 여성 용의자들을 포섭했다고 밝혔다. 김정남에 직접 독극물 테러를 가할 적임자를 물색하고 섭외해 청부살인을 맡기는 역할까지 했다는 얘기다.

◆ 수장(首長)도 없이 백두혈통 암살 기획?=김정남 암살은 보위상 김원홍의 해임과 부상급 간부들 처형이 확인된 이후에 벌어졌다. 보위성 내부는 쑥대밭이 됐지만, 밖에선 김정남 암살을 강행한 것이다.

일각에선 김정남 암살은 김정은이 5년 전 내린 ‘스탠딩 오더(명령자가 취소하기 전까지 계속 유효한 지시)’였기 때문에 보위성이 김원홍 부재와 무관히 지시를 수행한 것이라 보고 있다. 하지만 보위성 관리 체계상 하급 간부들에게 김정남 암살이라는 대형 임무를 그대로 진행케 했을 리 만무하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보위성 간부 출신 탈북민 B 씨는 “보위상이 부재할 시 그 아래 조직비서나 선전비서가 대리 임무를 수행할 수는 있다”면서 “하지만 군사작전이나 실무적인 전개는 불가능하다. 수장의 부재에 성원들 기강이 흔들릴 것을 방지하는 역할만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북한에선 ‘행정대행’이라는 제도 자체에 반감을 갖고 있다. 대리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이 성원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건 목 떨어질 일”이라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김원홍에게서 ‘직보(直報)’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진다. 때문에 김원홍 부재 이후엔 과연 누가 김정남 암살 작전 지휘를 맡았을지 의문이 남는다. 이와 관련해서 정찰총국이 보위성 요원을 통솔했다고 보기도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북한에선 특정 부서에게 다른 부서를 지휘할 권한을 결코 허가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찰총국 출신 탈북민 C 씨는 “정찰총국이 보위성 요원들을 통솔할 바에는 고도로 훈련된 정찰총국 공작원들을 활용하지 않았겠나”라면서 “만약 김정은이 보위성 ‘행정대행’에게 김정남 암살 작전 지휘권을 줬다면, 그만큼 김정은의 광적인 불안감이 극에 달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 소속 뒤섞인 암살단, 소문 수습 어쩌나=한편 북한 대외 공작에 보위성과 외무성, 고려항공, 내각 직속 무역회사 등 무려 네 조직이 연관되어 있다는 점도 극히 이례적이다. 통상 북한 공작은 담당 부서 내에서도 일체 비밀로 부쳐진다. 정찰총국 해외정보국 내 특정 작전조를 골라 임무를 맡기고 처음부터 끝까지 수행하게 하는 식이다. 기밀 유지와 뒤처리에 용이하다는 점 때문이다.

반면 각기 다른 소속의 요원 8명을 차출했다면, 김정남 암살 소문이 부서별로 퍼지는 건 순식간이다. 각 부서에 돌아간 요원들이 총화 등을 계기로 김정남 암살에 관한 내막을 발설할 수밖에 없다는 것. 이 과정에서 북한 당국이 은폐해온 김정남의 존재가 그야말로 만천하에 드러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C 씨는 “정찰총국 내에서도 특정 작전조 임무가 노출될까 늘 노심초사했는데, 온갖 부서에 김정남 암살 요원들이 퍼져 있으니 기밀 유지가 제대로 되겠나”라면서 “김정은은 김정남의 존재를 부정하기 위해 공작 원칙도 져버린 채 암살이라는 1차적 목표를 이뤘을지 모르겠지만, 그게 되레 본인 체제 공고화를 깨뜨리는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