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거야 원, ‘봉숭아 학당’이 따로 없네”

▲14일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세미나

14일 프레스센터에서 ‘북한위폐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의 주제로 세미나가 열렸다. ‘6.15공동위 남측언론분과’가 주관한 제 53회 기자포럼 행사였다.

토론회를 지켜본 기자의 소감은 한편의 ‘봉숭아 학당’을 시청하는 느낌이었다.

‘봉숭아 학당’도 나름대로 칠판에 그날의 주제를 써놓는다. 이번 토론회처럼 ‘위폐 논란, 어떻게 볼 것인가’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런데 학동(學童)들은 처음엔 주제에 어울리는 듯한 이야기를 하다가 엉뚱한 곳으로 빠져 결국엔 자기 개인기나 유행어만 뽐내다 막을 내리기 일쑤다. 매주 똑같은 레퍼토리를 듣는 것이 지겨운 시청자들은 채널을 돌린다.

이번 토론회는 속칭 ‘진보’ 성향의 기자들이 모였다. 참가자들은 “미국의 위폐문제 제기는 미국의 음모이며, 미국이 정확한 증거 없이 북한의 위폐를 트집잡고 있다”는 예의 주장을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미국이 정확한 증거 없이 북한의 위폐를 문제삼고 있다고 치자. 그렇다면 미국이 북한을 압살하기 위해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그들의 주장에는 어떤 증거가 있는 걸까? 무작정의 ‘미국 증오’나 ‘미국 불신’ 이외의 어떤 팩트도 그 자리에서 들려오지 않았다.

이들은 그동안 북한의 국제범죄에 대해 일언반구의 지적도 하지 않다가, 이런 문제가 생기자 특별한 팩트나 의미도 없는 ‘김정일 변호 모임’를 득달같이 만들어냈다. 이들의 발언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부시 지지율 높이려 위폐 제기하고 있다” 황당발언

먼저 <자주민보> 이창기 기자는 미국이 6자회담을 파탄 내 북한에 핵 위협을 가하기 위해 위폐문제를 제기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는 미국의 핵위협에 대해 대응하기 위해서는 북한이 핵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도 서슴지 않았다.

“미국은 9.19 공동성명을 달갑지 않게 생각하며 오히려 6자회담이 파탄나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6자회담이 파탄나야 핵 위협으로 패권전략을 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에게 위폐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북한이 먼저 핵포기를 유도하기 위한 전략이다. 북한이 먼저 핵을 포기하도록 유도해 미국의 핵위협에 꼼짝 못하게 하는 협상용이다.”

“미국 시민의 애국주의를 부추겨 부시 대통령의 미국 내 지지율을 높여내기 위해 음모이다.” (이상 <자주민보> 이창기 기자>

“탈북자들을 많이 만났다(?)”는 사회자의 소개를 받은 월간 <말> 조천현 기자는 북한의 위폐가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이라는 황당한 궤변을 늘어 놨다. 엊그제는 강정구 교수가 북한 인권문제가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이라더니, 이들은 모든 것을 ‘미국 때문’이라고 대충 이야기하는데 재미를 붙인 것 같았다.

“미국의 봉쇄정책으로 인해 북한은 살아남기 위해 밀수를 했고 그 과정에서 위폐가 북한으로 섞여 들어갔다.”

“상당량의 위폐가 중국을 통해 북한에 유입되었으나 북한은 이를 이야기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미국의 공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북한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북한이 매년 범죄행위로 5억 달러를 번다고 미국이 지적하는데, 만약 사실이라면 북한이 고난의 행군을 극복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도 어려운 상황으로 보아 미국의 지적은 사실이 아니다.” (이상 <말> 조천현 기자)

북한의 위폐제조도 미국 탓?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에 북한이 어쩔 수 없이 밀수를 했다’는 조천현 기자는 북한문제의 ABC도 모르는 백치수준의 인식을 그대로 드러내 보였다. 북한의 주요 밀수 대상은 중국이다. 중국은 미국의 봉쇄정책과는 하등 상관이 없어, 북-중 관계는 어떤 무역도 제재를 받지 않는다. 따라서 미국의 봉쇄정책 때문에 북한이 밀수를 한 것이 아니라, ‘중국 정부로부터도’ 용납 받지 못하는 불법행위이기 때문에 밀수를 한 것이다. 이건 ‘초딩’도 이해할 만한 논리이다.

한편, 한국 최대 통신사인 <연합뉴스> 국제부의 강진욱 차장이 사회를 봤는데, 그는 사회자로서 중립을 지키지 못하고 패널들의 미국의 음모론에 노골적으로 동조하고 나섰다. 이번 자리가 ‘토론회’가 아니라 ‘미국 성토장’이며 ‘김정일 변호 모임’이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북한의 범죄 사실은 경미하게 나타났다. 미국은 경범죄를 지은 사람에게 무기징역 내지는 사형을 선고를 하려 한다.”

“정확한 증거를 제기하지 못하고 정황에만 의존해 위폐문제를 제기하는 미국은 문제가 있다.” (이상 <연합뉴스> 강진욱 기자)

그나마 <한겨레> 강태호 통일팀장만이 “과거 북한이 국제범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기 때문에 적절한 행동을 취해야 한다”라는 말을 했으나 분위기를 바꾸기에는 역부족이었다.

■ [고침] 2월 14일자 보도내용 일부를 정정합니다

김용훈 기자 kyh@dailynk.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