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보다 김정일정권 교체가 더 현실적

북한의 비핵화가 가능한지를 판단하려면 다음 다섯 가지 문제를 놓고 분석해볼 필요가 있다.

첫째, 북한 김정일 정권의 핵포기 의지가 있는가. 둘째,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압박수단이 있는가. 셋째, 북한의 핵무기를 정확히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넷째, 전면공격 이외에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할 수 있는 폭력적 수단이 있는가. 다섯째,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는 주변국의 정책적 요구나 의지는 강한가.

이 다섯가지 문제를 하나씩 검토해 보자

첫째, 북한 김정일 정권의 핵포기 의지가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김정일 정권이 핵을 포기하기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김정일 정권은 오래 전부터 핵무기에 대한 열망이 강했을 뿐 아니라, 체제 위기에 직면한 현 국면에서는 자칫 핵포기가 정권 안정성에 위협을 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김정일 정권에게 가장 큰 위협은 외부세력이 아니라 내부의 군과 인민이다. 핵을 포기할 경우, 김정일 정권에 대한 군과 인민의 지지가 크게 약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김정일 정권이 핵포기 의지는 극히 낮을 것으로 판단된다.

둘째, 북한이 핵을 포기하게 만들 압박수단이 있는가.

지금까지 북핵 문제를 종합해 볼 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전면공격 이외의 웬만한 채찍은 김정일 정권에게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물론, 중국을 압박의 완전한 파트너로 끌어들였다면, 압박 효과가 컸을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중국을 적당한 거리에 있도록 하는 정책을 구사함으로써 북한을 압박하는 국제연대에 중국이 동참하지 않도록 해왔다.

중국도 북한에 대한 전면 압박 대신 미국과 북한을 중재하는 데 열중해왔다.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압박 정책은 북핵 포기를 끌어낼 수 있을 만큼의 힘을 발휘하기 어려웠다. 그와 같은 북중관계는 향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중국을 압박의 완전한 파트너로 끌어들이기는 앞으로도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동참하지 않는 한 무역제재 등의 압박은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기 못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무역, 금융 등에서 정상국가로 운영되어 온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중국과 최소한의 거래만 유지한다면 생존에 큰 문제는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사실은 다양한 압박전술이 북한체제의 붕괴를 위한 전술로서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지만 핵포기를 유도하기 위한 전술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다고 당근 정책으로 핵을 포기시키는 것도 쉽지 않아 보인다. 물론 200억 달러 무상원조에 300억 달러 차관 정도의 막대한 당근책을 구사한다면 핵무기를 포기시킬 수도 있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비용이 너무 크다.

만약 엄청난 당근 정책을 실제로 추진한다면, ‘그 정도 당근을 주느니 차라리 핵무기를 용인하는 것이 낫다’는 주장이 생겨날 수도 있다.

셋째, 북한의 핵무기를 정확히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가.

북한이 추출한 플루토늄의 양을 정확히 계산하고 그 소재를 추궁한다면 북한 핵무기의 존재 자체를 인정받거나 추궁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나 북한이 이미 핵무기의 존재를 인정하고 이를 대내외적으로 크게 선전하고 있기 때문에 그와 같은 조치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핵무기의 정확한 양과 질을 검증하는 것도 매우 어렵다. 북한은 선전활동에서는 실제 갖고 있는 핵무기보다 몇 배 많이 갖고 있는 것처럼 선전하다가도 회담장에서는 실제의 핵무기보다 몇 배 적게 갖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할 가능성도 많다.

물론 과학적 방법으로 이를 추궁할 수는 있지만 그것이 북한과 같은 나라에서 효과를 발휘하기는 힘들다. 예를 들어 국제사회에 ‘도난당했다’는 식으로 발뺌하고, 내부적으로 핵무기 밀매 혐의로 장교 몇 명을 처형해버린다면 다른 나라에서 이를 검증할 수 있는 방법이 사실상 없기 때문이다.

넷째, 전면공격 이외에 북한의 핵무기를 제거할 수 있는 폭력적 수단이 있는가.

전면공격은 아직까지도 여전히 대안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북한공격은 이라크공격보다 몇 배나 어렵다. 이라크문제로 허덕이고 있는 미국이 그보다 훨씬 어려운 북한 공격을 감행하기는 어렵다.

특히, 중국의 묵인 없이는 공격이 극히 어려우며 중국이 북한 공격을 묵인할 가능성도 극히 낮다. 이런 조건을 종합해볼 때, 현 시점에서 북한에 대한 전면 공격 가능성은 매우 낮다.

북한에 대한 부분폭격은 의미가 없다. 부분폭격이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를 차치한다면 부분폭격으로 북한 핵시설을 파괴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핵시설이 아니라 만들어진 핵무기나 추출한 플루토늄이다. 북한 핵무기나 플루토늄의 소재를 모르는 조건에서 부분폭격은 별 의미가 없다.

설사 소재를 안다고 하더라도 폭격으로 핵무기를 파괴하기는 힘들다고 봐야 한다. 폭격에 대비하는 장치를 해 놓았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핵무기의 소재를 알 경우 특공대를 투입하는 것도 방법이 될 수 있으나 상당한 희생이 예상되는 작전에 미국이 특공대를 투입하기는 어렵다.

설사 희생을 감수하며 작전을 한다고 하더라도 상대가 북한이기 때문에 작전의 성공을 장담하기도 어렵다.

다섯째, 북한의 핵무기를 완전히 제거하고자 하는 주변국의 정책적 요구나 의지는 강한가.

한국, 미국, 중국, 일본, 러시아가 모두 북한 핵무기를 반대한다고 말은 하지만 그 반대 이유는 각각 다르다. 또 러시아를 제외하고 한, 미, 중, 일 네 나라에서는 수년 전부터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북한핵을 막아야 한다든가, 북핵 저지가 국가의 사활적 요구라는 등의 강경한 발언들이 쏟아져 나온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 네 나라 모두 북핵을 사활적으로 저지하려는 강력한 요구와 의지를 갖고 있는지는 대단히 의심스럽다. 최근 다섯 나라의 국내 분위기를 보면 북한이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를 용인하고자 하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위의 조건들을 종합적으로 놓고 본다면 북한이 이미 만들어놓은 핵무기를 제거하는 것까지를 포함한 완전 비핵화 실현은 대단히 어렵다고 판단된다. 협상정책 혹은 압박정책으로서 북한의 완전 비핵화를 요구할 수는 있다.

그러나 실질적인 달성목표로서 북한의 완전 비핵화는 대단히 어렵기 때문에, 한국과 관련국가의 실질적 최종목표로 설정하기 어렵다. 오히려 김정일 정권 교체를 북한 완전 비핵화보다 앞선 목표로 잡는 것이 훨씬 현실적일 수도 있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