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모란봉악단’ 아닌 ‘삼지연 관현악단’ 전면에 내세운 이유?



북한이 평창올림픽에 삼지연 관현악단 140여 명으로 구성된 예술단을 파견하기로 하면서 삼지연 관현악단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6월 보천보전투승리 80주년을 맞아 만수대예술단 삼지연 악단이 양강도예술극장에서 ‘영원한 메아리’ 공연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연합

남북은 15일 판문점 북측지역 통일각에서 실무회담을 갖고 평창 동계올림픽에 삼지연 관현악단 140여 명으로 구성된 북측 예술단을 파견하는 데 합의했다. 이에 북한이 그간 실체를 찾아볼 수 없던 ‘삼지연 관현악단’을 전면에 내세운 이유가 무엇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북한이 파견키로 한 삼지연 관현악단은 북한 매체에서도 소개된 바 없는 생소한 이름의 예술단체다. 과거 김정일 시대에 비슷한 이름의 삼지연 악단이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삼지연 관현악단이 명명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지난 2009년 창단한 삼지연 악단은 관현악·기악·타악·노래 등 50명 이상으로 구성된 대규모 악단으로, 지난해에는 북한의 새해 경축 음악회에서 공연을 하기도 했다. 때문에 삼지연 관현악단은 삼지연 악단의 몸집을 불린 변형 예술단일 가능성이 있다는 견해가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일반적인 오케스트라가 대략 80~90명가량으로 구성되는 점을 감안하면 북측이 언급한 140여 명 규모의 예술단은 합동 예술단의 형태일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삼지연 악단을 기본으로 하되, 모란봉 악단과 청봉 악단 등 북한 내 다른 예술단 소속을 충원해 연합하는 방식으로 예술단으로 꾸릴 수도 있다는 얘기다.

지난 2015년 탈북한 평성 예술학원 출신 장미연(가명) 씨는 16일 데일리NK에 “삼지연 악단에 공주 같은 고운 아이들이 많이 나왔었는데 언젠가 보니 모란봉이나 은하수 악단으로 옮겨 가 있었다. 그런데 이번 평창 올림픽에 유사한 이름이 등장해 놀랐다”며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삼지연 악단의) 이름만 빌려 쓴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북한 내부 예술인들 사이에서는 군복을 입고 노래하며 화려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는 모란봉 악단보다 삼지연 악단이 더 세련됐다는 평가가 나오기도 했지만, 김정은의 총애를 받아 이목을 끈 모란봉 악단에 비해 삼지연 악단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이 장 씨의 전언이다.

장 씨는 “과거 삼지연 악단도 첼로, 바이올린 등 관현악 형태였기 때문에 삼지연 관현악단이라는 말도 맞는 말”이라면서 “북한은 해외공연을 나갈 때 합동식으로 내세울 때가 많다. 모란봉이든 은하수든 잘하는 사람들을 뽑아 명칭만 삼지연으로 해서 올 것 같다”고 했다. 

앞서 북측은 실무접촉 당시 우리 측에 삼지연 관현악단에 대해 별도로 설명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우리 정부도 삼지연 관현악단의 실체는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실제 통일부 당국자는 “김정일 시대에 만들어진 삼지연 악단이 이렇게 변한 것 같다”면서도 “악단이 어떻게 관현악단으로 됐는지 추가 확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과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9일 오전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회담 종결회의에서 공동보도문을 교환한 뒤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

앞서 지난 9일 남북고위급회담 후 북측 예술단의 평창올림픽 파견이 확정되자 일각에서는 2012년 김정은의 전면 등장과 함께 결성된 모란봉 악단이 올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이어 열린 실무회담에 현송월 모란봉 악단 단장이 북측 대표단으로 참가하면서는 모란봉 악단의 파견 가능성이 더욱 높게 점쳐졌다.

그러나 북한은 예상과 달리 국보급 예술단체로 일컬어지는 모란봉 악단 대신 삼지연 관현악단을 전면에 내세웠다. 이는 김정은 체제 선전 가능성에 대한 국내외의 우려와 거부감을 불식시키기 위한 의도로 풀이된다. 다만 북한은 백두혈통의 근간으로 여기는 삼지연의 상징성을 부각해 김 씨 일가의 신성성을 강조·선전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제 북한은 백두산 남동쪽에 위치한 양강도 삼지연을 김일성의 항일무장투쟁 근거지이자 김정일의 고향이라고 주장하며 이른바 ‘혁명의 성지’로 치켜세우고 있다. 삼지연은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이어지는 이른바 백두혈통의 우상화를 위한 초석이 되는 지역인 셈이다. 때문에 김정은은 집권 후 여러 차례 이곳을 방문해 공개활동을 벌이면서 개발을 강조해오기도 했다.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김정은은 중대결심을 할 때마다 백두산에 오르고 삼지연을 방문했다”며 “백두혈통, 혁명전통의 상징이 되는 삼지연을 브랜드화해서 평창에 파견해 예술성과 사상성을 종합적으로 드러내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북한은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이미지 개선에 나서 평화 분위기를 조성하는 책임있는 국제사회의 일원이라는 점을 강조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북한에 심대한 타격을 주고 있는 국제사회의 대북제재를 탈피하기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다.

특히 북한이 이번 평창올림픽에 대규모 관현악단을 보내 공연하도록 함으로써 폐쇄적인 이미지에서 탈피하는 동시에 새로운 외화벌이의 창구로서 예술단을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평창올림픽만을 위해 만들어진 한정적 의미의 예술단이 아니라 최고지도자의 결심과 의지만 있다면 세계 어디든 갈 수 있는 국제적 예술단체로서의 인상을 남기기 위한 의도라는 것이다.

안 소장은 “북한은 한민족의 잔치에 자신들도 적극 동참하고 있다는 평화의 이미지를 보여주고 그동안 진출하지 못했던 국제사회로의 문을 두드리기 위한 기회로 평창올림픽을 활용하려 하고 있다”면서 “모란봉 악단의 공연관람권이 수천 달러까지 올랐던 전례도 있는 만큼 이번 삼지연 관현악단도 순회공연을 통해 외화벌이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15일 판문점 북측 통일각에서 열린 평창 동계올림픽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접촉에 현송월 모란봉 악단 단장이 참석하고 있다. /사진=통일부 제공

한편, 이번 평창올림픽에 파견될 삼지연 관현악단의 단장은 아직 정확히 확인되지 않고 있다. 다만 이번 실무회담 북측 대표단에 포함된 현송월이 관현악단 단장 직함을 달고 나온 점에 미뤄 그가 예술단을 이끌고 내려올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제기된다.

현재 우리 정부는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의 신분을 명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는 북측과의 보다 구체적인 협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통일부 당국자는 현송월이 삼지연 관현악단 단장 자격으로 방남하는지에 대해 “아직 그렇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며 “향후 논의 과정에서 북측이 단장을 밝힐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