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에 ‘저자세’ 대화제의, 남북관계 주도권 확보 어렵게 해”

전문가 “대북정책 성과에만 치중 말아야…北 호응 위해 무리한 조건 수용해선 안 돼”
김가영 기자  |  2017-07-17 17:50

정부가 17일 북한에 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을 공식 제의한 가운데, 우리 측이 ‘남북대화 성사’ 자체에 치중한 나머지 지나치게 대북(對北) 저자세로 일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기상으로도 북한의 통미봉남 전략과 핵·미사일 도발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섣부른 대화 제의가 되레 남북관계 주도권 확보에 걸림돌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이미 문재인 정부는 출범 직후부터 남북 민간교류 재개의 뜻을 밝힌 뒤, 54차례에 이르도록 민간단체의 대북접촉 신청을 승인하며 북한에 대화의 손짓을 보내왔다. 또한 문 대통령은 6·15 남북 정상회담 17주년 기념식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 중단 시 조건 없이 대화하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북한은 번번이 ‘퇴짜’를 놨다. 우리 측 민간단체의 방북을 거부한 데 이어, 남측과 핵 문제를 논의하지 않겠다는 뜻을 지속 확인하고 있는 것.

정부도 기존에 밝혀온 북한과의 대화 조건이 충분히 마련되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는 눈치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그동안 밝혔던) ‘올바른 여건이 조성돼야 한다’는 건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에 관련한 기본입장이었고, 그런 여건은 충족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만 조 장관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적 단계에서 남북 간 긴장 완화와 평화 정착을 위해 (군사회담 등) 제안을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북한이 군사회담이나 적십자회담 제의에 호응해오더라도, 대화 조건이나 회담 의제에 대한 남북 간 입장차가 걸림돌로 남아 있다. 군사회담의 경우, 북한은 대북확성기 철거와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을 요구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 실제 김정은은 지난해 5월 제7차 노동당(黨) 대회 결정서에서 “심리전 방송과 삐라 살포를 비롯해 상대방을 자극하고 비방 중상하는 일체 적대행위들을 중지해야 한다”고 요구한 바 있다.

적십자회담과 관련해서도 북한은 중국 내 북한식당 탈북 종업원 12명과 탈북민 김련희 씨의 송환, 5·24조치 해제 등을 의제로 내걸 것으로 보인다. 앞서 북한은 지난달 초 조국평화통일위원회 관계자인 김용철을 내세워 탈북 종업원들과 김련희 씨의 송환 없이는 인도주의적 협력에 나설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물론 정부가 북한이 내건 대화 조건이나 의제들을 마냥 수용할 리는 없다. 일찍이 정부는 탈북민 송환이 인도적·법적으로 근거가 없다고 선을 긋고 이를 이산가족 문제와 결부시키지 말 것을 지적한 바 있다. 한미군사훈련 문제는 미국 정부와 먼저 민감한 논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 만큼, 북한의 요구가 성사될 가능성은 희박해보인다.

반면 대북확성기 방송 등 대북심리전은 군사분계선상 적대행위라 규정해 중단할 가능성이 있다. 다만 대북확성기 방송은 북한 4차 핵실험 대응 차원에서 재개했던 조치인 만큼, 대북확성기 방송 중단이 자칫 북한의 과거 도발에 면죄부를 주는 듯한 신호로 여겨질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또한 대북심리전이 북한 체제를 겨냥한 우리 측의 유일한 비대칭전력이었다는 점에서 섣부른 중단 시 국내적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문재인 정부가 대북정책의 ‘성과’를 부각하기 위해 북한과의 대화에 급급해하는 일을 지양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명분과 상징성을 위해 대화 제의를 거듭하는 게 되레 남북관계 주도권마저 놓치는 자충수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송봉선 북한연구소장은 데일리NK에 “이미 북한이 여러 차례 우리 측의 대화 제의를 거부한 상황에서 굳이 이렇게까지 대화에 목 말라해야 하는지 의문”이라면서 “그렇지 않아도 북한은 대외협상에 있어 늘 고자세를 유지했는데, 우리 측의 계속된 대화 제의가 북한에게 더 유리한 빌미를 제공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송 소장은 “북한은 우리와 핵을 갖고 대화할 의지가 없기 때문에, 설령 남북대화가 성사된다 하더라도 비핵화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얻을 건 남북 긴장 완화에 그치지 않겠나”라면서 “북한에게 질질 끌려가는 대화가 되지 않으려면, 상호 이해관계를 좀 더 면밀히 검토한 후 차근차근 대화를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익명을 요구한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도 “문재인 정부로서는 출범 초기 북한과의 대화를 성사시키는 것 자체에 중요도를 두는 듯하다. 그래서 북한이 호응을 하든 안 하든 일단 계속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이겠다는 신호를 보내는 것”이라면서 “북한의 호응을 이끌어내기 위해 대북확성기 방송이나 한미군사훈련과 같은 카드까지 꺼내들지 지켜볼 대목”이라고 말했다.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17일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평화와 긴장 완화를 위한 남북 간 대화와 협력은 북핵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남북관계와 북핵문제의 상호 선순환적 진전을 촉진해 나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 사진=연합

한편 정부의 남북군사회담과 적십자회담 제안이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강화 국면과 맞물리면서 대북공조 향배에도 이목이 쏠린다. 일각에선 정부가 남북대화 성사에 매진하는 게 자칫 국제사회의 대북공조에 엇박자를 내지 않겠느냐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국제사회에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 발사를 계기로 북한에 ‘징벌적 조치’를 가해야 한다는 여론이 지배적이다. 특히 미국은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 및 기관을 제재하는 세컨더리 보이콧 조치를 독자적으로 검토하는 동시에, 유엔 안보리에는 대북 원유 공급 중단 및 해외 노동자 송출 금지 등의 내용을 담은 결의안 초안을 제출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와 관련 정부는 남북군사회담 및 적십자회담 제의를 비롯해 남북대화 재개를 위한 정책들이 미국 정부로부터 충분히 지지를 받고 있다는 입장이다. 조 장관도 이날 회견에서 “우리가 한반도 평화 문제를 주도적으로 풀어나간다는 것에 대해 한미정상회담과 G20 정상회의 등을 통해 국제사회와 함께 의견을 같이 한 부분이 있다”면서 “그런 범위 내에서 (한미 간) 필요한 상호협조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남북대화 제의 자체가 국제사회 대북공조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진 않을 것이라 전망하지만, 추후 경제협력 등을 확대해 나갈 때 제재 위반 소지가 없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또한 북한과 대화 의제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한미동맹에 균열을 야기하거나, 북한이 미국의 제재를 회피할 만한 여지를 남겨둬선 안 된다고 지적했다.

국책연구기관 관계자는 “미국을 비롯해 국제사회도 한반도의 긴장이 계속되는 걸 원치 않으니 정부의 대화 제의를 부정적으로 볼 이유가 없다”면서도 “통상 군사회담은 경제협력 문제와 결부될 수밖에 없는데, 경제협력 내용이 유엔 안보리 결의에 위반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북한이 한미군사훈련이나 사드 문제 등을 걸고 나오면서 한미동맹을 흔들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다. 이 때 우리 정부가 한미동맹의 근간이 훼손되지 않도록 원칙을 견지해 나가야 할 것”이라면서 “북한이 남북대화를 미국의 제재 회피에 이용하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도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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