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대북 군사옵션, 어디까지 논의됐을까?

제임스 매티스 미 국방장관이 “서울을 중대한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대북 군사옵션이 있다”고 언급한 데 이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유엔총회 기조연설에서 “미국과 동맹국들을 방어해야 한다면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을 “미국이 군사적 옵션을 최후의 선택으로 고려할 수 있다는 원론적 입장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고 해석했다. 우리 군 당국도 “미국과 대북 군사옵션에 대해 협의된 것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미국 고위당국자들의 연이은 언급이 북한의 도발적 행동에 단순히 ‘경고’를 보내기 위한 차원인지에 대해 우려가 드는 것도 사실이다.

美, 1994년 당시 제2의 한국전쟁 준비

한반도 위기 상황에서 미국이 어떤 행동을 보일 지에 대해서는 1994년의 상황을 참고해볼 수 있겠다. 제1차 북핵 위기의 와중이었던 1994년 5-6월 당시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회고록 “My Life”에서 털어놓았듯이 전쟁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겠다는 결심을 하고 있었다.

당시의 정책담당자들이 회고록을 통해 공개한 바에 따르면, 1994년 당시 미국은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이 어려워지자 군사적 옵션을 본격적으로 준비하기 시작했다. 페리 당시 미 국방장관은 5월 18일 미군의 전 4성 장군들을 펜타곤의 비밀회의실로 소집해 제2의 한국전쟁 가능성에 대해 논의했고, 한 달쯤 뒤 다시 소집한 회의에서는 한반도 전쟁과 관련된 세부 사항들이 게리 럭 당시 주한미군 사령관에 의해 보고됐다. 또, 1994년 6월 14일에 열린 미국 내 장관급 회의에서는 영변에 대한 폭격방안이 논의대상에 포함되기 시작했다.

1994년 위기의 정점이었던 6월 16일(워싱턴 시각) 백악관에서는 클린턴 대통령이 참석한 가운데 미국의 고위급 외교, 국방 당국자들이 모인 회의가 열렸는데, 이 자리에서는 한반도에 대규모의 미군을 증강하는 방안이 결정될 예정이었다. 당시 미 국방장관과 합참의장은 5만 명의 지상군과 400대의 항공기 등을 한반도로 추가 배치하는 방안을 지지하고 있었다. 방북 중이었던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이 김일성과 일정 수준의 합의를 이끌어내면서 위기가 수그러들지 않았다면 한반도로 대규모 미군이 증파되면서 전쟁 위기는 더욱 고조될 판이었다.

미국 내 움직임 우리가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못해
 
그 당시 우리 정책담당자들은 미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얼마나 알고 있었을까? 필자가 박사논문을 쓰는 과정에서 당시 정책담당자들을 만나 인터뷰를 해 본 바에 따르면, 우리 당국자들은 미국의 군사적 대비 움직임에 대해 속속들이 알고 있지는 못했다. 위기가 점증돼가는 과정에서 백악관이 군사적 대비를 하고 있을 것이라는 분위기는 감지하고 있었지만, 미국이 제2의 한반도 전쟁 가능성에 대해 얼마나 진지하게 논의하고 있는 지에 대해 구체적인 정보는 갖고 있지 못한 상태였다.

한반도로의 대규모 무력 증파를 결정할 예정이던 1994년 6월 16일 회의에 대해서도 당시 외교안보라인은 정확히 알고 있지 못했다. 당시 외교안보라인의 한 고위당국자만 ‘16일 백악관 회의’에 대해 알고 있었다고 답했지만, 이 당국자도 그날의 회의에서 한반도로의 대규모 무력증파가 결정되는지는 몰랐었다고 말했다.

물론, 당시 고위당국자들이 미국 내의 군사옵션 시나리오를 속속들이 알고 있지 못했다고 해서 한미 공조에 이상이 있었다는 것은 아니다. 미국이 어차피 내부적으로 군사옵션 시나리오를 점검한 뒤 한국과 협의과정을 거칠 것인 만큼, 한국과 본격적인 협의가 시작되기 전에 우리 정부가 미국 내 상황을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여러 회고록에서 드러나듯 당시 미군 장성들의 한반도 전쟁 준비는 우리가 생각하던 것보다는 훨씬 앞서있는 것이었다. 전쟁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에 대비해야 하는 미군 장성들 입장에서는 그런 준비를 하는 것이 어쩌면 기본 임무일 수 있었겠지만,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에 태평양 저 건너편에서 제2의 한국전쟁 시나리오가 꽤 구체적으로 논의되고 있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美 군부 내에서는 여러 군사옵션 구체적으로 검토됐을 가능성

매티스 국방장관이 ‘서울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는 군사옵션’을 얘기한 것으로 미뤄보면, 미국 내 군부 담당자들 사이에서는 이미 한반도 전쟁 시나리오가 여러 가지로 검토되고 있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물론, 검토가 이뤄지고 있다고 해서 그것이 현실화되는 것은 아니고, 무엇인가 행동으로 이어지려면 우리 정부와의 협의를 거쳐야 하는 것도 물론이다. 너무 불안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한 가지 1994년 상황과 지금의 차이점이 있다. 1994년 당시에는 북핵이 미국에 대한 직접 위협은 아니었던 만큼 “우리 군인 60만 중에 한 사람도 동원하지 않을 것”이라는 김영삼 전 대통령의 언급이 상당한 무게감을 가질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북핵이 미국 본토에 위협이 되는 상황으로까지 발전했기 때문에 미국이 자위권 차원의 개념으로 접근할 경우 우리가 미국의 행동을 마냥 제어하기는 어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한미관계가 매우 긴밀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대북정책을 실행하는 데 있어 긴밀하게 협의하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1994년 사례에서 보듯 우리가 미국 내 움직임을 속속들이 알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반도 위기가 지금보다 더 고조될 경우 해법을 둘러싸고 양국 간 이견이 초래될 가능성은 열려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유동적이고 불확실해질 가능성이 높아진 지금 한반도에서의 재난적 상황을 막기 위해 대북정책 뿐 아니라 대미외교가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