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응원단이 쓴 가면, 김일성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김효진 칼럼] 진실공방은 가십에 불과…南 사회 이념적으로 갈라놓는 데 성공



10일 강원도 강릉시 관동하키센터에서 열리는 평창동계올림픽 여자 아이스하키 조별리그 B조 남북단일팀-스위스 경기에서 북한 응원단이 가면을 이용한 응원을 펼치고 있다. /사진=연합

우리는 흉내도 못 낼 북한의 전략적 탁월성, 기회포착의 치밀함과 실행의 유연함이 이 한 장면 안에 모두 응축됐다. ‘실사’와 다름없는 ‘가면’ 응원이라니! 그들이 얼마나 체제선전과 기만전술에 도통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얼핏 단순하고 촌스러워 보이는 이 장면은 간단히 준비된 게 아니다. 사상적 우월성을 보여주기 위한 그들만의 깊은 고민과 목숨을 건 치열함의 결과물이다. 불과 십 수년 전 미녀 응원단의 전술이 평면적이었다면 2018년 그들의 기획과 연출은 과거의 ‘틀’ 안에 머물면서 뛰어난 현장 응용력을 담아낸 놀라운 상상력의 산물인 거다.

김일성이 아니고 북한의 유명 배우 사진이라는 ‘팩트 논쟁’이나 김일성 사진이라면 절대 저렇게 다룰 수 없다는 날카로운 분석으로 보편적인 분노를 보수 일각의 호들갑으로 폄훼하는 전문가들과 그 추종자들의 짐짓 냉정함은 나무에 집착하여 숲의 진실을 놓치는 전형이다. 그 결과 문제의 본질은 호도되기 마련이다.

가면 속 인물이 청년 김일성인지, 북한 인기배우인지가 무슨 중요한 진실일까? 왜 김일성을 단박에 연상시키는 가면 응원인 거냐는 의도와 목적을 탐색하는 것이야 말로 북한을 이해하는 출발인 데 말이다.

따라서 그가 누구냐는 진실공방은 가십에 불과하다. 정작 북한으로선 이미 최소 두 가지를 얻었다.

첫째, 또 한번 이 사회를 양편으로 가뿐히 갈라 놓았다. 김일성이면 어때서? 저들의 ‘기원’이니 누구든 수긍할 수 있다는 몰역사적이고 무개념인 세력과 저들을 질색하는 사람들을 ‘이념적으로’ 구분 짓는데 성공했다. 사상적으로 누가 우호적이고 비판적인지를 간단히 편가른 것이다.

둘째,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내부에서 누가 김일성과 북한에 거부감이 없는지, 무슨 반응이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개괄적으로 훑어냈다. 전략적 판단에는 그런 '감'이 중요하다. 계량적인 수치가 선택의 정밀성을 담보한다면 전체의 흐름과 구성을 한 눈에 간파해낼 수 있는 경험적 감각이 곧 통찰이다.

지도자의 가장 중요한 덕목은 계량적 지지를 뛰어넘는 질적 결단을 뒷받침하는 판단력이다. 이는 곧 나가야 할 때와 물러나야 할 때를 아는 지혜이기도 하다. 북한은 그런 귀중한 '감각'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계량적 경험치를 꾸준히 축적하는 데 성공하고 있는 거다.

더구나 전율이 나도록 놀라운 것은 이 사진 속 인물이 김일성인지, 배우인지 북한은 ‘전략적 모호함’을 유지한다는 거다. 북한이 전술적으로 얼마나 유연한지를 깨닫게 해 주는 사건이다.

정치적 프로파간다를 배척하는 IOC의 규정에 저촉된다면 절묘하게 피해갈 수 있는 융통성의 여지를 고려한 ‘작전’인 거다. 북한이 김일성 가문의 사교집단에 가까운 거 아니냐는 비난 속에서도 그 억압 체제가 실은 얼마나 자유주의 체제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하며, 대응해 왔는지를 헤아리게 하는 단서가 된다.

"해도 너무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해당 매체는 원래 기사를 삭제했다. 팩트의 홍수 속에서 아무런 가치판단은 못하는 언론의 현 상황이 고스란히 담긴 행태이다. 정작 통일부는 '김일성 가면 보도는 잘못된 추정'이라는 단세포적 해명자료로 언론을 압박했다.

다행히도 이 땅엔 가면을 보자마자 김일성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절대 다수를 차지한다. 팩트 자체가 틀렸다며 그들의 오해를 질타하는 일은 진실에 눈감는 행위다. 사진 속 인물이 김일성이 아님을 밝힌들 저들은 의도대로 김일성의 이미지를 평창이란 거점을 통해 전세계로 송출하는 데 성공했으니 말이다.

대중조작과 선전선동의 귀재들에게 팩트 자체란 별 의미가 없는 법이다. 그것이 만들어 내는 맥락과 효과만이 가치가 있는 거다. 통일부의 어이없는 반박은 북한 앞에서는 특히나 중요한 가치 판단을 하지 못하는 이 정부의 초라한 수준과 안이한 상황인식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국민적 불신과 갈등만을 확인해주었다.

국민들의 분노는 저 가면을 쓰고 응원해야 하는 북에서 온 앳된 처자들을 향한 것이 아니다. 상식을 뛰어넘는 선전을 교묘하게 실행하는 북한의 체제와 사리 분별없이 북한이라면 무조건 함께 가자는 강박증에 갇힌 문재인 정권에 대한 반감이자 역사를 기억하는 이들의 당연한 황당함일 뿐이다.

이러한 정서적 보편성은 외면한 채 김일성 사진도 아닌데 왜 흥분하냐며 꾸짖는 전문가의 팩트체크와 그런 지적 앞에 바로 자신의 정당한 분노를 없었던 것 인양 ‘삭제’해 버리는 일부 추종자들의 모습은 인간의 지적 허영이 진실을 감추는데 얼마나 쉬운지를 알게 해준다. 교만은 언제나 교묘히 인간의 이성을 지배하는데 성공했다.

북한의 집요하고 치밀한 사상적인 창의성은 언제나 인간의 자유본능을 억압하는데 유용하고 자유체제의 게으름을 능가하는 걸로 보인다. 그럼에도 그 ‘수월성’은 자신을 치는 부메랑으로 돌아왔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좌파적 사고는 수오지심(羞惡之心)이라는 양심의 필터로 사상의 내면을 살피는 정화기제를 손쉽게 마비시키는 특징이 있다. 가면응원이란 희대의 스캔들은 잘못된 사상이 얼마나 선한 인간의 이성을 효과적으로 지배해 오는 데 성공적이었는지를 보여주는 결정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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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진

-(現) (사)남북경제연구소 기획·연구실장
-(前) 와세다대학(早稲田大学) 아시아연구기구 초빙연구원
-고려대 북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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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김영길

우리남한의 언론이나 정치인들은 문제의본질을 끄집어내지못하고 변두리의 잡다한 현상을 가지고 본질을 변색시키고 본질아닌 본질을 종합하여 본질로 만들어내는 리상주의에 집착한다
복잡한속에서 본질을 알아야 문제해결의 키를가질수있는데도 말이다
례를 든다면 북한은 잔인한 일인일당 독재국가이기때문에 북한인권문제가 본질적인 문제가 아니겠는가하는것이다
왜냐면 우리한국같은 자유민주국가라면 정부에서 국민의동의가없는 핵무기를 만들수있을것이며
세계에 강력하게 도전할수있겠는가 절대 그럴수없을것이다
북한에서 자유민주주의 인권만 보장된다면 경제를 황페하게 만드는 북한의핵무기는 무용지물로 전락하고 말거나 페기될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의핵무기 가 본질이아니라 인권이 문제의 본질이라는것이다
그러나 문재인정부나 역대정부는 북한의아킬레스건인 인권문제를 언급하는것조차 가장큰 도전이나 도발로여기면서 언급하는것조차 두려워하고 꺼려왔다
남한에서 518 민주항쟁처럼 북한에 대한 민주화 항쟁이 선도되고 세계에서 북한의민주화 항쟁을
지원하는것과같은 것이라면 핵무기철페를 전면에 내세우지않고서라도 북한문제를 해결할수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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