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왜 핵 위협을 하지 않았을까?

8월 25일 체결된 남북합의(형식상 ‘공동보도문’)에 이르기까지 준전시상태를 선포한 북한이 정작 왜 핵 위협은 하지 않았을까? 사실상(de facto) 핵 보유국인 북한으로선 핵 위협만큼 강력한 도구가 없었을 텐데 정작 핵 카드는 꺼내지도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이유를 분석하는 작업은 8.25 남북합의를 보는 미국의 관점과도 깊은 상관성이 있다. 남북한 문제가 국지적 문제(local trouble)에서 전 세계적 쟁점(global issue)이 되는 길목에 있는 것이 바로 핵 문제다. 이번 북한의 핵 ‘침묵’은 북한이 이 사안의 복잡성을 얼마나 잘 파악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2년 전이던 2013년 봄의 한반도 위기상황과 비교해 보면 뚜렷이 알 수 있다. 여기에 미국의 관점이 숨어있다. 첫째, 위기발생의 결정적 계기(trigger). 2013년 봄 남북이 ‘말로는 갈 데까지 갔던’ 근본원인은 그 해 2월 북한의 핵 실험과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결의안이 촉매가 됐다. 한마디로 북한의 핵실험 자체가 국제문제였던 것이다. 반면, 이번엔 순전히 목함지뢰로 촉발된 남북한 간 문제다.

당시 북한은 UN의 대북제재에 결사항전의 의지를 과시하며 남한을 볼모로 위협의 강도를 높여갔고 급기야 B-52 폭격기를 비롯해, 미국이 과시하는 최첨단 무기체계의 ‘쇼케이스’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의 무기들이 대거 한반도로 공개적으로 몰려왔다. 

둘째, 위기상황이 처한 맥락(global context vs. local context). 북한의 핵 실험은 남북 간 이슈를 넘어 전 세계적 문제이며, 특히 세계 비확산 규범(governance)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에게는 풀어야 할 커다란 숙제이기도 하다. 북핵 실험의 문제는 바로 전 세계 비확산 (nonproliferation) 체제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자 그 자체로 국제문제이기에 UN 안보리의 결의안이 신속이 발표되는 등 국제사회는 기민하게 대응했던 것이다.

이 ‘맥락’의 차이가 결정적인 이유다. 북한은 남북한 문제를 국제문제로 비화되길 원치 않았다. 핵 위협을 하는 순간, 핵문제의 뇌관인 비확산 문제가 돼버린다. 미국이 남한의 철통같은 안보를 지지하고 나서긴 했으나 당사자 적격에 있어서 2년 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셋째, 북한의 핵 위협. 핵 실험은 핵 위협의 전조다. 핵의 억지력은 재래식 무기의 불균형을 초월한다. 핵을 ‘민족의 보검’이라고 치켜 세우며 핵 보유국임을 선전해 오던 북한이 이번 남북 대치 국면에서 핵 공갈만큼은 하지 않았다는 것은 앞서 분석한 이유들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추론할 수 있다.

북한은 용의주도하게 상황의 흐름과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섣불리 핵을 언급하는 순간, 사건의 맥락이 세계화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에 핵 공갈은 아예 하지도 않았다고 봐야 타당하다. 일각에서는 북한 핵의 실체가 실은 별거 아닌 것 아니냐고 평가절하하는 분위기도 감지되지만 핵 문제에 관한 한 ‘별 거 아닐 수’ 없는 경우란 없다.

북한은 처음부터 목함지뢰 사건이 국제문제로 비화하지 않는 ‘선’까지로 입장정리를 해 두었다고 봐야 한다. CSIS(국제전략문제연구소)의 마이클 그린 부소장은 북한이 협상에 임한 배경으로 김정은 정권의 초조감, 강경한 한국의 군사적 대응 기류, 미국의 군사력에 대한 두려움 이 세 가지가 작용했다고 분석했다(2015년 8월 26일 동아일보).

그러나 이는 평면적인 분석이다. 북한의 대남, 대미 전략을 평가절하한 감이 있다. 북한의 대외전략은 서른 즈음의 ‘포병 천재 김정은’의 말 한마디로 정해지는 것이 아니다. 북한은 평생을 한가지에만 몰입해 온 군과 당의 전문집단이 체제를 뒷받침하는 사회다.

역시 이번 북한의 준전시상태 선포로 북한군의 기동작전과 전력이 의도하지 않게 노출됐다고 하나 어쩌면 이 자체도 북한이 남한과 미국에 던지는 교란술일지 모른다고 접근하는 신중함이 절실하다. 안보문제에 관한 한 ‘낙관’은 어리석은 자문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남북협상을 통해 북한이 미국에 전하려는 핵심 메시지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북한은 이번 남북협상처럼 미국과 양자협상을 하기 원한다. 2013년 봄에도 북한이 원했던 것은 미국과의 담판이었다. 이것을 잘 아는 미국이 나설리 만무하다. 이미 북미협상을 통해 보란 듯 두 번의 실패(1994년 제네바 합의, 2013년 2.29합의)를 맛 본 미국이 쉽게 북한의 유인에 응할리 없다.

더구나 미국은 이미 외교적으로는 북한문제를 중국에 아웃소싱한 것과 같다. 중국의 진도(pace)에 맞추는 듯한 인상마저 주는 마당에 미국이 북한과 단독으로 마주하는 협상장에 쉽사리 나오진 않을 것이다. 2013년 봄 한반도 위기상황의 교훈은 바로 이것이다.

북한은 이번 급박한 위기조성과 신속하고 전무후무한 최고위층 간 직접 협상타결이라는 정치적 연출을 통해 미국에게도 핵 타협이 가능하다는 신호를 보낸 것과 같다. 부디 미국이 이런 북한의 속내를 알아주었으면 애가 탈수도 있겠다. 북한의 핵 외교는 핵을 포기하기 위한 흥정 유인 외교가 아니라 핵을 통해 대접받고 싶어하는 ‘자뻑’ 외교(일종의 reputation effect)와도 같다.

그러나 북한이 스스로는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미국이 믿고 있는 이상, 북한이 바라는 형태의 북미 핵 협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진정 북미협상을 타진하기 위해서라면 북한의 대외전략 참모가 김정은에게 해줘야 할 첫 번째 조언은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도 있다고 미국과 남한이 믿게 만들어야 한다”여야 한다. 남북문제가 로컬이슈로 끝나느냐 국제문제로 비화되느냐는 전적으로 북한의 핵 외교에 달려있다. 이번 협상은 이것을 다시 한번 보여준 이례적 사례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