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장군님은 ‘떼떼’…신년사도 못 읽어”

1994년 12월. 그해가 저물어가는동안 북한 주민들의 상당수는 이듬해 1995년 신년사에 눈길을 돌렸다.


김일성은 생전에 매년 1월 1일 아침 한해 국정운영 목표를 담은 ‘신년사’를 공식 발표했다. 김일성의 신년사 낭독은 그날 바로 조선중앙TV를 통해 전국에 방송됐다. 김일성의 신년사 낭독은 북한 주민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적지 않게 기여했다.


어떤 주민들은 TV속에서 신년사를 낭독하는 김일성을 보면서 “우리수령님 작년에 많이 늙으셨다. 얼마나 고생하셨으면 저렇게 늙으셨을까”하고 눈물을 흘렸고, 어떤 사람들은 “수령님 목소리가 아직도 우렁우렁 하신걸보면 건강에는 아직도 이상이 없는 것 같다”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TV화면속에 비친 김일성의 외모와 목소리를 놓고 김일성의 지난해 1년 활동을 간접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1994년 7월 8일 김일성이 사망하자 그해 12월에는 다음해 신년사 문제가 주민들의 화제거리로 등장했다. 당연히 사람들은 김정일이 신년사 낭독을 대신할 것으로 믿었다. 그러면서 김정일의 목소리와 외모, 말투에 대해 나름데로 호기심을 키웠다.


당시까지 김정일의 목소리를 직접 들어본 주민들은 없었다. 북한 방송에서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때문에 김정일의 목소리와 말투에 대한 주민들의 호기심은 당연한 것이었다.


사실 일부 간부층에게는 김정일의 어눌하고 빠른 말투가 이미 알려져 있었다. 간부들 사이에서는 김정일을 ‘떼떼’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 떼떼란 말을 더듬는다는 북한의 은어(隱語)다.


“우리 장군님은 ‘떼떼’다” “말이 너무 빨라 잘 알아듣지 못해 봉변당한 간부들이 한둘이 아니다” “장군님 말씀을 전달 받을때에는 최대한 긴장해야 한다. 말을 알아듣지 못해서 다시 물어보면 무섭게 쳐다보는데 그 다음날에는 그 사람은 없어진다”는 등이 말이 간부들 사이에서 퍼졌다. 한때는 국가안전보위부가 이런 소문의 근원을 추적하기도 했다.


1994년 12월 일부 중간 간부들 사이에서는 내기가 걸리기도 했다. “우리 장군님이 떼떼인가, 아닌가”하는 것으로 내기가 붙었다. 조만간 그의 신년사 발표를 지켜보면 승패가 결정된다.


그러나 1995년 1월 1일 첫 아침, 북한 주민들의 기대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신년사’ 대신 노동신문(당) 조선인민군(군) 청년전위(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등 3대 기관지가 ‘공동사설’을 발표한 것이다.


이날 아침 김정일은 ‘신년사’를 낭독하지 않고 강원도에 있는 ‘다박솔 초소’에 현지지도를 나섰다. 국가 안위가 매우 중요한 시점이라 전선(戰線)을 먼저 챙겨야 한다는 것이 김정일의 의중이였다는 소리만 나중에 전해진다. 2000년대 초반 ‘선군정치’의 시작을 놓고 김정일의 다박솔 초소 방문이 꼽힌 것도 바로 이런 논리 때문이다.


어쨌든 신년사를 발표하지 않은 김정일의 행보를 두고 당시 주민들 사이에서는 말들이 많았다. 철없는 일부 간부들은 “거봐, 장군님이 떼떼가 맞지”라고 말하기도 했다. 심지어 “장군님은 나이 많은 간부들에게도 반말을 한다. 말투가 도덕적이지 못하다”는 소문도 있었다.


노동당 조직에서는 “장군님이 만류해(사양해) 신년사가 보류(기각)됐다” “‘경애하는 김일성 동지는 영원히 우리와 함께 계신다’라는 구호가 나온 이상 수령님(김일성)이 사용했던 방식은 기대하지 말라”며 주민들의 궁금증을 묵살했다.


북한 주민들은 그해 10월 노동당 창건 50돌 기념 군사 열병식에서 김정일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열병식 개막식에 참여한 김정일이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이 있으라”고 말한 것이 조선중앙TV를 통해 방송된 것이다. 지금까지 김정일의 북한 통치과정에서 유일하게 공개된 육성이다.


당시 김정일은 한 단어씩 끊어서 말했다. “영웅적, 조선인민군, 장병들에게, 영광이, 있으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나 마지막 ‘있으라~’ 부분을 너무 빨리 말하는 바람에 전체적으로 매우 어색하고 우스꽝스러웠다. 당 선전선동부에서는 “장군님의 음성은 적들을 전률케하는 ‘청천병력’과도 같은 불호령”이라고 소개했지만 이에 공감하는 주민들은 거의 없었다. ‘조선인민군 협주단’에서는 김정일의 이 말을 갖고 ‘장군님의 음성’이라는 노래를 말들어 주민들에게 보급하기도 했다.


김정일의 목소리를 들은 주민들의 평가는 엇갈렸다. “그동안 목소리 많이 고친것 같다” “연습을 엄청 많이한 것 같다”는 일종의 동정론과 “떼떼라는 것을 들킬까봐 최대한 짧게 말한 것이다”라는 냉정한 평가가 있었다.


북한은 올해로서 총 17번째 공동사설을 발표했다. 사실 신년사에서 공동사설로 넘어오면서 다루는 내용의 깊이나 자신감 등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주민들 입장에서는 단 하나도 지켜지는 것이 없는 공수표다보니 이제 공동사설을 관심있게 보는 사람도 거의 없다. 다만 직장과 인민반에서 강제로 암송을 시키기에 기계처럼 되뇌일 뿐이다.


공동사설에 대한 관심이 하락한 탓인지, 이제는 김정일의 목소리를 둘러싼 주민들의 입씨름도 없어졌다. ‘비판보다 더 무서운 것이 무관심’이라는 말이 있다. 이제 북한주민들에게 김정일의 존재는 무관심의 대상이 된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