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생일, 왜 아직도 공휴일도 아닌가

며칠 전 북한달력을 전달받았다. 그전에 김정은 생일 관련, 북한달력에 대한 언론기사가 나와서 김정은 생일인 1월 8일을 확인해봤다. 진짜, ‘8’이라는 숫자가 빨간색이 아닌 검정색이었다. 김정은 생일이 여전히 공휴일로도 정해지지 않은 것이다. 2018년 달력이니 내년 안에도 김정은 생일이 공휴일이 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의미이기도하다. 많은 북한학자들이 2016년 5월, 제7차당대회를 기점으로 김정은의 생일이 민족최대명절로 제정될 것이라고 예측했고, 더 나아가 국가기념일로도 지정될 것이라고 하면서 ‘화성절’, ‘은하절’ 등 기념일명도 추정하곤 했었다. 필자 또한, 올해 8월에 개최된 백두산위인칭송대회를 통해 김정은의 생일이 적어도 국가명절로는 제정될 것으로 내다 봤었다. 그 이유는 북한이 지도자상징정치의 주요 요소인 지도자일화·역사(혁명역사, 혁명활동)부문에 있어서 김정은에 대해 김일성, 김정일보다 강도 높게 우상화를 진행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도자상징정치에 가장 기본이라 할 수 있는 지도자기념일에도 접근할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직까지도 국가명절은 고사하고 공휴일로도 지정되지 않았다. 이 사실은 북한 지도자들을 연구하는 필자가 볼 때 가장 난센스한 일이다.

2014년 김정은 생일 공개 및 그 이유

사실, 김정은의 생일이 공식적으로 공개된 것은 김정은이 권력을 승계한 2012년이 아니다. 2년이 지난 2014년이었다. 일반 북한주민들은 적어도 2년 동안은 최고지도자의 생일이 언제인지도 몰랐다는 얘기다. 이 자체도 아이러니한 일이다. 2012년, 2013년에는 북한 어떤 언론매체에서도 김정은 생일을 알리는 글이나 기사가 없었다. 2014년에도 북한당국차원에서 김정은 생일을 공식적으로 밝힌 것도 아니다. 2014년 1월 9일자 노동신문은 제1면과 제2면에 미국의 전 NBA 농구선수인 데니스 로드먼이 그의 동료들과 북한을 방문해 북한 홰불팀 선수들과 8일, 평양체육관에서 친선경기를 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께서 우리나라와 미국롱구선수들의 경기를 관람하시였다>는 제목으로 대형사진 4장과 더불어 관련내용을 실었는데, 여기서 로드먼이 농구경기를 개최한 이유가 나온다. “이번 경기를 조직한 것은 존경하는 원수님의 탄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이다”고 로드먼의 입을 통해 김정은의 생일이 드러난 것이다. 지도자중심의 독재사회에서 참 납득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4년은 장성택이 처형(2013.12.12.)된 바로 다음해로, 많은 북한학자들이 김정은의 리더십이 확보된 시기라고 보았다. 필자도 김정은이 ‘세계의 태양’이라는 지도자 상징성을 얻고, 수없이 쏟아지는 김정은 찬가(칭송가)들을 보면서 동일하게 평가하였다. 김정은 우상화의 본격화차원에서 그의 생일이 전략적으로 공개된 것으로 본 것이다. 그래서 2015년부터는 김정은 생일이 기념될 것이라고 전망했었다.

공휴일이 안 된 김정은 생일에 대한 일반적 견해들

2015년부터 2017년까지 김정은 생일날 전후로 노동신문의 글이나 기사들을 검토해본 바 김정은 생일을 언급하는 글이나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참 특이한일이다. 북한이 2014년에 전략적으로 김정은 생일을 밝힌 것은 그 다음해부터는 공식적으로 기념하고 선전하기 위한 수순이 아니었던가. 이런 과정을 통해 공휴일로 정하고, 다음엔 국가명절로 제정하는 것이 정해진 순서가 아닌가. 그런데, 2017년까지 김정은 생일관련해서는 아무런 움직임이 없다. 모든 언론매체들도 침묵으로 일관한다. 필자를 비롯한 적지 않은 학자들의 예측이 빗나간 것이다.

왜 일까? 김정은의 생일이 공휴일도 안 된 것은 누구보다도 김정은 당사자의 의지가 작동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김정은은 자신의 생일을 공휴일로 정하는 것도 승인하지 않는 것인가. 풀기 쉬운 문제는 아니다. 다음의 세 가지 견해들이 있다. 하나는 김정은의 나이가 아직 어리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탈북민들이 여기에 동의한다. 김정일의 생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이 1982년으로 당시 그의 나이가 40세라는 것이다. 그에 비해 김정은은 이제 불과 34살밖에 안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도 아주 틀린 답은 아니다. 하지만, 김정일이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후계자로 채택(1980년)된 지 2년밖에 지나지 않았다. 김정은은 정권을 승계하고 최고지도자가 된지 벌써 6년을 넘어서고 있다. 비록 나이 상으로는 어리지만 김정은은 김정일보다 권력의 정점에 서있다. 더 분명한 것은 김정은이 30대 초반이지만, 북한전체인민들에게 ‘자애로운 어버이’라고 불린다는 점이다. 나이가 어리다는 이유는 그리 적합해 보이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표면적인 겸손과 겸양으로 인민들 위주의 멸사복무정신의 발로라는 것이다. 이것은 북한의 지도자상징정치를 조금만 들여다봐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북한정권은 지도자상징정치가 강력하게 작동되어야 굴러가는 유일영도, 유일지도체제이다. 지도자상징화 매개체로는 지도자기념일, 지도자동상(기념비, 기념관), 지도자 역사일화, 지도자 칭송가(찬가)등이 있다. 이런 것들을 통해 북한인민들은 지도자에 대해 ‘신화적 사고’ 즉, 지도자 인상에 대한 신들림의 현상을 갖게 된다. 현재, 북한인민들의 무조건적이고 맹목적인 충성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만일, 김정은이 인민을 위한 멸사복무의 겸손정치로 나갔다면, 3살 때 자동차를 운전하고, 사격의 백발백중 명사수라는 자신에 대한 우상화작업을 불허해야 마땅했을 것이다. 어떤 이는 핵개발에 집중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김정은에게 있어 핵무력은 체제결속 성격이 강하다. 그만큼, 지도자상징정치가 잘 먹혀들지 않는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김정은이 핵 도발에 올인 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정은이 자신의 생일을 묻어두는 이유, 그의 생모 고용희 때문

김정일은 김일성이 사망하고 탈상시기인 1995년에 그의 생일을 국가명절로 제정했다. 앞서 기술한대로, 북한 지도자 생일을 국가명절 또는 기념일로 제정하는 것은 북한지도자상징정치의 기본이다. 권력독점력이 강한 김정은도 얼마나 자신의 생일을 부각시키기를 원했겠는가. 하지만, 부작용을 초래할 위험요소가 있었다. 바로 그의 생모 고용희의 존재다. 김정은의 생일이 기념되면 자동적으로 연동되는 것이 그의 생모 고용희다. 북한은 김정일의 생일을 신성화하기위해 백두산 출생설을 내놨고, 그 핵심배경이 바로 김정일의 생모 김정숙이었다.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내세울 때도 김정숙을 ‘선군의 어머니’로 부르게 하면서 권력을 장악하고 유지하는데 십분 활용하였다. 북한이 올해 12월 24일, 김정숙의 탄생 100돐 기념대회를 거창하게 진행하면서 김정숙을 ‘수령결사옹위’의 화신으로 추켜세웠다. 김정은 시기에도 김정숙은 ‘조선의 어머니’라고 추앙받을 만큼 북한인민 모두에게 자랑스런 존재인 것이다.

김정은의 생모 고용희는 어떠한가. 김정은은 자신이 정권을 승계한 지 7년차에 접어들고 있는데도 여전히 고용희를 내세우지 못하고 있다. 북한여성 대표잡지로서, 김정숙을 비롯한 여성영웅을 소개하고 선전하는 「조선녀성」(1946년 창간)도 고용희에 대해서만큼은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조선녀성이 북한전체여성들에게 혁명적 여성리더를 내세우며 따라하게 만드는 대표적인 잡지인 것을 감안할 때, 고용희를 전혀 소개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사로운 일이 아니다. 그 이유는 고용희의 출신성분 때문이다. 고용희는 북한의 계층별 성분 분류(3계층 51개부류구분사업, 1970년)에 따르면 가장 하위계층인 ‘적대계층’(복잡군중)에 속하는 재일교포출신이다. 북한이 1981년 1월부터 ‘북송재일교포요해사업’을 추진한 이후부터는 64개 부류로 늘어났다. 재일교포들은 국군포로나 반혁명종파분자와 같은 부류에 속해 있던 만큼 고용희의 존재는 김정은에게 치명타가 아닐 수 없다. 김정은은 자신이 후계자로 낙점을 받는 데 막후정치를 하며 왕좌의 길을 닦은 장본인이 생모인 고용희임을 너무나 잘 알지만 여전히 그녀의 존재가 드러나는 것에 좌불안석인 것 같다. 2014년에 살짝 자신의 생일을 공개했다가 현재까지도 그냥 묻어두는 것을 보면, 고용희의 존재가 자신에게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이자, 아킬레스건이라는 것을 직감하는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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