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소탄 실험’ 김정은이 연출한 북한式 쇼의 완결판

북한이 2016년 새해 벽두인 1월 6일 또다시 지하 핵실험을 강행하였다. 지난 2006년 10월, 2009년 5월, 2013년 2월에 이은 네 번째 핵실험이다. 북한은 이번 핵실험과 관련해, “조선의 첫 수소탄 시험(실험)이 성공적 진행되었다”고 선전했을 뿐 구체적인 성능이나 폭발당량(當量)에 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우리 기상청의 지진계측 기록에 따르면, P파(primary wave)의 최대 진폭은 리히터 규모 4.9로 2013년 2월 제3차 핵실험 때와 비슷한 수준이었다. 중국지진센터가 발표한 기록도 이와 유사한 수치였다. 리히터 규모 4.9라면 지하핵실험의 폭발당량은 아무리 늘려 잡아도 TNT 7,8kt의 폭발위력을 넘지 못한다. 이 정도의 폭발당량을 가지고 이번 핵실험을 수소폭탄 실험이라고 보기에는 적지 않은 무리가 따른다. 북한의 주장대로 수소폭탄 실험이 맞다고 전제한다면 그것은 극소형 수소폭탄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북한은 무슨 재주를 지녔기에 단 한 번의 실험을 통해 극소형 수소폭탄을 만들어냈다는 말인가. 핵개발의 선두주자인 미국과 러시아도 하지 못한, 아니 꿈도 꾸지 못한 일을 북한은 어떻게 해냈다는 것인지. 흔히 “과학기술에는 비약이 없다”고 한다. 좀 더 정확히 표현하자면 ‘없는 것’이 아니라 ‘있을 수가 없다.’ 과학기술에 비약이 있을 수 있다고 가정한다면 그것은 부시맨이 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만큼이나 황당한 생각이다.

현재 지구상에서 수소폭탄을 보유한 나라는 미국과 러시아·영국·프랑스·중국 5개 나라뿐이다. 이들 나라는 모두 수없이 많은 실험과 시행착오, 실패와 성공을 거듭한 끝에 수소폭탄을 보유하게 되었다.

수소폭탄 기술에서 핵심은 빠른중성자(빠른 속도로 운동하는 중성자)에 대한 속도와 양의 제어, 그리고 초고온에 대한 제어이다. 제어방법과 수단의 선택 그리고 초기 원료 획득 여하에 따라 여러 종류의 수소폭탄이 만들어질 수 있다. 먼저 여러 차례의 실험과 시행착오를 통해 데이터를 축적한다. 이어 수학적 통계기법으로 빠른중성자의 속도와 온도 변화에 따른 초기 원료의 양과 질적 변화 및 폭발당량 간의 관계를 회귀방정식으로 만들어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수치화한다. 그리고 3D 설계도까지 완성하여 여러 가지 형태의 분열탄·융합탄·분열-융합-분열 3상 수소폭탄, 심지어 7단계까지 분열·융합하여 TNT 1억t의 폭발당량을 지닌 거대 수소폭탄도 만들 수 있다.

물론 이런 엄청난 폭탄은 사용가치를 상실한 폭탄이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존재하지는 않는다. 다만 테니스 공만한 크기의 극소형이면서도 폭발당량은 1만t에 달하는 수소폭탄(일명 붉은 수은탄)까지 만들어졌다고 한다. 현재 수준에서 수소폭탄의 중성자 가속 속도는 초당 5만km까지 이르고 있다. 이와 같이 빠른 중성자는 ‘U238’까지 연쇄반응을 일으켜 핵분열을 야기시킨다고 한다. 3상 수소폭탄이 바로 이와 같이 빠른중성자를 이용한 것이다.

그렇다면 북한은 어떨까. 북한은 지금까지 한 번도 실험을 해본 적이 없다. 따라서 어떤 실험 데이터도 축적한 바 없다. 그런 북한이 수소폭탄 실험 장치를 디자인하고 제작하여 ‘어느 날 갑자기’ 실험을 하여 성공했다고 하니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도깨비 방방이도 이런 도깨비 방망이가 있을 수 없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단 말인가. 잠시 호흡을 가다듬고 가만히 숙고해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점이 전혀 없지는 않다. 이 지구상에서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북한’이라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먼저 세계의 핵전문가들 가운데 누구도 쉬 납득하지 못하는 북한의 ‘수소탄 시험 성공’ 주장을 김정은은 과연 믿고 있을까? 아니면 ‘쇼의 달인’답게 이번에도 남들이야 믿건 말건 한 바탕 ‘수소폭탄 쇼’를 펼치고 있는 것일까? 모르긴 해도 이번만큼은 김정은이 쇼를 한다고 여겨지진 않는다. 김정은 스스로 수소폭탄 실험에 성공했다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는 ‘쇼’가 되어버렸지만 김정은만큼은 이것이 쇼인 줄 모르고 있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지도자로서 아직 어리긴 해도 김정은이 영 바보는 아닐 텐데 말이다. 이는 북한 내부의 명령-집행 과정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북한 특유의 관행 내지 생리를 모르면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 프로그램은 김일성의 ‘교시’에 따라 1986년부터 시작되었다. 19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한 뒤 돌아서서 핵무기 개발에 본격 뛰어들었다. 종래 소련 전문가들의 지원 아래 원자력 연구단지로 출범한 평북 영변 핵단지가 이때부터 정무원(내각) 원자력공업부에서 중앙당 군수공업부로 이관되어 핵무기 개발의 총본산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리고 오늘까지 30년을 이어오고 있다. 이미 핵무기를 개발·보유하고 있는 나라들의 전례에 비추어 볼 때, 30년이면 원자폭탄은 말할 것도 없고 수소폭탄까지 보유하고도 남는 세월이다. 그러나 북한의 핵무기 개발 진도는 여태 70년 전 일본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16kt)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에 머물고 있다.

수소폭탄만 하더라도 북한의 과학자·기술자들이 실험장치의 디자인과 제작 원리, 실험방법 등에 대한 이론과 지식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실험수단과 제작설비, 초기 원료 획득과 엔지니어 확보 등 어느 하나도 제대로 갖추고 있지 못하다. 그런 북한이 어처구니없게도 ‘수소폭탄 실험’을 실시한 것은 앞에서 언급한 대로 북한식 명령-집행 과정과 그 안에서 벌어지는 그들 특유의 관행과 생리가 있기에 가능한 것이다.

우선 북한에서 최고 권력자가 의도하거나 원하는 것이라면 나머지 사람들은 그것이 무엇이든 ‘무조건’ “할 수 있다” 또는 “하겠다”고 말한다. 단순히 “할 수 있다” 또는 “하겠다” 정도가 아니라 서로 ‘경쟁적’으로 그렇게 대답한다. “어렵다” “곤란하다”든가, 어떤 조건을 붙인다는 것은 애당초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된다. 그것이 당과 수령에 대한 충성의 표지이기 때문이다. 물론 이럴 경우 최고 권력자가 이런 실상을 잘 알고 현실을 직시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최고 권력자라고 해서 현실을 다 꿰뚫고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문제나 핵문제처럼 전문적인 영역으로 들어가면 더욱 그렇다.

더욱이 당 또는 최고사령관 명령으로 특정 무기를 개발하라는 과제가 떨어지면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무조건 관철해야 한다. 아니 최소한 하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물론 여건이 불비하고 기술수준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그것을 관철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명령이 떨어진 이상 모양과 형태가 비슷한 것이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품질이나 질적 수준은 애당초 문제가 아니다. 이러니 심의·검열 과정에서 불합격이 나오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불합격이라는 판정이 나오는 순간 과제에 참여했던 사람들은 몽땅 줄초상을 각오해야 한다. 그러니 눈 딱 감고 합격 판정을 내린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이다.

물론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더러 사고가 터지기도 하지만 책임 소재를 따지기가 만만찮다. 굳이 책임을 묻자면 가당찮은 명령을 내린 당과 최고사령관이 져야 할 몫이다. 결국 관련자들의 충성심 부족으로 돌리고 유야무야 넘어간다. 이런 일은 비단 무기개발 뿐만 아니라 다른 분야에서도 일상적으로 되풀이 이 되는 현상이다. 그러다 보니 그들 스스로도 집단 최면에 빠져들게 된다. 최고 권력자도 예외는 아니다.

도무지 성찰이 없는 사회, 성찰을 해서는 안 되는 사회, 나아가 성찰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회가 되어 버린 북한. 그곳에서는 최고 권력자의 명령과 의도는 ‘무조건’ 관철되어야 하는 당위적 성격만 지닐 뿐 거기에 가(可)-불가(不可) 또는 호(好)-불호(不好), 타당성이나 효율성 따위는 처음부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번 ‘수소폭탄 실험’도 마찬가지이다. 김정은이 “우리는 수소폭탄을 못 만드는가” 하고 물으면 관련자들은 이구동성으로 “할 수 있다” 또는 “하겠다”고 대답한다. “명령만 내리면 지금 당장이라도 시험할 수 있다”고 큰소리 쳤을 것이다. 이런 분위기에 “턱도 없는 얘기”라며 찬물을 끼얹을 바보는 북한에 없다.

김정은이 작년 12월 평양 평천혁명사적지를 시찰한 자리에서 “오늘 우리 조국은 나라의 자주권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지킬 자위의 핵탄, 수소탄(수소폭탄)의 거대한 폭음을 울릴 수 있는 강대한 핵보유국으로 될 수 있었다”고 호언한 것은 이런 배경과 바탕 위에서 나온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이틀 뒤인 12일 모란봉악단의 베이징 공연이 취소되고 다시 사흘 뒤인 15일 김정은이 수소폭탄 실험을 명령한 것으로 북한 선전매체들은 전하고 있다. 김정은이 명령을 내리고 명령서에 서명(1.3)한 이상 실험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문제는 ‘존재하지도 않은’ 또는 ‘능력도 안 되는’ 수소폭탄 실험을 어떻게 할지가 관건이다. 떨어진 발등의 불이고 보면, 관련 담당자들로서는 시늉이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결론은 간단하다. 세 차례 핵실험 이후 추가 실험을 위해 준비해온 연장선상에서 ‘수소폭탄 실험’을 가장한 핵실험을 하는 수밖에 없다. 제3차 핵실험으로부터 조금의 업그레이드도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은 실험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어차피 실험은 출발부터 ‘수소탄’으로 이름 붙여진 상황이다. 어찌할 것인가. 늘 해오던 그대로 익숙한 ‘쇼’를 되풀이하는 수밖에. 이번 ‘수소폭탄 실험’은 김정은이 연출한 북한식 쇼의 완결판에 가깝다. 이런 ‘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새삼 궁금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