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살인율과 청진 공안간부 살해사건

살인은 다른 사고사와 달리 고의성이 있다. 따라서 살인은 그 동기가 존재하고 그에 따라 행위에 대한 판단이 달라진다. 안중근 의사의 이토 히로부미 저격은 정의의 심판이라는 인식이 있는 반면, 연쇄살인범 유영철의 행위는 인면수심에 비유된다. 그러나 어떤 형태의 살인이든 전체적인 살인 발생 비율은 그 사회의 발전 정도, 치안 수준, 폭력성 등에 좌우된다고 볼 수 있다.


유엔 등이 발표한 2010년 연간 살인율(인구 10만명당 살해자 발생 비율)을 보면 가장 낮은 그룹은 0.6∼0.9대인 일본, 독일, 스웨덴, 덴마크, 네델란드 등 선진국이다. 다른 대부분의 유럽국가들은 이들 국가의 2, 3배에 해당한다.


자본주의 선진국들이 안고 있는 황금만능주의와 인간 소외에서 비롯된 불특정다수를 향한 범죄 등이 전 세계를 경악시키기도 하지만 현실적으로 발생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것을 통계는 말해주고 있다.


최상위권은 30∼70명대로 중남미와 남아공 등이 차지하고 있다. 아프리카 일부 국가들은 살인율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제대로 된 통계조차 나오지 않고 있다. 르완다나 시에라리온, 수단 등 아프리카 내전은 집단 학살의 대명사처럼 됐다.


중남미권은 과거 권위주의 통치기에 정권에 의해 수많은 납치살인이 발생했다. 이 지역들은 정권 차원의 이러한 살인 행위는 줄었으나 여전히 반군이나 갱단 등 범죄집단에 의해 납치, 살해 문제가 심각한 상태이다.


살인율이 가장 높은 국가는 온두라스이다. 전체 인구 770만 명의 온두라스에서 10만 명 당 82.1명이 마약 범죄 등에 연루돼 살해됐다. 인구 610만 명의 엘살바도르의 경우 총 4000명이 살인사건으로 희생돼 2위를 기록했다. 1970년대 세계 최고의 살인율을 기록했던 멕시코는 사회가 안정되고 치안이 개선되면서 18.1명대로 절반이 줄었다.


한국의 살인율은 늘고 있는 추세다. 2000년도의 2.0명에서 점차 높아져 2010년에는 2.9명 정도로 상승했다. 이 수치는 대부분의 유럽권과 비슷하거나 약간 높은 수치다. 일본에 비해서는 3배 이상 높은 수준이다.


러시아는 지속적으로 낮아지고는 있으나 15명, 미국은 5명 정도이다. TV나 영화를 많이 접하는 청소년들이나 반미의식이 강한 사람들,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처럼 미국식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사람들은 흔히 미국의 살인율이 세계에서 최고 수준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는데 선진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준이라고 해야 적절한 평가이다.


북한의 살인율 통계는 발표되지 않았다. 우리나라 통계청이 발표하는 ‘2011 북한 통계’에도 기대수명 정도만 추정돼 있지 범죄 관련 통계는 없다. 현재 북한은 세계 최빈국으로 기초생활 물자도 부족할뿐더러 사회 전체에 부정부패가 만연해 있다. 탈북자들에 따르면 주변에서 각종 절도나 강도 행위는 수시로 발생한다. 행정 최소단위인 인민반(보통 40-50세대)에서 2주 1회 사건, 사고가 발생한다는 증언도 있다.


북한은 당국에 의한 공개처형이나 정치범수용소 등 각종 구금시설의 학대행위나 영양 결핍, 수사기관의 고문, 탈북자들에 대한 총격 사살 등 정치적 살인 행위도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 이러한 정황과 증언으로 볼 때 북한의 살인율은 실제 남미 수준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


김정일 사후 북한 청진에서는 공안기관 간부들이 연쇄적으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그리고 한 사체 옆에는 “인민의 이름으로 심판한다”는 쪽지가 발견됐다. 김정일 시대에 인민의 피와 땀을 쥐어짠 자들에 대한 심판과 경고의 의미가 글귀에 담겨 있다.


기존의 절도나 강도, 정치적 살인과는 전혀 다른 성격의 사건이다. 이번 살인을 저지른 범인들은 테러를 통해 북한 당국과 그 녹을 먹고 사는 간부들에게 준엄한 경고를 날렸다. 인민의 이름으로 폭정에 대한 심판이 시작됐음을 알리기 위한 행보이다.


테러를 통해 목적을 달성하는 데는 부정적인 의견이 많다. 정의는 무엇인가의 저자 마이클 센델은 반(反)공리주의 입장에서 이들의 행위에 비판적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극단적인 억압과 폭력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긴급한 행동을 선택한 이들에게 우리가 ‘생명을 존중하라’는 조언을 하는 것도 적절해 보이지 않는다. 북한 주민은 현실을 개척할 능력이 없다는 조롱에 행동으로 답한 이들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들임은 틀림이 없다.